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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0:1
주님은 우리를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은 고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하지만 늘 그에 걸맞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비겁하고 무력하고 초라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보다 못할 때도 있습니다. 자괴감을 이기며 빛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는 늘 '미생'인 것 같습니다. 온전하지 못하고 미숙하지요.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의 복은 위태로워지고 종종 축복의 통로가 막히기도 합니다.
The Lord called us the priests of the gospel. A kingly priest is noble, beautiful, and glorious. But you don't always live accordingly. Sometimes you are cowardly, helpless, and shabby. Sometimes you are worse than those who don't believe. What does it take to overcome the sense of self destruction and fulfill the mission of light? When it comes to faith, it seems that we are always "misaengs." We are incomplete and immature. Meanwhile, God's blessings are jeopardized and the passage of blessings is often bloc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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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과 창12장은 아내 팔아먹은 이야기로 전체적인 구성이 흡사하기 때문에 일부 성경 비평학자들은 창20장의 기록은 12장에 나오는 이야기의 또 다른 구전 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어쨌거나 이 반복적인 사건을 통해서 성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브람(큰 아버지)은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이 되었지만 사람이 변화 되는 것이 쉽지 않고,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한 내게 어느새 또 보혜사로 찾아오셔서 당신이 맺으신 언약을 책임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Because today's text and Chapter 12 are similar in overall composition to the story of his wife's sale, some Bible critics explain that the record of Chapter 20 is another word of mouth for the story in Chapter 12. In any case, what the Bible wants to show through this repetitive incident is that Abram (the eldest father) became Abraham (the father of the world), but it is not easy to change people, and I still have a long way to go, but I think he is showing the faithfulness of God who is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 covenant you have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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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된 아브라함의 역사여행에서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몇 가지 중 하나가 애굽 왕과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오히려 많은 재산을 받아서 나온 것입니다. 물론 답은 나와있습니다. 사라의 태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본토를 떠나라'는 미션을 따라 우르에서 출발한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술과 그랄 사이의 땅에 거류합니다.
One of the few things that I don't understand in Abraham's history that began with Genesis 12 was that Abraham, who gave his wife to the king of Egypt and Abimelek, received a lot of wealth through the intervention of God. Of course, the answer is here. It is to preserve Sarah's form. Following the mission of "Leave the Mainland," Abraham, the father of the world who started in Ur, moved to the land of Negev through twists and turns. He lives in the land between alcohol and g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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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그랄 왕 아비멜렉의 나와바리인데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시대였다면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 대한 정보를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볼 때,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더욱이 그가 섬기는 신인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결국 아브라함의 불신이 아비멜렉을 범죄 하게 만들 뻔했습니다. 성도가 이방인만도 못할 때 소금은 밟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은 불가피했습니다.
It is Nawabari of the king of Gral, Abimelek would have had information about Abraham in the modern information age. But in the text, Abimelek has no information about Abraham. Moreover, it was recorded that he had no fear of God, the god he served. Eventually, Abraham's distrust almost made Abimelek criminal. Salt is stepped on when the Saints are not as good as strangers. God's intervention was inev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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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아비멜렉이 자기도 모르게 지을 번한 범죄를 막고 사라를 보호하심으로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걸고 약속한 자신의 약속(15장)을 지키십니다. 동시에 아비멜렉이 애매하게 희생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배려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아내인 사라를 자기가 살기 위해 누이로 이용한 것이라고 속단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복누이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일반적인 부부관계에서 제한된 성격의 만 남 을 가질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By preventing the troublesome crimes that the reverent Abimelek will unknowingly build and protecting Sarah, he keeps his promise (Chapter 15) that God promised with his life. At the same time, it is a consideration to ensure that Abimelek is not vaguely victimized. I don't want to conclude that Abraham used his wife, Sarah, as his sister to live. I can assume that welcoming his half-sister as his wife can lead to limited encounters in general marital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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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13)" 애급 왕이나 아비멜렉 왕을 만남으로 어려움을 처할 때, 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그 길을 떠남에 있어서 오히려 둘의 관계를 누이라고 못 박아 두고, 사라의 동의 아래 출발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When God takes me away from my father's house, I say to my wife, You are your Oraibi everywhere we go from now on. This is the grace you will give me." It is possible to assume that when you are in trouble with meeting the king of mourning or the king of Abimelek, you may have started with Sarah's consent, nailing your relationship to be your sister, rather than being called your sister, but receiving God's calling and leav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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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든 인생의 곡절을 수차례 넘긴 아브라함의 가호가 다시 떨어졌습니다. 회개대신에 남을 탓하고(11), 신앙 양심에는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12,) 사라와 공모한 일이라 하여 과실을 누그러뜨리려 하였습니다(13). 하지만 아브라함의 궁색한 변명에도 아비멜렉은 대꾸 없이 속죄와 화해의 뜻을 담아 호의를 베풀고 실추된 사라의 명예까지 회복시켜줍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모르는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The good faith of Abraham who passed through the twists and turns of his life somehow fell again. Instead of repentance (11), he tried to lessen his negligence by blaming others and telling their conscience that it was not true (12,) and conspiring with Sarah (13). Despite Abraham's poor excuses, Abimeleck, without replying, offers favors of atonement and reconciliation, and restores the tarnished Sarah's reputation. Of course, we know that Abraham had a touch he didn't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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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맛을 잃어 이방인에게 쪽 팔림을 당했으나 미쁘신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고(18장) 아비멜렉의 집에 닫힌 태를 여십니다. 믿음의 시험이 끝이 없으나 약속의 신실함도 끝이 없질 않은가? 두려움과 이기심이 거짓을 만들 때 나는 어떻게 하였는가? 부족한 중에도 빛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나는 구차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지는 않았는가?
