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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사부(師父)의 과거와 사문(師門)
수련이 끝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부.
오늘도 귀신같은 사부가 달랑 옷가지만 들고 백산 앞에 나타났다.
"이제 너는 본문의 기본공(基本功)을 모두 익혔다. 이제 사문(師門)의 내력(來歷)과
이 사부의 과거를 알려주마."
눈을 지그시 감은 팽무도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 무림(武林)은 세 개의 파벌(派閥)이 존재하고 있었다.
소림을 비롯한 구파일방이 모여서 결성한 천무맹(天武盟),
패천마궁(覇天魔宮)을 비롯한 마세들이 모여서 결성한 천마맹(天魔盟),
그리고 하북팽가(河北彭家)를 비롯한 오대세가의 연합체인 오천맹(五天盟)이 그것이었다.
그 중에서 세력이 가장 강대했던 곳은 오대세가의 연합세력인 오천맹이었다.
천무맹과 천마맹이 힘을 합쳐야만 간신히 오천맹에 대항할 정도였다.
자신들이 강호무림의 정통(正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그런 세월을 살아왔던 천마맹과 천무맹은 기껏 세가의 연합인 오천맹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천마맹과 천무맹은 오천맹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 동맹을 맺게 되었다.
부패와 타락으로 망해가던 원나라 조정은 강호무림의 반발을 우려한 나머지
무림인의 대표를 선발하여 그에게 무림왕(武林王)이라는 칭호를 하사하고
무림의 통치권을 주기로 하였는데,
뜻밖에도 오천맹의 맹주인 도왕(刀王) 팽인덕(彭仁德)에게 무림왕의 칭호가 하사된 것이었다.
강호무림인과 오천맹(五天盟)은 환호의 박수를 보냈으나 강호의 정통을 주장하고 있던
천무맹의 입장은 달랐다. 정파(政派) 천년(千年)의 자존심이 일개 세가(世家)에게 밀린 것이다.
천무맹은 강호 명문정파(名文正派)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함이었고,
천마맹은 한창 세력을 키워나가던 천사맹(天邪盟)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천마맹에서는 비급과 영단을, 천무맹에서는 인재를 책임지기로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천무맹에서는 천마맹 및 천사맹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으로
오천맹에 공동인재 양성을 제의해왔다. 아울러 천사련(天邪聯)이란 괴 단체에서
혈마강시(血魔疆屍)라는 희대(稀代)의 마물(魔物)을 제련하고 있다는 정보와 함께.
오천맹에서는 이를 거절할 명분도 없었을 뿐더러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자신들의 후대에게 명문정파의 무공을 전수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자신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고,
기꺼이 각 가문에서 자질이 뛰어난 젊은이들로 선출하여 백 명을 보냈다.
그들은 오 년간의 연공을 마치고 백살대(百殺隊)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백살대의 활약은 눈부셨다. 수없이 많은 마인과 악인들이 죽어나갔고,
정파의 허울을 쓴 위선자들을 처단할 때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백살대의 활약상이 극에 달한 것은 천사련의 사혈마강시(邪血魔疆屍)를 상대할 때였다.
도검불침(刀劍不侵)이며, 사혈(死穴)도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지를 가지고 있는 강시로,
일정수준 이상의 무림고수에 저주의 사혈대법(死血大法)을 걸어 온갖 독초와 혈랑의 피,
그리고 어린아이의 심장을 혼합한 액체 속에 오 년간 담갔다가 꺼내면 완성된다는 저주의 강시.
천사련의 사혈마강시는 일반무사는 접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지만 도강,
검강을 자유롭게 다루던 백살대에게는 결코 무적이 아니었다.
그런 백살대에게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공이 약했던 하위 열 명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시뻘건 혈광을 뿜어내며 한 마을의 일반 양민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도륙해버린 사건이 생겼다.
