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영역 -박인서 20240706-
“아, 이곳은 참으로 아름다워! 그러니 당신이 미치는 것도 이해해, 정말 그래요! 이런 장소는 도대체 어떻게 찾아 내는 겁니까? 이 궁금증을 너에게 풀어 놓아도 될까요? 하지만 안 알려 줘도 돼요, 진심이야. 뭐라할까, 음 그러니까 너가 발견 한 곳 이잖아 그죠?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 지도 모르고, 스스로 간직하고 싶은 요령이 있을 수도 있지. 그래, 저희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자신만의 것으로 두고 싶은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정말이지 만약 제가 당신의 상황이어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가 조심스럽게 나마 나에게 알려 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경청 할 수 있어요, 무조건.”
그녀들 앞에 놓인 것은 아름다운 식탁이었다. 곱고도 매끈한, 그렇지만 무언가 장인의 정식으로 열정적으로 깎아 냈던 같은 나무 식탁, 매우 귀엽고 아기자기한 물체였다. 그녀의 정원은 이렇게 깔끔하고 아양 떠는 그렇지만 과하지 않게 인간적인 물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름다운 정원이었고 고급지게 말하면 프랑스의 아주 이름난 셰프가 준비한 코스 요리의 마지막에 나오는 설탕이 약간 톡톡 쳐진 까눌레, 그 옆에 놓인 담백 고소한 커피, 이 모든 것은 저 먼 정상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창문 너머로 훔쳐보는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치는 풍경 같았다.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탐나고, 또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선망의 대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취하게 하는 그런 정원이었다. 취한다는 것은 아주 좋다. 미와 위대라는 것에 취한다면 아주 좋다. 담배나 와인 같은 것보다는 훨씬, 그래서 그녀들도 담배나 와인 같은 것은 입에 가져다 대지 않았다. 하인이 대충 내린 커피나 이런 것 따위에도 나름 만족했다. 사리와 이 세상의 이치, 오, 이 필수 불가결 적인 것은 그저 환상이라는 사실을 그녀들도 모르게 인정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원과 이 깔끔 떠는 나무 의자에 기댈 때면 인간으로서 초월한 영역에 간 것 같았다. 오감이라던지, 무언가를 원한다는 욕구라던지 소름 돋을 모든 모습을 버릴 수 있기에. 그렇기에 비로소 이 아름다웠던, 아쉽게도 지금은 조금 추한 주름이 얼굴을 덮은 여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특히 지금 같은 여러 상황의 백색 여인들이 떠는 기만이나, 가식적인 감사와 경의를 연기하는 물음이 아니라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질문, 그 일차원적인 것이었다.
“일단, 당신이 그리 생각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정말 다행이에요! 오, 정말이지 완벽한 곳이지요.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죠. 물론 더 좋은 장소나, 아름답거나, 환상적인 장소는 있겠지만 저한테, 그러니까 이 나이와 이 외모와 이 전의 상황 아유, 지금은 뭐 별로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저도 태어난 곳이 막 너무 좋지는 않다는 말이에요. 정말 말하자면 괴링 장군님의 부인 카린씨나 그런 위대한 분들 만큼은요. 오해 말아요? 괴링 부인도 물론 힘든 부분이 있었겠지만요. 설마 제 뜻을 오해하세요?” 이 여인은 절대 한 시도 팔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손에 아주 화끈한 불을 내려 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손에 붙은 아주 뜨거운 불을 끄려 하는 것인지 그 두가지 일 중 하나를 이뤄 내려고 사방으로 팔을 흔들어 댔다. 이 질문에 반대편에 앉아 있던 고급지게 주름진 여인은 얼굴의 턱 끝, 좌우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다행이네요, 정말 영리한 분이셔서 이런 말실수도 오해 없길 바라요. 아무튼 저의 상황과 저라는 인간에게 이 장소는 제일 완벽한, 이보다 잘 맞을 수 없는 곧 이라는 거예요. 또 이 정원! 