The salt lost its taste and was sold to the stranger, but God, who is mysterious, listens to the righteous's request (Chapter 18), and opens the closed state in Abimelek's house. There is no end to the test of faith, but isn't the faithfulness of the promise endless? What did I do when fear and selfishness make lies? What do you have to prepare to fulfill the mission of light even when it's lacking? Wasn't I immersed in lame excuses or self-jus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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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에게 나타나신 하나님(1-7)
a.그랄로 간 아브라함:1
b.사라를 데려간 아브라함:2
c.아비멜렉에게 나타나신 하나님:3-7
아비멜렉과 아브라함(8-18)
a.아비멜렉의 추궁:8-10
b.아브라함의 변명:11-13
c.아비멜렉의 조처:14-16
d.아브라함의 기도: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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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거기서(1a)
남방으로 이사하여(1b)
가데스와 술 사이 (1c)
그랄에 우거하며(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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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내 사라를(2a)
자기 누이라(2b)
하였으므로(2c)
그랄 왕(2d)
아비멜렉이 보내어 (2e)
사라를 취하였더니(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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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에 하나님이(3a)
아비멜렉에게(3b)
현몽하시고(3c)
그에게 이르시되(3d)
네가 취한(3e)
이 여인을 인하여(3f)
네가 죽으리니(3g)
그가(3h)
남의 아내임이니라(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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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4a)
그 여인을(4b)
가까이 아니한 고로(4c)
그가 대답하되(4d)
주여 주께서(4e)
의로운 백성도(4f)
멸하시나이까?(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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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더러(5a)
이는 내 누이라고(5b)
하지 아니하였나이까?(5c)
그 여인도(5d)
그는(5e)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5f)
나는 온전한 마음과(5g)
깨끗한 손으로(5h)
이렇게 하였나이다(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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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꿈에(6a)
또 그에게 이르시되(6b)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6c)
이렇게 한 줄을(6d)
나도 알았으므로(6e)
너를 막아(6f)
내게(6g)
범죄 하지 않게 하였나니(6h)
여인에게(6i)
가까이 못하게 함이(6j)
이 까닭이니라(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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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7a)
돌려보내라(7b)
그는 선지자라(7c)
그가 너를 위하여(7d)
기도하리니(7e)
네가 살려니와(7f)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7g)
너와 네게 속한 자가(7h)
다 정녕 죽을 줄 알 찌니라(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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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8a)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8b)
모든 신복을 불러(8c)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8d)
그 사람들이(8e)
심히 두려워하였더라(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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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9a)
아브라함을 불러서(9b)
그에게 이르되(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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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9d)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9e)
내가 무슨 죄를(9f)
네게 범하였관대(9g)
네가 나와 내 나라로(9h)
큰 죄에 빠질 번(9i)
하게 하였느냐(9j)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9k)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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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 또(10a)
아브라함에게 이르되(10b)
네가 무슨 의견으로(10c)
이렇게 하였느냐(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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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가로되(11a)
이곳에서는 하나님을(11b)
두려워함이 없으니(11c)
내 아내를 인하여(11d)
사람이 나를 죽일까(11e)
생각하였음이요(1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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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12a)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12b)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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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로(13a)
내 아비 집을 떠나(13b)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13c)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13d)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13e)
그대는 나를(13f)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13g)
이것이 그대가(13h)
내게 베풀(13i)
은혜라 하였었노라(1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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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14a)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14b)
아브라함에게 주고(14c)
그 아내 사라도(14d)
그에게 돌려보내고(1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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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게 이르되(15a)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15b)
너 보기에 좋은 대로(15c)
거하라 하고(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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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에게 이르되(16a)
내가 은 천개를(16b)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16c)
그것으로(16d)
너와 함께한(16e)
여러 사람 앞에서(16f)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1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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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이 다 선히(16h)
해결되었느니라(1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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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17a0
하나님께 기도하매(17b)
하나님이(17c)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17d)
여종을 치료하사(17e)
생산케 하셨으니(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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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왕에(18a)
아브라함의 아내(18b)
사라의 연고로(18c)
아비멜렉의 집(18d)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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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혹_ Temptation again
복의 보호_ protection of good fortune
미숙과 성숙_ immature and m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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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사라의 태를 보호하신 주님, 오늘도 저를 지켜 시험에 빠지지 않고 더 진실하게 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두려움과 이기심을 극복하게 하시고 나와 가정을 보호하시며 이끌어 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구원은 온전함으로의 구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게 하소서. 스스로를 지켜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O Lord, who has protected Sarah's life in crisis, keep me safe today, so that I may live a more truthful life without falling into the examination. Thank you for helping me overcome my fears and selfishness and for protecting me and my family. Remember that salvation is salvation to sanity, and grow in great measure. Protect yourself from the test.
