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곧 최상인 그 동안의 생활이
이제는 뭔가 참여의 행사가
척박한 세상을 타파할 수 있다고
믿어볼까요?
솔직히 이 많은 글을
다 읽지는 않았네요~~~~~~~~~
주마간산 식으로 보았지만
결론은 누가 말했죠
양심대로 행동하라!
그냥 뒤를 한번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내용이 넘 많으니 좀은 눈이 짧아서리
ㅍㅎㅎㅎㅎㅎ
잘 보았네요!!!!!!!!!!
--------------------- [원본 메세지] ---------------------
노사모와 왕재수없는 전라북도
예전에는 좃선일보 보다는 똥아일보를 더욱 싫어했지만
이 사설을 읽구나서 앞으로 변함없이 쭝앙일보를 제일 재수없다고
여길 것이 틀림없다
이 삼성중앙일보라는 신문이 왕재수없는 전라북도의 인촌김성수보다는
덜 싸가지없다 하더라도
하여간 놈의 맷집과 돈뿌리는 권력으로 볼때
자전거 수십대씩 뿌리고도 한부수만 확장해도 만족할 새끼들이다
놈들이 양말산업 아니 반도체산업까지 말어쳐먹지 않기를
머 망하고 싶으면 망하든지 니맘대로 하구
하여간에 내가 제일 한국땅에서 재수없어하는 재벌은
그 전라북도의 고창땅에 생가를 둔 인촌 김성수의 족벌신문
똥아일보이다 이제 오늘부터는 순위를 바꾸어 줄란다
쭝앙삼성일보로
어머니께 다녀왔다
전철역에서 손벌리고 엎드린 거지에게 2000원 주었다
내가 근무하면서 매양 보는 여의도에서
돈푼이나 빌붙어쳐먹는다고 고개마저 뻣뻣한 직장인새끼들은
캔커피 아니 그 미국체인커피 삼천원짜리를 벌컥들이키며
자유(?)를 즐기듯이 나는 거지에게 2000원씩 주면서 자유를
즐긴다
아무런 댓가없이 행동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볼일보고 돌아올적에는 손벌린 거지가 세명으로
늘었는데도
우습고 한명에게만 1100원 주었다
인생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최선인지 모른다
하지만 난 어릴적 읽었던 "원탁의 기사"들처럼
용렬하지 않기를 바라며 도전과 시도 즉 한국땅에서 부질없고
패배로 귀결되는 가치들을 추구해 왔었다
젊은 시절엔 허영심으로 며칠을 노가다해서 그돈을 아동기금
유니세프에 송금한 적도 있었다
난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어떠한 인간과 관계를 맺더라도 내가 그로부터 내가 주는 것보다
더한 이익을 취하리라곤 생각지도 않는다
실제도 그렇고 난 그런 기분으로 살아간다
사소한것에 목숨걸지 않는다
그래도 너무 많이 쓰는 건 분명해
난 운명론을 믿는다
하는짓이 싸가지없고 애비에미가 심성이 삐두른 새끼들은
그 귀여운 김영삼씨가 물러난 쪽바리 왕앞잡이 박정희의 큰 텃밭인
영남패권을 그쪽바리새끼의 정통 충견인 인간백정질로 그지역놈들로부터
국회의원금뱃지로 보은받은 전두환 노태우의 5공세력이
이회창과 운명을 함께하리란 것에 감격하여 그 대부인 삼성쭝앙일보와
좃선 똥아와 도원결의맺어
추상같이 김대중일당을 문초할적에
환호했다
알어 알어 말 안해도 놈들을 내가 질색하는 바퀴벌레들처럼
자세히 관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낼수 있었다
놈들이 자유롭게 (일부지만 히히)쳐먹는 벅스커피처럼
놈들은 그 아름다운 젊은 시절 청춘일 적에도
아무것도 고뇌해 본적이 없다
그리고 아주 분명한 내가 잘 아는 놈들의 큰 특징이 있는데
바로 비굴하다는 것이다
불쌍한 최규선이 녀석처럼
강한놈의 모든 언동과 주장과 신문권력에 대해 비굴하고
자신보다 계급(?)이 낮다고 여겨지만 거만함에 내가 저새끼 목이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모든 정치인은 항상 좃선 중앙 동아가 첩보를 입수해서 멍멍거리기만
하면 그 정치생명이 끝난다
이부영이가 그 시점에서 몇억을 썻다고켓더라
이부영 이회창 노무현 이인제 정동영 이 모든 정치인이라는
일부사람이 섞인 것들을 명명백백히 들여다 보면 모다
그 많은 자금을 어데서 끌어다 썼는지 범죄자들이다
눈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하긴 홍업인가와는 약간틀리지 홍업인가 그치는 정치활동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일당동원해서 치르는 정치일정이 죄가 아니라고 삽질하네
