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민들레국수집 20년 | |
세월이 쏜살처럼 흘렀습니다. 20년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저도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민들레국수집을 2003년 4월 1일에 열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마흔 아홉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예순 아홉이나 되었습니다.
20년 전에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네 가지만은 꼭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생색내는 돈을 받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였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면서 착한 개인들의 희생으로 나누는 도움으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오로지 착한 개인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를 겨우 보냈습니다. 돈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오죽하면 식사하러 온 손님이 반찬값에 보태라면서 몇 천 원, 만 원을 내놓았습니다. 그날 하루 번 돈을 몽땅 내어놓습니다. 후원금이 많아지면 유혹이 커집니다. 좀 더 많은 노숙 손님들에게 좀 더 대접을 잘 하려면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없이 광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상들이 건방을 떨게도 했습니다.
민들레라는 이름은 예수살이 공동체의 조카 민들레 서원식에 참석했다가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살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소유로부터의 자유, 간나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을 민들레국수집의 기본 정신으로 삼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사람대접’이라 우리 손님들이 눈칫밥을 먹지 않게 무료급식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았습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간판도 달았습니다. 하얀색 바탕에 노란 글씨를 써서 되도록 눈에 뜨이지 않게 했습니다. ‘안 보이는 광고’를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특징인 나눌줄 모르는 금기를 깨고자 했습니다. 손님들께 잘 살라거나 기도항라는 잔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벽에 십자고상 하나만 걸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하나를 놓고 시작했습니다. 손님은 점점 늘어나는 데 식탁 하나는 터무니없이 모자랐습니다. 식탁을 늘일 방법이 없어서 시간을 늘였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12월에 MBC 사회봉사대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상금이 천만 원입니다. 상금으로 민들레국수집 옆 가게를 얻어서 식당을 넓혔습니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여섯 개를 놓았습니다.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알려지면서 점점 손님들이 늘었습니다. 돈도 더 필요해졌습니다. 후원금도 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민들레국수집을 키우기보다는 작게 나누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식탁 하나에서 여섯 개로 늘였습니다. 민들레의 집을 열었습니다. 민들레 꿈 공부방을 열었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를 열었습니다. 민들레 진료소를 열었습니다. 어린이 밥집을 열었습니다. 어르신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어머니를 위한 다문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처음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느님은 언제나 최소한의 도움으로도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꿈은 꾸지만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저 기다립니다. 민들레국수집 20주년 감사미사를 드릴 즈음에 동네가 어수선합니다. 아마도 마을이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모양입니다.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가난한 우리 손님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옮기면 됩니다.
2023년 4월 1일 오전 11시에 민들레국수집에서 민들레국수집 20주년 감사미사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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