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힘들고 고생이 되는 산행을 즐기기에 덕유산을 기대했던 산행의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만약에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낼 산행.
그만큼 칼바람과 추위가 매서웠던 산행이었다.
그저 가만히 같이만 있어도, 특별한 도움을 얻지 못하여도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며 힘이되었기에 같이 산에 오르는 산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덕유산.
작년 겨울 처음으로 설산 산행을 기대 하며 올랐지만 너무 거센 바람과 악천후 때문에 아쉬움을 잔뜩 남겨 놓고 내려왔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저 여름에 다시 한 번 찾았지만 장쾌한 덕유능선은 한 번도 못 보고 그저 하얀 구름만 하염없이 보고 내려온 기억이 뚜렸하다.
이번에도 역시 너무 많은 눈 때문에 입산이 금지되어 출발지에서부터 소백산으로 산행지를 바꾸었다.
덕유산과의 다음 번 인연을 기대감으로 남기며.
소백산.
지난 겨울 홀로 솔로 산행을 하며 인연을 맺었던 산.
그 겨울 밤 비로봉에서의 쏟아질 듯 초롱초롱한 별빛.
혼자서 밤을 지새며 그 적막한 겨울 밤의 정취를 가슴속에 새겨두었던 곳.
대간길을 종주하며 날은 추웠지만 마음은 한 없이 훈훈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산.
지난달에 구인사로의 긴 산행.
나무 하나 없는 민대머리의 정상에 유난히 허옇게 피어있던 서리꽃이 기억나는 곳.
2002년의 마지막 날을 소백산의 별을 보며 정리했던 곳.
비로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면서 맞았던 바람이 살을 에이는 듯 추웠지만, 빨갛게 달아오르는 시뻘건 해를 가슴 벅차 오르며 새해를 맞이 했던 곳.
이틀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아 오른다.
소백산은 나에게 이러한 특별함으로 남을 것 같다.
새벽 세시 반.
산행준비를 마치고 버스 밖으로 나오니 볼을 때리며 귓가에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소백산의 칼바람을 실컷 아니면 지겹도록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불이 켜진 매표소를 그냥 지나치려 선두가 조용히 걸었지만 후미부분에서 매표소 직원의 눈에 띄어 잠깐 시간을 지체한다. 하산을 목표로 삼았던 죽계구곡이 새해부터 휴식년제로 산해이 금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입산을 허락받는다.
그 잠깐 동안의 기다림속에서도 칼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든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지만 추위때문인지 무전기가 말을 듣지 않는다.
바람에 이는 눈보라에 시야는 막히고 선두의 랜턴 불빛에 따라 지겹도록 이어진 포장도로를 걸어 올라간다.
눈을 즐길 만큼 쌓여있지만 추위 때문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한시간여 동안 한참을 가다가 후미에서 올라온 대간팀의 제일산악회 일행과 산행이 겹치며 길을 걷는다.
앞의 불빛만 따라 오르다 중계소의 앞에 이르러 뒤에서 back하라는 고함 소리가 들린다.
이미 선두는 지나간 상태인 것 같고, 후미에서는 길을 잘 못 들었으니 내려오라는 소리가 들리고, 일단 제일산악회는 다시 길을 되돌리라고 하고 후미는 선두를 만나서 같이 가야 겠기에 계속 산행을 한다.
아마 날씨가 춥기에 잠시 바람을 피하려나 보다 생각을 하고 선두를 열심히 쫓아간다.
10여분을 가도 선두는 보이지 않고, 작년에 들었던 중계소의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이상하다며 생각을 하고 계속 가는 동안 앞에서 여러 명의 불빛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불러보니 선두에 있는 빨모님이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낯이면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무전연락도 안되고 바람 때문에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오로지 불빛과 육안으로만 확인하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오는 혼란이었다.
다시 인원을 확인하고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휴식은 없다.
잠깐이라도 바람을 피하며 휴식을 갖고 싶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다.
시작서부터 부는 바람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불어댄다.
앞에 있을 제1연화봉의 천문대에서 잠깐 바람을 피하며 휴식을 가질 수 있기에 계속 간다.
다행히도 바람을 등지고 산행을 하기에 약간의 추위는 덜 수 있다.
