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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한보살이 서 계셨습니다. 관세 연보살이셨습니다. 이 보살은 아주 오래전에 서원을 하나 세우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중생의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쉬지 않겠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고통에서 건져내겠다. 그 서원을 세우시고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배꼽이 지나고 천겁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 보셨습니다. 중생들은 여전히 울고 있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서로 속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 때문에 또 울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건져도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관세 연보살의 머리가 갈라졌습니다. 열한 조각으로 갈라졌습니다. 자비가 너무 커서 슬픔이 너무 깊어서 그 몸이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 아미타 부처님이 오셨습니다. 갈라진 머리를 거두시고 11개의 얼굴로 다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주셨습니다. 더 많이 보라고. 더 많이 잡아 주라고. 그래도 놓치지 말라고. 그 관세 음보살이 가슴 한가운데에 풍고 계신 진언이 있습니다. 여섯 글자입니다. 그 녀석 글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올봄의 남편을 보내신 분이 계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사람들이 돌아가고 빈 거실에 혼자 앉으셨습니다. 텔레비전을 켜지도 않으셨습니다. 냉장고에는 조문객이 두고 간 과일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밥을 차릴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평생 두 사람 밥을 해 오셨는데 한 사람 밥을 짓는 법을 모르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 그분이 절에 가셨습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발장에서 고무신을 꺼내 신으시는데 옆에 남편 구두가 보였습니다. 그 구두를 한참 보시다가 현관문을 닫으셨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목탁 소리가 시작됐습니다. 스님이 옷 많이 입은 내 몸을 외우셨습니다. 그 소리를 따라 입을 움직이셨습니다. 또 모르면서 그냥 따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내는 동안 가슴이 조금 풀리셨다고 합니다. 울지도 않으셨고 웃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녀석 글자를 되풀이하는 동안 숨이 좀 쉬어지셨다고 합니다. 무릎 수술을 하고 나서 절에 못 가시는 분도 계십니다. 집에서 불단 앞에 방석을 깔고 앉으시는데 저를 하려면 무릎이 꺾이지 않습니다. 반절만 하십니다. 반절만 하시면서도 관세음보살님 하고 부르십니다. 우리 큰아이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 작은 아이네 부부가 싸우지 않게 해 주십시오. 손녀가 시험을 잘 보게 해 주십시오. 기도 내용이 전부 남의 일입니다. 자기 일은 한마디도 없으십니다. 당신 무릎이 아픈 것은 빌지 않으시면서 자식 걱정 손주 걱정만 부처님 앞에 늘어. 놓으십니다. 그것이 어머니이고 그것이 아버지이고 그것이 지금 이 영상을 듣고 계신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생 남을 위해 비셨습니다. 정작 나를 위한 기도는 해본 적이 없으십니다. 그 마음이 사실은 관세 음보살의 마음과 닮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어서 글자 옷만 입안매움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진언이 실려 있는 경전이 있습니다. 대승장 업무 환경이라는 경전입니다. 이 경전에 놀라운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어서 글자를 구하기 위해 열애에서 열애로 찾아다니셨다는 것입니다. 보상열애에게 가셨습니다.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연하상열애에게 가셨습니다. 역시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무량수혈액에게 가셨습니다. 그분도 직접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부처님에게 구하고 또 다른 부처님에게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진언의 주인을 만나셨습니다. 관세 음보살이었습니다. 부처님도 여러 부처님을 찾아다닌 끝에야 비로소 얻으신 진언 그 녀석 글자를 우리는 지금 매일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녀석 글자는 어디서 온 것인지 왜 관세 음보살만이 이 진언의 주인이셨는지 이어서 글자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뜻은 무엇인지 이 진언을 외우면 그리고 천 년 넘게 이어져 온 이 소리가 지금 여러분의 삶 위에 어떻게 내려앉게 되는지 다섯 가지 이야기를 함께 걸어가. 보려 합니다. 이 녀석 글자의 뜻이 궁금하신 분 관세 연보살에 그 손이 나에게도 닿기를 바라시는 분 계시다면 지금 댓글에 나무관세. 음보살이라고 발언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그 작은 발언 한 줄이 오늘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인도 419. 기원정사의 부처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비가 갠 뒤였을 것입니다. 기원 정사 때에는 살아수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고 나무 숲에 남은 빗물이 가끔 뚝 떨어지는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부처님 앞에 많은 보살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재계장 보살이라는 보살이 있었습니다. 