노무현씨가 이점에서 옳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하여도 선거공영제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치않다면
그돈은 악덕고리사채업자인 그 큰 권력을 지닌 족벌재벌들의 꼬붕들에게
왕고리채로 빌어다 쓰고
그 댓가로 이상한 국민이라는새끼들이 택한 분배보다 성장을
가져다 바쳐야 할 것이다
놈들의 자유도 더욱 신장되겠지
왜냐하면 족벌이 그들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알어 알어 맞구말구
노무현씨는 간이 부은 환자다
그 김대중씨의 아들은 현철이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국정에 전화로 간단없이 비뇨기과 의사집에서 민영방송말인데
하던 경우와는 질이 다르다
분명 너희새끼들보다 내가 더 분개한다
내가 역겨워할 정도면 놈들은 입버릇처럼 패죽이고 싶겠지
정말 역겨운 놈들은 그치들이다 광주살륙때 조중동을 탐독하며
빨갱이새끼들을 모다 쳐죽여버려야 할텐데 하고
국사를 걱정한일이 엊그제 처럼 눈에 선한데
내가 보는 시각은 이렇다
물론 난 노무현씨를 찍을 것이다
이인제가 민주당의 후보로 나서게 된다면
일찌기 이회창을 찍겠다고 쓴적이 오래전이다
놈들의 대갈통과 내머리는 다르다
연산하는 속도와 성능과 결과 모두 다르다
8비트애플컴보다도 인간의 삶의 질을 해치는 것들
서울시장투표에 이문옥씨를 찍고 대선때
노무현씨를 찍겠다고 했었는데
에 오늘 매제녀석을 만나 저녁을 먹고 집에와서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시장도 김민석이로 찍어야겠다
마르틴루터가 가난뱅이들을 역겨워했듯이 난 정말 놈들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들의 목과 등어리에 굴레를 채워줄 강한 주인님을 원한다
놈들은 빵을 키워야한다는 좃선일보의 설문에 기꺼이 원하는 답을
내어준다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다고
삽질하네
그 일가족을 위해 국부를 모아 쥐어주자고
좋은 일이 있을것이라고
무식한 새끼들
자유라는 단어에 똥칠하는 새끼들
난 노무현씨가 당선이 되든 안되든 별로 관심을 두고싶지 않다
그가 떨어지면 내가 까페운영자인 박통시러님에게 그가 당선될경우
그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65만원짜리 코닥DX3600디지탈카메라를
주지않아도 될터이다
그리구 나도 이제 정신좀 차려야 할것이다
내 마음이 결국 그들처럼 돌처럼 딱딱하고 건조하게 살아가게 되겠지만
나는 그래도 그동안의 내 인생이 무가치했다고 생각진 않는다
결과는 같지만 그래도 크게 다르다
난 패권주의적인 마치 한국인이 개를 패 잡아먹드시 이웃나라민족들을
간단없이 죄까지 덮어씌워 쳐죽여대는 미국놈들의 역사를 보고
놈들을 똑같이 심판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년의 새하얀 목덜미에 가장 어울리는 목걸이를 즉 가난을
안겨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경제가 피폐해져야한다
엘빈토플러가 사회가 자유를 관용하는 폭에 따라
그 사회의 경제발전의 속도가 결정된다고 했다 놈들에게 노태우
전두환같은 사람백정을 지도자로 안겨준다
물론 기만과 CIA같은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를 외치거나 마음에 떠올리기만 해도 철저히 탄압하게
사주해주어야 한다
놈들이 이웃나라들에 그랬듯이
근데 그건 그냥 하는 이야기고
사실은 난 한국땅에서 네놈들이 그런 모욕을 당할수록
열광하고 즐거워 하리란 것을 잘 안다
나도 네놈들의 행복을 진정 바란다(?) 굿 - 럭 !!!1
김홍업인가 귀국한그치 마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에서
어부리 더부리 부역한죄를 묻는 와중에 그 사람좋은 부인을 사랑했던
그 치를 놀려주다가 패죽이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난 왠지 그 장면이 몹시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꼭 그가 소설의 비운의 그 작자같은 생각이 든다
한국땅에선 그 죄에 대한 아니 사실은 그 이상한감정때문에 (?)
