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금)
요즘 누군가가 우리 집을 해코지하고 있다.
연쇄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사건 1.
지난주 금요일 새벽이었다.
엄마와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차에서 덜컹덜컹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불안해서 우리는 중간에 아빠 차로 바꾸어 탔다.
나중에 정비를 받아보니,
차 앞 바퀴에서 이런 도넛 모양의 무언가가 발견됐다.
이것 때문에 바퀴에 펑크가 났던 것이었다.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이런 것이 붙었을까.
분명 목요일 날 엄마 차를 타고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차가 멀쩡했었다.
사건 2.
일요일 아침이었다.
엄마와 나는 교회에 가기 위해 차를 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차에 경고가 떴다.
바퀴 기압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엄마 차 바퀴는 웬만해서는 잘 버티는데,
이번에는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우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목요일에 차를 맡겼던
정비사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다.
“혹시 지난번에 바퀴 다 때우신 거 맞나요?
오늘 또 기압이 안 맞는다고 뜨는데요. 그때 바퀴도 조수석 앞 바퀴였나요?”
“아니요. 그때는 운전자석 앞 바퀴였어요. 다 때웠고요.
그때 다른 바퀴들도 점검했었는데, 이상이 있는 건 그거 하나뿐이었어요.”
이 말의 뜻은 결국 이틀 사이에 또 다른 바퀴 하나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금요일 날 정비를 받은 이후에
엄마는 단 한번도 차를 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차를 견인했다.
엄마와 나도 트럭에 함께 타고 갔다.
정비소 점검 끝에 앞 바퀴에서 이런 것이 발견됐다.
이건 지난번에 운전자석 앞 바퀴에서 발견된
‘도넛 모양의 무언가’와 같은 것이었다.
뒷면은 마치 못같이 뾰족했다.
정비사 아저씨께 여쭤보니,
이런 것은 누군가가 일부러 의도해서 바퀴에 꽂지 않고서는
꽂히기 어려운 것이라 했다.
물론 다른 경우의 수들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엄마와 나는 ‘누군가 우리를 해코지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갑자기 등 뒤가 싸해지면서 무서웠다.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들을 떠올려 봤다.
최근에 잘못한 일이 있었나…?
일단 바퀴에 꽂힌 것이 아이들의 네발 자전거 보조 바퀴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아이가 있는 이웃집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집에 돌아와 이웃집들을 살폈다.
마침 우리 바로 앞집에 네발 자전거가 있었다.
우리 차 바퀴에서 빼낸 것을 자전거 보조 바퀴 안에
넣어보니 거의 들어 맞았다.
앞집이 범인일 가능성이 80% 이상 됐다.
사건 3.
이번 주 월요일 아침이었다.
이번엔 차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 주차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자전거와 삽이 바닥에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다.
5년 가까이 아무런 문제없이 같은 자리에 계속 세워져 있었던 것들이기에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
사실상 이 일 이후에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범인 찾기를 관두었고,
이 사건들은 결국 미제 사건으로 마무리 됐다.
나의 추론은 이렇게 3가지다.
1.우리 가족에게 원한이 있던 이웃집은
우리를 골탕 먹이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계획적으로 이 모든 일을 시행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아이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이용하여 의심의 소지를 줄이고자 했다.
그들은 3차 사건까지 벌이고 나니 원한이 풀려서,
그쯤에서 ‘골탕 먹이기’를 마무리했다.
2.목요일 저녁, 앞집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실수로 날카로운 것(보조 바퀴)을 떨어뜨렸는데,
하필이면 그게 우리 자동차 바퀴 앞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것을 밟고 지나갔고,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토요일에, 아이는 자전거를 타다가 실수로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날카로운 것을 또 한번 떨어뜨렸고, 우리는 또 한번 그것을 밟았다.
그래서 두 번째 펑크가 발생했다.
월요일 아침에 쓰러진 자전거는 ‘강한 바람’으로 인한 것이었다.
3.목요일 저녁, 앞집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실수로 날카로운 것(보조 바퀴) 2개를
우리 자동차 운전석 쪽에 하나, 조수석 쪽에 하나 떨어뜨렸다.