말씀하신 대로 저는 이 정원을 쳐다볼 때 잠시 정신이 나가고, 정원과 집을 나누는 중문을 지날 때면 꿈을 꾸는 것 같고, 그 문을 지나는 그 길을 따라 정원의 푸름과 이 정중앙에 위치한 수영장과 그 위에 매끈하게 잘 빠진 미끄럼틀을 잠깐 쓸며 지나갈 때면 정말이지 미쳐버린답니다. 이 사이사이에 핀 꽃들이며, 그러니까 튤립과 장미와 이런 미의 것들. 후, 정말 숨이 찰 정도로 기뻐요,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건 그 꽃을 따내며 열심히 일하는 귀엽고 깜찍한 꿀벌들! 정말, 정말 이건.” 젊은 아가씨, 하지만 결혼을 했으니 아가씨는 아닌 이 여인은 조금은 갑작스럽게 웃음 터트리더니 2분쯤 계속 큰 소리로 웃었다. 조국을 위해 매달을 차지한 우승자의 웃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신한 카페에서 귀엽게 떠드는 부인들의 웃음들도 아니었다, 또 너무 재미난 광대에게 붙잡혀 죽을 정도로 혼 빼는 웃음도 아니고, 잠시의 사랑스러운 키스를 나눈 뒤 멋 적게 웃는 웃음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웃음은 멋도 모르고 막 놀아대는 어린 아이를 향한 분노와 비슷했고, 시끄러운 굉음이 울려 퍼지는 경마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아기가 손으로 귀를 지그시 누른 다음 목이 나갈 때까지 울부짖는 그 감정과 비슷했다. 모든 것들과 해어짐을 가진 뒤 홀로 남겨져 우는 그 흐느적거림과 비슷했다. “아후, 너무 웃었네요, 죄송합니다. 근데 계속 웃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정말. 웃는 와중에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이 모든 게 다 저의 머리와 손을 거쳐 태어난 창조물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이요. 오, 정말 환장할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뭘 놓친 것 같은데, 그죠? 아닌가요?”
“뭐, 중요한 건 아니긴 한데요. 그저 정말 당신이 말한데로 이 환상적인 장소를 어떻게 찾았냐는 거에요. 그런 질문을 제가 했었죠.” 여전히 쉬지 않던 젊은 유부녀의 손이 맞부딪치며 소리를 했다. 굉장한 연기로 자신이 엄청난 신뢰를 끼쳤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행동은 사실 미안하다거나, 신뢰를 끼쳤으니 용서를 부탁한다는 게 아니다, 용서를 강요하는, 빨리 나의 이런 별 없는 일을 용서하고 다음주제로 넘어가자는 무언의 압박에 가깝다. 노련한 아주머니는 다시 턱으로 곡선을 그렸다. “정말 별거 아니니까 잊을 수 있어요, 오히려 그러는 편이 뭐라할까 진화적으로 더 유리하죠. 그래요. 이건 비꼰다거나 그런 악마적인 의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아시죠?”
“그럼요, 우리 천사 부인의 무한한 용서의 감사를 돌려 드려요. 음,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원하는 답을 못 드릴 것 같은데, 이 놀라운 장소는 저의 힘이나, 요령으로 얻은 것이 아니거는요. 오직 위대하신 히틀러 총독님과 하느님이 저에게 주신 은사이죠. 글쎄요, 냉철하게 말한다고 하면 저의 남편이 이곳으로 발령받은 것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요,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죠. 안 그래요? 저는 정말이지 지금 상황에 그이와 위대하신 히틀러 총독님 그리고 하느님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답니다.” 박수를 쳤다, 마침내-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것을 표현했다. 그녀의 깊게 파인 주름이 마치 나치의 문향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 “놀라워요, 당신의 고백은 정말 아침 새가 지저귀는, 그러니까 과거의 어떤 음악 천제들도 표현치 못한 그 소리 같아요. 그 정도의 여유와 미가 있으니 모두에게 사랑받아 이런 자리에까지 온 것이겠지요.” 그녀들은 한참은 더 그 자리에 앉아 입을 움직이며 침을 튀겨 댔다. 부정적인 표현은 아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이 튀긴 침들은 아주 아름답게 빛나며 서로의 뽀얀 빰, 정확히는 사내 아이들이 환장할 만큼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정도로 파여 있는 보조개 위에 떨어졌다. 그 모습은 여러 빛을 반사하여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빛으로 바꾸어 버리는 크리스탈 같았다. 