처음에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던 무림인들도 그런 사건이 두세 번 일어나자
백살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천무맹에서 발표한 전문이 변명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고 백살대를 무림의 공적으로 만들어버렸다.
"백살대는 오백 년 전의 대마두 혈수천마(血手天魔)의 독문무공인 혈수마공(血手魔功)을 익혔다.
그들은 천무맹에 오기 전에 이미 이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천무맹의 발표에 전 무림은 경악했다. 백살대가 아무리 부인해도
한번 떠나버린 민심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음모라고 외쳐도 누구 하나 듣는 이도 없었다.
결국 백살대는 강호무림의 공적으로 지목되었고, 백살대라는 이름도
백살마대(百殺魔隊)라고 바뀌었으며, 정(正)과 마(魔)로부터 쫓기기 시작했다.
오천맹은 강호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맹을 해체하게 되었으며,
자식을 처단하기 위하여 부하들을 내보내야만 했다.
그때 백살마대의 대부분은 죽었고, 오대세가의 정예들도 자신들의 형제를 죽이면서
대부분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오대세가에게 내려진 강호의 심판은 오십 년의 봉문이었다.
팽무도도 온몸에 다섯 개의 검이 박힌 채 자신에게 무기를 날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 자신의 아버지인 도왕(刀王) 팽인덕(彭仁德)도 있었다.
자신의 가슴속에 박혀있는 이 도(刀), 그는 아버지를 향해서 외쳤다.
"그렇게도 저를 믿지 못하겠습니까. 이것이 음모였다는 것은 아버지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너무나 억울해서 그들에게는 죽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그래도 질긴 목숨이었는지 죽음의 순간, 한 노인의 구함을 받았다.
자신을 구해준 노인은 하늘 아래 가장 비천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천비(賤婢)라 하였다.
팽무도를 치료하느라 모든 진력을 다 써버린 노인은 팽무도에게 자신의 사문을 부탁하고 숨을 거두었다.
"백산아."
"백산 이놈! 사부님이 말씀하시는데 감히 졸아!"
"자기는요! 사부님, 다 듣고 있었다고요. 사문 이야기하실 차례잖아요?"
졸다가 화들짝 놀라며 깨어난 백산은 약간 계면쩍어 하며 정신을 급하게 추슬렀다.
"이제부터 네놈의 사문(師門) 이야기니까 잘 들어라, 이놈아."
'네놈 사문? 왜 사부는 우리 사문이라는 말하지 않고 네놈 사문이라고 하는 거지?'
직감적으로 백산은 무엇인가 사연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팽무도를 구해준 그 노인은 자신을 혈뇌문(血雷門)의 전인이라고 하였다.
혈뇌문은 천오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나 폐쇄적인 문규(門規)로 인하여 지금으로부터 칠백 년 전에 사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때 대부분의 문도가 죽고
사문의 내공심법 후반부와 사문의 보물인 각천비(脚天匕)가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반쪽의 내공심법으로는 결코 혈뇌문의 본신 무공을 익힐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일인 전승자(一人傳承者)로 바뀌고 말았고,
사문의 유훈(遺訓)이 사라진 후반부의 내공심법과 잃어버린 각천비를 찾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팽무도를 살린 천비는 팽무도의 내공심법이 사문의 내공심법과 동일함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팽무도를 살렸고 사문의 숙원(宿願)을 팽무도에게 일임한 것이다.
"그곳에서 몸을 치료한 나는 혈풍뇌전심법(血風雷電心法)을 연마하고 강호로 나섰다.
얼굴도 엉망으로 망가져서 알아볼 사람도 없었거니와 백살대 사건도 오 년이나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십 년 전에 각천비를 찾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오행마비(五行魔匕)와 뇌혈비(雷血匕)로 불리고 있더구나.
각천비를 알아보는 방법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비도의 손잡이를 뽑아내면 고리를 걸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으니 말이다."
사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백산은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스레 밀어올린 채
경청하고 있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자신의 사문이기도 한 혈뇌문(血雷門)에는 두 가지의 보물이 있다.
