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신부의 자살 8 (3)
신부도 사표를 내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만둔다는 것은 어느 면으로는 사표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저는 신부님을 존경해요. 멋진 수단을 입고, 신자들 앞에서 훌륭한 말씀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신부님을 남편감으로 착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소감이 어떠세요? 물론 신부님 생활을 하기란 힘드시겠지요. 말 들으니 홀아비 생활을 한다는데, 홀아비 생활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사장이 끼어들었다. "밤에 혼자 잘 때 힘들지. 그땐 베개를 껴안고 자지. 곽 마담이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어. 잠자리 서비스 하는 건 최고라지." 곽 마담이 곤혹스럽게 웃었다. "에이 사장님도, 신부님 옆에 계신데‥‥‥‥ "그래서 말이야. 내가 중매를 선 거잖아요. 여기 김씨하고 잘 사귀어봐. 숫총각이니까 나이는 들었어도 한 번도 여자와 관계를 한 일이 없지. 그건 내가 보증해." "정말이에요?" 곽 마담이 미카엘 신부의 곁으로 의자를 당겨 다가앉았다. 그 리고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 미카엘 신부는 그걸 뺐다. 마치, 송충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진하신가 봐." 곽 마담이 심술궂게 다시 잡았다. 미카엘 신부는 그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고 싶었으나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선생님, 정말 숫총각이세요?" 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정말이지. 신부가 여자관계 있는 사람 있어?"
"신부님도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던데. 내가 아는 신부 어떤 사람은 밥 시중드는 여자를 꼬셔 데리고 자다가 신자들에게 들켜 쫓겨났다고 하던데.' 신부는 사람이 아닌가. 신부는 뭐 고자가 되는 약을 먹었나. 안 그래요, 김 선생님?" 미카엘 신부는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짙은 농담에 얼굴이 붉어졌다. 천박한 말이 마구 난무하는 데 불결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들어 두었다. "신부님, 우리 멋지게 연애 한번 해 봐요. 제 문은 항상 열어 두었으니까요." 곽 마담이 미카엘 신부의 어깨를 감쌌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켰다. 그럴수록 곽 마담의 몸이 조여 왔다. 화장품 냄새가 요란하게 풍겨 왔다. 불결한 냄새였다. 산전수전 모두 겪은 여자라서 무슨 말을 하던지 소화시킬 여자였다. 그들은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다방을 나섰다. 곽 마담이 또 오라고 미카엘 신부의 손을 잡았다. 그는 그들과 헤어져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다시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몇 걸음 옮기자 미카엘 신부는 별안간 속이 쓰리고 아파 옴을 느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통증이 배아래 쪽으로부터 왔다. 그는 정류장 못미처에서 그냥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랫배 쪽을 꼭 움켜잡고 일어설 줄을 몰랐다. 일어서 걸으려 해도 힘이 없었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온통 사방이 흰빛이었다. 곁에 사람들이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병원이었다. 길거리에 쓰러졌을 때 누군가 병원으로 옮긴 것이었다. 간호사가 곁에 서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봐도 연락처가 없었어요. 당장 보호자가 친구한데 연락할 사람 있어요?"
미카엘 신부는 단순한 급체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의사가 들어 왔을 때 자신의 병이 심각수위를 넘어섰다는 걸 알았다. "응급실을 거쳐서 병실로 옮겨졌는데 결과가 나와 봐야 알지 만‥‥‥‥조직 검사를 해 봐야 되겠습니다." 미카엘 신부는 동생의 주소를 알려 주었다. 얼마 후 동생과 그의 부인이 병실로 달려왔다. 동생한테는 그 동안 연락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미안하다. 여기까지 오게 해서‥‥‥‥“ 그의 동생은 미카엘 신부가 사제복을 벗을 때부터 걱정이 앞섰다. 그가 갈 데라고는 양로원이나 자기 집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나이든 형님을 떠맡는다는 것이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동생이 형을 근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진작 연락을 해 주시죠." "그렇게 됐다. 너무 근심 끼치지 않을 테니까 염려하지 말거라." "이렇게 중병에 걸렀으면 집으로 들어오셨어야죠." . "나는 괜찮다." "조직 검사를 해 보았는데 괜찮을 거예요." 미카엘 신부는 조직 검사란 말에 그의 생리적인 생활이 끝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조직 검사라면 암 계통의 병이 분명 했기 때문이다. 또 병실을 돌아보니 모두 침대 아래 CA라는 암 병의 약자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환자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미카엘 신부는 이것 모두가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죄의 응보라고 생각하고 체념했다.
