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에 목숨 건 한 남성이 있다. 배드민턴 때문에 봉급을 압류당한 적도, 기업 채용을 포기한 적도 있다. 심지어 배드민턴 때문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아픔도 있다. 한국 대학 배드민턴 동아리 연합회(이하 UBCA) 김진구 대표(32)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진구 대표는 배드민턴과는 전혀 무관한 직업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 정보통신과에서 전산장비를 유지보수하고 교육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이다. 배드민턴 선수 경력도, 지도자 경력도 전혀 없는 순수 아마추어다.
그가 배드민턴을 처음 접한 것은 어렸을 적 학교 클럽활동에서였다. 스매시를 때릴 때의 짜릿함이 좋아 빠져든 배드민턴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새벽 6시에는 클럽에서, 점심시간에는 학교에서, 방과 후에는 동네 약수터에서 매일 같이 배드민턴을 쳤다. 그 누구보다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골수팬이었다.
김진구 대표,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언제나 체육관! ⓒ 문영광
이런 그가 배드민턴과 무관한 삶을 살 리 만무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배드민턴 라켓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약 10여 년 전만 해도 배드민턴을 치는 대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타 대학 동아리와의 교류전이나 동아리 대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뭄에 콩 나듯 교류전이 열린다 해도 배려와 즐거움 대신 비매너와 분노만 오갈 뿐이었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엘리트 선수생활을 하던 학생들은 ‘선출’이라며 교류전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
대학 아마추어 배드민턴의 암담한 현실을 맞닥뜨린 김진구 대표는 그때부터 UBCA의 창립멤버로서 헌신의 길(?)로 들어선다. 2003년 1월,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서울 지역 대학생들이 인터넷 상에 작은 소모임을 만든 것이 UBCA의 시초였다. 처음에는 ‘서울시 대학 배드민턴 동아리 연합회’라는 이름으로 4개 대학 약 30여 명의 학생들이 그저 정보 공유를 위해 모였다.
이들은 김진구 대표와 같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배드민턴을 많은 학생들과 공유하기 원했다. 여러 학교가 한 자리에 모여 실력도 겨루고 배드민턴으로 하나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5년 1월, 2대 회장이 취임하면서 ‘UBCA - 한국 대학 배드민턴 동아리 연합회’로 명칭을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 2대 회장이 바로 김진구 대표다.
이때부터 김진구 대표의 본분은 공부가 아닌 배드민턴이었다. 고려대학교 배드민턴 동아리와 UBCA의 회장을 겸임하며 재능과 시간을 쏟아 부었다. 조직을 세우고 대회를 기획했다. 적든 많든 참가할 수 있는 학교를 모아 대회를 열었다. 수많은 대학을 발로 뛰며 의견과 정보를 수렴하고 적용했다.
그는 “1년 52회의 주말 중 30회 이상을 연합회 업무에 시간을 투자했다. 내 월급의 절반 이상은 연합회 업무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월급까지 차압된 적도 있다. 당시에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덕분에 지금의 UBCA가 있지 않나 싶다. UBCA 때문에 직장을 구할 때도 야근이 없고 정시 퇴근할 수 있는 직장만 알아본다”고 말했다.
요넥스가 후원한 2011년 대학 배드민턴 동아리 최강전 (사진제공 : UBCA)
그의 노력은 서서히 결실을 맺었다. ‘대학 배드민턴 동아리 최강전’과 ‘개인전챔피언십’을 UBCA의 메인대회로 지정하여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특히, 대학 배드민턴 동아리 최강전은 국내 아마추어 대회 중 최초로 ‘단체전’ 시스템을 적용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대형 용품업체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기 위해 경쟁할 정도로 대회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외에도 각 대학의 이름을 걸고 개최하는 대회들 중 UBCA 공식 후원 대회를 선별하여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던 국내 대학교의 배드민턴 동아리의 숫자는 UBCA의 창립 및 활동과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처음 4개 대학 30명으로 시작한 UBCA는 현재 전국에서 70개 이상의 동아리가 가입하여 활발하게 교류 및 활동 중이다. 얼마 전에는 충청 연합회 CUBCA가 창립이 되었다. 강원도 연합회와 경상도 연합회 역시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배드민턴은 ‘인기 생활체육’으로 통한다. 동호인 현황을 집계한 여러 통계자료에 비춰볼 때 배드민턴은 테니스, 볼링, 게이트볼 등과 함께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축구는 클럽 수나 동호인 수 모두 독보적이다. 클럽에 가입한 동호인만을 집계하는 생활체육 동호인 현황의 한계성을 고려해보면 파악되지 않은 배드민턴 동호인도 많을 것이다. 가족단위로 배드민턴을 즐기거나 가끔씩 배드민턴장을 찾는 인구도 상당하다.
하지만 참여 인구 연령층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역시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배드민턴 동호인의 참여 연령층이 30~40대 이후로 확연히 쏠려있는 것은 확연하다.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20대층에서 배드민턴 동호인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것을 볼 때 UBCA와 김진구 대표의 역할은 매우 값진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들은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국내 대학에 배드민턴을 빠르게 보급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현재도 멈추지 않고 열심히 발로 뛰는 중이다.
1, 2회 국제 대학 배드민턴 동아리 교류전. 일본(좌), 말레이시아(우) (사진제공 : UBCA)
김진구 대표는 “현재 공인된 대학 동아리 대회의 성적을 취합해 랭킹을 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다. 산정 기준을 정해놓고 매 대회마다 일일이 정보를 입력하여 랭킹을 산출한다. 또한, 해외 대학생들과의 교류도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진행 중에 있다. 2010년부터 대학생 국가대표를 뽑아 일본과 말레이시아 등의 여러 대학들을 순회하며 교류전을 진행하고 있다”며 UBCA의 활발한 활동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꼭 그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배드민턴에 목숨 걸고 모든 걸 바치는가?”.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전국 각 지역별 생활체육 연합회마다 배드민턴을 위해 생업도 포기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 많이 있다. 내 노력은 그에 비하면 작은 것이다. 내 작은 노력이 대학생, 젊은 층의 배드민턴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내가 가진 것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게 바로 내가 되었으면 더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