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LG 감독은 지난 29일 3차전서 패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4시까지 데이터와 씨름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지만 이날만은 녹화를 떠놓은 SBS 월화 드라마 ‘야인시대’를 시청한 후 잠을 청했다. 그리고 4차전 당일 이른 시간에 잠자리를 털고 산보에 나섰다.
‘어제는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상념에 잠겨 산보에서 돌아온 뒤 김감독은 맑은 정신으로 다시 데이터를 꺼냈다. 특히 공격 첨병인 1번 유지현과 2번 이종렬의 타격 성적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유지현은 출루율이 떨어졌고 이종렬은 땅볼 타구가 많은 데다 아웃코스에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반해 5번 이병규는 타율은 낮았지만 타구방향과 타구의 질이 괜찮았다.
포스트시즌 들어 좋은 흐름이 이어진 탓에 타순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던 김감독은 다시 장고에 빠졌다. ‘데이터를 믿고 타순을 바꿀 것인가,아니면 그냥 밀어붙일까.’
고심 끝에 김감독은 데이터를 믿기로 했다. 내친김에 4차전 선발 오더를 써내려갔다. 이병규를 2번에 배치하고 타격감이 좋은 최동수는 7번에서 5번,이종렬은 7번 타순에 이름을 적었다.
결과적으로 김감독의 오더는 성공을 거뒀다. 이병규는 2번 타순에서 2안타를 뽑아내며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부담을 덜어낸 이종렬도 7번에서 플레이오프 첫 안타 등 2안타를 때려냈다. 최동수가 부진했지만 전반적으로 상하위 타선이 고른 활약을 펼쳤다.
데이터를 중시한 마운드 운영도 나름대로 적중했다. 7회초 무사 1·2루 장성호 타석. 그는 전 타석까지 3안타를 때려냈을 만큼 상승세였다. 여기서 김감독은 중간에이스 장문석을 내리고 과감히 좌완 원포인트 유택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유택현은 정규 시즌서 14타수 3안타로 장성호에 우위를 보였기 때문.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유택현을 기용하는 것은 도박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김감독은 데이터를 믿었고 유택현은 기대에 부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