양쪽 앞 바퀴에 모두 펑크가 났으나
목요일 점검 시에는, 심하게 구멍이 난 운전석 쪽 바퀴만 발견되었다.
토요일에 자동차가 정차돼 있는 동안
정비를 받지 않은 조수석 쪽 바퀴의 펑크는 점점 더 커졌고,
일요일에 급기야 경고가 뜰만큼 바퀴가 내려앉았다.
(즉 사건 1,2가 별개가 아닌 동일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쓰러진 자전거는 ‘강한 바람’으로 인한 것이었다.
물론 세가지 모두 틀렸을 수 있으나, 이것이 내 상상력의 극한이다.
나는 각각의 가능성을 따지기에 앞서, 먼저 첫 번째 경우는 배제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고의라고 생각하면 너무 복잡하고, 잔인해서
더 이상 이 집에 못살 것 같기 때문이다.
‘실수’를 가정한 2번과 3번 중에서만 따져보자면, 3번이 더 그럴듯하다.
실수로 두 번이나 같은 장소에 물건을 떨어뜨리기는 쉽지 않고,
타이어는 원래 바람이 빠지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린다.
이 사건을 더 이상 정밀 조사하지 않는 이유는
‘긍정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사건이 '미제’이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쪽,
즉 살이 덜 떨리는 쪽으로 자유롭게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것이 이웃집의 실수였더라도 하늘의 '고의'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잘못했던 일들에 대한 하늘의 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일을 통해 마땅히 배워야 할 교훈은
'착하게 살자'인 것 같다.
이웃집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하늘의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 겠다.
10/6(토)
엄마, 아빠의 결혼 기념일과 내 생일을 기념해서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정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당 이름이 정식당인 이유는 주방장의 이름이
‘정식’이기 때문이란다.
이곳은 퓨전 한식당이다.
은대구.
양갈비.
안심 스테이크.
이곳은 미슐랭 가이드 1 스타를 받은 곳이다.
‘은재리 가이드’에서는 최고 점수 4스타에서 3스타를 주고 싶은 식당이다.
한식과 양식이 전혀 거북하지 않게 아주 조화를 잘 이루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요리는,
가장 처음에 에피타이져로 나왔던
이것이다. 꼬깔 모양으로 생긴 이것은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ㅜㅜ)
한 입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로,
혀를 기분 좋게 자극하는 짭조름함과
겉 도우의 가벼운 바삭함이 함께 어우러져
부드러우면서도 임팩트 있는 풍미를 자아냈다.
<은재리 가이드 평가 기준>
1 스타: 나쁘지 않은 정도. 배고픔을 달래기에 아깝지 않은 정도.
2 스타: 평균보다는 맛있는 편이나, 엄청 특별하지는 않은 정도. 가성비 괜찮은 동네 맛집 정도.
3 스타: 식후 또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드는 아주 만족스러운 곳.
자동차로 2시간이 걸려도 식당만을 위해 찾아갈 의향이 있는 곳.
4 스타: 식사 중에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거꾸로 쏟는 느낌이 들만큼 음식이 감동적인 곳. 먹는 중에 본인도 모르게 절로 미소 짓게 될만한 음식을 요리하는 곳.
비행기로 10시간이 걸려도 식당만을 위해 찾아갈 의향이 있는 곳.
(*아직까지 4스타를 받은 곳은 ‘하피즈 무스타파’ 한 곳 밖에 없다.)
*참고로 은재리 가이드는 은재리씨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평가합니다.
식사한 날의 기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에 갔다.
우리의 돈으로 여기서 묵었냐 하면,
당근 아니다.
아빠가 어떤 모임의 추첨에서 운좋게 클럽회원 1일 숙박권을 얻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호텔에 ‘클럽 회원’이라는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클럽 회원은 자주 호텔을 이용하는 회원으로,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이 ‘클럽 회원’이 되었다.
클럽 회원에게는 ‘라이트 스낵’이라는 것도 주어졌다.