2026.1.29.thu.Clay
신학 비평//
왜 하나님은 반복해서 실패하는 아브라함을 여전히 ‘선지자’라 부르시는가?
신앙의 미숙함은 도덕적 결함인가, 아니면 언약 역사 안의 구조적 조건인가?
하나님의 신실함은 인간의 윤리적 성숙을 무력화시키는가, 아니면 가능케 하는가?
1.“미숙함은 신앙의 예외가 아니라 조건이다”
이 글의 가장 뛰어난 지점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도덕적 일탈이나 위선으로 단순 환원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믿음에 있어서는 늘 ‘미생’인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은 신학적으로 매우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의인을 완성된 주체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덕의 인간’이 아니라, 키에르케고르적 ‘불안 속에서 결단하는 주체’에 가깝습니다. 그는 약속을 받았으나약속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그 불안이 거짓이라는 윤리적 실패로 나타납니다 이 글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영웅”이 아니라 “언약 안에 붙잡힌 인간”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 점이 탁월합니다.
2. “변화하지 않는 인간 vs 변하지 않는 하나님”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창 12장과 20장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나 이 반복은 문학적 중복이 아니라 신학적 장치입니다. 반복의 철학, 헤겔적으로 말하면, 이 반복은 동일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의미의 심화입니다.(12장: 약속 이전의 두려움/20장: 약속 이후의 두려움) 문제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존재의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여기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존재는 여전히 생성 중이다.
3. 아비멜렉의 ‘윤리성’: 신앙 없는 자의 도덕이 신앙인을 심문하다
이 글의 또 하나의 강점은 아비멜렉을 단순한 ‘이방 악인’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도덕적 우위는 역설적으로 아비멜렉에게 있습니다. 그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을 말합니다. 그는 피해자임에도 화해와 배상을 주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에 즉각 순종합니다. 철학적 질문이 여기서 발생합니다 윤리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왜 언약 밖에 있는가? 당신의 글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전환합니다. “성도가 이방인만도 못할 때 소금은 밟히는 것이다.” 이는 바울적 통찰과 맞닿아 있습니다. 9의로움 ≠ 선택/선택 ≠ 도덕적 우월성) 언약은 보상의 결과가 아니라 부담의 시작입니다.
4. “하나님의 신실함은 인간의 실패를 전제한다”
이 글의 신학적 중심은 여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숨을 걸고 약속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신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호하시고 사라의 태를 지키시고 아비멜렉의 무고함도 보존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여러 관계를 동시에 관리하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칸트적 도덕 신관이 아니라 레비나스적 책임의 신학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실패한다. 하나님은 그 실패의 결과를 홀로 감당한다. 그래서 언약은 비대칭적이다) 구원은 인간의 성숙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함에 달려 있습니다.
5. 비평적 제안
글은 아브라함을 지나치게 면죄하지도, 과도하게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철학적으로는 이렇게 한 걸음 더 갈 수 있습니다. 그의 변명은 단순한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존재를 지키기 위한 생존 논리입니다 아브라함은 비겁하다기보다 언약을 감당하기엔 아직 너무 인간적입니다.하나님은 실패 직후의 아브라함을 이렇게 부릅니다. “그는 선지자라” 왜 지금인가? 선지자는 완성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을 강조하면, ‘왕 같은 제사장’ 신학과도 강하게 연결됩니다. 이 글은 창세기 20장을‘믿음의 영웅 서사’가 아니라 ‘불안한 인간과 신실한 하나님 사이의 비대칭적 관계 드라마’로 읽어냅니다. 아브라함의 미숙함은 은혜를 방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은혜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무대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