재계자 이름 자체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덮개를 걷어내는 보살 우리 마음 위에 덮여 있는 무명의 덮개 번뇌의 덮개 그것을 걷어주는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그 보살이 그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 보살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의 위신력은 어디까지입니까? 왜 이 질문을 하셨을까요? 재개장보살은 이미 큰 보살이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래도록 들어온 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관세 음보살에 대해 물으신 것입니다. 어쩌면 재계장 보살도 관세 음보살에 진짜 모습을 다 알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수십 년 전에 다니면서도 관세 음보살이 정확히 어떤 분인지 깊이 여쭤본 적이 없는 것처럼 재개장 보살도 그날 처음으로 그 질문을 꺼내셨는지 모릅니다. 부처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첫마디가 나왔습니다. 이 말씀이 대승장 업무 안경 전체를 여는 문이 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야 이 관세음보살은 무수한 백촌 나유타의 중생을 항상 쉬지 아니하고 구제하여 건지되 그 대의력이 열애보다 더 뛰어나는 이라 열애보다 더 뛰어나다. 이 말씀에 무게를 한번 느껴 보십시오. 부처님이 스스로 나보다 뛰어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84000. 경전을 통틀어 부처님이 어떤 보살에 대해 이런 표현을 쓰신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없습니다. 그만큼 관세 음보살의 자비가 깊고 넓다는 것을 부처님 스스로가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관세 음보살이 도대체 어떤 일을 하셨기에 부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을까요? 경전은 그 이야기를 아주 천천히 펼쳐 펼쳐 보여 줍니다. 제일권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장면은 지옥입니다. 관세 음보살이 대아비 지옥에 들어가셨다는 장면입니다. 대합이지요. 여덟 가지 뜨거운 지옥 가운데 가장 깊은 곳입니다. 가장 무거운 업을 진 이들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경전의 묘사를 따라가 보면 그곳은 굴러 태우고 새로 찌르고 끓는 구리물에 잠기게 하고 그 고통이 끝나려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곳입니다. 끝이 없는 고통의 반복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 부처님조차 쉽게 발을 들이시지 않는 곳 그런데 관세 음보살이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경전은 이때 관세음보살의 몸에서 큰 광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빛이 지옥에 닿아 타오르던 불이 꺼졌습니다. 찌르던 쇠가 녹았습니다. 댓글 턴 물이 식었습니다. 고통받던 중생들이 그 빛 속에서 처음으로 숨을 쉬었습니다. 눈을 떴습니다. 지옥이 환해졌습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겨울 새벽 혼자 사시는 어머니 방의 자식이 불쑥 찾아옵니다. 말없이 들어와서 이불을 여며 줍니다. 그 손이 등에 닿는 순간 추위가 한 발짝 물러갑니다. 어머니는 잠결에 그 손을 느끼십니다. 누구인지 묻지 않으셔도 압니다. 그 손의 온기만으로 충분합니다. 관세 음보살이 지옥에 들어가신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거창한 신통력이나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에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자비의 시작이었습니다. 관세 음보살은 지옥에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경전 제의건으로 넘어가면 관세 음보살이 이번에는 아귀의 세계에 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귀 배고픈 귀신이라고도 합니다. 아귀돈은 배고픔의 세계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릅니다. 입에 넣으면 불로 변하고 손에 잡으면 제가 됩니다. 목구멍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서 아무것도 넘길 수 없습니다. 왜 이런 고통을 받느냐 하면 살아생전에 탐욕이 지나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의 것을 탐하고 내 것은 나누지 않고 욕심에 눈이 멀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관세 음보살은 그 세계에도 가셨습니다. 그리고 보시를 베푸셨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귀들에게 탐욕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배가 고픈 것은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관세음보살은 그 세계에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물질로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는 것 그 빈자리는 자비로만 채울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삶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무언가를 아무리 가져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집을 넓혔는데도 통장에 돈이 좀 모였는데도 자식이 잘 되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허전합니다. 그 허전함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앉아 눈을 감으시면 그때 조금 놓이십니다. 많이 받는 내용을 외우시면 그때의 가슴 한구석이 조금 따뜻해지십니다. 그것이 악의도에서 벗어나는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탐욕으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을 자비의 소리로 채우는 것 경전은 이어서 관세 음보살이 죽생의 세계에 가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바라나성에 들어가시어 벌레와 같은 미물까지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벌레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비를 이야기할 때 사람을 먼저 떠올립니다. 