"주님의 뜻대로 거두어 주십시오. 순명하겠습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건 오직 주님의 명예를 더욱 더럽히는데 한 역할을 더 할 뿐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빨리 저의 생명을 거두어 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뜻하는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 곳이 지옥이든 연옥이든 뜻대로 가겠습니다." 미카엘 신부는 과거의 모든 행적이 오류의 연속이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동생 부부를 돌아가게 했다. 애꿎게 그들의 시간을 뺏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쪽 팔에 흘러 들어가는 링게르의 액을 쳐다보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 그때 음성이 들렸다.
아들아 들어라. 피조물의 정점에선 인간을 제 생명의 기쁨으로 마냥 교만해져 자신을 내 존재와 사랑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잊었다. 인간은 나, 빛을 외면했다. 그리고 인간 세계는 죄의 장막 속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온 우주와 함께 아 가련한 피조물이여 영광의 오메가를 향하던 내 아들들은 어디로 사라졌느냐. 젖먹이를 잃은 어미의 젖이 아프듯이 넘쳐흐르는 내 사랑을 받아 주는 손을 잃어 버렸기에 내 사랑은 괴로웠다.
배신당한 사랑의 아픔을 나는 깨달았다. 그 고통 속에서 나는 결심했다. 나와 피조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 암흑의 두꺼운 장막을 언젠가는 꼭 무너뜨려 버리겠다는 인간은 나를 버렸을지라도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들을 버리지 않겠다. 나는 꿈을 꾸었다. 온 우주가 드디어 내 한없는 사랑의 포용을 받을 만큼 자라나는 내 모습은 나는 한 민족을 선택하여 그것을 하나의 가느다란 선으로 피조물과 인연을 맺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예언자를 보내어 말하게 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사라져 없어지지 않노라고 그래서 실망하지 말라고 그때가 꼭 온다고 보라! 저기 머나먼 지평선에 한줄기 빛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기다렸다. 나의 때를 그리고 아들아 들어 보아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때가 아들을 통하여 아들과 하나 되어 온 우주가 지극히 거룩한 삼위의 무한한 사랑에 감싸일 그때가‥‥‥‥
미카엘 신부가 깬 것은 상당히 시간이 지난 후였다. 밤이었다. 그 의 병실에 수용된 환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대부분 암 계통의 환자였다. 간호사가 가끔씩 그의 병실에 들어와 환자들의 진맥을 보고 나갔다. 이때 그의 곁에 있던 환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누워 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혹시 옛날에 신부님으로 계셨지 않습니까?" 하며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미카엘 신부는 그 말에 자신의 과거를 부인하지 않았다. 구태여 부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저는 한때 신부님의 강론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사랑의 말씀이 주제가 되던 강론은 감명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어째서 사제복을 벗으셨습니까?" 미카엘 신부는 자신을 의혹의 눈초리로 응시하는 그 환자를 직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만, "이젠 신부가 아닙니다. 그저 김 선생으로 불러 주십시오. 김 선생이 아니면 김씨라도 괜찮습니다. 제가 왜 옷을 벗었느냐 하는 말에 대해 답변을 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생략 을 하겠습니다." 하며 말을 돌렸다. 사내가 다시 말했다. "저는 위암 환자입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수술을 두 번이나 했거든요. 그러나 마음은 괜찮아요.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일찍 죽음이란 손님이 찾아왔다 뿐이 지요 아니, 일찍도 아닙니다. 살만큼 살았지요. 그런데 신부님. 그때의 강론 말씀을 제게 다시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