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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이별준비 2
신랑의 집은 바깥대문이 있고 중문이 있고 마지막 안문을 통과해야 마당이 나오고 안채가 나오는 아주 오래된 고가였다.
부엌은 현대식으로 일부 개조되었지만 여전히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엌 벽 사방으로 빙 둘러친 선반에 아주 오래된 옻칠반상飯床이 가득했다. 크고 작은 것 넓은 것 협소한 것, 동그란 것 네모진 것, 높은 것 낮은 것 20여개나 되었다.
사랑채는 두 채였다.
한 채는 한길에서 바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방문이 한길과 접해 있었다. 이 사랑채는 나그네가 쉬어 갈 수 있는 도선산방徒善山房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한꺼번에 20명은 너끈히 들어갈 큰방이었다. 실제로 시아버지의 조부님이 살아 계실 때 많은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한시도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한 채는 안마당 정원과 중문연못에서 양쪽으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랑채였다. 이 사랑채는 개폐식 미닫이를 떼어내면 방이 하나로 합쳐지는 아주 큰방으로 남편의 서재로 사용했던 방이었고, 침실로 사용했던 사랑안방에 삼숙은 신랑과 신접을 차렸다.
거짓말 좀 보태 한 번 둘러보려면 반 낮이나 걸릴 이 집을 삼숙은 혼자서 치웠다. 털어도 치워도 쓸어도 닦아도 끝이 없었다. 삼숙은 불평 없이 거의 달포나 걸려 반들반들하게 집안을 정리했으나 여전히 시어머니가 피우는 향과 어이고어이고 울려대는 스피커염불소리에 하루 종일 죽을 맛이었다.
처음엔 시어머니의 계산된 이런 행동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차츰차츰 시어머니의 악폐에 익숙해져갔다. 익숙해지는 만큼 무관심하려고 삼숙은 애썼다. 삼숙의 판단은 옳았다. 20여일이 지나면서 시어머니의 행동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열 번하던 욕설은 세 번으로, 하루에 세 번 뒤집던 숭늉놋대접이나 밥상은 아예 뒤집지 않았다. 삼숙은 그런 시어머니가 너무 고마웠다. 심신이 편해져서가 아니었다. 시어머니를 변화시키는 하늘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시어머니의 냉담하고 냉소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도 신랑은 마사지 받다 삼숙이 잠들 수 있게 불을 끄고 삼숙의 고단한 하루를 마사지로 풀어주고 있었다. 신랑의 마사지를 받는 순간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였다. 신랑이 불편한 몸을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게 마사지 받는 내내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주는 삼숙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신랑은 가슴에 있는 모든 사랑을 다 쏟았다.
삼숙은 신랑의 마사지를 받고나면 때밀이한테 묵은 때를 벗긴 것처럼 개운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지친 혈액이 신랑의 손끝이 닿는 말초신경에서 정화되는 것 같았다.
신랑의 손끝에서 스르르 눈이 감겨 갈 때 신랑이 속삭이듯 말했다.
“어? 자기야 삼숙씨. 저거 좀 봐요. 목련이 폈나봐요.”
신랑이 가리키는 방문 창호지에 목련 그림자가 두 개 피어 있었다.
쏟아지는 잠을 털고 삼숙이 엎드린 채 말했다.
“정말이네요.”
“저 목련은 자목련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마루 앞에 두 그루의 목련이 있잖아요? 항상 자목련이 먼저 피거든요.”
올해 시집 온 삼숙은 두 그루의 목련을 보긴 했지만 피는 것은 보지 못했다. 신랑이 계속 말했다.
“저는 삼숙씨가 자목련보다 백목련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요?”
“저를 만나기 전엔 자목련처럼 화사했던 삼숙씨가 지금은 너무 힘들잖아요. 제가 슬프게 하는 것 같아요. 백목련만보면 슬퍼지는 것처럼 삼숙씨만 보면 슬퍼집니다.”
“네에?”