곡괭이로 처음 패죽이기 시작한 놈들이
바로 좃선 중앙 똥아 놈들 사주일가족이란 말이지
그의 죄는 분명한데 괴이하게도 노무현씨 그 희망마저
간단하게 쳐죽어버렸어
하긴 그래도 좋다 놈들이 홍업이는 죄있고
노무현씨의 피를 고 싸가지없는 손에 묻힐 자격이 있는지는
심히 가소로울 뿐이다
그리고 그 왕재수없는 전라북도말고 두번째 즉 영남지역새끼들
게거품물지말그래이 그는 많이 찔려 이제 뒈질거야
네놈들이 그럴 자격이 있는줄아는가
변절자 기회주의자 쪽바리앞잡이 새끼를 존경한다는 놈들이
아무것도 청산하지 못한 놈들이 더우기
인간백정들에게 아무리 조중동의 사주일가족이 사주했기로서니
국회의원금뱃지로 살륙행위를 추인하는 것은 서극의 도 에 나오는
그비적두목보다 저질이 놈들이라
암튼 이제는 아무것도 변하지 말그래이 끝가지 가자
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새끼들이 제일 싫으니까 화이팅
우리에게 친일파가 문제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족반역에 대한 심판을 면탈하고 사죄를 외면한 파렴치성과 그로 인한 사회 도의의 오염이다. 그에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일제 패망 이후 계속해서 지배층으로 군림하며 통일 반대와 민주 반역의 주역이 되어왔다는 점이다. 친일파가 해방후 이루어 놓은 정치는 깡패와의 동반자 구조였다. 깡패들은 그들 정치의 근위부대이자 행동부대였다. 이승만 정권 몰락 당시 여당인 자유당의 감찰부는 이정재·유지광·임화수 등 정치깡패가 그 주역이었다. 박정희는 쿠데타 후 `깡패 소탕'이란 조처로 인심을 사려고 이정재 등 깡패들을 거리로 끌고 다니고 교수형에도 처했다. 그러나 그도 깡패를 비롯한 각종 마피아와 손잡았다. 특히 그의 깡패와의 연계는 국제적이어서 일본의 우익 깡패두목인 전범 고다마 요시오의 지원을 받고 마침내 그에게 국교수교 공로훈장까지 주었다.
한국정치에서 마피아의 구실이 큰 비중을 차지해 온 것은 국민의 지지기반이 없는 자들이 민심 조작, 표 몰이, 대중동원에 깡패를 비롯한 마피아가 요긴했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그의 정치깡패 `백골단'과 `땃벌떼'는 1952년 정치파동에서 국제적으로 악명을 드날렸다. 박정희와 마피아 집단과의 관계는 그 자신이 칼든 무법자였으므로 더욱 교묘하다. 박정희는 이승만처럼 나랏님이나 `국부'로 행세할 수 없게 되자, 한술 더 떠서 자기를 `메시아'로 떠받들게 하는 대중조작을 했다. 1968년 영구집권의 발판으로 삼선개헌을 합리화하는 공작에 그는 `역술인'이란 직업을 가진 무당, 점쟁이, 관상가 등을 대대적으로 조직·동원했다. 그들은 전국 조직망을 거미줄처럼 얽어 박정희가 `정도령'이고 민중대망의 `진인'이며 `미륵불'의 현신이고 도래한 `메시아'라고 떠들어댔다. 그것이 어느 정도 뜸을 들였다고 보자, 당시 공화당 의장인 친일파 윤치영은 광주에서 “반만년 만에 나타난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만이 난국을 타개한다고 개헌선동에 나섰다. 이런 대중조작과 대중동원에는 정치깡패 등 마피아의 협조가 필수불가결했다.
