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시 퇴근 문화, 최대 120일 유급병가, 2년간 이전 급여의 90% 실업급여 제공 등 근로자 우선 근무여건 법으로 보장 -
- 정부-국민 간 신뢰 바탕으로 제도 오남용 최소화 노력 -
이정선 KOTRA 코펜하겐 무역관 차장
옥스포드 올해의 단어에 선정된 덴마크어 'Hygge(휘게)'는 향초를 켠 집안에서의 안락하고 편안한 쉼이 있는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덴마크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휘게'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 안에서 충분히 쉬면서 여유와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여유'와 '쉼'은 덴마크 특유의 노무제도와 근로문화 덕분에 가능했다. 휘게의 선결조건인 덴마크식 노무제도와 근로문화를 살펴보자 .
1. 정시퇴근 보장
덴마크 법정 근로시간은 37시간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유연근무제를 채택하고 있어 획일적으로 근무시간을 규정하긴 어렵지만, 보통 8시 30분에 업무가 시작하면 4시 전후로 업무가 끝난다. 점심시간은 보통 30분에 불과해 간단한 샌드위치를 집에서 가지고 와서 책상에서 일하면서 먹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집 시간이 보통 4시나 4시 반에 끝나기 때문에 이 시간에 맞춰서 애를 픽업해야 하는 관계로 대부분 정시퇴근(칼퇴근)이 이뤄진다. 애가 없더라도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휘게'를 위해서 칼퇴근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조금이라도 초과근무를 하면 당연히 초과근무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도 철저하다. 초과근무수당은 자신이 속한 조합마다 다르긴 하나, 첫 3시간은 150%를 지급하고 그 이후는 200%를 지급한다. 일요일이나 공휴일 근무 시에는 200%를 지급해야 한다. 회사 차원에서도 초과근무는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칼퇴근을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다.
2. 아프면 연간 최대 120일까지 유급병가 가능
아프면 나을 때까지 쉬어야 한다.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쉬고 회사에 복귀한다. 감기, 스트레스, 운동 중 부상… 무엇이든지 원인을 불문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상태가 아니다 싶으면 회사에 전화나 메일 한 통으로 결근을 통보한다. 언제까지 나오겠다는 기약은 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는 어디가 아픈지 물어볼 수 없다(법으로 금지). 4일 정도 지난 후에 진단서를 청구하고(물론 진단서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 대체인력 투입을 위해 언제 나올 계획인지 물어볼 수는 있지만,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나을 때까지 쉴 수 있다. 최대 120일을 쉴 수 있고, 이 기간에 월급은 그대로 지급된다.
하지만 병가로 인한 회사(고용주) 차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병가 30일이 지나면 해당직원 급여의 일정 부분을 지방정부(Kommune)에서 보전해준다. 지방정부는 아울러 해당직원의 직장복귀를 돕기 위해서 지속적인 '독려' 작업을 진행한다.
3. 아이가 아픈 첫날은 쉴 수 있다
아이가 아픈 첫날은 급하게 돌보미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가 쉴 수 있다. 부모는 쉬면서 아이가 장기적으로 아플 것에 대비해 돌보미를 찾아봐야 한다. 어느 회사를 다니냐에 따라(노사합의가 있는지에 따라) 유급인지 무급인지 여부가 결정된다.
4. 휴가는 최소 3주 연달아 갈 수 있다.
덴마크 근로자들은 법적으로 최소 5주 휴가를 보장받는데, 보통의 회사들은 복지 차원에서 6~7주를 허용한다. 회사에 별다른 바쁜 일이 없으면, 회사와 합의 하에 3주 이상 장기 휴가가 가능하다(5월 1일~9월 30일 기간 중에만 가능). 보통은 여름 휴가로 7~8월 중 3~4주 휴가를 간다(사실상 이 기간 동안에는 개점 휴무 상태라 봐도 좋다). 직원들은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회사 차원에서도 직원들이 바쁠 때 휴가를 가는 것보다 남들 다 쉬는 여름에 장기 휴가를 가는 게 업무 부담이 적기 때문에 이를 적극 장려한다. 아울러 징검다리 휴일이나 연말에는 회사차원에서 문을 닫고 강제적으로 직원들을 쉬게 하는 경우도 많다.
