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 6,1ㄱㄴ.4-7; 1티모 6,11ㄱㄷ-16; 루카 16,19-31
+ 오소서, 성령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오늘도 비가 오네요?
초등학교 다닐 때 ‘리자로 끝나는 말은’이라는 동요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기억나세요? 가사가 다음과 같은데요 “리 리 릿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사리 소쿠리 유리 항아리”입니다. 2절은 이렇습니다. “리 리 릿자로 끝나는 말은 꾀꼬리 목소리 개나리 울타리 오리 한 마리.” 재밌죠?
참고적으로 1절에 나오는 것은 ‘괴나리 봇짐’할 때 ‘괴나리’이고, 2절에 나오는 것은 ‘개나리’입니다.
그런데 ‘라‘자로 끝나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요? 꿈나라 눈보라 우리나라, 또 이번 주에 축일을 맞는 미카엘라 라파엘라 가브리엘라 등 많이 있겠죠?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는가 하면, 오늘 복음에 라자로가 나와서 ‘라’자로 끝나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 결과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라자로’는 ‘엘르아자르’에서 유래한 말인데,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비유 말씀인데도 사람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더군다나 부자의 이름은 말씀하시지 않고, 가난한 사람인 라자로의 이름만 말씀하신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하느님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이름이 더 기억된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부자는 비싼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는데,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습니다. 그는 소리를 지릅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놀랍게도 부자는 라자로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왜 생전에 라자로를 본체 만체 했을까요? 그것이 그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의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있었고,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자신만 호의호식하며 살았습니다.
이 부자의 삶은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가 고발하고 있는 부자들의 삶과 비슷합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말합니다.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시온은 남유다인 예루살렘에 있는 산이고, 사마리아 산은 북이스라엘에 있는 산입니다. 기원전 8세기,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이스라엘의 양쪽 왕국의 부자들을 향해 아모스는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그들의 악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상아로 만든 귀한 침상에 자리 잡고, 당시의 식사 습관대로 비스듬히 누워 어린양과 송아지를 잡아먹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일 년에 세 번 정도 고기를 먹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이마저도 먹기 어려웠습니다. (D. Stuart, 641)
이 부자들의 잘못은, 복음의 부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기들끼리 호의호식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가난한 이의 고통을 못 본 체 하고 흥청망청 살아가는 부유한 이들의 잘못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게는 라자로가 또 다른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혹시 라자로는, 오늘날 문명이 흥청망청 살며 파괴해 버린 지구를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지구’를 ‘떼라’(Terra)라고 하는데요, (맥주 상표와 똑같습니다.) ‘떼라’도 ‘라’자로 끝나네요?
지구가 점점 황폐해 가는 것을 못 본체 하고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즉 더 좋은 옷을 사라는 광고에 눈을 빼앗기며 오늘은 송아지를 먹을까 양고기를 먹을까 고민하고,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후손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신경 쓰지 않는 부자가 혹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스웨덴의 기후 행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어렸을 때부터 기후 행동을 시작하며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해 공부할수록 절망감에 빠졌고, 11살 때 우울증을 겪으며 아스퍼거 증후군과 강박장애 및 선택적 함묵증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언론은 툰베리에 대해 청소년 기후 행동을 이끈 위대한 운동가라는 찬사를 하는가 하면, 관심받고 싶어서 퍼포먼스를 하는 치기 어린 젊은이라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툰베리는 16살이던 2019년, 뉴욕에서 열린 기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에서 미국까지 길이 18미터의 태양광 요트를 타고 2주 동안 대서양을 횡단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툰베리는 비행기가 탄소 배출의 주범이라며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다.
그해 12월, 남미 칠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개최지가 시위로 인해 스페인으로 옮겨지자, 툰베리는 미국에서 포르투갈까지 5,500km의 바닷길을 이번에는 길이 15m의 요트로 20일간 항해하였습니다.
요트에는 화장실도, 샤워 시설도, 조리시설도, 침대도 없었습니다. 불편함은 차치하더라도,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한 두 번의 항해는 폭풍의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시어, 라자로가 저의 다섯 형제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대답하며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없듯, 우리가 지구를 망가뜨리면 또 다른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모세와 예언자의 말처럼 수많은 경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 겪었던 폭염과 극한 호우가 바로 그 경고들입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법은 이미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 본당은 태양광 발전을 통해 탄소 중립을 선언한 교구 방침에 동참하고 있습니다만, 근본적인 생태적 회심이 매일 매순간 필요합니다.
오늘부터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극단적 결심보다, 생태 위기의 주범인 소비주의의 유혹을 거슬러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더 많이’, ‘더 좋은 것’, ‘또 다른 것’을 사려는 소비주의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등 매일 매순간의 선택과 행동에서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겨야 하겠습니다.
기후 위기로 가장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분들이 오늘의 라자로입니다. 탄소 중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분리될 수 없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도 분리될 수 없습니다.
툰베리 관련 자료 출처: Transatlantic voyages of Greta Thunberg - Wikipedia
표도르 브론닌코프, 부잣집 문 앞의 라자로
출처: Fedor Bronnikov 007 - Rich man and Lazar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