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일보 - [문예공론] 나를 돌보는 시간을 찾아서 - https://m.joongdo.co.kr/view.php?key=20231115010004029#c2b
나를 돌보는 시간을 찾아서
11월 중순이 되자 추워졌다. 입동도 지나고, 겨울이다. 그런데 내 주변, 문우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있다. 여름내 준비했던 문학 작품을 각종 공모전에 응모할 수 있어서 일 것이다. 특히 작가 지망생 신인한테 주어지는 신춘문예공모는 가장 핫한 이슈이기도 하다.
책상 위에 있는 탁상 달력을 들었다. 2023년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칸마다 형광펜, 매직펜, 볼펜 등으로 표시해 놓아서 온통 울긋불긋하다. 올해는 유난히 나를 위한 여행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살면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는가에 따라 자신의 생활도 변화되는 것을 느낀 한 해이기도 했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가 취미생활도 있겠지만, 그 또한 혼자서 하다 보면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사람과 만남이 없는 것은 무엇이든 무료해지는 것은 뻔한 현상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더불어 같이 할 수 있는 연인, 혹은 친구가 있다면 안성맞춤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文友 하미숙 이사장님(희망찾기 사회적협동조합 인문사업부)을 만난 건 나에게 행운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허허롭던 생활에 많은 부분 동기 부여가 되어 삶의 질(quality)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 기행>, <숲 속의 오감여행>, 글쓰기, 그림책읽기 <북포럼>, 여행지 길 위의 인문학 <나를 돌보는 인문학> 등으로 마음을 정화하는 데는 더 이상 핫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매번 감탄하고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지난 3월, 희망찾기 사회적협동조합 인문사업부 문학기행은 벚꽃이 핀 섬진강을 따라 광양 매천 황현 생가로 갔다. 마을 담벼락에는 동백꽃이 붉게 피었다. 문화 해설사는 상세히 이야기를 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은 2,500여 수의 시를 남긴 시인이자 역사가이다.
황현 선생은 경술국치에 지식인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절명 시와 유자제서를 남기고 자결한 애국지사라고 한다. 매천 황현 선생의 저술을 보지 않고는 우리의 근대사를 연구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날은 온종일 봄을 재촉하는 비가 왔다.
5월 문학기행은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자 작품의 배경 공간이 된 춘천 ‘실레마을’로 갔다. 김유정은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년간의 작품활동으로 30편 내외의 단편소설이 있다. 김유정의 체험적 소재를 중심으로 <봄봄>, <동백꽃> 등은 작가적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실레마을’은 김유정 이야기집,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기념전시관, 김유정역 등 여러 가지 부속건물 들이 조성되어 있다. 금병산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작품의 무대이고, 도란도란 열여섯 마당 실레마을 이야기 길로 구성되어 농로와 논둑길을 따라 소설의 배경지를 찾는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 문화 해설사가 구수한 현지 사투리로 소설 이야기를 해주는데 마치 그 시대에 와있는 듯, 때로는 가슴 졸이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잊혀지지 않는다.
<숲속의 오감여행>으로는 전국수목원과 꽃축제를 다니는데 그날 함양 상림 숲은 꽃무릇이 만개해서 더없이 아름다웠다. 다니다보니 꽃의 만개 시기를 맞추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함양 화림동 계곡에서는, 거연정에서 출발해 동호정까지 숲속 둘레길을 걸었다. 대전과 거리가 멀지않고 4계절 꽃이 피는 상림 숲과 문화재,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남계서원과 한옥마을이 있는 지리산 함양은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태안 청산수목원, 태안 팜카멜레 허브농원, 담양 소쇄원&죽녹원 탐방, 괴산 산막이옛길&독서왕 김득신문학관탐방, 산청 수선사&동의보감촌 둘레길 탐방, 칠곡 가산수피아, 대아수목원, 국립칠곡숲체원, 화담숲 수국이야기, 제이드가든 수목원 등 숲길을 걸으며 메말라가는 내 생활에 활기를 주었다.
칠곡 가산수피아에서의 황톳길 걷기는 아직도 발바닥에 찰진 여운이 남아있다. 불볕이 내리쬐던 한여름, 푸른 숲속 황톳길을 걷던 그 느낌이 아직도 발 바닥에 느껴진다. 먼 길은 여러 여건상 혼자는 어렵다, 같이 갔기에 가능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면 ‘같이’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즐겁게 잘 다녀왔던 것 같다. 또 가고 싶으니까.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여행지 길 위의 인문학 사업 수행으로 <나를 돌보는 인문학> 프로그램은 경북 칠곡으로 갔다. 문화해설사와 함께 (구) 왜관성당,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을 견학했다. “찾는 자는 발견 할 것이다”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처럼 <나를 돌보는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찾아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왜관 구상문학관에서 구상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통한 평화의 의미는 자신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시간인 것 같았다. 낙동강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서재 앞에서 나도 낙동강을 바라보았다. 담 너머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다시 꼭 찾아갈 것을 약속이나 하듯이 말이다.
시비에 적힌 구상의 시 “그리스도폴의 강” 3연을 되뇌어 본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 옛 강과 옛 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계절병처럼 찾아오던 쓸쓸한 증후가 보이지 않는다면 나의 여정은 성공한 셈이다. 사실 만사를 제치고 허겁지겁 따라다니면서 동행한테 불편하게도 했다. 그런데도 늘 반갑게 맞아줘서 더욱 뜻깊은 여정이었던 것 같다. 2024년은 뭔지 모르게 기대되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