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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19
정체성이 삶의 근간입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진술이 삶의 방향과 경로를 정한다고 봅니다. 내가 누구인지 정돈 되지 않은 채 나선 사역이 괴물을 만듭니다. 나를 정돈해야 길을 찾을 수 있고, 길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먼저 내가 무엇/누구인지를 정돈하시라. 공주야! 인간은 종종 자신의 본모습보다는 그 이상의 모습으로 인정받고 평가 받고 싶어 한다. 주변의 칭찬이 사실이 아니고 과장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 소리를 듣고 싶고 또 믿고 싶어 한다.
Identity is the foundation of life. I believe that statements about who I am determine the direction and path of life. The ministry of who I am without being organized creates a monster. Only when I am in order can I find the way and point the way. First, organize what/who I am before what you do. Princess! Humans often want to be recognized and evaluated as more than their true selves. Even though they know that the praise around them is not true and exaggerated, they want to hear and belie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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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교만이요, 우상숭배다. 또한 자기기만이요 도취다. 껍데기로 사는 삶이다. 요한은 자신을 메시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부정한다. 이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다 담고 있어서 기대감을 갖게 하였지만, 요한은 자기의 정체와 사명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대를 따라 살지 않고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살았다. 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이 아닌지를 아는 것이다. 남들의 기대를 거스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이 기대를 채울 때 참된 내가 될 수 있다.
But this is arrogance and idolatry. It is also self deception and intoxication. It is a life of shell. John denies himself as neither Messiah nor Elijah nor 'the prophet'. All these people's images made him look forward to it, but John did not forget his identity and mission. He did not live according to the expectations of the people, but lived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sender. What is as important as knowing what I am is knowing what I am not. When God meets his expectations while taking the risk of going against others' expectations, I can be true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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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선지자의 환생이 아니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이다. 특별히 이사야가 환생이 아니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이다. 특별히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오실 메시아(j)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그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것이 그가 준 물 세례의 의미다. 죄를 회개하여 그 심령에 메시아를 영접하도록 준비하였다. 진정한 충성과 사랑은 더 큰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한 순종으로 결정된다.
John is not the reincarnation of the prophet, but the prophet predicted. In particular, Isaiah is not the reincarnation, but the prophet predicted. In particular, in order to prepare the path of the Messiah (j), who will come as predicted by Isaiah, he came before him and took on the role of preparing people's hearts. That is the meaning of the water baptism he gave. Repenting the sin, he prepared to greet the Messiah in the spirit. True loyalty and love are determined not by doing greater things, but by more complete obe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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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메시아나 엘리아나 ‘그 선지자’로 오해하였지만 요한은 자신의 세례는 뒤에 오실 메시아가 하실 진정한 세례에 비하며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자신은 메시아가 아닐뿐 아니라 메시아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것은 공연한 낮춤이 아니고 사실 인정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 때에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다. 내가 메시아가 되지 않고 왕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구원 얻는 믿음이다.
People misunderstood John as the Messiah or Eliana "the prophet" when they saw him baptize, but John says that his baptism is nothing compared to the true baptism of the Messiah who will come later, and that he is not only a messiah, but also a being that cannot be compared to the messiah. This is not a daytime dance performed, but a recognition of fact. I can recognize the messiah when I know who I am. It is a belief that I am saved by not being a messiah and not trying to be a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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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자기보다 먼저 존재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먼저 태어나셨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근원이 되시는 창조주라는 고백이다. 예수를 알았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도 알았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춰야 하는지, 언제 나서야 하고 물러나야 하는 지를 알았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나 유혹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성취와 업적, 성공에 취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정체로 그리스도를 따르는가?
