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virtu vs. 폭력
‘virtu’와 ‘폭력’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목적의 차이와 관점의 차이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먼저 ‘virtu’는 개인의 욕망이나 사사로운 감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과 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정치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가령 로마에게 17년간 절망을 안겨다준 고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로마와의 전쟁의 승리를 위해 고된 일정이 예상되는 알프스 산맥을 향해 진군하였고 총사령관 한니발도 일개 용병과 마찬가지로 꽁꽁 얼어붙은 식사를 목구멍에 밀어 넣고, 일개 용병과 마찬가지고 낭떠러지 아래에서 선잠을 잤다. 그리고 이윽고 이탈리아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명연설을 통해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그리고 병사들의 표정에서 쌓이고 쌓인 피로와 불만이 사라졌었던 것은 당연했다. 한니발의 병사들은 왜 이토록 자신들에게 고통을 준 총사령관을 존경하고 따랐던 것일까? 이는 그의 행동이 단지 고통만을 위한 ‘폭력’보다는 ‘virtu’를 통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로마인들 자신에게 반항하는 도시들을 무참하게 짓밟았으며, 이러한 잔인성을 바탕으로 수 천년동안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따라서 위 사례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러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폭력’을 사용한 목적이 단지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이 아닌 ‘공공의 선’을 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니발은 포에니 ‘전쟁의 승리’라는 ‘공공의 선’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로마는 ‘제국의 유지’라는 ‘공공의 선’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물론 ‘virtu’와 ‘폭력’의 차이는 관점의 차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가령 로마의 관점에서는 잔인성은 ‘virtu’이겠지만 침공당한 도시의 입장에서는 단지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virtu’와 ‘폭력’의 차이의 기준은 조금은 상대적일 수 있으나 어느 정도 직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목적’과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잘 사용된 폭력 vs. 잘못 사용된 폭력
마키아벨리는 같은 폭력이더라도 민심을 위하고 지역의 안정을 위한 ‘폭력’과 개인의 이기심을 위한 ‘폭력’에 대해 구분하였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결과론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virtu’와 같이 공공의 이익과 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폭력과 그렇지 않은 폭력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군대의 사기와 승리를 위한 혹독한 훈련 또는 정치의 안정을 위한 엄격한 법 집행 등은 폭력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지 ‘폭력’이라고만 보지 않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필요악’과 같은 맥락에서 어떠한 공공의 선을 위한 도구로써 폭력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단지 폭력을 위한 ‘폭력’은 잘못 사용된 폭력이며, 오직 개인의 이기심을 위해 사용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오직 잘 사용된 폭력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이러한 구분은 단지 ‘폭력’에도 종류가 있고 그 종류를 위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잘 사용된 폭력과 그렇지 않은 폭력의 정당성 문제는 여기서 다룰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폭력을 위한 폭력은 경계해야한다고 말하며, 만일 군주가 잘못 사용된 폭력을 일삼는다면 국가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언급한다.
Agathocles vs. Cesare Borgiacy
Agathocles는 잔혹하고 자기편을 배신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등의 존경받지 못할 행동을 일삼았다. 그리고 원로원 의원들과 부자들을 군사들로 학살한 뒤 군주가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행동은 권력을 얻기에 충분히 경제적인 방법이었으나, 근본적으로 존경을 받기에는 어려운 행동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사악한 방법을 통해 군주가 되는 방법이라 하면서 경계했다. 그러나 발렌티노는 영리하여 지역에 번영을 가져다주고 민심을 위한 행동을 하였다. 이 둘 모두 ‘폭력’을 사용하였는데 그 형태는 달랐다. Agathocles는 자신의 욕망성취의 도구로서 ‘폭력’을 사용했으며 발렌티노는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정치의 도구로서 ‘폭력’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발렌티노를 Agathocles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