삼숙이 화들짝 일어나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고생만 하시는 삼숙씨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아프거든요. 슬픈 영혼이 깃든 흰 목련이 마치 삼숙씨 같습니다. 삼숙씨가 너무 애처롭습니다.”
겨울바람이 잠든 어느 봄날 밤이었다.
달빛을 받아 더 하얀 목련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말했다.
“삼숙아, 저 목련이 왜 밤에만 지고 피는 줄 아니?”
“몰라요.”
“부끄러워서 그렇단다. 부끄러운 걸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그런 거지.”
“꽃이 어떻게 부끄러워해요?”
“세상에서 제일 부끄럼 많이 타는 것은 꽃이고 두 번째는 삼숙이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알고말고. 이 할머니는 모르는 게 없단다. 가만히 기울여보렴. 소곤소곤 거리지? 그게 부끄럼타서 속삭이는 소리야.”
정말 할머니 말처럼 목련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하는지 꼭 알고 싶었다. 그러나 목련꽃이 다 지도록 어린삼숙은 목련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애정이 가득 고인 눈을 신랑과 마주치며 삼숙이 말했다.
“목련이 제게 속삭이네요.”
“네에? 목련이요?”
“삼숙아,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의 제일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알고 있니? 그렇게 속삭이는데요. 귀 기울여 보세요. 아직도 속삭이고 있어요.”
와락. 신랑이 삼숙을 끌어안았다.
삼숙의 입술에 지남철처럼 신랑의 입술이 찰싹 붙었다. 삼숙도 신랑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랜 키스가 끝나고 신랑이 삼숙의 퉁퉁 부은 다리를 만지며 말했다.
“삼숙씨, 알통이 박혔네요? 근육이 뭉쳤나 봐요.”
“아니에요. 알통은요? 섬에서 사는 여자들은 다 이래요.”
그렇게 말하며 삼숙이 웃었다.
“아닙니다. 이건 분명히 이 집에서 고생해서 생긴 겁니다.”
신랑이 어둠속에서 시선을 천정으로 올렸다 아래로 깔았다. 가느다란 한숨이 섞인 말을 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삼숙씨가 당해야 할 고통이 아닌데. 이런 건 정말 아니었는데.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또 나가 살자는 말씀하시려는 거죠?”
“삼숙씨 내일 아침이라도 우리 이 집 떠납시다. 제게 아직도 얼마간의 남은 돈과 증권이 있습니다.”
“그건 안돼요. 부모님은 어쩌라구요?”
“사람 쓰시겠지요. 남들에겐 잘하니까.”
“아무리 편해도 내 손가락만 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모셔야 해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삼숙은 베개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랑이 빤히 쳐다봤다. 걱정되어 물었다.
“왜요? 아팠어요? 화났어요?”
“오늘부터 혼자 주무세요.”
느닷없는 삼숙의 말에 신랑이 기겁했다.
“네에?”
“저요. 오늘부터 당분간 어머니 방에서 잘게요.”
삼숙의 말에 신랑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신랑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저하고 자는 게 싫어졌죠? 귀찮게 해서?”
삼숙은 보채는 아기 다루듯 신랑을 다독였다.
“아니에요. 귀찮긴요? 저렇게 어머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잖아요. 어떻게 하든 어머니 마음 풀어 드려야 그게 자식도리 아니겠습니까?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구요? 돌아가시면 그 후 아무리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있습니까? 백번 슬퍼하고 제사상에 아무리 산해진미 올린들 뭐하겠어요? 살아계실 때 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들여 떠드리고 마음 편케 해드리는 것이 우리 도리입니다. 그러니까요, 마음 돌아서실 때까지 오늘부터 어머니하고 잘게요. 어머니 마음 풀어지시면 하라는 대로 다 할께요. 뭐든지요. 허락하시는 거죠? 그렇죠? 어서요.”
삼숙은 거울 들여다보듯 신랑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허지만 신랑은 내키지 않아 떼쓰는 철부지같이 틀어져 있었다.
“자요, 저 쳐다보세요. 어서요.”
신랑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삼숙을 쳐다봤다.
