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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KIA 선발투수 양현종(사진 왼쪽)과 아퀼리노 로페스. 양현종이 공을 토스하면 로페스는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신체 밸런스를 바로 잡기 위한 훈련이지 타격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9구단에 대한 선수지원책이 현실화하면 엔씨소프트는 극단적으로 투수가 타자로 나설 수도 있다. 그만큼 1군급 선수지원이 미미하기 때문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엔씨소프트를 링 위로 부른 사람들이 누굽니까? 우리 아닙니까. 당연히 복싱 글러브를 끼워줘야 합니다.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엔씨소프트를 파트너로 선정하지 않았어야 했어요.”
엔씨소프트가 9구단 창단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을 때다. SK 신영철 사장은 ‘공동 운명론’을 들고 나왔다. 엔씨소프트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상 기존 8개 구단이 성공적인 신생구단 창단을 위해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신 사장은 “SK도 선수층이 얇지만, 프로야구 발전이란 대의를 위해 신생구단에 현실적인 선수 지원을 해줄 참”이라고 밝혔다.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 사장들 대부분은 신 사장과 비슷한 뜻을 나타냈다.
이때만 해도 9구단 선수 수급은 비관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3월 8일 단장회의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8개 구단 단장들이 모여 6시간이 넘도록 머리를 싸맸지만, 결론은 신생구단의 성공적 출범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구단별로 보호선수 20명 외 1명씩 지명’, ‘2년간 신인선수 2명 우선지명 및 2라운드 종료 후 5명 특별지명’, ‘2년간 외국인선수 4명 등록, 3명 출전(기존 구단은 3명 등록 2명 출전)’, ‘2013년 종료 후 1년간 FA(자유계약선수) 선수 3명까지 계약 가능’, ‘구단에 지명되지 않은 상무, 경찰청 선수에 대한 우선교섭권 2년간 부여’의 합의안은 상당 부분 야구규약에 명시된 평.범.한 내용이었다.
합의안이 발표되자 많은 야구인은 “8개 구단 단장들도 기존 야구규약에 명시된 선수지원책으론, 신생구단의 정상적 출범이 어렵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이런 지원안을 제시했다는 건 9구단에게 ‘1군이 아니라 2군 리그에서 뼈를 묻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당시 야구계는 단장회의에서 도출한 9구단 선수지원안으론 도저히 10년 내 상위권은 고사하고, 리그에 적응하기도 어려운 전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군 선수 지원’이 빠진 선수수급안
9구단의 우선협상자는 선정됐다. 그러나 창단까진 넘어야할 산이 많다. 선수수급이 가장 큰 산이다(사진=줌인스포츠 강명호 기자)
엔씨소프트를 9구단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9구단의 정상적인 리그 참여를 위해 몇 가지 선수지원안을 제시했다. 구단별 보호선수 20명 외 1명씩과 보호선수 25명 외 1명씩을 9구단에 내주고, 정규 시즌 1위부터 4위까지 팀에서 또 1명씩을 지원하자는 내용이었다.
KBO의 계획대로 선수지원이 된다면 엔씨소프트는 20명의 1군급 선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다 FA 선수 3명과 외국인 선수 4명을 더한다면 당장은 힘들어도 1군 리그에 참여하는 덴 큰 지장이 없을 전망이었다.
하지만, KBO의 선수수급안이 단장회의에서 외면당하며 엔씨소프트의 1군 진입에 빨간불이 켜졌다. KBO의 핵심 관계자는 “1군 즉시 전력감에 대한 지원책이 거의 없다”는 말로 단장회의에서 도출한 합의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합의안에 따라 구단별로 20명 외 1명씩을 지원한다고 치자. 그래 봤자 8명이다. 김광현(SK), 류현진(한화), 이대호(롯데), 강정호(넥센) 같은 팀의 기둥 선수들도 아니고 구단에서 지정한 20명 외 선수들이다. 거기다 신인선수들이 아무리 많아도 육성하는 덴 시간이 필요하다. FA 선수 3명과 계약할 수 있는 권리도 FA 당사자들이 다른 팀과 계약하면 무용지물이다. 외국인 선수 4명은 당장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가 신생구단의 간판이 된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허구연 KBO 야구실행위원장도 같은 생각이다.
