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교직 생활을 명예 퇴직으로 마무리하고 3년 반을 잘 쉬다가 불현듯 9월 1일 자로 2학기 기간제 교사가 되어 다시 교단으로 돌아간 뒤, 1월 9일에 종업식을 잘 마쳤다.
늦여름부터 한 겨울까지 나름 애를 많이 썼고 고생도 했으며 보람도 있었다.
처음 두 달여는, 아 다시 나오니까 새롭고 좋다, 는 느낌이 컸는데
석 달 째 접어드니 힘도 딸리고 다시 놀고 싶어서 후회도 되더라. ^^
하지만 맡은 기간 동안 단 하루도 결근, 지각 하는 일 없이 성실하게 근무를 했으니
그게 가능하도록 건강이 허락되었음에 일단 감사가 크고
말 많고 탈 많은 요즘의 교직 환경 속에서 단 한 건의 학부모 민원 없이 건투할 수 있었음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종업식 며칠 전에 교무부장이 내게 말하길, 선생님이 맡으신 반이 1학기 때 학부모 민원이 여러 번 있었는데 2학기엔 단 한 번이 없었다고 많이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 ㅎㅎ 그 말을 들으니 좀 그랬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느 학부모가 어떤 민원을 제기했었는지 내게 구체적으로 자세히 말을 해줬어야 미리 대비를 했었을 것 아닌가?
한 학기가 다 끝나서야 그런 말을 해주다니 참 황당하였지만, 어쨌든 나는 무사히 내 책임을 다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반 년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미안함이다..
나는 평생 동안 스스로를 무능한 주부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무능한 교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도 옛말일 뿐..
젊고 유능한 선생님들 틈에서 퇴직 후 잠시 컴백한 늙다리 교사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자괴감 그 자체더라.
일단 내가 쉬는 사이에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이 엄청나게 진화해서 멀미가 났다.
어떤 경로로 접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다보니
예전엔 공문 한 건 기안 하기가 식은 죽 먹기였는데 지금은 식은 땀 그 자체였고
학기말 성적 처리 과정도 산 넘어 산,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옆 반 선생님을 불러서 어느 버튼을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물어봐야 했고
그 과정에서 늙다리 교사의 자존감에는 실금이 쫙쫙 갔다..
물론 유능하고 심성 고운 옆반 선생님은 아무 불평 없이 도와줬지만
자기도 바쁜데 속으로야 얼마나 짜증이 났겠나..
게다가 정보 활용 능력이 딸리다보니 수업 설계 및 학습 자료 탐색도 늘 역부족..
그런 나 자신의 한계에 한숨을 쉬며 우리 반 애들을 바라보노라면 너무도 미안할 수 밖에.. ㅠㅠ
하지만 그런 자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래, 나는 교사로서의 디지털 소양이 너무도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교육의 본질은 아날로그야.
내가 가진 교사로서의 기본 자질로 승부하면 돼, 하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렇게 힘내며 가르쳐 온 지난 한 학기, 아이들과 나는 사랑으로 교감하며 따뜻한 교실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절대로 편애하지 않고 골고루 애들을 사랑할 것,
내 수업은 항상 재미있어야 할 것,
교직 생활 내내 지켜왔던 이 두 가지 철칙은 이번 학기에도 잘 지켜졌다고 자부한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고 양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아가 한 명의 행동 교정에도 성공했고
급식 시간에 밥을 거의 먹지 않는 아가 두 명의 행동 교정에도 힘쓴 결과 한 명은 끝내 실패했으나 한 명은 성공했다.
3학년인데도 고학년 스타일의 교우 관계 양상을 보이며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던 여자 아가들 두 그룹도 그 사이를 잘 조정하여 평화롭게 만들어서 마무리했다.
1월 9일 종업식날 아이들과 헤어지는 순간, 1년이 아닌 반 년 담임이었는데 이별의 감회가 뭐 그리 깊겠나 했었는데
우리 반에서 덩치가 제일 큰 남자 아가가 내 품에 안겨 우는 바람에 나의 눈물 버튼도 눌려지고 말았다.