일명 각천비(脚天匕)와 수천비(手天匕).
각천비(脚天匕)는 발목 쪽에 차는 비도로,
화천비(火天匕), 빙천비(氷天匕), 목천비(木天匕), 금천비(金天匕), 토천비(土天匕)와 뇌천비(雷天匕)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천비(手天匕)는 손목에 차는 비도로 생천비(生天匕), 사천비(死天匕), 풍천비(風天匕),
운천비(雲天匕), 독천비(毒天匕)와 하나의 천비비(天秘匕)로 되어있다.
* * *
우뢰봉(雨雷峰) 정상.
백산 앞에는 보통의 것보다 훨씬 긴 폭을 가진 팔찌와 각반, 그리고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이제 너에게 정식으로 사문의 위를 넘기겠다. 너는 이제 혈뇌문(血雷門)의 삼십일대 문주다.
천비비로 손목에 피를 내어 모든 비도(飛刀)를 적시거라."
"네."
백산의 피를 먹은 모든 비도에서 마치 어린아이가 우는 듯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수천비(手天匕)에서는 혈광이, 각천비(脚天匕)에서는 오행특유의 빛이 솟아나오며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사문의 신물(神物)에 구 배를 하도록 하여라."
백산이 사문의 신물에 대해 정중하게 구 배를 올리는 중에도 팽무도의 설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사부도 심공은 익혔지만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고 했다.
단지 익힌 것이라고는 바람을 이용하는 풍천비의 비밀을 약간 엿볼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 바람의 비밀이 사부를 풍뢰곡 바닥까지 갈 수 있는 능력을 주었고,
그곳에 있던 만년석균(萬年石菌)을 채취하여 약수천(藥水泉)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더구나 비도의 시험이라는 것이 있어서 더 이상 무공을 익힐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혈뇌문(血雷門)의 문주가 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너는 다르다.
나와 어떻게 다른지 몰라도 너는 완전한 혈뇌문 무공의 위력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같은 풍천비의 비밀을 풀었음에도 너에게서 나온 기운은 하늘의 기운이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네가 진정한 혈뇌문의 전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부의 생각이다."
혈뇌문의 무공은 특별한 투로가 없다고 한다.
그런 것 때문에 백산을 뇌룡현으로 보내서 싸움기술을 가르친 것이다.
"그 격투술을 바탕으로 전개할 수 있는 열두 가지의 무공은 있다."
하늘에서 죽음의 비가 내리니, 천멸우(天滅雨)
살아있는 모든 것을 멸하네. 생혼멸(生魂滅)
화염지옥이 탄생하니, 화염폭(火焰爆)
죽은 자의 혼마저 파괴하네. 사혼파(死魂破)
핏빛 바람이 불어오니, 혈광풍(血狂風)
산천초목이 사라지네. 무한극(無限極)
검은 구름이 울부짖으며, 묵운명(墨雲鳴)
분노한 하늘이 소리치고, 분천뇌(奮天雷)
죽음의 독비가 내리니, 독우락(毒雨落)
금강보다 단단한 것이 부서지리라. 금강파(金剛破)
모든 한이 대지로 돌아가니, 무한토(無限土)
더 이상 분노는 없어라. 광풍무한(狂風無限)
열두 개의 비도를 이용해서 펼치는 무공을 표현하는 말이었으나 초식명만 있을 뿐
그 외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어찌 보면 하나의 노래 같은 무공초식명이었다.
"혈뇌문의 무공의 마지막 경지는 이 사부도 모른다.
익히고 못 익히는 것은 너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리고 이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마."
팔찌와 각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천목환(天沐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천비와 연결된 뇌룡사(雷龍絲)를 담을 수 있는 부분과 각각의 천비를 꼽을 수 있는 부분으로
되어있고, 완전하게 착용하면 피부와 거의 일체화가 되어 거의 느낄 수 없게 된다.