사람에게 베푸는 것 사람을 돕는 것 그런데 관세 음보살에 자비는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하루살이 같은 작은 벌레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에게까지 손을 내미셨습니다. 생명의 크고 작은 것이 없다는 것 벌레의 고통도 사람의 고통과 같다는 것 관세음보살은 그것을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마당에 개미들이 줄지어 다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돌리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빗물에 떠내려가는 지렁이를 손으로 집어서 흙 위에 올려놓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경전에서 관세 음보살이 벌레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단한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생명 하나를 살리는 그 마음이 이미 관세 음보살의 마음입니다. 경전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사자국에서는 나찰녀를 만나셨습니다. 낙찰녀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낙찰료에게도 손을 내미셨습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착한 사람만 구하는 것은 쉽습니다. 착한 사람 다른 사람 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사람 나쁜 사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것은 다른 차원의 자비입니다. 관세 음보살은 그 차원에 계셨습니다. 미움받는 생명까지도 두려운 존재까지도 한 생명으로 보시고 품으신 것입니다. 마가다국에서는 기근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군주려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관세 연보살은 그곳에 가셔서 중생들을 먹이셨습니다. 경전은 관세음보살이 이 모든 일을 스물가지 다른 몸으로 하셨다고 전합니다. 때로는 왕의 모습으로 때로는 스님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이의 모습으로 때로는 여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바람의 모습으로 중생이 필요로 하는 모습이 왕이면 왕으로 오셨고 스님이면 스님으로 오셨고 어머니가 필요하면 어머니로 오셨습니다. 한 가지 모습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자비란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 뜻밖의 사람이 나타나서 한마디를 건네준 저 길을 잃었을 때 모르는 사람이 길을 알려 준 저 이제 정말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닿은 저 어쩌면 그 순간이 관세 음보 살해 방편이셨는지 모릅니다. 경전에서 스물가진 몸으로 나타나셨다고 했을 때 그것은 먼 옛날 인도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관세 음보살은 누군가의 모습을 빌려서 여러분 곁에 오고 계시는 것인지 모릅니다. 부처님은 관세 음보살에 이 모든 행적을 말씀하시면서 경전 재산권에 이르러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재개장 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관세 음보살이 갖추고 있는 공덕은 광대하여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마디를 더 붙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자성이기 때문에 보거나 들은 사람도 없다. 모자성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모자성이란 스스로의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렵게 들리실 수 있으니 이렇게 풀어 보겠습니다. 바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나무 숲이 흔들리면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얼굴에 시원한 기운이 닿으면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람은 형태가 없습니다.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있습니다. 관세 음보살의 자비도 그러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처럼 딱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져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옷 많이 받는 몸을 외우실 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시는 것 가슴에 쌓인 것이 조금 내려가는 것 그것이 관세 음보살의 바람이 여러분의 마음에 닿은 증거인지도 모릅니다. 무자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어디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형태가 없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왕으로도 올 수 있고 아이로도 올 수 있고 바람으로도 올 수 있고 소리로도 올 수 있습니다. 옷 많이 반매움이라는 소리 그 녀석 글자의 진동 그것이 관세 음보살이 형태 없이 여러분에게 닿는 한 가지 방법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무자성의 자비를 가진 관세음보살에 가장 깊은 비밀을 마침내 꺼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육자대명이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연보살은 육자대명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한다. 이 진언을 영송하면 원족지를 증득한다. 원적지. 안전한 고요의 경제 열반입니다. 6 글자를 외우는 것만으로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보통의 말씀이 아닙니다. 