그간에 치러온 각종 선거를 돌아보자. 선거판에서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금지시켜도 죽기를 무릅쓰고 해대는 일이 있다. 그것은 먼저 금권선거이고, 다음엔 정책대결을 제껴 둔 채 이루어지는 패거리 동원, 각종 음해, 중상모략, 여론조작이다. 여기서는 역술적인 유언비어가 단연 우세한 위력을 발휘한다. 풍수설과 각종 예언을 비롯해 최근에는 `왕손 씨족의 집권 당위설'이 이승만시대의 `이승만 왕손 후계설'처럼 등장했다. 상대방을 용공, 좌경, 빨갱이로 몰아치는 메카시즘 수법도 단골메뉴로 준비되어 있다. 정상적인 시민사회의 정치게임의 룰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정글의 이득은 우선 목소리 크고 터무니없는 비방으로 몰아붙이는 마피아의 몫이다.
독일 시인 엘젠츠벨거는 <정치와 범죄>란 책에서 정치 자체가 범죄로부터 비롯된다고 봤다. 하긴 우리 정치인의 돈거래의 일부라도 보면 그 `대가성'이 있냐, 없냐 해서 범죄와 백지 한장 사이를 넘나드는 곡예를 벌이고 있다. 정치에 정의가 없으면 정치집단이 아무리 합법을 가장해도 마피아와 동류가 된다. 일찍이 중세 서양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라에 정의가 없으면 도적의 집단”이라 했다. 우리는 쿠데타를 한 `군사 마피아'에게서 신물이 나도록 지겹게 그런 꼬락서니를 봐왔다. 그런데 군사 마피아만이 정의를 결여한 것은 아니다. 부패기득권 부류를 대변해 오며 독재의 주구 노릇으로 살아온 파렴치한이 아직도 사회 각계에 건재함을 본다. 한국 정치가 마피아 정치를 탈피하려면 군사독재자가 상투적으로 써먹어 오는 대중조작과 대중동원의 수법이 올 해의 선거에서 다시 되풀이되지 못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박통에 대한 논란을 보면, 경제발전에 대한 이야기로 박통에게 면죄부를 주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아직 역사적인 정립이 되지 않은 부분인터라 이런식으로 자신의 생각만 몇자 올립니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우리경제는 미국 그외 서방세력들의 이해 관계에 얽힌 일방적인 계산되어진 원조라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노동 착취가 그 저변에 깔려 있음은 말 할것도 없겠고,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 부실한 경제구조의 책임을 박통에게 돌리려 한다면, 이승만 정권을 들먹이실 겁니까?
이승만의 치하에서 군부세력(주로 일재 군부출신들..)은 공공연한 군수품 암거래로 이승만에게 그리고 자기들에게 부유함을 가져다 주게 되었고, 당연히 사회로 돌아가야 할 부분들이 재벌육성 사리사욕으로 채워져~ 시작부터 부실한 경제구조를 부추겼습니다. 그 사이에서 득을 본 세력들이 부정과 부패로 대표되어지는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권 재계에 뿌리밖은 기득권 층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은 퍼온글입니다. 이해를 돕고자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겠지만, 다시 한번 올려 봅니다.