“단장회의의에서 나온 선수지원책이라면 ‘야구단 창단을 하지 마라’는 소리다. 지금의 지원안으로 선수단을 구성하면 창단 첫해 잘해야 승률 2할이다. 승률이 고작 2할 언저리라면 누가 한해 150억 원 이상을 투자하면서 야구단을 운영하겠나. 일부에선 ‘빙그레도 창단 시 별다른 선수지원을 받지 않았는데도 창단 3년 만에 승률 5할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25년 전과 지금은 야구환경과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 난다. 만약 단장회의 안이 이사회에서 통과한다면 어느 누구도 신규구단을 창단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9구단 지원은 특정구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프로야구의 미래가 걸린 일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10구단 창단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도 불안요소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실제로 단장회의 합의안을 지지하는 모 단장은 빙그레의 예를 들었다. 그는 “엔씨소프트의 상황은 빙그레 때보다 양호하다”며 합의안에 별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1986년 창단한 빙그레 이글스. 창단 13년 만인 1999년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빙그레 창단 때도 기존 구단들은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지원에 나섰다(사진=KBO) |
1986년 창단한 빙그레는 선수수급에 애를 먹었다. 선수지원이 강제사항이 아니라 KBO의 권고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기존 6개 구단은 담합이라도 한 듯 선수지원에 난색을 나타냈다. 빙그레는 “신인선수들로만 창단할 수 없다”며 안절부절못했다. 자구책으로 ‘공개 선수모집’을 하기도 했다. 결국, 트레이드로 프로 경력자들을 충원했다. 이는 좋은 기회였다.
‘프로’의 ‘프’자도 모르는 신인선수들을 베테랑들이 이끌었기 때문이다. 트레이드로 빙그레 유니폼을 입은 베테랑들과 신인선수들로 짜인 빙그레는 1986년 데뷔 첫해 승률 2할9푼을 기록했다. 리그 꼴찌였다. 그러나 이듬해 승률을 4할5푼4리로 끌어올리고서 1988년엔 승률 5할7푼9리로 창단 3년 만에 승률 5할을 돌파하며 2위에 올랐다.
그러나 빙그레가 창단한 건 25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한국프로야구 수준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웬만한 국가대표 출신의 대졸 선수들은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찼다. 투수들은 더했다. 프로 데뷔 첫해 10승을 기록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빙그레가 대표적이었다.
1986년 빙그레는 2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했다. 이상군과 한희민이었다. 두 투수는 국가대표 단골 멤버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다. 당시 프로야구 수준에선 언제든 즉시 전력감인 이들이었다. 하지만, 빙그레 마운드엔 두 신예 투수만 있던 게 아니었다. 11명의 투수 가운데 5명이 프로 경력자였다. 그 가운데 장명부, 천창호, 성낙수는 프로야구 초창기에 각 팀의 주축투수로 뛴 투수들이었다.
타선도 비슷했다. 31명의 타자 가운데 프로 경력자가 무려 17명이나 됐다. 이 가운데 김우열, 유승안, 김한근, 황병일, 이광길, 김종윤은 즉시 전력감으로 분류되던 선수들이었다. 특히나 김우열과 유승안은 후배 선수들을 끌고 가면서 팀을 정상궤도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지금껏 빙그레 창단 때 다른 구단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 삼성은 빙그레에 가장 많은 선수를 양도한 팀이었다. 김성갑, 박찬, 김한근, 성낙수, 황병일 등 5명을 내줬다. 빙그레 창단 단장이 전 삼성 단장이었던 노진오였던 인연도 있었지만, 삼성은 빙그레의 정상적인 리그 참여를 위해 다소간의 출혈을 감수했다.
롯데도 이석규, 천창호, 김재열, 이광길 등 4명을 빙그레에 양도했고, OB(두산의 전신)도 김우열, 김일중을 보냈다. 해태(KIA의 전신) 역시 유승안, 김종윤을 트레이드 형식으로 빙그레로 보내며 선수지원에 일조했다.