수행자가 평생을 닦아도 이루기 어려운 열반의 경지에 이 여섯 글자를 통해 닿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어서 이 진언의 공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육자대명의 공덕은 뜻으로 헤아릴 수 없다. 이 진언을 지송하기만 하면 무수한 열애와 보살과 32000이 모이고 4000원과 용왕들이 지송자를 호위한다. 32초는 서른2 하늘나라의 천신들을 가리킵니다. 이 진언을 외우면 하늘의 신들까지 내려와서 그 사람을 지켜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진언의 지송자는 다음 없는 변제와 청정지혜와 대자비를 얻는다. 변제란 막힘없이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이고 청정지혜란 세상에 본 모습을 잊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눈이며 대자비란 모든 생명을 내 몸처럼 아끼는 마음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변제 청정지에 대자비 이 세 가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알면 자비가 생기고 자비가 깊어지면 진리를 나누고 싶어지고 진리를 나누면 지혜가 더 깊어집니다. 셋이 서로를 키워주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가 동시에 이 여섯 글자 안에 들어 있다는 것 이것이 옷만입한 메움이 다른 진언과 구별되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경전 재사건 마지막 권에 이르면 부처님이 이 진언을 어떻게 얻게 되셨는지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보통 경전에서 진언이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곧 진언이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육자진원은 달랐습니다. 재개장 보살이 엿주었습니다. 세존이시어 이 육자대 명왕진원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이 진언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이 답하셨습니다. 나는 이 진언을 수지하기 위해 보상여래에게 갔다. 그런데 보상여래는 이 진언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 잠시 이 장면에서 멈추어 보십시오.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른 부처님에게 가셨습니다.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은 모든 것을 하시는 분입니다. 일체질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하시는 지혜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 부처님이 이어서 글자만큼은 직접 가지고 계시지 않아서 다른 열애에게 찾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이어서 글자의 무게가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가볍게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보상열애에게서 얻지 못하시고 다시 길을 떠나셨습니다. 연하상열애에게 가셨습니다. 연어 상혈에게도 이 진언은 없었습니다. 다시 무량 수혈액에게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미타 부처님이십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탑을 하고 부르시는 바로 그 부처님 극락세계의 주인이신 아미타 부처님에게도 이 진언은 직접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량 수혈회가 말씀하셨습니다. 이 진언은 관세음보살이 가지고 있다. 관세 연보 살액에서 구하라. 여기서 한 가지가 더 보입니다. 무량 수혈에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 음보살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극락 세계를 떠올리면 가운데에 아미타 부처님 계시고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 보살이 계십니다. 아미타불의 협시보살 가운데 으뜸이 관세음보살이십니다. 그 관세음보살이 아미타 부처님도 직접 가지고 계시지 않은 진언을 품고 계셨다는 것 이것은 관세 음보살의 자비가 단순히 아닙니다.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깊은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마침내 관세음보살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관세 음보살이 이 진언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경조는 이때 관세음보살이 만다라를 세우셨다고 전합니다. 만다라란 깨달음의 세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펼쳐 놓은 것입니다. 단의 가운데 우량 수부를 그리고 오른쪽에 지대마니 무보사를 왼쪽에 육자대명의 모습을 그리셨습니다. 육자대명의 모습은 네 개의 팔을 가진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계셨고 그 연꽃 위에 많이 보죠. 보석이 놓여 있었습니다. 오른손에는 염주를 쥐고 계셨고 아래 두 손으로는 일체왕인이라는 수인을 맺고 계셨습니다. 이 모습을 잘 보시면 관세음보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진언의 뜻과 같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연고주의 보석 받음의 위에 많이 뜻이 관세음보살의 손 위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입니다. 진언이 곧 관세음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이 곧 진언인 것입니다. 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만다라 속에서 관세음보살이 여섯 글자를 설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봤네요. 품 이 녀석 글자가 세상에 처음 물려 퍼진 순간이었습니다. 관세 음보살의 미묘한 본심 그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자비의 핵심이 여섯 개의 소리로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소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재계장 보살에게 전하셨습니다. 