(다음)
한양의 유명한 건달이었던 홍윤성은 수양대군의 정권탈취에 가담해 공신책봉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정치 깡패입니다. 정권 탈취에 자신의 똘마니들을 동원한 조폭의 보스였던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부터 군사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치 깡패들이 활개를 쳤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모래 시계>에서 잘 나오죠. 요즘의 '조폭 신드롬'의 시작은 아마 이 드라마에서 조폭들이 너무 멋있게 미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흥행에 성공한 조폭 영화들도 멋있고 재미있고 인간적인 조폭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원인이 드라마와 영화에만 있을까요?
도올 김용옥은 '굼발이와 칼재비'란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이 칼럼에 인용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란 일본학자는 무사, 다른 말로 야쿠자, 깡패와 군인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군인은 타율 무장집단이고 '칼재비'는 자율 무장집단이다. '칼재비'를 지배하는 건 주종(主從)관계다.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다. 굼발이(군인)를 지배하는 건 군신(君臣)관계다." 마루야마에 따르면 명치유신의 가장 부정적 유산은 일본 군인정신의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칼재비'정신을 군인정신으로 대체 시킨 결과로 그 다음 세대(소화시대)에 대두된 일본 군국주의가 그 열매라는 게 마루야마의 지론입니다. 도올은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군사독재정권의 뿌리는 바로 타락한 일본 군인정신이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결국 군사정권은 일본의 타락한 군인정신을 우리 사회에 이식시켰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칼재비' 야쿠자 문화도 함께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힘에 대한 열광인 '조폭 신드롬'의 출발은 군사 정권의 시작과 같이 하고 있으며, 군사 정권을 출발시킨 장본인인 박정희는 일제의 충직한 황군 장교로서 타락한 일본 군인정신의 상징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이 박정희라는 여론 조사 결과와 '조폭 신드롬'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며, 우리 사회의 도덕 수준과 가치관이 얼마나 썩어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면...
1. 철저히 나만 위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라.
박정희는 사관학교 입학을 위해 신출귀몰한 방법을 실행했다. 그것은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써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이 혈서는 만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런 초특급 황국신민이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더러운 조센징 중에 이런 진주가 숨어 있었다니, 교관과 생도들은 한동안 충격과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충성혈서 한 장으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일제시대 35년간 자진해서 '충성혈서'를 쓴 조선사람은 박정희 단 한 사람뿐이다. 다른 조선 사람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로, 중국으로 조선을 떠날 때 박정희는 혈서까지 쓰고 일본군 사관학교로 달려갔던 것이다. 박정희는 1942년 3월 23일 만주군관학교에서 만계(식민지 출신으로 편성한 계열) 졸업생 240명 가운데 1등으로 졸업한 후 박정희는 일본육사로 진학했다. 일본육사 교장 나구모 쥬이치는 박정희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 1944년 4월 20일 일본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그해 7월 열하성에 주둔하고 있는 만주군 제 8단에 배속되었다. 다음은 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만주군장교 출신의 이야기이다. "다카키 마사오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2. 배신과 변신을 밥먹듯이 하라.
친일파들이 변신을 하는 방법에는 반공주의자로 돌변하는 것만 있지는 않았다. 박정희처럼 당시에 기세를 올리던 좌익에 붙어서 공산주의자로 변신을 도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국방경비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령으로 근무하던 중, 군대 내의 좌익조직에 상당히 중요하게 가담했다가 여순반란사건 후의 숙군 과정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군 내부의 거의 모든 적색 조직을 샅샅이 폭로함으로써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이렇게 박정희는 상황이 변하자 다시 잽싸게 반공주의자로 변신을 하여 살아남게 된다. 쿠데타 성공 뒤 박정희는 자신의 좌익경력에 의구심을 버리지 않는 미국의 신임을 얻는 데 전력을 경주했고, 마침내 미국의 초청을 받아내어 1961년 11월 중순 케네디와의 정상회담의 일정을 잡는 데 성공했다.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와 케네디 사이의 정상회담은 일부 외국언론에 의해 종주국 황제의 식민지 총독에 대한 면접시험 같았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이렇게 박정희는 친미주의자로 또다시 변신했던 것이다.
