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 동기의 꿈을 꾸고나서
글-德田 이응철(수필가)
방금 전이다. 실제 꾼 따끈따끈한 꿈을 품고 서재로 달려와 앉는다.
20세기 대한민국 환경운동의 대부요, 환경 아이콘으로 내로라하던 역사적 인물-.
우리 춘천産으로 춘천고등학교가 자신있게 배출한 39회의 영재가 아닌가!
나는 방금 그 훌륭한 친구의 꿈에서 만났다.
동기생 480명 중 최열은 단 한번도 같은 반이 아니어서 솔직히
피부로 느끼는 다정다감한 동기 또한 아니다.
개인사인 자식들(1남2녀)의 꿈도 아니요, 정족리 형제자매의 꿈도 아니다.
그렇다고 요즘 특가법상 알선 수재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살고 있어 항상 오매불망한
입장도 아닌데 바로 몇시간 전에 꾼 꿈은 탁류에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던가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꿈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도청 뒤 쯤이리라. 호텔 부근에 무슨 결혼식이 있었다.
조금 늦게 가는데 최열을 만났다. 꿈에서도 푸르는 봄날이었다.
미소를 짓는 최열을 만났다. 스프링 코트 옷깃을 날리며 그는 악수를 하고 주례를 서러
온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입각(入閣) 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속초 설악에서도 주례를 자주 섰다고
하며 반가움을 나누었다. 호텔부근에서는 많은 하객들이 끝나고 내려오고 있었다.
누군지 모를 친구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 위해가는 게 분명했다.
나는 최열이가 환경부장관이 되었다고 소리소리치며 내려오는 동기들께 일일이 소리쳤다.
엄청난 사람들고 교차하면서 나는 알리고 또 알렸다. 그 때였다.
한 무리의 고려대 교수들인지 여자 교수들이 내려오면 내 고함을 들으면서
-환경부 장관은 아닐겁니다. 그냥 입각이겠지요. 이분은 유명한 교수입니다.
와-.정말 꿈도 생생하다. 내려오는 동기생들 중 이호근에게 축하금을 써서 건너고
많은 이들이 준비된 야외에서 고기를 구우며 담소를 나누다가 깼다.
아니-꿈? 그럴지도 몰라, 아니야! 지금 수형중이 아닌가!
참 희한한 꿈이다.
꿈이란 눈뜨면 휘리락 도망가는데 그 순간이 아름다워 부서질까 연연하며 춘고 39회 카페 문을 열고 바로 들어와 쓴다. 어떻게 된 연유일까? 자못 궁금하다. 어제 종일 동기의 안타까움을 걱정한 것도 아니다. 무슨 일을 했길래 내 두뇌에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와서 스토리텔링을 심어준 것인가?
복지관 추천으로 시험감독관이 되어 우뚝솟은 모교 춘중에서 한국사 능력시험 1시간을 12시험실에서 감독하고 3만원을 받아온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동기인 위대한 최열의 꿈을 이렇게 화창한 봄날 꾸다니-. 어인 일일까? 지금쯤 친구는 어떻게 지낼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다. 희망의 고삐를 접지는 않는다. 낯선 1982년 최초로 환경단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에 환경운동의 싹을 키운 그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낙동강 페놀 사건등 10년간 사무총장으로 눈부신 업적에 95년 환경분야 노벨상이라할 골드먼 환경상을 수상한 춘고의 영재가 내 꿈길로 나타나 밝게 웃다니-.
왜 그 친구가 민들레 홀씨처럼 날라와 몰락해가는 서생의 봄날 안겼을까?
물론 꿈은 무의식의 대변이라고 20세기 전반을 좌지우지하던 프로이드의 주장이 않았던가!
아직은 햇살 한 줌 없는 새벽이다. 누가 침실에서 안고나온 탐스러운 이 꿈을 해몽할 것인가!
일장춘몽(一場春夢)일까! 백일몽(白日夢)일까! 다 좋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헛된 공상이거나 덧없는
일이라는 대목은 쓸어버리고 싶다. 꿈 전문가 홍순래 후배라도 불러 의미있는 꿈이라고 듣고
싶다.
상시(常時)로 먹은 맘이 꿈이 되어 나타난다는 우리 속담을 생각한다. 그렇게 빈번하지도 않았다.
상사몽도 아니요. 그러나 분명 잠에 선인과 놀음은 분명하다. 한시대의 위대한 증인 최열-.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동기는 비난과 사회적인 채찍에 자유롭지 못하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봄날은 울고
있다.
오월의 둘째 공일이다.
이순(耳順)의 중반을 넘어서는 춘고 39회 동기생들-.
그 무엇도 내세우지 못했던 나, 뒷편에서 박수치며 여린가슴보이며 누렇게 탈색된 나달거리던 런닝을 내보이며 비지땀 속에서 입실랜드 체이홉 카시케시케시코를 하던 춘고 운동장 스탠드를 늘 지날 때마다 본다. 내 사춘기가 서려있는-.
강한 자, 약한 자, 위대한 자, 잡초같은 자,모두 원치않은 세월속에 동행하며 어디론가 흐른다.
이문열도 말했다. 이순이 넘으니 작가의 한계를 느끼겠다고-.
서둘러 천상으로 올라가 별이 된 최형진, 문막친구 대규, 교육청 장학곤으로 유도하던 조병준, 수필집을 전할 때 그냥 받아도 되느냐고 씽끗 웃던 친구가 불현듯 떠오른다. 뇌졸중으로 마른 대궁처럼 꺾이고 사라진 친구들-.
남춘천 곰진내 다리 건너기 전 작은 모텔에서 오늘도 조용히 살아가는 친구! 춘고 때 죽도를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생물 외떡식물을 달달 외우던 강영수는 잘 있는지 만나봐야겠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작금의 하루하루! 몽상이나 환상이라도 좋다. 공자가 주공을 꿈에 만난 것처럼 나 역시 위대한 친구를 만나 최열의 도를 마음 속에 층을 쌓은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는다.
조금 바랬지만 아직도 다스한 꿈이다. 꿈의 스토리엔 독특한 매력이 숨어 있다.
간밤에 때아닌 우박이 내려 한밤이 스산했다. 꿈꾸는 힘이 없는 자는 사는 힘도 없다고 했으니,
아직 나는 쓰고 그리는 문학과 예술의 들판에서 부르도저로 춘고 정도(正道)를 앞세우며 더욱 인고하리라. 인생은 꿈이다. 아직 헛되다고 말하지 말자, 영고성쇠(榮枯盛衰)로 물결칠 뿐이다.(끝)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