'엔씨소프트가 빙그레 창단 때보다 선수수급이 원활하다'는 평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배치되는 주장인 것이다. 지금처럼 8개 구단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면 ‘사상 최악의 지원’으로 평가받는 빙그레만도 못한 선수지원이 될 게 자명하다. 무엇보다 8개 구단의 태도로 봐선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지원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25년 전과 지금은 야구환경과 리그 수준이 판이하다. SK는 강력한 마운드가 인상적인 팀이다. 특히나 '신구 조화'가 돋보인다. 현대 야구에서 '깜짝 신인'은 출현하기 어렵다. 야구 기술이 발전하고, 리그 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기 때문이다. 유망주도 중요하지만, 유망주가 성장할 때까지 팀을 책임지고, 좋은 본보기가 될 주력 선수들이 필요한 이유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1군 즉시 전력감은 현대 프로야구에선 매우 중요하다. 단적인 예가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신인왕은 중고 신인들이었다. 최형우(삼성), 이용찬, 양의지(이상 두산)가 모두 그랬다. 고졸 10승 투수도 2006년 한화 류현진을 제외하곤 나타나지 않고 있다.
2군에서 육성기간을 거치지 않고, 입단하자마자 1군에서 뛰는 신인선수들을 이젠 찾기 어렵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좋은 신인선수들을 배출한 롯데의 한 관계자는 “신인선수가 1군 주축선수가 되는데 평균 6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명하다. 단장회의에서 합의한 ‘신인선수 위주의 선수지원안’이 ‘현실적인 1군급 선수지원안’으로 수정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25년 전 빙그레의 예를 참고하려면 그 이면에 있었던 삼성, 롯데, OB, 해태의 지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시형 선수협 사무총장은 “역사를 교훈으로 삼으려면 가장 최근의 역사를 살펴봐야 하다. 그런데 어째서 단장들이 1986년 빙그레 창단 때만 주목하고, 1990년 쌍방울 창단 때의 상황엔 눈을 감는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권 총장은 “쌍방울 창단은 7개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뤄졌다. 각 구단은 보호선수 22명 외 2명씩을 내줬다. 1군 즉시 전력감만 14명이나 됐다. 21년 뒤의 엔씨소프트가 고작 8명의 1군 전력감을 확보하는데 그친 걸 고려하면 좋은 비교가 된다. 8개 구단이 대승적 차원에서 9구단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협은 9구단의 정상적인 리그 참여를 위해 ‘기존 2명 보유, 2명 출전의 외국인 선수 보유한도를 3명 보유, 2명 출전으로 늘리자’는 구단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간 선수협은 국내 선수들의 입지 축소를 들어 외국인 선수 보유한도 확장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프로야구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의를 위해 외국인 선수 보유 확장을 양보했다. 하지만, 선수협의 양보도 기존 구단의 선수지원이 ‘생색’으로 끝나며 빛을 발하게 됐다.
'룰 5 드래프트'가 대안이 되려면 보호선수를 줄여야 한다. 쌍방울은 기존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창단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엔 한번도 오르지 못했고, 상위권 전력을 갖추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사진=KBO)
KBO는 ‘룰 5 드래프트’에 희망을 걸고 있다. ‘룰5 드래프트’는 미 메이저리그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한 구단이 마이너리그 유망주를 대거 보유하는 것을 막으려고 만들었다. 내용은 이렇다. 마이너리그에서 3년 이상 뛴 선수 가운데 40명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는 드래프트를 통해 다른 구단으로 갈 수 있다. 단, 해당 선수를 지명한 구단은 원소속구단에 5만 달러의 보상금을 줘야 한다. 그리고 해당 선수를 메이저리그 25명 로스터에 포함해야 한다.