또한 천비와 천목환을 연결하는 줄은 뇌룡사라 하고 천참사보다 훨씬 질긴 것으로
어떠한 신검이나 신도로도 끊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검강지기를 발휘하는 검으로도 끊어지지 않으니 이 세상에 이보다 단단한 것은 없다.
그리고 뇌룡사 또한 훌륭한 무기였다.
비도(飛刀)를 날린 연후에 그 줄로서 상대방의 무엇이든지 잘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주가 되기 위해서 천비를 착용하는 자는 시험을 받게 된다고 한다.
첫째가 천비를 착용한 자의 피를 흡수할 수 있는지 여부이고,
둘째는 착용자의 몸과 동화여부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혈뇌문에는 문주의 신물이 따로 없다.
오직 천목환(天沐環)의 착용여부로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문의 병기에 대한 사부의 모든 설명이 끝났다.
백산의 앞에 놓여져 있는 천목환은 마치 인간의 피를 바라는 악마의 유물 같았다.
"일단 착용해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터,
먼저 천목환을 착용하고 혈풍뇌전심법(血風雷電心法)을 운용하도록 하여라."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내공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로 살랑살랑 미풍이 부는 듯 하더니 어느 사이 백산의 주위로 은은한 혈광이 어리기 시작했다.
양팔과 다리에 있는 동맥으로 무엇인가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백산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운공을 하고 있는 백산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고 있던 팽무도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천목환(天沐環)을 착용한 백산의 동맥 부근에서 뇌룡사를 따라서 핏줄기가 열두 개의 천비로 흡수되고,
혈광(血光)을 내뿜던 천비들이 그대로 바위 속으로 박히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위 속에 박힌 천비들로부터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백산을 향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혈광이 서서히 백산의 몸을 감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마치 열두 개의 줄이 달려있는 연처럼 위로 부상하던 백산은
이장 정도의 높이에서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백산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혈광이 점점 더 강해지고,
마지막에는 마치 끈적끈적한 액체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그것들이 백산의 콧속으로 사라지면서 백산이 몸이 천천히 하강하였다.
백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 바위 속에 박혀있던 열두 개의 천비(天匕)는 백산의 발목과 팔목 속으로 사라졌다.
"휴-! 이제 끝이 났나?"
백산은 재빠르게 자신의 몸을 점검하느라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자신의 앞을 보았다.
"어? 사부님 아직도 그렇고 계셨어요?"
아직도 경이로운 표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연하게 서 있는 팽무도를 향해서 백산이 말을 걸었다.
"이제부터는 매일매일 낮에는 이곳에서 심법(心法)을 연공하고
밤에는 천비를 발출하고 거둬들이는 수련을 하자꾸나.
그래서 이 사부가 생각해낸 방법인데, 이 기회에 너도 글 쓰는 방법도 익힐 겸해서
네놈이 알고 있는 내공심법상의 글을 천비를 이용해서 허공에다 써라."
그날부터 백산의 글쓰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천비가 붓이 되고, 허공이 종이가 되어서 글을 쓰고 있는 백산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했다.
백산이 글씨를 쓰고 심법을 수련하기를 일 년여,
더 이상 백산이 내공심법 상에서 써볼 글은 없었다.
하루는 팽무도가 백산을 불러놓고는 물었다.
"내공심법상의 글을 허공에다 쓸 때에 무엇을 느꼈느냐?"
"우리 사문의 내공심법은 참 어렵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사부님이 또 패시겠죠?
글자 한자 한자를 써내려 갈 때마다 그 글자에 해당하는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水)자를 쓸 때는 잔잔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하고,
화(火)를 쓸 때는 뜨거운 불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이렇게 모든 글자의 의미에 해당하는 기운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렇다. 그것이 사문 무공의 마지막 경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너를 보면서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그 기운을 극대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천자문을 이용하여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백산의 천자문 공부는 줄기차게 이어졌고 심법의 운용도 차츰 익숙해져 갔다.
