사이펀 신작시 | 나금숙
잔도棧道를 위하여
이 사다리를 연결하다
죽어간 이들의 한숨
그들의 구름 한 조각
발꿈치에 돋던 날개
공기를 밟는 부드러운 깃털을 봐
그들 속의 모든 길이 밖으로
내어달렸다
길은 사다리는 상승을 권유한다
그들의 표고가 심연의 깊이와 같다는 것을 깨달을 때
젊은 해들은 어둠을 찢고 올라온다
깊은 수직 하늘이 우리를 드높이 밀어올리다
수직으로 심연에 떨어뜨린다
그때 숲속에선 숨어있던 버섯들이 일어서고
공중의 대사인 사슬이
먼 길 흘러온 투명 비닐봉지를 포획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천 길 아래로 낙원이, 스올이 보인다
절벽에 간신히 붙은 교량이 연결하는 것은
하늘의 평면이 아니라
수직의 깊이
밤새 밀어 넣어진 심연의 고봉에서
하늘 꼭대기로 다시 분출하는 경이驚異
길은 흔들리며 자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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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고 싶지 않아
도금이 벗겨진 황금나침반은
당신이 가지길
젠가의 한 조각을 간신히 빼서 옮길 때처럼
동물들은 뭐든지 처음이다
싫증을 안낸다
의심 많은 현재를 산다
마유주를 마시고
쌍봉낙타를 타고 노을 속을 한없이 갈 때쯤엔
사람도 짐승도 서로 닮아있다지
꿈속에 전화 부스에서 스킨헤드족을 만났다
죽은 이의 명함으로 내 눈을 찌르려 했다
테러를 기다리는 나의 권태가 그제서야 꿈틀했다
아첨으로도 회유로도
영원히 익지 않는 검은 열매는
수초 정원 속에서
끈적거리는 달콤한 불안들과
비좁은 골목에 오래 서 있었다
내 품속에서 부드러운 진흙 한 덩이를 이겨
끔찍한 기억들에 덧발라 준다
말을 못해도 여전히 회답을 바라는 원망들에게
잠시 침묵을 선사해 주었다
다시 입이 생겨도 말을 못할 그들에게
소리 없는 낭독을 들려주었다
나금숙 |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레일라 바래 다 주기』, 『그 나무 아래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