단장회의에서 합의한 ‘룰 5 드래프트’는 한국식으로 변형돼 ‘2차 드래프트’란 이름이 붙여졌다. 내용도 다소 수정됐다. KBO 이상일 사무총장은 “각 구단의 보호선수 50명을 제외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구단마다 3라운드로 선수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장은 “지명 순서는 신생구단부터 전해 성적의 역순위로 지명하고, 모든 라운드가 끝나고서는 신생구단이 따로 5명을 추가 지명할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차 드래프트’는 9구단 선수수급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KBO가 이 제도를 단장회의에서 승인받은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KBO도 “2차 드래프트의 골격을 갖췄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보호선수 50명 외 선수 지명으로 얼마나 선수수급에 실익을 거둘지 의문이다. 대개 프로야구에서 50명 외 선수는 2군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모 구단의 2군 감독은 “정직하게 말하면 보호선수 50명 외 선수는 2군에서도 주전감이 아니다”라고 털어놓는다.
프로야구는 양보단 질이다. 게다가 엔씨소프트는 1군 리그에 참여하는 팀이다. 1군에 참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게 엔씨소프트의 목표이자, 일반적인 프로팀의 비전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런 목표를 이룰 만한 토양쯤은 제공해야 한다. 야구계가 ‘2차 드래프트’에서 엔씨소프트가 수급 받을 수 있는 6명의 선수를 허수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9구단 지원에 적극적인 단장들은 “2차 드래프트 규정을 보호선수 외 50명에서 40명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단장은 “최소한 35명 아래로 낮춰야 현실적인 지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보호선수를 35명 이하로 낮추면 구단들이 신인선수를 키울 이유가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보호선수 35명 외 선수들 대부분이 입단 4년 차 이하의 유망주들이 되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틀린 분석도 아니다.
롯데의 우려처럼 보호선수가 35명 이하로 낮춰지면 엔씨소프트는 8개 구단 가운데 한 팀의 유망주를 지명할 수 있다. 문제는 엔씨소프트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2차 드래프트에서 자신의 순번 때 다른 팀의 유망주를 지목할 확률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망주를 내줘야 하는 구단은 힘들게 지명하고, 육성한 선수들을 단번에 잃게 된다.
이런 우려를 잠재울 방법은 2차 드래프트 시행 때 보호선수를 50명으로 그대로 두되, 신생구단에 한해서만 30명으로 축소하는 방안이다. 여기다 입단 4년 차 이하 유망주는 신생구단이 지명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보호선수를 얼마나 줄일지는 KBO와 8개 구단의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2차 드래프트’라는 좋은 제도가 ‘허울 좋은 숫자놀음’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이 되려면 보호선수 축소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선결조건이다.
엔씨소프트 “2013년 1군 참여 희망한다.” 9, 10구단은 지금의 야구팬보단 미래의 야구팬들에게 의미가 깊다.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하는 이유다. KBO의 선수지원안에 반대했던 구단들의 우려와 걱정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우려와 걱정이 합리적 대안을 도출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엔씨소프트는 단장회의에서 합의한 선수지원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견해를 나타내지 않았다. “8개 구단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우회적으로 “아쉽다”는 뜻을 밝혔지만, “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등의 반발은 하지 않았다.
일부 야구인은 “엔씨소프트가 너무 소극적”이라고 지적한다. 9구단 우선협상자가 된 이상,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엔씨소프트는 기존 구단들의 선수지원안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나타내지 않는 것일까.
엔씨소프트의 핵심 관계자는 “우리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사내에 ‘지금의 선수수급으론 정상적인 1군 진입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고 속내를 밝혔다. 하지만, “우리의 의사보다 중요한 게 기존 8개 구단의 입장이며 팬들”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막내구단으로서, 기존 구단들과 각을 이뤄 대립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여러모로 부족한 우리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정해준 것도 8개 구단이고, 앞으로도 많은 협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손해를 봐도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몸을 낮췄다. 사실 엔씨소프트는 아직 KBO 회원사가 아니다. 따라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팬들이었다. 이 관계자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우리는 팬들을 짜증 나게 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단 창단을 고민한 것도 야구팬을 즐겁게 하고, 한국프로야구가 한층 발전하는데 일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의와 초심을 지키려면 팬들을 혼란하게 하거나 짜증 나게 해선 안 된다는 게 우리의 기본 다짐이다.”