울지 마 울지 마, 달래면서 속으로는, 맨날 옆반 선생님 신세만 지는 늙고 무능한 선생님이었어서 미안해, 그런데도 사랑해준 너희들이 너무 고마워, 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ㅠㅠ
대다수의 아가들과 그렇게 눈물의 이별을 하는 것으로 나의 한 학기는 막을 내렸다. 감사함 속에서..
기간제 교사를 시작한다고 삶방에 출석부로 신고를 했었는데 어느새 반년이 흘러서 끝났음을 보고합니다. ^^
댓글로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삶방 가족 여러분 감사드려요.
즐거운 주말과 휴일 되시기 바랍니다!
우왕~~ 일등 댓글 달려하셨던 그 마음을 일등으로 접수합니다. ㅎㅎ
유현덕님은 어쩜 그렇게 사회성도 뛰어나실까요?
만인을 무장해제 시키는 따뜻함과 소통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초등교사는 제 적성에 딱 부합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주 안 맞기도 해요.
하지만 그 길로 들어섰으니, 제게 맞는 면은 발전시키며 안 맞는 면을 다듬느라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평생을 좋은 직업에 종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지내지요.
종로에서 상면하여 너무도 반가웠던 현덕님, 앞으로도 글 정 많이 쌓으며 잘 지내십시다.
참 감사했어요! ^^
공백의 3년반
그동안의 변화속을
헤집으며
초심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 보살핌
힘들었어도 정말 오지게 보람된 시간이었죠
젊어서는 열정하나로
달리지만
경험쌓이고 지혜가 생기면 더 멋진 선생님이 되는거죠
한학기동안 애쓰셨습니다
저 위에 운선님이 정아님을 강경화 장관 닮았다시는데 저도 한 표 찍습니다. ^^
세련된 미모에 은발이 후광이 되어주더군요.
모든 게시글에 빛을 더해주시는 댓글의 여왕,
모든 사람에게 사랑 주시고 사랑 받으시는 정아님은 삶방의 진정한 주역이세요.
또 만나고 또 또 만나고픈 정아님, 늘 건강하시다가 속히 또 봅시데이~~^^
한학기 수업 복귀하신것 참 좋은일 이지요.
퇴직하시고 좀은 아쉬웠던 부분을 한번쯤
다시 돌아볼 소중한 시간 이었을것입니다.
저도 한쿼러 정도만 다시 다니던직장에
복귀할 생각 이었는데 이곳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실행을 못하였지요.
반가웠읍니다.
그러고 보니 그옛날
저도 한달 정도 선생님 소리를 들었네요.
늘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시애틀 찍고 김제 땅 밟으신 뒤 종로에 오셨던 무악산님 정말 반가웠습니다. ^^
삶의 베이스 캠프가 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곳이시니
그에 따른 장점과 단점 중에 그래도 장점이 더 크실 거라 생각합니다.
엊그제는 무악산님과 짧은 인사 밖엔 못 나눴지만
다음에 또 뵙게 되면 시애틀 이야기도 청해 듣고 그러고 싶네요.
선생님 소리도 들으셨다 하니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무악산님,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
엇그제 모임에서
늦게 온 저에게
잘 모르는 데도 인사까지 건네신
정성에 감사했습니다
저야 글에서 수시로 봐서 잘아는 편이지만요
두 자녀가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편인 저에게
이런 글은 자식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늘 달항아리님의 안녕과
그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쪽빛하늘님, 이미 여러 번 만난 듯 전혀 낯설지 않던 친근한 모습과 포근한 미소가 참 좋았습니다. ^^
네이버에서 사용하는 제 닉네임도 쪽빛이랍니다, 쪽빛바다요. ^^
두 자녀가 교육계에 몸 담고 있다시니 더욱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댓글창으로 방문해주셔서 많이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에서 뵈면 더 반갑게 인사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시어요.