5. 육아휴직 중에는 보통 급여의 100% 지급 받는 경우가 많아
덴마크에서는 육아휴직으로 허용된 총 52주 중 여성은 산전 휴가 4주 + 산후 14주를 합해 총 18주를 사용할 수 있다. 남성은 이 중 2주가 배정되며, 나머지 32주는 남녀 간에 자율적으로 나눠서 사용이 가능하다(추가로 최대 14주 연장 가능). 육아휴직 기간 중에는 많은 회사에서 노사합의(collective bargain)에 따라, 기존 월급의 100% 지급이 이뤄진다.
참고로, 노사합의가 없으면 산전·산후 18주 기간에는 회사에서 50% 급여를 지급하고, 나머지 육아휴직 기간에는 지방정부에서는 최대 주당 78만 원(4245덴마크 크로네, 기존 급여에 따라 차등 지급)을 지급한다.
6. 실업급여… 2년간 이전 급여의 90%까지 최대 340만 원 지급
실업에 대비해 일종의 국가보험(Unemployment Insurance Fund)에 분기별로 약 23만 원(1250덴마크 크로네)씩 납부했을 경우 실업(해고나 계약 만료에 따른 실업상태) 이후 2년간 이전 직장에서 받았던 월급의 90%, 최대 34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물론 이 중 약 40%는 세금을 내야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일 경우 최대 278만 원(1만5090덴마크 크로네)까지 받을 수 있다. 자발적으로 퇴직했을 경우에는 5주간 실업급여 수령이 금지되나 이후부터는 수령이 가능하다.
다만,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 동안 반드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일례로 주 단위로 최소 2개 이상의 회사에 이력서 등을 제출했다는 증명서를 보여줘야 한다.
7. 비정규직에 대한 대우가 사실상 정규직과 동일
덴마크에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처우에 있어서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굳이 따져보자면, 비정규직은 계약만료로 자동으로 고용관계가 청산되지만, 정규직의 경우에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 뿐이다(아울러 근무기간에 따른 의무 사전통보기간을 지켜야 한다). 덴마크는 다른 서유럽에 비해 해고가 비교적 자유롭고 합당한 근거로서 '매출 부진에 따른 구조조정'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에 정규직은 사실상 기한없는 '비정규직'과 동일하다는 의식이 보편화돼 있다(얼마 전, 레고에서 매출 부진으로 140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전격발표한 것도 구조조정을 통한 해고로 볼 수 있다).
비정규직도 앞서 언급한 연간 최대 120일 병가 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울러 회사는 비정규직의 구직활동을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 근무시간 중 인터뷰가 잡혔을 경우, 이를 허용해줘야 한다(월급도 그대로 지급해야 한다). 아울러 회사는 근무기간 동안 지급한 총 급여의 12.5%를 휴가비로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계약 만료일 이후 3일 동안 하루 약 16만 원(849덴마크 크로네)씩을 지급해야 한다(토, 일이 끼었을 경우에는 이를 제외하고 지급한다).
시사점
이렇게 부러운 사회보장제도의 기저에는 정부와 국민 간 '신뢰'가 깔려 있다. 정직과 신의의 원칙에 따라 이러한 좋은 제도를 서로가 오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병가를 연 최대 120일까지 쉴 수 있지만, 연중 실제로 병가를 내는 날은 약 7~8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애가 아파서 쉬는 날도 연평균 0.5일에 불과하다(덴마크 통계청, 2015).
또한 근무시간은 절대적으로 한국보다 짧지만, 덴마크 직장인들은 근무시간 중에는 정말 집중적으로 일을 한다. 점심시간까지 쪼개서일해야 주어진 업무를 다 마칠 수 있기 때문에 이메일이나 전화통화가 잘 안 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본인의 스케줄에 맞춰 한참 뒤에 상대방에게 연락을 준다.
아울러 모든 일을 아주 일찍부터 미리미리 계획한다. 어느 전시회를 갈지 누구를 만날지 전년도 연말에, 혹은 적어도 몇 달 전에 미리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급작스레 미팅을 주선하려 한다면 십중팔구 거절당한다. 여러 번 연락을 취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다시 말해 될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바쁜데 누군가가 자기를 조여온다고 생각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즈니스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덴마크 바이어들에게 접근한다면, 좀 더 부드러운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원: The Employers & Employees Act, Holiday law, 덴마크 통계청, 지방정부 구직센터 관계자 인터뷰, 노무전문가 자문, KOTRA 코펜하겐 무역관 보유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