어둠이 가실 때쯤 하여 천문대에 도착한다.
천문대의 입구 앞에 오봉이님이 기다리고 있다.
이 추운 날씨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 마음이 고맙다.
천문대의 옆 건물 안에 들어가서 바람을 피하니 몸이 추위가 한결 가시지만,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불을 피웠는지 건물 안에 연기가 자욱하다.
코가 맵고 눈물이 나서 버티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자 역시 다시 추위가 시작되고, 버터보자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불 옆에 자리를 잡으니 눈물이 멎고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이 작은 모닥불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추위에 얼었는지 랜턴을 다시 켜지 작동이 되지 않는데 조금 더 쉬었다가 산행을 시작한단다.
어둠은 완전히 걷혔다.
이제 시야가 확보되니 산행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제1연화봉의 정상은 추위 때문에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간다.
바라클라바는 입김에 얼었고, 위로 올라오는 입김때문인지 속눈썹이 얼어서 눈이 감으면 달라붙는다. 머리도 허옇게 세어 있고 얼굴을 보면 눈사람에 가깝다.
30분 이상 산행을 진행하다 내리막길이 나오자 바람이 조금 누그러진다.
물을 마시는 김에 쉬어가기로 하고 후미의 여럿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며 숨을 돌리자 주변의 눈꽃이 너무 멋있다.
그 장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기로 하였지만 카메라 역시 바람에 얼었는지 작동이 안된다.
아쉽지만 기억속에만 꼭꼭 남겨 볼 수 밖에…
드디어 주목감시초소.
9시가 넘어서 주목 감시초소에 도착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대피소 안에 들어가자 마자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먼저 도착한 대간팀의 수호달마님이 기다렸다가 계란 후라이를 먹으라고 권하신다.
염치불구하고 입에 넣으니 꿀맛이다.
추운 몸 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음식은 온기...
아마 이 맛, 인정 때문에 산행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달아네님, 양창훈님이 같이 식사를 하고 있어 인사를 나누고, 옆에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달마님의 군만두, 부침개로 입맛을 돋구고,
오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조금씩 조금씩 얻어(빈대?) 먹으니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다.
거기에 아침으로 따뜻한 떡국을 먹고 나니 몸에 온기가 돌며 생기가 나기 시작한다.
현재온도는 영하24도 정도되고 체감온도는 영하40도 이상이란다.
비로봉.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불고 있다.
나무 하나 없는 비로봉 정상.
바람이 하도 거세 눈이 쌓이질 않는다.
이미 모두들 비로사로 하산을 시작했고,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 거센 바람을 맛볼지 몰라 후미에 혼자 남아서 제대로 된 비로봉의 칼바람이 어떤가 구경할려고 혼자 남아본다.
바람을 등지지 않고 마주 보고 벤치에 올라갈려고 하니 쉽지가 않다.
간신히 올라가 잠깐동안 서 보니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따끔따끔하다.
이제까지 춥다고 느껴본 바람은 있었지만 따갑다고 느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으…
이 지독한 비로봉의 칼바람…
비로사로의 하산 길은 차라리 따뜻하다.
계곡이라 능선에서와 같은 바람은 없다.
가끔씩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아직 못 가본 죽계 계곡으로의 하산이 아니라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에 하산 길에 자꾸 뒤돌
아 본다.
하산 길에 돌아본 소백산의 능선에는 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구름인지 바람에 날리는 눈발인지 구분이 안가는 구름 유유하게 지나간다.
비로봉 정상은 흰색의 고깔모자를 쓴 듯 나무하나 없이 하얗게 눈이 쌓여있다.
하산을 하며 내려오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듯이(?) 구미가 당기는 눈썰매 구간이 있기에 속도감 있는 비료부대 눈썰매를 신나게 즐기며 내려 온다
칼바람과 추위가 유난히 지독했던 소백산.
혼자가 아닌 여럿이었기에 힘들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다.
아마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이 힘들었던 기억이 그리워 다시 찾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 또 산을 오를려고 한다면 나를 걱정하는 몇몇은 그런 추위에 무엇하러 하릴없이 산을 오르냐며 미친놈(?) 취급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기에.
또 내가 느끼는 산의 매력이 있기에 그 어느 시간에 또 산에서 씩씩 거리면서 고생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