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 왈덴스인들에게 가해진 핍박과 박해
1). 십자군의 정벌
왈덴스인 선교사들의 전도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와 성경에 대한 각성이 백성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을 보자, 암흑의 세력도 일어나서 크게 경성하게 되었다. 교황권의 대리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보자 두려워하게 되었다. 교황권의 지도자들은 이런 검소한 행상인(왈덴스인)들의 활동이 그들의 사업에 위험의 전조가 되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의 빛이 아무런 장애 없이 비추어지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이 오류의 짙은 구름을 헤쳐 버릴 것이고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이끌리게 되면 마침내 로마교황권의 최상권은 무너질 것을 그들은 알았다. 그리하여 교황권은 그들을 이 지상에서 쓸어 버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산간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무서운 십자군이 파견되었다. 또한 종교 재판관들이 그들과 함께 파견되어 죄 없는 사람들이 이유없이 죽임을 당하는 광경이 자주자주 되풀이되었다. 그리하여 산골짜기에 개간되었던 그들의 비옥한 땅은 거듭거듭 황폐되었으며, 그들이 살던 집과 예배당은 자취조차 없어졌고, 한 때 곡식이 무르익었던 밭들과 순결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던 그곳은 거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피 맛을 보고 더욱 사나워지는 것처럼, 교황권 교도들의 분노는 그들의 희생물들의 고난을 보고 더욱 격렬해졌다. 이 순결한 믿음의 증인들인 왈덴스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추격당하고, 골짜기에서도 숨을 곳을 찾지 못하여 깊은 산림 속과 절벽 위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인권을 박탈당한 그 사람들의 도덕적 품성에는 아무런 책잡을 것이 없었다. 그들을 잡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을 온유하고 조용하고 경건한 백성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큰 죄목은 교황의 뜻대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그 죄의 대가로 사람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굴욕과 모욕과 가혹한 형벌이 그들에게 과하여졌다. 한 번은 로마교황권이 그 미워하는 종파인 왈덴스인들을 근절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죽음에 내어 줄 것이라는 포고가 교황으로부터 붙혀졌다. 그들은 게으르거나 부정직하거나 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죄로 고소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외모로는 경건하고 성결한 체하면서 실상은 참된 양우리의 양을 속이는 자들 이라고 정죄되었다. 그러므로 교황은 만일, 그 유해한 종파가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절한다면, 독사처럼 짓이겨 죽이라 고 명령하였다.
이 포고는 교회의 모든 사람과 죄수들에게 이단을 토벌하는 십자군에 참가하도록 하였는데, 십자군에 가담하면 다음과 같은 특권이 주어졌다. 십자군에 참가한 자들은 일반적이거나 특수한 것을 막론하고 온갖 종교적 형벌에서 면죄되고, 마땅히 행하기로 선서한 것들도 면제되고, 비합법적으로 얻은 어떤 재산도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이단자들을 죽이는 그 일에 가담함으로 모든 죄에서 사유함을 받는다 고 보증되었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믿는 왈덴스인들에게 유리하도록 체결된 모든 계약을 취소하게 하고, 그들의 종이 되었던 사람들은 그 상전의 집을 나가게 하고, 누구든지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금지하였고, 아무나 그들의 소유물을 빼앗을 수 있게 허락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장 무서운 비극이 연출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백성, 왈덴스인들은 그들에게 미친 여러 세기의 박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내와 성실로 견디었다. 그들 자신은 물론, 어린 아이들과 가족들이 모두 토벌을 당하여 비인도적인 학살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전도자를 파견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잡혀서 죽임을 당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의 피는 이미 뿌린 씨에 물을 주게 되어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이와 같이 왈덴스인들은 개혁자 루터가 나기 수세기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증거하였다.
2). 종교 재판소
로마교회가 최초로 종교재판관들을 임명한 것은 왈도파, 곧 왈덴스인들의 전도와 그들의 설교 때문이었다. 교황 이노쎈트 3세는 자신의 영향권 내에서는 사람들의 신앙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종교재판소들을 세우고 어떤 수도사들을 종교재판관으로 임명하여 이단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종교재판관들은 모든 나라에 파견되었으며, 그들의 세력은 제한을 받지 않았고, 그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왈도파가 가르치는 믿음을 가졌거나, 또는 로마교회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성경을 그대로 따르는 독자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지면 그의 목숨과 재산은 끝장이었다. 종교재판소에서 일반적으로 집행되는 고문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그곳에는 늘 무시무시한 살인도구들이 있었고 죄수들의 뼈와 사지를 늘어뜨려 어긋나게 하는데 쓰여지는 도르래와 밧줄, 뺀찌 등등 무서운 기구들이 있었는데, 몇 주일이고 고문을 하다가 결국에는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그런데 그들이 이단자들을 이렇게 고문을 한 이유는,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이단(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여, 그들이 이단을 믿는 것을 포기하게 해야 지옥이나 연옥에 가서 받을 형벌이 감해진다고 믿고 그 고문이 이단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다.
