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산 유격대 구사일생
1.4 후퇴당시 적 치하에서 신음하던 월남인들은 전력 상 후퇴하는 유엔군을 따라
남으로남으로 남하했다.
이북 황해도 구월산에 잠입했던 패잔 인민군 및 일개 연대 공산주의자들은 때를 만난 듯이 날뛰며
남하하는 피난민을 무차별 학살 했다.
피난 군중은, 쫓기며 해안선으로 운집되며 삽시간에 수만명이 되었다.
해안에는 아주 작은 배 몇 척 밖에 없었다.
이 때 노약자 부녀자 어린이는,
군중 속에서 작은 배에 승선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도 더 힘들때,
맨발의 부녀자가 생후 23개월 된 유아를 업고 군중들이 서로 배에 먼저 오르려고 좌왕우왕 밀칠 때
그만 찬 바닷물에 빠지고 말았다.
때는 엄동설한 유달리 추운 날이었는데 물에 빠진 모자는 물에 든 생쥐마냥 홈빡 젖어
뭍에 나오니 꽁꽁 얼어 옷이 빳빳해져 거동을 못하며 유아는 새파랗게 되어 있었다.
이 때, 청년대장이 쫓아와 아비규환이 된 이 난국을 공포를 쏘며 진정시키고,
“질서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부 인민 패잔병에게 붙잡히니 질서를 유지 해 달라” 하니
군중은 주춤했다.
청년대장의 지명을 받은 젊은이들이 정돈 시키고 일렬로 승선케 하는 한편,
당시 해안경비 임무를 띄고 파견된 해군 004함정 반문하여
피난대열을 수습 의뢰하여 함장인 X 대위는 즉각 무전을 타전하고 함포로 인민군 진지에
맹사격을 가하여 주었다.
그리고 오후 2시경 00호 LST 1척이 당도하여 승선케 하고 청년들은 전렬을 가다듬고
적과 대전하여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날이 어둡도록 그 많은 피난민(약 7개 면,민이었음)이
무사히 LST로 혹은 인근 도서로 피난하게 되었었다.
이때 청년대장의 지기와 해군함정이 파견 되어 있지 않았다면 불과 수십명의 피난민이
인근 도서에 피난하고 그 나머지 수십 만명은 학살, 참살 당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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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버님 고향은 황해도 송하 이십니다.
6.25 당시 직접 겪은 상황을 쓰신 것을 얼마 전에야 읽어 보았고,
컴퓨터에 입력하였었지요..
또 한 편이 더 있는데,
이것을 왜 돌아가신지 십수년이 된 후에 읽어 보았는지...
아버님께 죄스러울 따름이네요..ㅠㅠ
첫댓글 6.25는 민족상잔의 비극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늘 긴장해야합니다. 한반도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상태임을 국민들은 직시해야합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이란 경험해 보지않은 사람은 전쟁 얘기를 하지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승리자는 전쟁영웅 자라합니다 나라를 지키기위하여 몸바친 선배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토록 최선을 다함은 도리라 생각합니다^&^...............
저렇게고통스럽게이나라를지키신 용사님들은천대받고 친북매국노들은 권세를쥐고미쳐날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