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교본 공부
모든 단원은 교본을 철저히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본은 레지오의 공식 해설서이다.
이 교본은 단원들이 성모님의 군사로서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중요 사항들,
곧 레지오 조직의 원리와 규칙, 운영 및 활동의 방법,
레지오의 정신 등에 관해서 가능한 한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교본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레지오 활동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업다.
특히 간부들의 경우에 교본을 모르는 상태에서 레지오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교본을 많이 알면 알수록 능률적으로 레지오을 운영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큰 흥미를 느끼게 되므로 교본에 대한 지식이 양적으로 커짐에 따라
단원의 질적 수준도 동시에 높아지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교본이 너무 길다!' 하며 불평하는 소리가 흔히 들린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일은 교본의 주요 부분을 다 읽을 수 있을 만한 시간을
매일 신문을 읽는 데 바치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 길다! 지나치게 자세하다!'하고 말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라.
법률이나 의학 또는 군사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레지오 교본과 비슷한 정도의 부피밖에 되지 않는 전공 분야의 교재에 대해서 그러한 불평을 말하겠는가?
결코 그러한 말이나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불과 한두 주일 안에 교재의 내용은 물론 전문 용어들까지도 모두 외워 버릴 것이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루카 16,8) 는 성서의 말씀을 새겨 둘 일이다.
다음과 같은 반대 의견도 있다. 즉 '교본은 어려운 사상과 고상한 주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청소년 단원들이나 교육 수준이 낮은 단원들은 거의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런 단원들을 위해서 좀 더 쉽게 쓴 교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300쪽20줄) 그러나 그러한 의견은 교육의 제1원칙,
즉 학생을 점차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교육의 기본 원리에 어긋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미 모두 터득하고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가르칠 필요가 없는 일이며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교육 과정은 이미 다 끝이 난 것이다.
학생이 처음 받은 교재를 공부도 하지 않고 그 내용을 이해할수 없음이 당연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어찌 단원들이 교본을 공부도 하지 않고 당장 이해하기를 기대하는가?
지금까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을 터득하고 그것을 지식으로 삼도록 만드는 것이
학교의 기능이며 교육을 실시하는 본래의 뜻이다.
(301쪽 2줄 )'낱말도 어렵다!'고 불평을 한다.
그렇다면 배워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낱말을 교본에 썼단 말인가?
교본에 쓰인 어휘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누구에게 묻거나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는 정도이다.
실제로 그러한 어휘는 우리가 읽는 일간 신문 정도의 수준이다.
신문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모름지기 레지오 단원이라면, 단원으로서나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레지오 영성의 원리를 비롯하여 다른 신앙의 원리들을 설명하는 데 쓰인 낱말들을 당연히 익혀 야 하지 않겠는가?
10 교본을 어휘에 관해서 말한 것은 교본의 정신과 내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교본의 어느 내용도 모호한 것은 없다."교회의 가르침에는
너무 어려워서 단지 극소수의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을 만큼
깊숙이 숨겨져 있는 교리란 있을 수 없다"(맥쾌이드 대주교 /Archbishop John Charles McQuaid)
수없이 많은 소박하고 평범한 수준의 레지오 단원들이 교본을 완전히 파악하여
삶의 양식과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더구나 교본의 사상은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사실상 사도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교본의 사상을 마땅히 알아 두어야 한다.
그것은 사도직의 일반 원리 즉 사도직의 생명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사도직은 그 참된 의미 곧 정신적 뿌리를 잃게 되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권리마저 상실하고 만다.
그리스도인의 사도직 활동과 '선행'을 위한 막연한 운동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 큰 것이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교본에 실려 있는 사도직이 정신과 내용을 바르게 터득해야 하며,
이를 위해 쁘레시디움은 스승의 역활을 맡아야 한다.
쁘레시디움은 영적 독서와 훈화를 통해서 그리고 단원들이 교본을 체계적으로 읽고 터득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은 이론으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교본에 제시되어 있는 정신과 사상은 각기 적극적인 활동과 연결되어져야 하며
각기의 활동은 그 활동에 걸맞는 정신과 영성적 배경이 뒷받침 되도록 해야 한다.
언젠가,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St. Thonas de Aquino)은 '어떻게 하면 학식을 높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우선 한 권의 책을 읽으시오.
그리고 읽거나 들은 것은 잘 이해하도록 힘쓰시오. 혹시 의문이 생기거든 확실히 알 때까지 노력하시오"
이 학문의 대가는 여기서 어떤 특정한 책을 지정해 주려 하지 않고 다만
지식을 전해 줄 수 있는 책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괜찮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이 성인의 말을
'교본 한 권만이라도 철저히 공부하라'는 당부로 알아들어도 좋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교본은 교리서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즉, 레지오 교본은 제2차 바티칸 광의회(the Second Vatican Coundil)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가톨릭 교리를 포괄적이고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보나벤투라 성인 (St. Bonaventure)은 지식을 내면적인 깨우침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그는 지식을 얻으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잘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공부에 대해 설명할 때 그레고리오 성인(St. Gregory)의 말을 인용하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을 예로 들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독이 술로 가득 차게 되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인들에게 먼저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자신의 항아리(각자의 영성의 그릇)에
먼저 물(신앙 안의 공부를 통애 얻은 것들)을 채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신적 지식과 이해력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노력을 쏟지 않고서는 빛을 발할 수 없다. 영원한 진리의 터득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바친 노고에 대하여 보상을 받는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노력 없이 학문을 쌓을 수는 없다"(제멜리 / Gemelli : 세상에 보내는 프란치스코의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