John introduces Jesus as "the lamb of God who carries sin in the world" and who existed before him. It does not mean that he was born first, but is a confession that he is the creator who is the source of his existence. When he knew Jesus, he also knew the meaning of what he was doing. He knew what to reveal and hide, when to step up and step down. What is the biggest obstacle or temptation to the identity of Christ? Who am I? In an era of achievement, achievement, and success, what identity do we follow Christ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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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어린 양 증언(29-31)
a.예수님을 드러내는 요한의 증언:29-30
b.예수님을 드러내는 요한의 세례:31
세례 요한의 하나님의 아들 증언(32-34)
a.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님:32
b.성령으로 세례 베푸시는 예수님:33
c.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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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19a)
예루살렘에서(19b)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을(19c)
요한에게 보내어(19d)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19e)
요한의 증거가(19f)
이러하니라(1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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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20a)
숨기지 아니하니(20b)
드러내어 하는 말이(20c)
나는(20d)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2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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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묻되 그러면 무엇(21a)
네가 엘리야냐(21b)
가로되 나는 아니라(21c)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21d)
대답하되 아니라(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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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말하되 누구냐(22a)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22b)
대답하게 하라(22c)
너는 네게 대하여(22d)
무엇이라 하느냐(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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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나는(23a)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23b)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23c)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23d)
소리 로라 하니라(2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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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24a)
바리새인들에게서(24b)
보낸 자라(2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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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어 가로되(25a)
네가 만일(25b)
그리스도도 아니요(25c)
엘리야도 아니요(25d)
그 선지자도 아닐 찐대(25e)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2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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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대답하되(26a)
나는 물로 (26b)
세례를 주거니와(26c)
너희 가운데(26d)
너희가 알지 못하는(26e)
한 사람이 섰으니(26f)
곧 내 뒤에 오시는(27a)
그이라(27b)
나는(27c)
그의 신들메 풀기도(27d)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2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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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28a)
요한의 세례 주던 곳(28b)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28c)
된 일이니라(2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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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요한이(29a)
예수께서 자기에게929b)
나아오심을 보고(29c)
가로되 보라(29d)
세상 죄를 지고 가는(29e)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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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에 말하기를(30a)
내 뒤에 오는(30b)
사람이 있는데(30c)
나보다 앞선 것은(30d)
그가 나보다(30e)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30f)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3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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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를(31a)
알지 못하였으나(31b)
내가 와서(31c)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31d)
그를(31e)
이스라엘에게(31f)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3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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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32a)
또 증거 하여 가로되(32b)
내가 보매(32c)
성령이 비둘기 같이(32d)
하늘로서 내려와서(32e)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3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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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를(33a)
알지 못하였으나(33b)
나를 보내어(33c)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33d)
그이가(33e)
나에게 말씀하시되(33f)
성령이 내려서(33g)
누구 위에든지(33h)
머무는 것을 보거든(33i)
그가(33j)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33k)
이 인줄 알라 하셨기에(3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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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34a)
그가(34b)
하나님의 아들이심을(34c)
증거 하였노라 하니라( 3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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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정체_the identity of John_
요한의 사역_the ministry of John_
요한의 증거_the evidence of Joh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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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자기 부정은 타자인 그리스도를 향한 강한 긍정의 전제 조건이나이다. 주인공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알리는 조연이 성도의 인생의 목표이며 정체성인 것을 인식하고 살 때만 가장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나이다. 예수를 제치고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려는 삶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수가 성 여인을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주여, 내 동생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약점을 숨기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버려진 그 곳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다시 소리가 되어 광야를 찾아다닐 것이고 주의 길을 외치는 자가 되겠습니다. 목사도 아닌 것이 목자도 아닌 것이 외롭고 서럽게 서 있는 그 곳에서 나라로 살기를 작정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남은 고난을 기꺼이 온 몸으로 맞을 새 힘을 주옵소서.