일 년 만에 백산은 천자문도 전부 뗐다.
지금도 백산은 우뢰봉 정상에 앉아서 혈풍뇌전심법(血風雷電心法)을 운용하고 있었다.
내공이 운용되는 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수련에 내심 답답함을 느끼던 백산은 마침내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다.
며칠 전부터 백산의 심법운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자신이 바람의 비밀을 터득했을 때 썼던 방법을 써보기로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상생(相生)의 기운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상극(相剋)의 기운을
자신의 몸 안에서 충돌시켜 그 충돌로 일어나는 힘을 자신의 기운으로 소화시키는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수(水)의 기운을 빙천비만을 통해서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이어서 수의 기운과 상극(相剋)인 화(火)의 기운을 화천비(火天匕)를 통해서 끌어올렸다.
두 가지 기운이 어느 정도 몸 안에 들어찼을 때 백산은 그것들을 과감히 충돌시키기 시작했다.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있던 백산의 몸이 충격을 받았는지 기우뚱하니 기울어지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거 이러다 뒈지는 것 아냐? 괜히 시작했나?"
그러나 기호지세(騎虎之勢)라 백산이 멈추고 싶다고 멈추어지는 상황이 아니었다.
서로 반발하던 두 기운은 거대한 힘이 되어 백산의 온몸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두 가지만 가지고는 안 된다."
백산은 다시 다른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금천비의 금의 기운과 목천비의 목의 기운을 끌어올렸고,
그것들을 몸속에서 충돌시켜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뇌(雷)의 기운과, 파멸의 기운을.
백산의 입가에 조금씩 혈흔이 비치고 백산의 상태에 깜짝 놀란 팽무도가
급하게 진기를 불어넣고자 백산의 몸에 장심을 밀착시켰으나
백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반발력에 피를 토하고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지금 백산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심법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백산의 주위에서 서서히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풍(風)의 기운이 백산의 몸 속으로 급격하게 유입되어, 온몸을 찢어버릴 듯이 회오리치고 있는
각각의 기운들을 모두 감싸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백산의 몸은 바람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속과 몸 밖에서 부는 바람은 서로 하나가 되어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비도들을 관장한다는 천비에서 새로운 기운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의 기운이었다. 백산의 몸으로 들어온
그 거대한 기운은 모든 다른 기운들을 포용하면서 백산의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조용히 눈을 뜬 백산은 빙천비를 가지고 하늘에다 천천히 빙(氷)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산의 주변 십여 장에 몰아치는 극빙(極氷)의 기운이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다시금 백산이 허공에 화(火)자를 새기려고 하자 그때,
"그만! 그만해라, 이놈아!"
급하게 팽무도가 백산을 말렸다.
더 이상 두고 보았다가는 이곳 우뢰봉이 완전히 없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부, 지금 이것의 이름을 지어야겠는데 무어라고 하죠?"
백산이 천자문을 배우면서 펼친 무공의 이름을 짓겠다고 팽무도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네 녀석 주제에 무슨 무공 이름이냐, 이놈아. 그냥 그대로 천자문(千字文)이라고 하면 되지."
팽무도가 실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백산에게 핀잔을 주었다.
비록 천자문(千字文)이라는 곳에 위력이 숨어있지는 않겠지만 백산이 펼쳐 보인
그 위력에 경악해버린 팽무도는, 이름을 짓고 싶어도 마땅한 이름을 지을 수가 없었다.
천자문을 쓰면 그런 엄청난 위력이 나오는데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그냥 천자문(千字文)이라 얼버무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순진한 백산 녀석은 천자문(千字文)이란 말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사부님이 지어주신 것 그대로 사용하죠.
천자문(千字文), 그런데 어째 무공이름치곤 조금 촌스럽네요."
백산의 말에 팽무도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혀를 끌끌 차고 말았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디
즐~~~감!
즐독 입니다
즐독입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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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