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23장1절-17절 "다윗에게 붙이신 은혜와 사람들"
(요약) 오늘 본문에 다윗은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복이 있음을 압니다. 다윗은 자신이 이처럼 살았음을 고백하며, 사악한 자는 망하게 되어 있음을 선포합니다. 다윗의 용사 가운데 요셉밧세벳과 엘르아살과 삼마는 전투의 선봉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1-2 [자기소개]
다윗이 높이 세워짐은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왕이며, 열방의 으뜸(머리)이 되었음을 뜻합니다(22:44). 구약성경은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향하여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또 여호와의 영이 다윗을 통해 말씀하심 역시 다윗이 자신을 선지자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혀에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흔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의 예언을 시작합니다(7:5).
3-4 [공의로 다스리는 자]
다윗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반석이라 부릅니다. 반석은 의지하고 피할 수 있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불변성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은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야 합니다. 공의와 경외함이 통치 원리가 됩니다(렘 23:5). 여기서 다스림은 '마샬' 동사로 표현되었습니다. '마샬'은 해가 낮을 다스리고 달이 밤을 다스리듯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지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창 1:16)
5 [다윗의 집]
공의로 다스리는 왕이 있을 때, 이스라엘은 구름 없는 아침의 해가 떠오를 때 아침 빛이 비침 같고, 비 온 뒤 광채로 땅에서 나는 풀 같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집이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이와 같다고 확신합니다 다윗 언약 속에 나타난 다윗의 소원인 성전 건축과 왕권의 영원한 보존입니다.
6-7 [악인]
공의로운 자와 대조되는 사악한 자의 운명에 대해 말합니다. '사악한 자 손으로 잡을 수 없다' 는 것은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반드시 불태워야 합니다. '당장에' 는 문자적으로 ‘그 자리에서’입니다.
8 [요셉밧세벳]
요셉밧세벳’이라는 이름의 뜻은 '그 자리에 거주하는 자' 입니다. 요셉밧세벳은 다그몬 사람이며,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불립니다. 그는 한 번에 800명을 죽였습니다.
9-10 [엘르아살]
아호아 사람 도대(=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 소개됩니다(9). 그는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 하나였습니다. 블레셋이 싸우려고 거기 모였을 때, 이스라엘이 퇴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용사가 남아서 상대를 조롱하면서 싸움을 돋우었습니다. 그리고 엘르아살이 일어나서 블레셋을 치는데, 그의 손이 피곤해서 칼에 들러붙기까지 싸웠습니다. 그날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베푸셨으므로, 백성들이 돌아와 그의 뒤를 따르며 노략질합니다.
11-12 [삼마]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가 소개된다(11절). 블레셋 사람들이 무리(하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니,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하였다. 삼마가 그 밭 가운데 서서 그 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다.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베푸셨다.
13-17 [세 명의 용사]
이들은 30명의 용사 중 세 명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30명의 용사는 다윗의 핵심적인 군사들로 그 명단은 24-39절에 나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이 아둘람 굴 혹은 산성에 자리 잡고 있을 때로 다윗이 아직 왕이 되기 전 사울을 피해 아둘람으로 도망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30인의 두목 중 세 사람이 추수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습니다. 이 세 사람은 앞서 언급한 요셉밧세뱃, 엘르아살, 삼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 사람을 의미합니다.
블레셋 사람의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습니다. 그때 다윗은 산성에 있었고,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갈망하면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자기에게 마시게 할 자가 누구냐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말이 고의성이나 강제성이 없었다는 것은 물을 받았을 때 그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자기가 배들레헴에 거주할 때 마시던 물맛을 잊지 못하여 더 목이 말랐을 것입니다. 그러자 세 용사가 블레셋 진영을 뚫고 지나가 베들레헴 성문 겸 우물물을 길어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물 마시기를 거절하고 여호와 앞에 부어드렸습니다. 그 물은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피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자신이 마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바칠 때는 주로 포도주를 부어서 전제로 드리는데, 다윗은 물을 자신의 용사들의 피라고 여기고 그 피를 여호와께 바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앞에서 자신을 위해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결단]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자기의 욕구로 가득한 공간을 비워내고, 상대방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어 소중히 여기는 것,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세상에서 목이 타는 이에게 물 한잔 내미는 것이 아닐까요? 삶의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고, 영원한 약속을 붙들게 하셨습니다. 모든 구원과 소원을 이루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2022-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