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견도 무시한채 애들이랑 마산 처제네 놀러 간다고 뱃살공주의 일방적 통보.
훌쩍 가 버리고 텅빈 집이... 내맘이 이렇습니다.
열심히 사기치다 늦게서야 홀로 들어온 방에 읽지도 않을책, TV, 컴까지 켜놓곤 한참
궁상을 떨다가 대전 사는 어릴적 내 동무 또락이 전화에 혼자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콩밥은 먹었냐?'
'이자식아 내가 깜방갔냐 콩밥묵게 ? 찰밥이라 칸다 이놈아..ㅋㅋ'
'뭐하냐?'
'불장난 한다 이놈아'
'웬 불?'
심술이 납니다. 또락이 이놈은, 내 여동생을 중간에 넣고 동생 친구를 끝까지 꼬셔서
냉큼 결혼해 버린 아주 독종입니다. 그 또락이 이놈, 제놈도 옛 생각에 상감이 보고싶었나 봅니다.
정월 대보름...
우린 몇일전부터 산에서 고주배기랑 돌이랑 줒어 모아다가 우리들만의 보름을 준비합니다.
둥근 보름달이 뜨고, 엄니 지극정성 드릴 즈음에 배가 터지도록 온갖음식 줒어 먹곤 배를
퉁퉁 울리며 또락아.. 송구야.. 박사야.. 칠득아... 실겅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불러 제끼며
넓은 터밭에 끌어 모입니다.
한손엔 깡통, 주머니엔 성냥, 터밭에 일차 짚불 놀이를 하고, 끝나기도 전에 이미 눈섭과 앞
머리카락은 노릿노릿 불에 구워먹고, 엄마가 설빔으로 사주신 스폰지 넣은 모자달린 촌스런
점퍼엔 불똥이 튀어서 구멍이 숭숭 나 있습니다. 걱정도 잠시, 삼층 높이까지 무섭게 오르는
불을 뒤로 한체 뒷산에 올라 준비한 대로 작업(?)에 들어 갑니다.
각기 지정된 산비탈 뚝에 호미로 우리 키보다 훨씬 큰 별모양을 그리곤 그 별속에 마른 소똥
이랑, 마른 나뭇가지, 고주배기라 불리는 마른 나무뿌리 등등... 오래 꺼지지 않을만한 굵은
나무로 별속을 꽉채우고 별 주위엔 더이상 불이 번지지 않게 준비한 돌로 단단히 여미고,
그 돌 주위엔 흙을 파네어 완벽하게 준비를 하곤 신나게 불을 지핍니다.
우리 키보다 훨씬 큰 별들이 우리 눈앞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우~와! 하며 서로가 신나게 바라 보면서 냅다 뛰기 시작해 앞 냇가 근처 누나들이 빨랑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게 해 달라고 뱅글뱅글 빌고 있는(어쩜 왓다리 갔다리...) 다리밟기나,
탑돌이 하고있는 그곳으로 달려 갑니다.
우리가 만들어논 건너편 산자락에 반짝이는 별을보며 신이 납니다.
'또락이 별은 납짝하네! 아가 납짝하이 별도 납짝하게 맨든다! 그쟈?'
'실거이 니별은 저기 뭐로?'
몇몇 별들은 가까이서 보다 훨씬 삐뚤 삐뚤 엉망이된 별이 불에 타고 있습니다.
누나들 '야 정말 이쁘네...' 이 한마디에 우린 우쭐 해 집니다.
무려 여덟게의 커다란 별이 환한 정월 대보름 달빛아래 반짝이며 타고 있습니다.
우린 다음 작업에 돌입합니다.
먼져온 놈에게 불씨를 빌려 쉽게 깡통에 불을 채우곤 힘차게 빙빙 돌리며 불놀이를 합니다.
그것이 무료해 지면 서로 깡통끼리 박치기하고, 다시 줒어 모으고, 다시 원을 그리며 돌립니
다. 어쩌다가 박자를 잘 못맞춰 수세미 같은 내 머리에 '탕' 부딛치면 온통 머리엔 작은 불똥이
범벅이 되어 타는 냄새도 아랑곳 않고 대충 털어내곤 다시 불씨를 줒어모아 놀이에 동참하며,
우리들이라는 그 속에 묻혀 지칠때 까지, 돌리다 돌리다, 심심해 미칠때 까지, 팔이아파 잠시
쉴틈도 없이, 미칠때 까지 박고 모으고, 또 박고...
이 짖도 반복하면 무료해 집니다.
마지막으로 빙빙 돌리던 깡통을 힘차게 공중으로 올립니다.
아마 우리의 최초 불꽃놀이를 그렇게 했습니다.
밤하늘에 우수수 떨어 지던 불씨들 ...
빈 깡통만 대충 줒어 다시 산으로 뛰어가 희미해진 별을 다시 살려 오래 타도록 마른 소똥을
한참 올려놓고 그제서야 아쉬움속에 오늘의 정월 대보름 놀이를 그렇게 끝냅니다.
그냥 그렇게 끝낸게 아니라 불놀이가 끝났다는 이야기지요!
이차로 마당에 전신주가 우뚝 서 있어 봇대할매라 불리는 그 주막 뒷방으로 들어가 온갖 놀음
하다가 봇대할매 잠든사이 쥐새끼 처럼 살금살금 부엌으로 찾아 들어 우리들의 심심풀이 먹
거리를 찾아 온 부엌을 헤매고 다닙니다.
노가리 명태가 걸려있어 몇마리 뽑아내고, 물김치, 메밀묵 한덩이 해서 맛있게 나누어 먹습니다.
참으로 감사하신 봇대할매...
