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다녀왔습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참초’라고 하는데 조상의 묘소에 있는 풀을 베어내는 일을 ‘참초(斬草)’, ‘벌초(伐草)’, ‘금초(禁草)’ 라고 하는데 뜻은 다 비슷한 말입니다. 묘에 있는 풀을 베거나 치거나 금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어제 내려가서 누님 댁에서 하루 자고 오늘 당숙 두 분 모시고 6촌 아우, 7촌 조카들과 함께 벌초를 했습니다. 제가 벌초를 했다는 말은 사실 낯이 뜨거운 말인데 저는 지금까지 예초기 한 번 메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갈퀴질이나 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라서 벌초 다녀왔다는 말이 사실은 부끄럽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집안이 다들 나이 드신 분들이 예초기를 메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젊은 친구들이 풀을 깎는 것이 서투르기 때문에 어른들이 하는 게 능률이 오르는 것은 맞을 겁니다. 하지만 가르쳐주지 않으면 끝내 하지 못할 것이니 군에 다녀 온 나이의 친구들에게 예초기 사용하고 풀을 베는 것을 교육시켜서 교대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상 묘의 풀을 베어 정리하는 풍속이다. 금초(禁草)라고도 한다.
후손들의 정성을 표현하는 전통으로 과거에는 무덤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후손이 돌보지 않아 방치된 상태의 묘소는 ‘골총’이라 부른다.
벌초는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진행한다. 구체적인 시기는 봄에는 한식, 가을에는 추석 무렵이다. 한식과 추석 모두 전통적으로 성묘를 하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봄에 벌초할 때는 한식에 성묘와 함께 진행하는 사례도 많지만, 가을에는 추석 전 미리 벌초를 해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을 벌초는 음력 7월 15일 백중 무렵부터 음력 8월 15일 추석 전까지 행한다. 음력 7월 가을이 시작하는 처서가 지나 벌초를 하면 풀이 다 자란 상태라 겨울 동안 묘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벌초할 때는 묘에 자란 잡풀을 베고 주변을 단정하게 정리한다.
벌초 대상은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한 조상의 묘이다. 오랫동안 선산이 있던 가문이라면 묘소의 수가 너무 많으므로 직계 조상의 묘만 벌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산은 개인 사유지에 특정 가문 사람들의 무덤만을 둔 공동묘지를 말한다. 그러나 선산이 있더라도 1990년대 이후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규모로 벌초하는 풍습은 줄어들었으며 관리인을 두거나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는 사례가 늘었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벌초를 소분(掃墳) 혹은 모둠벌초라 한다. 소분은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무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제사 지내는 행위를 말한다. 모둠벌초는 추석 전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벌초하러 가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이때 모이는 친척들은 왕래가 잦은 8촌 이내가 대부분이다.>다음백과
저희 선영 바로 옆에 윗동네 아우네 묘소가 있어서 벌초 때 가끔 인사를 나누었는데 오늘 가서 보니 묘를 정리해서 석관으로 깔끔하게 모셔 놓았습니다. 지금은 보기가 좋지만 그런 묘소도 몇 년 관리하지 않으면 보기에 흉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느 집안이나 벌초가 큰 고민으로 등장할 것 같습니다. 오늘 오서산 아래에 벌초하는 예초기 소리가 산하를 진동했지만 이런 풍속이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나이가 드신 분은 다 짐작하는 일일 겁니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으니 자손이 적어질 수밖에 없고, 아들딸을 구별하지 않으니 따님만 둔 집안도 많아져서 그동안 관리해오던 조상님들의 묘소를 돌 볼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도 욕심으로는 앞으로 20년은 더 벌초를 다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20년 뒤에는 갑갑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한동안 집안 묘소를 납골당으로 모시는 일들이 유행이다가 지금은 그것도 시들해져서 새롭게 납골당을 만드는 것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앞으로 매장 문화가 상당히 바뀔 거라고 하는데 이젠 ‘수목장(樹木葬)’을 지나서 ‘산분장(散粉葬)’의 시대가 올 거라고 합니다.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골총’이 될까봐 두려워서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골총은 고총(古塚)의 방언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고총은 '고총(孤塚)'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