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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이라는 명칭은 ‘궁예(弓裔)가 왕건에 쫓겨 도망치다 이곳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 탄했다’고 해서 되었다는 구전과 ‘6·25전쟁 때 피난을 가다 강을 만나 건너지 못해 죽었 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듯하게 꾸면 낸 이야기 이고, ‘크다, 넓다, 높다’는 뜻의 ‘한’과 ‘여울, 강, 개’의 뜻인 ‘탄’이 어울린 순수한 우리말 이며, 이를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실제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한탄강 을 ‘양쪽 언덕에 모두 섬돌 같은 석벽(石壁) 이 있으므로 체천(섬돌이 겹쳐 있는 하천)’ 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옛 지명은 대탄(大灘)으로 ‘큰 여울’이라는 뜻을 가진다는 점 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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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용암이 흘러 내려가며 형성된 추가 령 구조곡은 평강·철원에서 임진강과의 합 류점까지 뻗어 있다. 곳곳에 수직절벽과 협 곡이 발달했고, 휴전선에 가까워 이들 수직 단애의 골짜기는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이용 되고 있다.
추가령 구조곡은 서울과 관북지방을 잇는 국도와 경원선이 통과하여 교통의 요지였고 철원·평강 용암대지는 토질이 비옥해 벼 ·보 리·밀·옥수수·콩·감자 등이 재배된다.
이렇게 비옥한 곡창지대에 형성된 철원은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해 예부터 중시되 었던 곳이다.
궁예가 901년 후고구려(→태봉)를 건국한 후 한때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고, 조선시대 에는 강원도 서북부를 아우르는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철도(경원 선)와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 성장 하였다.
철원군 전 지역이 38선 이북에 위치해 19 45년 광복 직후 소련군정의 관할 아래로 들 어갔다. 한국 전쟁 중에는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이어서 이 지역을 가로질러 군사분계선이 설정되어 남북으로 분단되었 다.
현재 철원군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양쪽 모두 설치하고 있는 행정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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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직탕폭포에서 시작하여 태봉대교, 송대소, 승일교, 고석정을 거쳐 순담계곡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를 걸었다.
한탄강은 우리나라 어느 강보다도 변화무쌍 하고 풍광이 수려하다. 발원지에서 임진강 의 합류점까지 현무암으로 된 용암지대를 관류하기 때문에 곳곳에 수직절벽과 협곡이 형성되어 절경을 이루고 있더라.
한탄강 물줄기 아래에 풍부한 수량과 나직 한 골짜기를 가진 몇 가닥의 강물이 서로 합쳐 떨어지는 직탕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여느 폭포와는 달리 밑으로 긴 것이 아니고 옆으로 긴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꽁꽁 얼어서 표면적으로는 정지된 듯하지만, 물방울 튀기며 흐르는 모습을 떠 올리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 다.
주상절리(柱狀節理)는 지표로 분출한 용암 이 식을 때 수축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절리를 말한다.
철원의 그것은 높이 30m를 이르고 그보다 도 더 깊은 비취색 한탄강의 물과 어울려서 아름답기만 하다. 꽁꽁 얼어붙은 물줄기를 따라 송대소의 주상절리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었다.
한탄강의 한쪽은 현무암 수직 절벽이 주상 절리를 연출하고, 반대편에는 강의 빠른 물 길에 침식이 진행되어 현무암이 깎여 나가 기반 암반인 화강암이 드러나 있는 비대칭 적 협곡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커다란 빈대떡 같다.”고 표현하던데, 운동 장 같이 넓고 평평한 마당바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간식을 나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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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의 협곡 사이로 위태롭게 걸려 있는 승일교란 다리가 인상적이다. 마치 영화 속 의 <콰이강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이 아치 형 다리는 광복 직후 김일성 치하에서 시공 되어 휴전 직후 이승만 치하에서 완공되었 다.
승일교란 이름은 항간에는 이승만과 김일성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 다리를 건설한 박승일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붙인 것이다.
한탄강 한복판에 치솟은 10여 미터 높이의 기암의 양쪽 사이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 아 흐른다. 승일교 부근에 작은 바위섬이 있는데, 몇 그루 소나무를 머리에 이고 강 가운데 우뚝 선 고석정과 어우러진 한탄강 의 경치는 더없이 황홀하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 섬을 보기 위해, 신라의 진평왕도, 고려의 충숙왕도 다녀갔고, 조선 명종 때 난세의 영웅이자 의적인 임꺽정의 은신처였다고 광고하고 있다.
물론 지역 자랑을 강조하기 위함이겠지만, 임꺽정이 난세의 의적이기는 하나 ‘영웅‘이 라는 표현은 듣기에 거북하고, 직탕폭포를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운운하는 것도 지나친 비유임에는 틀림 없겠고 말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지나치게 아름다우면 슬픔 또한 배가되리니, 고석정에 서서 임꺽 정을 의적이라 하며 따랐을 16세기 백성들 의 참상하며, 승일교를 보면서 6·25전쟁의 참상을 떠올렸다면, 과연 나만의 치기어린 감상이기만 할까?
장암산 계곡에서 시작된 한탄강은 남대천, 임진강, 한강과 합류하기를 거듭하여 흐른 다. 모든 강물이 그러하듯이, 우리네 인생도, 역사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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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에서는 지역을 홍보하고 경제 를 활성화하고자 한탄강 얼음트레킹 축제가 개발하였다. ‘동지 섣달 꽃본 듯이’라는 정감 어린 주제로 한탄강 협곡의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를 걸으며 대자연의 감동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겨울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그다지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 는지, 이를 의식하여 얼음 폭포와 나무를 배경으로 한 얼음 포토 존과 대형 눈조각 포토 존을 곳곳에 조성해 놓았다. 얼음썰매·개썰매·유로번지·빙판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겨울 놀이터 등 볼거리, 즐길 거리도 적지 않더라.
‘삼한사미(三寒四微)’라고 했던가, 추운 고기압이 형성되면 잠잠하다가 따뜻하다 싶으면 다시 공기가 정체되어 미세먼지가 계속되기 때문에 붙여진 신조어이다. 어제는 1년 중 절기상으로 가장 춥다는 대 한(大寒)이었다. 모처럼 찬바람이 불어서 미세먼지 없이 청명한 날, 손은 시리고 발을 동동 굴렸지만 모처럼 겨울 정취를 한껏 즐 겼다.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Dāvāja Māriņa meitenei mūžiņu)>은 가난한 화가가 짝 사랑하는 여배우를 위해 수많은 꽃을 선물 했다는 애잔한 내용을 담은 러시아 노래이 다.
이를 번안하여 가수 심수봉이 부른 <백만송 이 장미>가 행사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분위기를 반영하듯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 지며 눈바람이 흩날리고 있었다.
(2019. 1)
- 오창훈 글, <철원 한탄강 트레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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