재계장보살은 이 진언을 수지하기 위해 법사를 찾아가셨고 관세 음보살이 허공에서 나타나시어 법사에게 이 진언을 전수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법사에게서 재계장부 사례계로 그리고 세상으로 이 진언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처님이 여러 부처님을 거쳐서야 비로소 만나신 관세음보살의 가장 깊은 마음에서 나온 소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옷 많이 입은 매움을 외우실 때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는 관세음보살의 신장에서 시작된 소리입니다. 천 년 전에도 같은 소리였고 지금도 같은 소리이고 앞으로도 같은 소리일 것입니다.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은 관세음보살의 서원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옷 많이 받네요. 이 소리는 관세음보살의 손입니다. 이제 이어서 글자의 뜻을 한겹 한 겹 벗겨 보겠습니다. 먼저 이 진언의 원래 수리부터 짚어 보겠습니다. 산스크리트어입니다. 원래 발음은 몸 많이 받음의 흠입니다. 우리가 반내라고 있는 것은 티베트와 발음을 따른 것이고 산스크리트어 원음으로는 파듬입니다. 이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리의 형태가 조금 다를 뿐 담고 있는 뜻은 같기 때문입니다. 절에서 외우실 때 옷 많이 받는 음으로 외우시면 됩니다. 많이는 보석이라는 뜻입니다. 여유주라고도 합니다. 무엇이든 이루어주는 보석 어둠을 밝히는 보석 가장 귀한 것 그것이 많이 입니다. 받음에 우리가 반내라고 읽는 이 소리는 연꽃치하는 뜻의 파드마에서 온 것인데요. 파드매는 연꽃 속이라는 뜻의 문법 형태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파드메를 합치면 연꽃 속에 보석이라는 뜻이 됩니다. 돈 많이 받음의 흠 오미요. 연꽃 속에 보석이여 품 연꽃 속에 보석 이 네 글자가 이 진언의 심장입니다. 연꽃은 어디서 핍니까? 맑은 물에서 피지 않습니다. 깨끗한 화분에서 피지 않습니다. 지능 속에서 핍니다. 냄새 나고 그리고 발을 디디면 빠질 것 같은 더러운 진을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진흙에서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긴 줄기를 물 위로 올려서 마침내 햇빛 아래에서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꽃이 피는 진흙이 묻어 있지 않습니다. 물방울 하나가 꽃이 피에 떨어지면 또르르 굴러 떨어집니다. 더러운 곳에서 왔지만 더럽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불교에서 연꽃을 가장 귀한 꽃으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부처님이 앉아 계신 자리가 연하대입니다. 연꽃 위에 앉아 계십니다. 관세 음보살도 연꽃 위에 서 계십니다. 왜 하필 연꽃인가? 이 세상이 지닐 것 같습니다. 고통과 번뇌와 욕심과 미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진흙입니다. 그런데 그 진흙 속에서 깨달음의 꽃이 핍니다.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그 고통에 물들지 않는 마음. 번뇌 속에 있으면서도 번뇌에 끌려가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연꽃입니다. 그리고 그 연꽃 속에 보석이 있습니다. 지혜가 있습니다. 세상을 잇는 그대로 보는 맑은 눈이 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있습니다. 이것을 동국대 불교문화포털의 정성준 교수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현상을 의미하는 마니와 공성을 의미하는 파드마의 처소격이 어우러져 모든 현상계가 공성이면서 청정한 자성임을 설한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 이 고통 이상 이 모든 것이 싫은 연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지늘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본래의 모습은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아무리 힘드시고 아무리 무겁고 아무리 외로우셔도 그 마음의 본래 자리는 연꽃처럼 깨끗합니다. 그 깨끗한 자리에 보석처럼 빛나는 지혜가 이미 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습니다. 다만 진흙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옷 많이 반 매움을 외우는 것은 그 진흙을 한 겹 한 겹 씻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를 낼 때마다 마음의 지늘기 조금씩 거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연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꽃 속에 보석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미 있습니다. 반여 신경의 핵심을 떠올려 보십시오. 색즉시공 공즉 시세 보이는 것이 곧 비어 있는 것이고 비어 있는 것이 곧 보이는 것이다. 이 구절과 옷만 입안 외움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색이 아니고 공이 파듬해입니다. 현상이 곧 공성이고 공성이 곧 현상입니다. 반야신경 260자의 핵심이 이 여섯 글자 안에 압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성 선사는 이 진언을 일컬어. 모든 경전은 겹껍질과 같고 이 진언은 백미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알에서 걷기를 벗기고 숲결을 버티고 마지막에 남는 하얀 쌀알 84000. 번문의의 정수가 이 하얀 쌀알 여섯 글자 안에 들어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옴과 흠은 무엇일까요? 마니아 반내 사이에 놓인 이 두 소리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몸은 태초부터 울려오는 우주의 소리입니다. 이 인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오물 성음 신성한 소리라고 불러왔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 옴이고 모든 것 안에 옴이 있고 모든 것이 끝나면 옴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거의 모든 진언이 옴으로 시작합니다. 