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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지역마다 다양한 윷 종류가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강원도 강릉시 윷가락, 윷놀이 세트, 강원도 삼척시 종지윷과 윷말, 경남 남해군 삼동면 종지윷.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에도 윷놀이를 연구한 학자들이 많았다고.
- 많다 적다는 말은 상대적인 말이라서, 비교의 대상이 없이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조선 시대는 우리 고유문화나 사상보다는 중국을 더 높이 평가한 시대라 같은 놀이도구인 바둑이나 장기에 비하면 많았다고 하기는 어렵죠. 오히려 사대부 집안에서는 윷놀이는 부녀자와 상민들의 천한 놀이라고 해서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으니, 이를 연구한 학자가 많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의 윷놀이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연구한 학자들이 계셨죠. 우선 윷판에 천문역법을 결합한 역학적 연구성과를 남긴 김문표(1568∼1608), 그 뒤에는 사희경(柶戱經, 윷놀이를 찬양한 시)을 쓴 심익운(1734∼?), 그리고 윷점에 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 유득공(1749-?) 등이 조선시대 윷놀이를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들입니다.
특히, 나라의 명운이 달린 전장에서 윷점을 쳐서 왜군을 물리치시는 데 활용하신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가장 윷을 사랑하고 윷을 가장 잘 활용하신 선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한말에는 외세의 침탈을 받으면서 윷놀이를 넘어서 윷판의 수리철학을 기반으로 전통시대의 쇠퇴와 새 시대의 도래 문제로 관심을 전환하기도 했죠. 윷판에 담긴 역학적 이치를 연구한 하상역(1852?-1916), 그리고 근현대 우리 민족의 격동기를 윷판에 담긴 역학적 원리로 해석한 야산 이달(1889-1958) 선생 등이 조선 시대에 우리 윷놀이를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라고 할 수 있죠.
윷놀이를 찬양한 심익운의 사희경을 읽으면서 이번 글 마무리 하겠습니다. ^^
[사희경(柶戱經) : 윷놀이 경전]
사희경에는 대문(大文)과 주석이 있다. 본고에서는 일단 대문만을 게재해서 감상하도록 한다.
有戱於此 非博非奕 折杻爲籌 畫紙成局
여기에 놀이가 있으니 장기도 바둑도 아니라, 싸리나무 잘라서 가락을 만들고 종이에 그려 판을 만드네.
籌四如一 外赤內白 奇耦參會 貳純重擲
네 가락 똑같은데, 겉은 붉고 안은 희도다. 홑․짝이 섞이며, 모두 엎어지거나 잦혀지면 다시 던지네.
中局而孔 四通七列 圜爲二十 間絡四穴
윷판은 중심의 구멍은 사방으로 통하여 일곱 개씩 벌려있고, 둘레는 스무 칸 네 혈처를 두르고 있네.
四馬並馳 或乘或匹 利則留止 害不掩食
네 말이 같이 달리는데 올라타기도 하고 짝을 짓기도 하며, 유리하면 멈추기도 하고 해로우면 잡아먹지 않기도 하는구나.
有出有入 有順無逆 徐疾旣殊 輸嬴斯卜
들고 나지만 따라는 가도 거슬러가지는 못하도다. 느리고 빠름이 달라지니 이로써 이길지 질지를 점치네.
維局象天 中作樞極 二十八舍 其機內斡
판은 하늘을 본떠서 중심은 북두성 축이 되어, 스물여덟 개의 집이 그 틀 안에서 돌아가네.
維籌象易 陰陽九六. 有變不變 於焉消息
윷가락은 역(易)을 본뜨니, 음과 양은 9와 6이라, 변했다가 불변하니 줄었다가 불어나네.
其具已集 其事易決. 巧拙隨手 用舍在臆.
도구가 갖춰지면 일은 쉽게 결판나니, 교묘함과 서투름은 손놀림을 따르고, 쓰이고 버려짐은 생각하기에 달려있네.
歲暮明燈 時夜風雪 布局投籌 婦嬬競謔
섣달그믐 등 밝히고 눈보라 치는 밤에 판벌리고 윷 던지며 아녀자들 다투며 즐거워라.
理寓於數 數以器察 告我二子 敬受此述
이치는 수(數)에 부쳐있으니, 수로써 사물들을 살펴보라. 이르노니 두 아들아, 이 글을 공경히 받으라.
자료 출처: <k스피릿>에서 기사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