엔씨소프트는 조만간 선수수급과 관련한 자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 발표에서 2013년 1군 참여를 공론화할 예정이다. 애초 엔씨소프트는 KBO와의 창단 협상과정에서 ‘2014년 1군 진입’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1년이라도 일찍 1군 리그에 참여해야 선수단을 확실히 구성하고, 선수단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계는 “엔씨소프트가 기존 구단과 팬을 배려한 이상, 이제 기존 구단이 ‘막내’ 엔씨소프트를 배려할 차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9구단에 글러브를 끼워줘라 두산 김동주의 홈런처럼 9구단 선수지원안이 한방에 해결되긴 힘들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야구계의 지혜와 KBO 유영구 총재의 리더십이 빛을 낼 때다(사진=두산)
9구단 선수지원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3월 22일 KBO 유영구 총재와 8개 구단 사장단이 참석하는 3차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기존 선수지원안이 그대로 통과될지, 수정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단장들은 “반반”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극적으로 선수지원안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유는 ‘지금의 선수지원으론, 9구단의 1군 진입이 어렵다’고는 판단하는 사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선수지원안’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구단은 SK, 두산, KIA다. SK는 엔씨소프트가 9구단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을 때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따지고 보면 9구단으로 리그가 확장된 것도 ‘기존 구단의 기득권보단 한국프로야구의 미래’를 중시한 SK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산 역시 마찬가지다. 두산 김진 사장과 김승영 단장은 한 목소리로 “9구단의 연착륙을 위해 다소간의 출혈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은 지금껏 그렇게 했다. 9구단 창단과 창단 승인 후 선수수급을 논의할 때 기득권을 내세우는 대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안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김 단장은 “프로야구 대의를 위해 2차 드래프트의 보호선수를 50명에서 그 이하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SK와 두산도 다른 구단처럼 선수자원이 풍부하지 않다. 하지만, 두 구단은 구단 수뇌부가 ‘파트너의 안정적인 출범’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KIA도 빼놓을 수 없는 ‘현실론자’다. KIA 김조호 단장은 일전 단장회의에서 “9구단 창단을 위해 기존 구단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했다. SK, 두산과 함께 “보호선수 20명 외 1명으론 9구단의 정상적인 출범이 어렵다”고 강조하며 “보다 현실적인 선수지원안을 고민하자”고 동료 단장들을 설득했다.
두산과 KIA는 전신이었던 OB와 해태 때도 트레이드를 통해 빙그레의 선수수급에 도움을 준 바 있다.
세 구단의 사장은 이사회에서 기존 선수지원안의 수정 필요성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모 구단 단장은 “다른 구단 사장님들도 선수지원안 수정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유는 뭘까.
단장회의에서 KBO의 선수지원안에 이의를 제기한 구단은 세 구단이었다. 롯데와 한화 그리고 넥센이었다. 롯데와 한화는 “가뜩이나 선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KBO의 원안대로 진행하면 9구단에 3명의 주력선수를 한꺼번에 내줘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며 “9구단의 안정적 출범과 기존 구단의 과다 출혈을 동시에 막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구단이 9구단에 선수를 지원하지 말자는 태도는 아니다. 롯데는 '통 큰 지원 전에 꼼꼼히 위험요소를 점검하자'는 태도다. 롯데의 핵심 관계자는 “KBO와 야구계가 각 구단의 제반 사정을 면밀히 따져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는다면 절대 마다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넥센은 “9구단 선수지원 시 이적금을 올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장회의에서도 그런 의사를 나타냈다. 이는 KBO의 선수지원안에 원론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제든 입장을 수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8개 구단은 9구단으로 리그가 확장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했다. 각 구단의 기득권을 버리고,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쳤다. 그 결과로 엔씨소프트가 9구단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링 위로 엔씨소프트를 불렀으니 ‘이제 엔씨소프트에 글러브를 끼워주는 일도 8개 구단의 몫이다. 야구계는 8개 구단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대의에 충실할 것으로 믿는다. 팬들은 링 위에서 펼쳐질 9개 구단의 정상적인 대.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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