3). 프랑스와 이태리에 있던 왈덴스인들이 당한 박해
교황은 왈도파(왈덴스인)들의 신앙이 계속 퍼져나가는 것을 보자, 로마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증오스러운 종파를 영원히 지상에서 종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는 왈도파를 그들의 골짜기에서 끌어내려고 크레모나의 대집사 알베르트 카피타나이스를 프랑스로 보냈고 대규모의 군대를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군인들이 왈도파 사람들을 잡으려고 알프스의 어느 골짜기에 도착했을 때 집들은 비어 있었고 사람들을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그곳 사람들이 벌써 군인들이 오는 것을 알고 동굴이나 바위에 숨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들을 찾아내고 추적하여 많은 사람들을 잡아 낭떠러지에서 거꾸로 떨어뜨려 죽게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동굴에 피해 있었다. 군인들이 그들을 붙잡을 수가 없게 되자, 동굴을 찾아내어 어귀에 나무를 쌓아 놓고 큰 불을 질렀다.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연기와 열로 질식되어 죽었다. 불이 다 탄 후 동굴을 뒤지자 1,000여명이나 되는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여자들과 어린이들이었다. 이 공격에서 죽은 사람들은 3,000명에 달했다.
그 외에도 알프스 산의 북쪽인 이태리 북방으로 가서 산 사람들, 알프스의 또 다른 산맥에 사는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핍박들과 죽음을 당하였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어린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 아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주 골짜기를 습격하는 십자군 (무서운 죄를 지은 죄수들로 구성된 군대로서, 만일 그들이 이단을 믿는 크리스챤들을 많이 죽이면 용서해 준다는 조건으로 만들어진 군대) 에 의해 무섭고도 매우 잔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불타는 신앙은 칼로도 화형으로도 창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이태리 북부 산으로 도망하여 가서 산 왈덴스 사람들 중, 후에 그들의 후예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들은 땅을 갈고 파서 농업이 번창하였고 얼마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예의 주시를 하던 로마 투린의 대감독은 결국 그들의 피난처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군대들을 보내어 많은 난폭한 짓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러나 왈덴스인들의 수가 많아 때때로 파견된 군대가 그들의 저항을 받아 포기하고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수백 년을 그칠 줄 모르는 박해가 계속되었지만 그들의 신앙과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1650년 로마 의회는 희년을 맞아 신앙을 전파하고 이단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을 통과시키는 중, 왈도파 사람들을 상하고 괴롭게 하려는 법과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유난히 심하게 추운 겨울에 왈도파 모든 주민과 이미 공개된 지역사람들은 삼일 안에 그들이 로마교회로 개종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집을 떠나 산으로 은퇴하라는 것이었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그 조건들을 수락하였다. 그들은 우리는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다. 그리고 성경을 따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어떤 교리와도 타협할 수 없으며,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우리의 신앙에서 떠나게 할 수 없다 고 말하며 그들의 거처와 집들을 포기하였고, 눈 속에서 강을 건너며 어렵게 급류를 통과하여 동굴이나 불쑥불쑥 내민 바위 아래 안식처를 마련하였다.
15,000명의 군대가 즉시 그 골짜기로 파견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기를 떠나려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야만스럽게 살해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 땅을 강제로 빼앗기게 되었고 피드몬트의 다른 도성에 있는 감옥에 감금되었다. 12,000이나 넘는 남녀 성인이 어두컴컴한 토굴에 갇혀서 가장 잔인한 취급과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아주 형편없는 빵을 먹었으며 썩은 물을 마셨다. 그들의 유일한 침대는 맨 돌이나 썩은 짚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매우 빽빽하게 차게 했기 대문에 열병과 다른 질병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교회로 개종하려는 의사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신앙을 계속해서 고수하였다. 그러한 취급을 받는 가운데 몇 개월 안에 그들의 수가 12,000명에서 3,000명으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동굴 안을 늘 채웠던 찬송소리는 그들의 기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4). 종교 개혁의 씨를 뿌림
핍박하는 일에도 막대한 경비와 인원이 요구되자 싫증이 난 박해자들은 왈도파의 나머지 남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정배를 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에 강제로 행군하여 가게 되었고, 또 매우 빨리 재촉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죽었다. 그리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위스와 핍박이 덜한 곳에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고 죽었지만, 그러나 결국 그들의 이러한 고난과 시련, 또 죽음을 불사한 신앙의 열정, 수없이 흘려진 귀한 순교의 피 때문에 후대에 저 위대한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그들의 열정 때문에 귀중한 성경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성경에서 비쳐 나오는 진리를 믿고 깨달아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핍박을 피해 여러 나라로 흩어진 신실한 왈덴스인들은 위클리프 시대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씨를 뿌렸는데, 그 운동은 루터 시대에 이르러 한층 더 깊고 넓게 자라났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계 1:9) 모든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마지막 시대까지 계속하여 진행될 것이다.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