Decisive self denial is a strong prerequisite for a strong affirmation toward the other Christ. Can we live a life that is the most meager only when we recognize that the supporting actor who reveals and informs the protagonist, Jesus Christ, is the goal and identity of the saint? I will be careful not to be tempted to overtake Jesus and become the protagonist. Please pity my brother, O Lord, as if Sue had taken pride in the Holy Woman. Do not hide your weaknesses, do not run away, and help me to rob and rise from an abandoned place. I will become sound again and search for the wilderness and will be those who shout for the way of the Lord. Neither the pastor nor the shepherd decides to live as a country in a lonely and sad place. Please give me new strength to be willing to face the rest of the hardships for Christ with your whole body.
2026.2.2.mon. Clay
신학 비평//
1. 요한복음 1:19은 ‘자기소개’가 아니라 ‘권력 심문’이다
요 1:19의 질문은 순진하지 않습니다. “네가 누구냐” 이 질문은 호기심이 아니라 정체를 규정하려는 권력의 질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제사장과 레위인은 요한을 설명 가능한 범주 안에 가두려 합니다. 메시아인가? 엘리야인가? 그 선지자인가? 이 질문들의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네가 중심인가?”
2. 요한의 대답은 정체성 고백이 아니라 ‘정체성 해체’다
요한의 첫 대답은 놀랍도록 부정적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엘리야가 아니다” “나는 그 선지자가 아니다” 보통 우리는 정체성을 긍정 명제로 세웁니다. 나는 누구다-나는 무엇을 한다 그러나 요한은 정반대로 갑니다. 요한의 정체성은 ‘아님’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겸손의 미덕 이전에 신학적 결단입니다.
3. 왜 요한은 자신을 ‘과잉 해석’하지 않았는가?
요한은 분명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광야의 예언자-회개의 세례-대중적 영향력-종말적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인물 즉, 메시아로 오해받을 모든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사람들의 기대를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앞세우지 않습니다. 여기서 신학적 비극의 가능성이 갈립니다. 사역은 성공했는데 정체성이 무너지는 순간, 사명은 우상이 됩니다.
4. “나는 소리다” — 존재를 비우는 언어
요한의 자기 규정은 이것입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여기서 결정적인 신학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소리는 의미가 아닙니다. 소리는 주체가 아니고 소리는 사라지기 위해 존재합니다 소리는 길을 만들지만 길 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메시지로 만들지 않고 자신을 목적화하지 않아요. 이것은 존재의 자기 포기가 아니라 존재의 정확한 위치 인식입니다.
5. “너희 가운데 알지 못하는 이가 서 있다”의 위험성
요 1:26은 불편한 말씀입니다. “너희 가운데 서 있으되 너희가 알지 못하는 이” 여기서 문제는 세상의 무지가 아닙니다. 제사장도 있었고-율법도 있었고-성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은 이미 와 있었고, 그들은 그 중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인가? 이미 누군가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 요한의 자기 부정과 예수의 중심성은 반비례 관계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 이 말은 과장된 겸손이 아니라 존재론적 거리 인식입니다. 요한이 자신을 낮출수록 예수는 더 분명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공식이 드러납니다. 주체가 커질수록 그리스도는 흐려지고 주체가 사라질수록 그리스도는 드러납니다
7.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 정체성의 최종 기준
요한의 증언의 정점은 이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 표현은 능력의 메시아가 아니라 대속의 메시아-중심이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중심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확정합니다. 구원의 중심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자입니다.
8. 신학적 비평: 오늘 교회의 위험
오늘 교회의 가장 큰 유혹은 이것입니다. ‘나는 아니다’를 말하지 못하는 것-‘나는 소리다’를 견디지 못하는 것-조연의 자리를 실패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역의 열매로-영향력으로-인정으로-자신을 중심 근처에 세우려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요한이 아니게 됩니다. 요한복음 1:19은 정체성을 세우는 본문이 아니라 정체성을 해체하지 않으면 복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경고문입니다. 요한은 자신을 부정함으로 그리스도를 긍정했고, 사라짐으로 길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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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만이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남겨둘 수 있다. 정체성의 완성은 커짐이 아니라, 정확한 자리에서 기꺼이 물러나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