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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부담없는 대화방♡ 스크랩 식민지의 국어시간/ 문병란
니브 추천 0 조회 44 14.10.10 23:4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식민지의 국어시간/ 문병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시간이여.

 

- 국어시간에 시 읽기 2(나라말,2003)

.......................................................

   

 몰라도 상관은 없지만 ‘히노마루’는 일장기, '센세이'는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고 ‘기타나이’는 더러운 놈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일본에 의해 빼앗긴 우리말과 글을 되찾아 채 가꾸고 다듬기도 전에 다시 일본어를 익히고 영어를 배워야 했던 현실이 시인은 부끄럽고 서글프다. 출세하려면 국어보다 외국어를 더 잘 알아야하는 풍토가 시인으로서는 못마땅하다.

 

 이 시가 나온 지도 40년이나 됐다. 그렇지만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말 가꾸기에 대해 말하면 오히려 세계의 변화를 ?아가지 못해 뒤떨어진 사람의 넋두리로 받아들인다. 1991년 국가공휴일에서 제외된 이후 법정공휴일로 재지정되어 맞는 첫 한글날이다. 이런저런 기념행사야 열릴 터이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겨레의 바탕인 우리말의 힘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외국어를 더 중시하는 생각의 똬리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밥집’이라 하면 허룸한 싸구려 식당처럼 보이고 ‘레스토랑’이라 해야 왠지 근사해 뵈면서 그곳에서 ‘칼질’을 한 사람은 올려다봐줘야 마땅할 것만 같다. 가게나 아파트 심지어 공공시설의 이름도 외국어로 지어야 품격이 있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외제가 무조건 좋은 시절도 아닌데 말과 글의 우리 것은 여전히 홀대받는다.

 

 국가기관이 오히려 앞장을 서고 있고 심지어는 순 우리말을 고집한다고 해서 종북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정치인도 있다. '하이 서울' '다이내믹 부산' '컬러풀 대구' '플라이 인천' '유어 파트너 광주' 잇츠 부산' '울산 포유' '글로벌 인스퍼레이슨 경기' '프라이드 경북' '필 경남' '라이블리 강원' '하트 오브 코리아 충남' '온리 제주' ... 멀쩡한 아파트 이름을 외국어로 바꾸는 것만으로 아파트 가치를 높이려는 요상한 수작도 한때 유행했었다.

 

 글로벌도 좋고 국제화도 이해하지만 덮어놓고 이러는 거는 아니라 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구호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요즘 곳곳에서 증거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더는 슬픈 국어시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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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0.15 11:01

    첫댓글 저는 대학때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더랬습니다. 일문과 과티를 입고 캠퍼스를 다닐 때....누군가 뒤에서 친일파라고 수군거렸다가....야구방망이를 휘둘렀던 기억이 나는군요. 나는 친일을 위해 일본어를 배우는게 아니라..용일을 위해 일본어를 배운다고 나름....확고한 주관이 있었던 젊음.

  • 14.10.15 11:06

    지금처럼 나이를 먹고 돌아보니........그 때는 나도 과격한 급진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때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었다가... 지금은....확실하게 보수로 변해 있는 나를 보면서....세월이 사람을 만들어갈 수도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이제 평화롭고 조용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만...만약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면...누구보다 먼저 머리에 띠두르고 앞치마 입고 뛰어 나갈 각오는 되어 있답니다. 이 한몸 조국을 위해...국민을 위해...인권을 위해....

  • 14.10.15 11:09

    한편의 시를 읽다가 갑자기.....내 인생을 떠올려 보게 되었네요. 그래서 또 횡설수설......
    내가 살아온 날들이 자꾸 부끄러워지고 있습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살지 못한 나 자신이 창피하기도 하고....그래서 또 주저리 주저리.......

  • 14.10.15 11:49

    너무 완벽함을 기대하며 살지 말어 인생 다 부질없더라
    그날 그날 웃고 행복한곳 다니며 즐기며 살어 그런사람이 장수한다쟌어
    다 팽겨치고내려놓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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