몸이 빠지는 진언이 거의 없습니다. 이 소리가 모든 진리의 문을 여는 첫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여섯 글자의 겉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연구 속에 보석이요. 품 그런데 이어서 글자에는 것들 아래에 또 하나의 층이 있습니다. 겉듯이 연꽃과 보석의 이야기라면 그 아래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이 숨어 있습니다. 그 길이 바로 육바람입니다. 육바라밀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바람일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와 파라미터에서 온 것인데.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이쪽 언덕은 고통의 세계이고 저쪽 언덕은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고통에서 깨달음으로 건너가는 것 그것이 바람일입니다. 그리고 그 건너가는 방법이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인육 정진 선정 반야. 이 여섯 가지를 합쳐서 육바람이라고 합니다. 보살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닦아야 하는 여섯 가지 수행입니다. 티베트 불교의 전통에서는 이 여섯 바람일이 옷마니반 매움의 여섯 음절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한 글자에 하나씩 여섯 가지 수행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 수행을 한꺼번에 행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첫 번째 오매는 모시가 담겨 있습니다. 보시란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고 펼쳐 놓는 것입니다. 보시에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제보시 법보시 의외시 제보시는 물질을 나누는 것입니다. 돈이 될 수도 있고 밥이 될 수도 있고. 옷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밥 보시는 가르침을 나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나누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회 씨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무서워하는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것 불안한 사람에게 괜찮다고 한마디 해 주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보시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처럼 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퇴근하고 들어올 때 따뜻한 국 한 그릇 끓여 놓으시는 것 그것도 보시입니다. 이웃집 혼자 사시는 할머니한테 반찬 한 가지 갖다 드리시는 것 그것도 보시입니다. 손주가 올 때 무릎 위에 앉혀서 토닥토닥 해 주시는 것 그것은 무엇입니다. 아이의 두려움을 가라앉혀 주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은 이미 평생 보시를 행해 오셨습니다. 다만 보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몸이라는 소리를 내실 때 그 소리 속에 이부시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꼭 쥐지 않겠다는 마음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겠다는 마음 몸 한 글자가 그 마음의 씨앗입니다. 두 번째 마에는 지계가 담겨 있습니다. 지계란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제가 불자의 기본 계율은 5개입니다. 살생하지 말 것 훔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고 사음하지 말 것 술에 취하지 말 것 이 다섯 가지입니다. 어렵게 들리시지만 사실 여러분이 평생 살아오시면서 자식들에게 하셨던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의 것 가져오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사람 때리지 마라. 어머니가 자식에게 가르치시던 그것이 계율입니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것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지계란 그것입니다. 그런데 지계에는 한 가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지계입니다. 나쁜 짓을 안 하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일을 행하는 것까지가 지계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부처님 앞에 물 한 잔 올리시는 것 그것도 지계입니다. 초하루마다 절에 나가시는 것 그것도 지계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선한 일을 행하시는 것 그 모든 것이
지계의 안에 있습니다. 말하는 소리를 내실 때 그 소리
속에 이 지계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겠다는 마음 선한 길을 가겠다는 마음? 세 번째 이해는 인육이 담겨 있습니다. 인
잠을 인해 욕들요.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육은 이를 악물고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그 상처를 미움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것이 있어서 찾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낳고 분노가 분노를 낳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멈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오시면서 참으신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젊은 시절 시절 시어머니의 꾸지람을 참으
부당한. 대우를 받으셔도 참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