참 스승님은
바로 이런 분이야 되새기게 하시는
사랑의글 큰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오로지 진심은 승리한단 진리를
일깨위 주심에 많이 배웁니다
달항리님의 가치관 소명등을 잘 느껬습니다~감동입니다
우리 고마우신 지인 운영자님, 깊은 밤에 주신 댓글에 이제야 답댓글 씁니다.
저는 그저 한국의 초등교사를 한 줄로 세운다면 중간 정도 밖엔 못 되는 사람입니다.
퇴직 전엔 중간 보다는 좀 앞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나가보니 중간이면 다행이겠더라고요ㅎㅎ
늘 카페 살림에 신경을 써서 물 샐 틈 없이 잘 챙겨주시는 덕분에 저희들이 즐겁게 여기서 잘 지냅니다.
항상 많이 감사드립니다! ^^
여정은 선생님
아휴 고사리손으로 꼭꼭 눌러 쓴 편지가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럽습니다
4학년 때에도 저희들과 함께 해 주세요 ㅎㅎ
우리 고우신 가리나무님, 간결하고도 호소력 있는 출석부에 제가 감동을 크게 받았습니다.
모름지기 글은 저렇게 써야 해, 라는 깨달음을 얻은 기분입니다.
저도 출석부 외엔 딱히 글을 못 쓰고 지냅니다.
그러니 우리 출석부 만큼은 끝까지 사수하며 지냅시다! ^^
지우하고 다은이의 한글 급이 나하고 비슷해서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합니다! ㅋㅋㅋㅋ
우리 반에서 제일 총명한 깨비야, 우리 공부하게 국어 책 펴자^^
오늘은 문단 속에서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을 찾는 공부를 할 거야.
옳지, 우리 깨비 참 잘하네~~ 너는 정말 총명해서 미국 유학 가도 잘하겠어.
내가 대학교 추천해줄까? 아이비 리그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는 어때? ㅎㅎ
아, 잼나당^^
깨비님도 잼나쥬? ^^
어련 하셨겠어요.
달항아리님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와 같은 마음 일겁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여정은 선생님..
정말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미남이신 우리 오라버니. ^^
과찬에 부끄럽습니다.
제가 교직 생활 내내 복이 많아서
힘든 학부모와 힘든 아가들을 거의 안 만나고 지냈어요.
이번 아가들도 넘 예뻤어요.
3학년 모든 학급에 다 들어가시는 영어 전담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가들이 3학년에서 제일 착하다 하셨지요.
그런 행운 속에서 반 년이 행복했습니다.
종업식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한참 지난 것 같네요.
겨우내 잘 쉬고 또 새 봄을 잘 맞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드님의 속한 쾌유를 기원합니다.
달항아리님, 덕분에 한동안 어린시절을 그려보며...
따뜻한 마음으로 고운 글에 흠뻑 빠져 봅니다.
아이들의 천사같은 고사리 글씨가 어쩜 저리도
순수 그 자체인지 글씨체가 맑디 맑게 보이네요.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기회가 되면 더 하셨으면 아이들에게
참 좋은 선생님과 함께 할턴데.., 하는 아쉬움도 드네요.
당분간은 편안(便安)히 좀 쉬시고요.
4번째 추천(推薦) 드립니다, 하하., ^&^
삼족오님, 제가 답댓글이 늦어서 송구합니다.
카페에서 댓글 답댓글 안 놓치려면 그 또한 노력이 필요한데요. ^^
늘 진정성 가득한 격려와 추천으로 힘을 실어주시니,
삼족오님은 삶방의 귀인이시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요즘 잘 쉬고 있습니다.
잘 쉬다가 3월 신학기에 여건이 맞으면 1년만 더 기간제 근무를 할 생각도 있고요.
삼족오님 항상 감사드려요!
늘 평안한 나날 되시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