“우리 어머니 마음 풀어드리고 여름오기 전에 여행가요. 어머니하고요.”
“아버지는?”
아버지를 챙기는 신랑의 표정이 귀엽고 우스웠다.
삼숙은 신랑의 투정에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신랑도 따라 웃었다.
“당연히 함께 가야죠. 어쩌면 이렇게 아기 같으세요?”
“그럼 오늘하룻밤만입니다.”
“제가 무슨 재주로 어머니 마음을 하룻밤 안에 풀어드립니까? 대신 꼭 어머니 마음 풀어 놓고 말께요. 약속할께요. 자요.”
삼숙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신랑이 억지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삼숙은 건넌방 아버지가 깨지 않도록 까치발로 살금살금 안방 앞으로 가서 동정을 살폈다. 시어머니 잠든 숨소리가 푸유 푸유 하고 들렸다. 삼숙은 조심스레 미닫이문을 열고 어머니 옆으로 가서 베개만 달랑 베고 누웠다.
아침이 되자 집안은 난리가 났다.
시어머니의 고함소리에 나뭇가지에 앉아 깍깍거리던 까치가 날아갔다.
“야 이년아! 누가 너하고 잔댔냐? 불여시 같은 년.”
“에이 퉤퉤. 섬 년 때 다 묻었다.”
“네년 속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뻔할 뻔자다, 날 벼락 맞아 죽을 우라질 같은 년아.”
“사람들아! 이년이 내 아들하고 작당해서 나 죽이려고 하요! 나 좀 살려주시오.”
시어머니의 악쓰는 소리는 중천에 해가 오를 때가지 계속됐다. 제풀에 지치지 않았으면 해가 져도 계속됐을 것이다.
삼숙은 시어머니의 갖은 욕지거리가 쏟아져도 묵묵히 조반준비만 했다. 시어머니 상 따로. 시아버지 상 따로. 신랑 밥상 따로.
다음날도 삼숙은 어김없이 시어머니 방에 몰래 들어가 잤다.
아침이 되자 시어머니의 욕지거리가 이장님 스피커처럼 온 마을에 또 왕왕 울려 퍼졌다.
“동네 사람들아! 저 개 같은 년이 나를 말려죽일라 하요. 누구 나 좀 살려주시오”
지쳐, 목소리가 잦아질 때까지 시어머니의 욕지거리는 오늘도 오전 내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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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섬에서 자라난 순박한 처녀 오늘보니가 조선 천지에 없는 효부하나 났네요..
그런 가정 환경에서 시부모님들 과 화해하고 행복한 가정 만들려고
애쓰는 삼숙이 꼭 행복한 청사진의 그마음이 이루어 젔으면 바라는 마음 입니다.
인성이 잘되었으면 누구나 다 심숙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허지만 요즘 ....옛말이죠?
궁궐같은 큰집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산에 운동 가지 안아도 다리주물러 달라 하겠슴니다.
그러다 삼숙이 죽이는게 아닌가요?~~ㅎㅎ
그럴까요? 우리 삼숙이 너무 가여워 절대 못죽일 거 같은데요..저도 부드럽고 연한 남자라서요.....ㅎ
다읽어 내리다가 숨이 막혀 로릅니다. 이것이 여자의 일생 이라면
일수님.마음 답답하죠? 우리가 모르는 곳에 이런 여인들이 많습니다
고운 밤되세요
삼숙이 시집살이 아주 타고 났네요..
신랑집 옛날에 행세께나 하였겠슴니다.
그래서 삼숙이가 넓은집 관리하기에 더욱 힘들것 같슴니다.
빨리 신랑 따라 나서야겠지요..착한 효부 그만 하고요..
그렇게 시키겠습니다...소설 재미 없어지는 건 느티나무 님이 채김지셔야 해요..ㅋㅋㅋ
이러게도 구박 받고 살아가겠다고 하는 삼숙이 마음이 과연 천사표라 아니할수없군요..
잘읽었슴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달빛사랑님 만큼 삼숙의 마음도 어질도 착하니까요
고운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