하루를 그방에서 그렇게 놀다가 잠에 골아 떨어지곤...
아침이 되어 모두들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눈썹이 없는놈, 앞 머리카락을 홀라당 태운놈, 바지 태워 먹은놈, 서울 공장에 다니는 누나가
사 준 것이라 자랑하던 털모자와 머플러 잃어버린 그놈 그 또락이놈, 설빔의 잠바 거지꼴로
태워 먹은 나 상감! 얼굴엔 검으 퉤퉤한 숯검탱이가 되어있어 모두들 꼴이 말이 아니었지요.
살금살금 아침햇살과 함께 집 마당으로 들어서니 꼭 닫힌 큰방에서 달그락 아침먹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옵니다. 이걸 우짜노...! 걱정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항상 무식한 용기가
나를 먹여 살렸듯이 그날도 그넘의 용기를 내어 봅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한번죽지 두번 죽을끼가...
이때, 이 말썽장이 사랑하는 자식놈의 몸짖을 짐작 하셨는지 엄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밖에 누구왔나?'
'엄마 밥도'
'이놈아 들어와서 달라케라'
슬금슬금 눈치보며 들어서는 내 꼴을본 우리 엄니, 눈이 휘둥그레 지며 장롱옆에 세워둔
나의 전용 홑차리 부터 찾습니다.
뒤지게 터지고 한참 엄니의 입술에 흐르는 음악소리 같은 잔소리가 계속 되다가 지겨울 쯤
마지막 잔소리와 함께 한 번 더 나의 다리를 향해 휘두르는 홑차리에 내 고물상 같은 주머니
속에 엽전과 딱성냥이 거짖말 처럼 '딱' 부딪히면서 그 효과에 힘입은 딱성냥이 불을 일으킵니다.
주머니에서 불길이 일고, 나는 실컷 맞고도 불까지 붙어 억울해 미치겠단 듯이 뜨겁다고
고래감을 지릅니다.
눈물 콧물에 범벅이된 내게 생감자를 갈아서 다리에 붙여 주시면서도 엄니의 잔소리는 계속
됩니다.
'하라는 공부는 않하고, 이놈아 어린놈이 무슨 딱성냥을...'
덕분에 바지까지 태워 먹었습니다.
아마 다른 친구 녀석들도 곡 소리 났을 겁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되풀이되고... 하루는 둘째 누나 내게 겁줄려고 한소리 합니다.
'니 산에 불질렀다고 경찰왔다 갔다'
'웃기지 마라! 헹~ 내 속을줄 아나'
말썽만 부리는 이 아들놈에 얼마나 속상 하셨는지 우리 엄니 왈,
'니 방학 언제 끝나노?'
'내도 모른다! 다른 아들 학교가면 나도 따라가믄 된다.'
나오는 댓구가 이러하니 이쯤되면 한방 날라 옵니다. 엄니가 아닌 옆에있던 큰형님의 주먹이...
대전 모 통신회사에 다니는 또락이, 포항시청에 있는 공돌이녀석(이놈 수업시간에 허구헌날
만화만 보더니만..), 또 창원에서 열심히 노동운동 하다 깜빵 까지 다녀온 실거이, 모 방송국
에서 열심히 사기치는 홍이, 요즘들어 연락이 뚝 끊긴 갑이, 모두모두 그립습니다.
다시 한번 만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훨씬 재미있게 보낼터인데...
또한 또락이 놈이랑 사이좋게 지냈을 텐데..
오랫만에 옛생각에 잠겨 행복 합니다.
그렇게 밤을 지내고나니 텅빈 집안, 쓸쓸히 아침을 맞았습니다.
일요일 너무 조용해서 이상한 일요일.. 정월 대보름은 이렇게 쓸쓸히 지내는것도 뭐 썩
나쁘진 않네요.
2002. 2. 16. / 상감마마
오래전 이야기를 오래전에 써 놓았던 글입니다^^*
이번 정월 대보름날 전남 광양 농부님 주최하시는 달집태우기 갑니다.
옛날, 옛생각 떠 올리며 동참해 볼까 합니다. 다녀와서 보고 드립지요!
오곡밥 잘 챙겨 드시고, 부럼 열심히 깨물어 드시길...
첫댓글 보름날 아침에 눈뜨면 머릿맏에 온갖 부럼을 준비해 놓으시고 일어나자 마자 깨물게 하셨는데......잊혀졌던 모습들이 선하게 떠오릅니다.엄마는 정갈하게 집안을 청소하시고 맛있는 나물과 오곡밥을 지어 동네 사람들과(아홉집을 돌며 먹어야 한다고 했음)나누어 먹던 정월 대보름의 모습들이 생각납니다.잘 읽었습니다.
옛날에는 그흔한 깡통이 귀했던지~~ 며칠전 부터 깡통주워 모아 놓고 우린 철둑옆에 살아서 철뚝을 새까맣게 다 태워놓곤 했죠 ㅎㅎㅎ
쥐불놀이 하다 옷 태워 먹구...쫗겨 나구...ㅋㅋㅋ
저에겐 참 생소한 추억을 갖구 계신게 부럽네요...보름에 대한 추억은 아무것도 없네요..ㅎㅎ
보름이면 동생은 살좀찌라구..두부를..난 더 클려구..콩나물을 젤먼저 먹었지요..눈온 아침이면 장독위 하얀눈 한웅큼 집어와 한입씩 먹으며 속 시원하라구...
박초시님, 우리 박씨 가문엔 그렇게 심한 장난끄러기는 없는디요?...하하하~~너무나 소중한 추억을 가지신 초시님이 마냥 부럽네요...올 부럼은 사다 놓고 깜빡 했는데 혹시 더위 먹으면 어짜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