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과 라임의 몸바뀜에 관한 님의 설명에는 저도 동의해요.
작가는 분명 둘이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로 그런 설정을 했을 겁니다.
실제로 주원은 라임에게 여러 차례 '왜 넌 내 입장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냐'는 투정을 자주 부렸죠.
하지만 작가의 아이디어가 그렇다는 것과 그 아이디어가 작품 속에서 적절하게 드러났느냐의 문제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몸바뀜을 통해서 둘 사이의 이해가 높아지게 하려면,
몸을 바꾼 주원과 라임이 서로의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피상적으로만 보아왔던 상대의 상황을 직접 겪어보며 성찰을 얻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 그 과정이 그려져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렇지 못했어요.
몸바뀜으로 인해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 위주의 에피소드로 채워졌죠.
그렇다보니 라임이 주원의, 주원이 라임의 어떤 면을 몰랐었는데, 어떤 면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같은 캐릭터의 성숙이 별로 보이지 않아요.
성추행 VIP 사건이라던지, 주원의 몸으로 들어간 라임이 결제하는 거라던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분명 잘 가공하면 서로의 이해를 높일만한 소재들인데, 그렇게까지 나가지 못했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는 몸바뀜과 같이 충격적인 설정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굳이 제목을 '시크릿가든'이라 짓고 몸바뀜이라는 설정을 썼을 때는,
그 설정이 꼭 필요했다는 납득할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영화 매트릭스나 인셉션이나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설정이지만, 그것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작품 내에서 그 세계관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거잖아요.
근데 이 드라마는 그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포기해 버렸다는 게 문제죠.
그리고 전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인기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전형'이 '전형'인 이유는 그것이 재미와 감동을 주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이죠.
수많은 캔디류, 신데렐라류가 반복되는 이유는 그 전형이 훌륭한 완성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식상해도 재미있어요.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전형을 깨려고 시도했죠.
이전글에도 썼지만, 첫회의 길라임 캐릭터나 부유층의 속물적 모습과 같은 것들 말이죠. 저는 그것들에 상당히 기대했었는데...
회가 거듭하면서 그런 시도들은 사라졌고, 그렇다고 해서 '전형'을 따라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돼버린 게 문제예요.
식상한 전형만큼 재밌지도 않고, 또 참신하지도 않았다는 거죠.
(이런 정도의 비판이 실례라면 씨네21은 폐간해야겠네요.)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하죠. '나는 재밌던데.'
네, 인정합니다. 지금 상태로도 재밌을 수 있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바꿨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를 얘기하는 겁니다.
구리기로 따지자면 훨씬 구린 작품들 많아요.
그런데도 제가 굳이 이 작품에 딴지를 거는 이유는 그만큼 초반에 보여줬던 가능성이 아깝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딴지를 거는 또 다른 이유. 마지막회 35%라는 시청률처럼 이 드라마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는 점이에요.
참 이상하게도 문제점이 많은 드라마인데 인기가 많다는 거죠.
일단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폄하하는 것이,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의 취향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네요.
(그런 면에서 진중권에 대한 정진영의 발언은 분명 잘못된 거구요. 정진영 말대로 하자면 역시 씨네21은 폐간해야해요.)
저 역시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구린 예술작품을 좋아하기도 하구요.
바로 그 점, 학벌도 집안도 외모도 안되는 길라임에게 현빈이 끌렸던 것같은 어메이징한 일이,
취향의 세계에서는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거죠.
심형래의 작품을 둘러싼 논쟁에서처럼 말이에요.
적어도 한 평론가가 나는 이러이러한 면에서 이 작품이 이렇다고 생각해라고 논의에 불을 지폈으면,
그에 대한 답변은 나는 재밌었다, 취향은 서로 다르다 식에서 멈추는 공허한 상대주의가 되어서는 안되죠.
나는 '왜' 재미있었는지, 내 취향은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한 성실한 답변만이 취향의 상대성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잖아요.
그저 남들도 재밌다더라 식의 관객이 천만이나 들었는데... 논변으로 나가면 오히려 취향의 상대성이 아니라, 취향의 다수결주의가 돼버리는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왜' 그것이 인기를 얻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반복가능성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재밌다. 그것도 작가의 능력이다. 는 식이면 우리는 시크릿가든의 성공을 재현할 수 없잖아요.
왜 이것이 인기가 있는지, 왜 재미가 있는지에 대해 밝혀진다면, 제2, 제3의 시크릿가든이 나올 수도 있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전형을 이뤄서, 캔디류, 신데렐라류처럼 '시크릿가든류'라는 말이 생기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