회원 전용 카페라는 곳에 가니 건네준 이 2단짜리 스낵이
바로 ‘라이트 스낵’이다.
‘라이트’라고 하기엔 너무 ‘해비’해서 깜짝 놀랐다.
나와 엄마는 도심이 보이는 큰 창문 앞에서
가볍게 차와 간식을 먹었다.
물론 같은 자리에는 진짜 자기 돈을 내고 온,
‘진짜 클럽 회원’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우리도 똑같은 클럽 회원이었을지 모르나,
우리에게 그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밥 먹듯이 호텔에 오나.
신기하기도 하고, 수상하기도 했다.
솔직히 부럽다기 보다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가끔 이렇게 1일 숙박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은
검소하게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 같은 곳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마침 ‘강남 영동대로 케이팝 페스티벌’을 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밤새 공연을 보기 위해 라인업을 한 사람들 틈에서
공연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고 시끄럽던지. 귀가 째지는 줄 알았다.
물론 이때 우리는 아빠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내 아빠의 손에 이끌려 조용한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코엑스 CGV였다.
우리 가족이 아빠와 놀 수 있는 방법은 2가지인데,
하나는 ‘티비 보기’고,
다른 하나는 ‘영화 보기’다.
티비나 영화 이외의 활동, 예를 들면 걷기나 구경하기 등을
하려면 아빠에게 적어도 한달 전에는 얘기를 해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빠의 뜻대로 영화를 보는 수밖에.
그래서 우리는 영화 ‘암수살인’을 봤다.
다음날 아침, 나는 가족들을 동원해
침대 시트를 벗기고 이불을 갰다.
‘좋은 숙소에 보답하는 방법은 사용한 자리를 깨끗이 치우는 것’이란
써니쌤의 법칙은 분명 이런 좋은 호텔에도 적용될 것이었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를 생각하니,
호텔방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고 신났다.
-------------------------------------------------------------------------
맛난 식당에서의 식사, 그리고 고급진 호텔에서의 하룻밤.
어쩌면 이번 주말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 ‘부귀영화’였을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점차 위축되고 있다.
'쇠퇴기’이다.
아빠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눌 만큼
아빠의 일이 대폭 줄었고,
엄마의 회사도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오빠의 중국 유학으로
막대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집안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한 순간에 부를 얻은 동료들과 친구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두 분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몇 십년 동안 꼬박꼬박 모아도 가질 수 없는 돈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너무나 쉽게 모을 수 있는 나라다.
보통 월급쟁이가 쉰 살이 될 때까지 다른 소비를 하지 않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도, 서울에 거주할 집 한 채를 못산다고 한다.
그러니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대출을 해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부디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이런 문제들이
엄마, 아빠의 은퇴 전까지 잘 해결되어서
두 분이 부동산 투기가 아니고도, ‘노후 대비’를 할 수 있기를.
우리 가족이 남들의 비정상적인 활약을 부러워하지 않고,
쇠퇴기에 맞게 소비를 줄이며 검소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마지막 부귀영화의 날’을 기념하며,
기도한다.
|
첫댓글 은재야 ㅡ. 너의 선한 추리력에 한표 지지.
그런데 이 글 제목의 '마지막 ' 앞에 2018 이란 숫자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왜냐고? 준이와 은재가 이런 클럽에 들어갈 것 같거든? 난 그러리라고 기대하고 있어 ㅡ.
부담가질 건 없지만 가능성은 열어두자 우리. ㅋ ㅋ ㅋ
"우리 가족이 남들의 비정상적인 활약을 부러워하지 않고,
쇠퇴기에 맞게 소비를 줄이며 검소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나도 공감!!<준형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이웃집의 해코지를 받을만한 일을 한적이 없지 않니?ㅜㅜ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때는
동네 산책이 최고의 치료제인것 같아.
논밭길과 들꽃들,억새, 정갈한 건물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이렇게 좋은 동네를 누리며 살았던 12년을
다른 동네 아파트값 상승분과
어떻게 바꿀수 있겠어?하는 생각이 절로 들거든~
엄마가 요즘 동네산책을 자주 하는 이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