아주 이기적이게 모든 것의 힘을 입으면서도 뻔뻔스러운 눈치로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맡겨진, 혹은 거저 받은 그런 아주 은혜로운 것을 전부 자신의 영광과 힘으로 돌려 내놓았다. 그런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침이었다. 아주 매혹적이고 매료적이지만 전혀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즐거워 보이는 행동을 다른 어떤 광기에 거쳐서 흉내 내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 인위적으로 피어 있는 검은 연기, 조금은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멋있고 선망을 살만한 좋은 그림의 일 부분이다. 이 정원을 비롯하여 이어지는 집, 이곳들에 들어 비쳐지는 햇살과 빛의 정도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적정선을 이만큼 잘 지키는 태양이라면 아마 특별히 이 집과 정원에 대하여만 의식을 가지고 신중을 기우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의 뜻은, 그만큼 천사적으로 이쁘다는 것이다. 이들이 앉아 있는 의자와, 집에서 하인이 조심스럽게 가져다 준 조금은 과일 열매 맛이 과하게 나는 커피와 그것이 놓인 식탁과 냄새로 전해져 오는 달콤한 꽃향기와 이것들은 열심히 나르는 벌들과 자연스럽게 뛰어 노는 어린 남녀 아이 한 쌍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악장이 되어 있었고 그녀들의 두 눈과 그 결단력 있는 힘줄은 오케스트라가 되어 이 모든 것을 아주 환상적이게 연주하여 내고 있었다. 코도, 입도, 눈도, 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는, 그 쉬지 않는 손의 촉감도. 최고의 정상에서 조금의 밑도 없는, 나락이라는 곳과는 제일 거리가 먼 곳에서 천사들의 연회를 즐기는 듯했다. 그리고 귀는. 말하자면 청각은. –
굉음. 굉음. 굉음. 굉음.
무라는 검정. 고통이라는 빨강. 너무 밝은 하양.
굉음. 굉음. 굉음. 굉음.
그 종류. 비명. 신음. 죽음. 죽음.
굉음. 굉음. 굉음. 굉음.
바로 앞. 벽으로 가려. 계속 들려. 다른 것들로 속여.
굉음. 굉음. 굉음. 굉음.
영이라는 부수적인 것. 속여. 소리라는 직접적인 것. 듣지마.
굉음. 굉음. 굉음. 굉음.
“엄마 그게 가능해요? 아빠 맨날 어디가요?”
굉음. 굉음. 굉음. 굉음.
아닌 척. 괜찮은 척. 잘 있는 척. 천사인 척. 사람인 척.
굉음. 죽음. 굉음. 죽음.
환상의 영역. 인간 이상의 영역. 평범한 영역. 천사의 영역. 이 아닌 누군가의 영역.
죽음. 굉음. 죽음. 굉음.
뭉게뭉게 구름. 살짝 투박한 비. 조금 탁한 강물. 약간 이상한 사람. 옆에 맨날 울기만 하는 아기.
아기야 넌 아직은 착하구나. 피하렴. 도망치렴.
죽음. 죽음. 죽음. 굉음.
영의 죽음. 이성의 죽음. 감각의 죽음. 옆에서는 계속 울리는 굉음.
죽음. 죽음. 죽음. 죽음.
너 죽어. 너 죽어. 너 죽어. 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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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음. 다음. 죽음
다음. 무음. 다음. 처음
걸음. 신음. 죽음. 무음.
신음. 죽음. 무음. 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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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 굉음. 굉음. 굉음.
소음. 소음. 소음. 소음
신음. 울음. 웃음. 웃음
놀음. 잡음. 죽음 없음.
“이만 들어 갈까요? 너무 환상적인 장소이지만 나중을 위해 또 아껴 두어야 지요.” 억지 웃음이었다. “그래요, 저도 오랜만에 아주 만족스러운 대화였어요.” 아마 늙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툭’ 집주인 여인이 마시고 있던 커피에 벌 한 마리가 빠져 버렸다. 강렬한 정색과 함께 조금 많이 힘이 들어간 다리로 자리를 박찼다. “빨리 들어서 식사 하시죠. 오늘은 폴란드 정통 음식을 제 하인이 배웠다 해서요, 저도 살짝은 기대가 있거든요.” 늙은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환장할 정원을 지나 걸으며 집으로 들어 갔다. 그 과정 속 늙은 아줌마는 귀를 막고 있었다. 멍이 들 정도로 아주 세게 눌렀다. “젠장할 벌 놈들은 도움이 안 돼!” 다음날부터 벌들의 날개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