3.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박정희는 대단히 권력에 집착한 군인이었다. 군사쿠데타를 세번이나 기도하여 결국 성공하게 된다. 첫번째 기도는 이승만정권의 첫 임기가 끝나게 되었을 때, 집권 연장을 위해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킨 시점이었다. 이때 박정희를 포함한 한국 군부의 일부가 주한미군의 지원을 받아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결행하지는 못했다. 두번째는 이승만정권 말기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군부의 일각에서 쿠데타계획이 있었으나 4·19의 폭발과 이승만의 하야로 유보됐다. 그러다가 세번째로 장면정권 성립 후 야기된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61년으로 들어서면서 다소 가라앉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갈 무렵, 박정희 소장 중심 군부세력이 서둘러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 계획으로서의 3선 개헌 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만 시켜주면 다시는 더 출마하지 않겠다고 눈물로 호소했고 국민들은 그 말을 믿고 재당선시켰다. 그러나 그는 3선 되자마자 「유신」체제로의 전환을 구상했고, 남북대화를 핑계로 「유신」을 단행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로 6년 임기 대통령이 되고 영구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런 폭정에 저항하는 「유신」 헌법 개정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헌법에 대한 부정·반대·비방 행위와 그 개정·폐지를 주장하는 일, 개정이나 폐지를 발의·제안·청원하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동하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폭거를 감행했다.
4. 강한 자에게 충성하라.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마자 케네디에게 제안한 것이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었다. 이때는 아직 미국이 베트남전에 전투병력을 파견하여 대규모 개입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니 파병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란 것은 있을 수 없는 때였다. 그런 때에 박정희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제안한 것이다. 이 뜻밖의 제안에 케네디는 박정희와 예정에 없던 정상회담을 또한번 가졌고, 베트남 파병 제안으로 박정희가 자기를 아주 기분좋게 해주었다고 치하했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군부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였다. 5만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베트남의 정글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을 대신해서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3선개헌이나 1972년의 유신친위쿠데타와 같은 박정희의 권력강화 기도는 미국의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황국군인으로 교육을 받아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그랬는지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여론을 계엄령까지 선포해가며 체결하였다. 여기에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소련의 남하정책을 저지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이 수교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력을 넣은 것도 큰 이유였다. 박정희와 함께 5.16 쿠데타를 일으킨 그의 조카사위인 김종필이 오히라 일본 외상을 만나 비밀 메모지 한 장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본은 3억 달러를 10년간 걸쳐서 지불하고, 경제 협력의 명분으로 정부간의 차관 2억 달러를 연리 35%로 제공하며, 상업 베이스에 의한 무역 차관 1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것이 비밀 메모의 골자였다. 청구권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독립 축하금'이란 이름으로 무상 3억 달러에 35년 식민통치에 따른 모든 보상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또 당시 일본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의뢰하자고 하니까 공군 연습장으로 사용하여 폭파시켜 지도상에서 없애자고 한 사람 역시 박정희의 오른팔이었던 김종필이다.
5. 약한 자에게 군림하라.
박정희는 집권기간 내내 국민들의 인권을 탄압하고, 반대파와 정적을 고문, 투옥, 제거하였다. 장준하, 최종길 의문사, 김대중 납치 사건, 김형욱 실종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인혁당 사건 등 간첩으로 모는 것은 기본이었고, 수많은 계엄령과 긴급 조치로 인권을 짓밟았다. 중앙정보부 등을 통한 감시, 도청, 고문 등 인권 유린이 당연한 시대였다. 언제나 사용자 편을 들어 노동자들을 탄압하여 노동 3권이 유명무실하였으며,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만든 것도 박정희 개발 독재의 산물이었다.
6. 결론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려면 이기적이고, 배신과 변신을 일삼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한 자에 충성하며, 약한 자에 군림하는 간신배, 박쥐, 양아치, 시다바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고 보니 다음 대통령으로 이 모씨가 유력한 이유와 또다른 이 모씨가 박정희 닮았다고 선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