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단계’ DUR을 전국 6만여개 병의원과 약국에서 오는 12월부터 일제히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처방의약품은 물론이고 원칙적으로 비처방약, 비급여 의약품도 모두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의무화 입법이 지연되면서 자칫 ‘껍데기’ 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명분과 당위성은 충만하지만 수용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시행 권고만으로 요양기관의 참여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선행돼야 할 과제 또한 산적하다.
◆의약단체와 회원들의 괴리=이의경 교수팀은 고양시 시범사업을 평가하면서 의약사 동시 실시 방식을 한국형 DUR 모델로 제안했다.
약국단독 점검보다는 의료기관과 약국 이중점검이 효과가 더 크고 약제비 절감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분석결과에 기반한다. 따라서 의약사 모두를 DUR로 유인하는 것은 성공을 위한 기본 전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약사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라면서 명분론을 강조하고 있다. 의약단체 또한 이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일선 회원들과는 정서적 교감이 커 보이지 않는다.
DUR은 국민들에게 생소한 것만큼이나 일선 의료기관과 약국에 종사하는 의약사들에게도 낯설거나 귀찮은 제도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유무형의 시스템 변화를 요하는 올해는 더욱 그렇다.
정부는 오랜기간 참고 기다렸다는 듯이 시장형실거래가(10월)나 외래처방 인센티브 사업(10월), 쌍벌제(11월28일) 따위 새 제도들을 도입했거나 준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DUR까지 확대 시행하겠다고 하니 일단 관심도 없지만 귀찮기만 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개국약사는 “당연히 도입해야 할 제도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올해인지 모르겠다. 생소한 제도들을 한꺼번에 쏟아놓고 동참하라고 채근만 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의사들은 불신도 크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회원들은 일단 잘 모르고 관심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진료정보가 실시간 심평원에 집적돼 진료행태가 노출 될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DUR 시스템과 청구시스템은 별도 운영되기 때문에 명백히 오해에서 비롯된 '안티정서'이지만 설득작업이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이다.
◆강제보다는 자율로=의사협회 한 임원은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자는 제도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좋은 제도를 도입하면서 굳이 반발을 살 필요가 있느냐”면서 “제도가 연착륙될 때까지는 자율시행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의경 교수팀도 같은 맥락에서 단계적 의무화를 제안했다.
연구팀은 연구보고서에서 “향후 전국시행으로 확대하고 전산시스템 등이 어느 정도 정착돼 DUR 팝업창에 대한 요양기관의 관리능력이 함양될 경우 의무실시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DUR 법안이 답보상태에 빠지면서 강제가 아닌 자율시행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거꾸로 제도적 기반은 다소 불안정 할 수 있다.
◆잠재된 임의조제 논란=의약분업 시행이후 끊이지 않고 제기된 문제가 DUR 의무화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또 불거지고 있다. 약사의 임의조제 허용 논란이 그것이다.
약국 점검결과 DUR 경고창이 뜨면 약사는 의사에게 문의해 조제를 변경할 수 밖에 없다. 논란은 의사와 연락이 안됐을 때 취할 수 있는 예외조항에 있다.
입법안 초안은 의사가 응급환자를 진료중이거나 수술 중이어서 약사의 문의에 즉각 응대할 수 없는 경우 약사가 임의대로 처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의사협회는 그러나 현재도 문제가 되는 약사의 임의조제를 합법적으로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약사회는 또 생각이 다르다. 의사와 연락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무작정 기다리게 하거나 돌려보낼 수 없기 때문에 이 조항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의약분업 이후 발생한 임의조제 논란이 DUR 입법과정에서도 재현되게 된 셈인데, DUR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의약사간 중재와 협력적 관계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교통정리가 시급하다.
◆시스템과 인프라=DUR의 성공을 위해서는 전산시스템도 매우 중요하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DUR이 전국적으로 확대시행된 이후 어떤 혼란이 발생할 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컴퓨터가 다운되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중소병원의 경우 DUR 프로그램 표준화를 위해 1년간 유예하는 고시를 만들었지만 전산환경이 취약해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DUR 시스템을 통한 정보 송수신 시간도 문제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단 둘이 대면하고 있는 의사 입장에서 사전점검 시간에 발생할 수 있는 ‘어색한 정적’이 곤혹스러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시스템 문제는 복지부와 심평원의 몫이다. 심평원은 송수신에 걸리는 시간은 2~3초 이내로 단축키로 했다. 이달부터 시작될 전산부서 자체 모의운영과 다음달 시범운영을 통해 시스템의 성능과 안전성은 검증될 전망이다.
요양기관의 인터넷망이 작동되지 않으면 DUR 점검은 아예 할 수 없다는 점은 근본적 한계다. 또 노후 컴퓨터 교체는 정부 지원없이 요양기관이 부담해야 할 부분이다.
◆일반약 확대 적용=복지부 관계자는 “2단계 DUR 전국 확대시행은 모든 의약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비급여 약제 코드화 작업을 이달 중 종료하고 일반약도 제주도 시범사업 평가결과가 나오는 데로 전국 확대시행 전 코드부여 작업을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약을 DUR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병용금기나 다른 금기 항목이 있는 일반약을 선별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약사회 관계자는 “처방의약품은 시범사업 과정에서 거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의약사간 협조체계도 원활한 편”이라면서 “하지만 일반약은 환자들이 신상정보 제공을 꺼려 어려움이 크다”고 귀띔했다.
그는 “환자에게 아이디카드를 제공해 개인정보 확인이 쉽도록 하거나 일반약 겉포장에 DUR 대상 의약품 표시를 별도 표기해 환자의 순응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행정비용=DUR 사업은 처방, 조제 이전에 전산점검 행위가 추가되면서 불가피하게 시간과 비용이 추가 투여될 개연성이 높다.
제주도약사회 관계자는 “일반약 4개 품목만 해도 행정부담을 느끼는 데 전 품목으로 확대할 경우 (행정비용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이 때문에 “국민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인 데 보상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DUR 수가신설을 통한 보상 필요성을 제기했다.
실제 정부와 의약단체 간담회에서는 DUR 전국 확대 사업이 안정화되고 정착단계에 이르면 소요시간, 업무량, 재정절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수가에 반영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러나 “고양시 시범사업을 통해 (DUR 시행시) 약값절감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 부분을 수가에 반영하는 문제를 보험부서와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운을 뗀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환자의 역할과 홍보=이의경 교수팀은 “DUR 성공실시에는 환자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면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실제 심평원은 제주도 시범사업 실시 이후 공중파와 케이블 등을 통해 DUR 홍보에 본격 나섰다.
국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환자들에게 DUR의 의미와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환자들이 요양기관 선택시 DUR 실시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인증표식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