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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일(월) 마태복음 1:18~25 '' 새찬송가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늘은 마태복음 1:18~25 말씀을 중심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십니다. 의로운 요셉은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이 때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과 하여 요셉은 그의 말대로 합니다. 어제는 새해 첫날, 첫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2023년 한해를 출발하면서 ‘믿음으로 전진하자’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눴는데요.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우리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새해 인사를 하는데요. 갓피플에 보니까 “Happy 2023이라고 하면서, 2022년 함께라 행복했습니다. 2023년도 함께라 무슨 일을 만나든 더 행복할 예상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새해 인사 문구가 있었습니다. 함께라서 행복합니다. 특히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행복합니다. 이런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오늘 18절에 마리아에게 잉태되셨는데, 일반 사람의 탄생과는 달리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매일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요셉은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른 외간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임신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드러내 창피를 주기보다 가만히 그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마리아와의 결혼관계를 이혼으로 가만히 끊으려고 한 거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변명하기보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잠잠히 기다립니다. 그럴 때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말씀해 주십니다. 20,21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나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가 변명을 했으면 요셉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용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나타나셔서 마리아가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며, 그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리고 그 예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하실 때 요셉은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야만 했을까요? 만약 예수님이 요셉의 정자와 마리아의 난자로 수정돼 태어났다면 이 둘의 죄가 그대로 예수님에게 전달돼 죄인으로 태어나시게 됩니다. 이렇게 아담의 원죄를 이어받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도 인류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죽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속에서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보통의 인체에서도 엄마의 혈액이 그대로 태아에게 공급되지 않고, 영양분과 산소만 태반과 탯줄을 통해 걸러서 공급되듯이, 마리아의 태에서 잉태된 그리스도는 성령의 사역으로 마리아의 죄에서 차단되고, 마리아의 살과 피를 통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게 됩니다. 즉 성령으로 사역으로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사람의 본질은 취하셨지만, 마리아의 죄는 차단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사람과 같기 때문에 사람의 약함과 비참함을 이해하시고 사람을 완벽하게 대표하고 체휼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같은 본질과 속성과 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대표하십니다. 그러므로 에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완전한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사람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길이 되셔서 천국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비자을 가져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비자로는 불가능합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죄인인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또한 임마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랬습니다. 이 세상에도 순간적인 기쁨, 잠시 잠깐 주는 즐거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을 만날 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는 줄 믿습니다. 또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합니까?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 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합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 때문에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모든 인생은 사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되신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왜 사람들이 근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방황합니까? 여러분은 올 한해 어떤 염려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받으시길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려고,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 왕 아하스가 아람과 에브라임의 공격을 받아 두려워할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엘)이 우리와(마누) 함께 하신다(임)’는 히브리어 임마누엘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는 원래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은 아니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은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어진 은혜이며 특권이었습니다, 그렇게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특권이 이스라엘만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되었으되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이방인들에게 있어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말씀해주셨기에 ‘임마누엘’이란 메시지는 모든 인류에게는 더없는 축복이며 더할 수 없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이 말은 이사야 선지자가 악한 유다왕 아하스에게 전한 메시지이지만 이 메시지는 그후 700여년 후에 성취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애에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라기는 2023년도를 출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올 한 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