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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성 — 한 면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다
위로 오르는 능력과 근원으로 내려가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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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새는 새장을 자신을 가두는 감옥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먹이를 얻고 위험을 피하며 살아왔기에, 오히려 새장 안만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세계라고 믿게 된다.
문이 열려도 쉽게 날아가지 못한다.
새장 밖에는 더 넓은 세상과 자유가 있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가능성이 아니라 위험으로 느껴진다. 밖으로 나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열린 문을 앞에 두고도 익숙한 새장 안에 머문다.
인간의 사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생각과 행동방식을 물려받는다. 부모에게서, 학교에서, 사회생활에서, 그리고 앞서 살아간 사람들에게서 배운 기준을 별다른 의심 없이 따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상의 아주 사소한 미신에서부터 각 나라와 가정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근거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인 사고방식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널리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생각이었지만, 오랫동안 반복되면 마치 자신이 판단하여 얻은 진실처럼 여기게 된다.
그 생각은 우리를 보호하는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새장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새장 안에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자신이 새장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그 안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데 있다.
As Above, So Below의 양면성
가령 As Above, So Below라는 말을 접했을 때, 그 안에 깊은 철학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대체로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인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러하다는 이 말은 대우주와 소우주,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이치와 순환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하늘의 순환과 인간 생명의 순환, 계절의 변화와 생로병사, 태양과 달의 리듬과 인간의 몸과 마음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해석하던 사람들은 태양과 달, 별과 여러 천문현상을 왕권과 연결하여 통치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던 철학이 신화가 되고, 신화는 다시 왕족의 혈통을 신성화하며 사람들을 통치하거나 현혹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As Above, So Below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지혜인 동시에, 하늘의 권위를 빌려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었다.
이것이 양면성이다.
동전은 그 자체로 하나이지만 반드시 양면을 가진다.
한쪽 면만 보고 그것이 동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된다. 때로는 반대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믿어온 생각과 기준을 지키기 위해 그 실재를 외면하기도 한다.
인간이 자신의 우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계는 고쳐서 다시 사용할 수 있지만, 인간은 고쳐도 익숙한 생각과 행동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오랫동안 반복된 습관과 믿음이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원래 자리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면성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반대 의견을 하나 더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어온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나는 지금 전체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한 한쪽 면만 보고 있는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를 갖는 것이다.
무술의 한 면과 무예의 근원
무술수련도 마찬가지다.
무술은 반드시 상대를 제압하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기술이라고만 교육받는다면 수련자는 무술의 극히 피상적인 한쪽 면만 알게 된다.
평생 육체적 술기와 능력을 높이는 데 몰두하다가 몸이라는 기계가 수명을 다할 때가 되어서야, 사람에 따라 그 한계를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본래
그것을 무예라고 불렀다.
무예를 삼원철학의 구조로 분석하여 더욱 깊이 들어가면, 육체적 술기는 전체 공부의 입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술기만을 평생 추구한다면 한평생을 수련해도 첫 단계에 머물 수 있으며, 그 상태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나는 인간과 무예의 공부를 아홉 단계로 나누어 설명해 왔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비추어 보고 견주어 볼 수 있는 하나의 참고이자 거울이 될 수는 있다.
내가 가르치는 진영쌍검류를 가장 깊은 근원을 추구하는 무예라고 설명하는 것도, 그것이 다른 모든 무술보다 우월하거나 최고의 무술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 즉 무술과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사실에 접근한다는 의미다.
위로 올라가는 능력과 아래로 내려가는 공부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위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근원을 잃은 채 능력만으로 올라간다면 마치 손오공이 재주를 부리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 머물며, 언젠가는 반드시 추락하게 된다.
그것도 진리고 이치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 결과가 가까운 사람을 어렵게 만들면서,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을 반드시 무너뜨리게 된다.
인간은 올라갈수록
반드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
자기를 따르라
자기만이 최고다라고 하면서
자기편을 끌어모우기 위해
권모술수와 시시비비가 판을 친다.
사이비가 극에 달하면서
최고의 욕심과 명예와 금전을 가지다
어느 날 사라지는 것도 하나의 이치다.
이것을 자기화(자기세계화)라고 한다.
그 사람은 대단한 능력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인간의 올바른 삶과 사람을 위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는지는 완전 별개의 문제다.
결국 각자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스스로 걸어간다.
수많은 선각자가 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라고 했는지를
각자의 삶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면,
비로소 공부가 조금 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은
능력을 포기하거나
자신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아를 낮추고 자신의 한계를 보며,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간 삶의 공통된 근원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필요한 이유는
더 강하고 대단한 자신을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왜 인간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가?
왜 상대를 단순히 제압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가?
더 나아가 왜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지식이 아니라 실제 삶과 수련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 그리고 무술수련을 통하여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에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무예의 길이자 삶이라고 보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
그게 알파와 오메가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영쌍검류에서 실용적이고 사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그럴듯하고 높은 철학이라 하더라도 실제 삶 속에서 확인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관념에 머물 수 있다.
삶의 이치에 어긋나면 매사가 힘들고 어렵고 아프게 된다.
반대로 올바른 길 위에 있을 때
건강과 행복은 억지로 쫓아가야 할 목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가 된다.
물론 인간인 이상 완벽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거짓이나 왜곡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바른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 하나의 진리와 이치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다.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고, 자신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다음 한 걸음은 언제나 새롭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언젠가 완성될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그때그때, 즉시즉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실천해야 한다.
양면성을 본다는 것은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단순히 세상의 반대편을 찾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한쪽 면에 갇혀 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무술과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을 향해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성찰과 실천의 시작이다.
새장 밖으로 나가기 위한 첫걸음은
날개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자신이 새장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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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7일 목요일
불가리아 소피아
마리렐라 호텔 숙소에서
JS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