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96
뭄타즈마할이란 이름이 황궁의 보석, 찬란한 궁전이라는 뜻이었으니 타지마할은 따지고 보면 뭄타즈마할이 그대로 묘궁으로 현신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샤 자한의 의도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전장에서조차 떨어질수 없었던 사랑하는 아내를 그대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1632년에 짓기 시작한 영묘는 매일 이만여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고, 1643년 경에 영묘의 전면 이 드러났습니다. 모스크와 성벽, 각종 통로들과 정원과 수로 등이 완성된 것은 1649년 경이었으나 완벽한 모습을 드 러낼 때까지는 22년의 세월이 걸렸습니 다. 전 세계에서 온갖 보석을 가져와서 영묘를 치장하고 사용된 금은과 보물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지요. 나라의 재 정이 위태로울 지경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전체를 이루는 외관을 이루 는 대리석은 라자스탄,이탈리아,프랑스, 페르시아 등지에서 수입했으며 홍옥석 과 청금석,공작석과 터키석 같은 귀한 석재도 무한정 수입해서 사용했습 니다.
그 위에 사파이어,루비,청옥,벽옥,수정 등의 보석들이 아낌없이 장식되었고 황금 500키로가 들어 갔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이름난 건축가들이 몰려왔고 샤 자한은 그들에게 아낌없이 임금을 지불했습니다. 이 모든 경비가 샤 자한 의 개인 금고에서 지불되었는데 약 오 천만 루피에 이른다고 합니다. 국가의 돈을 쓰지 않은 것은, 샤 자한은 영묘를 짓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개인의 일이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금액은 무굴 제국 전체 예산의 5/1에 해당되는 돈이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 기술자의 한 달 임금이 불과 15루피 정 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믿기지 않는 금액입니다. 우리는 타지마할을 궁전으로 부르지만 실은 궁전이 아닙니 다. 50미터의 미나레트가 네 개가 있 지만 모스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사 이래 가장 완벽한 건축물 로 불리우는 이 영묘는, 지금도 풀지 못 하는 수 많은 건축학적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원래 샤 쟈 한은 전쟁을 좋아했던 선조 들과는 달리 건축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군주였습니다. 샤 자한이 다스리 는 나라는 서쪽의 칸다하르에서 동쪽의 아삼,남쪽의 데칸 고원에서 북쪽의 파미 르고원까지,이토록 광활한 영토를 통치 했던 군주는 인도에서 전무후무 했습니 다. 그러니 상상치도 못할 재산을 가질 수 있었고 원하는 건축물을 지을 수 있 었던 겁니다. 샤 자한은 여러 건축물을 지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타지마할은 인류사에서도 그 유래가 없는 뛰어난 건 축물로 많은 사람들이 손 꼽습니다. 지금의 기술로도 재현하지 못 하는 여러 가지 건축학적 기법은,그 당시의 놀라운 건축학적 기술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 자한 가즈라는 단위를 기 준으로 삼아 측량해서 기하학적 구도를 만들어 내었고, 일관적인 대칭 구도와 함께 중앙축을 중심으로 한 좌우동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작은 부분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놀라운 기법을 구현해 내어, 오늘날의 완벽한 좌우 대칭형의 건물을 이루었지요.
네 개의 미나레트도 원근법적인 구도를 이루어 바깥 쪽으로 조금씩 휘어지게 설계했고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
지지 않는 건축물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기적같은 공법이지요. 장식에 있어 모자이크 기법인 피에투라드라 기법을 사용해서 그 아름다움은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타지마할의 그 비교 불가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래된 지인 중에 인도 여행을 갔다가 타지마할에 빠져서 아예 아그라에 눌러 앉아 그 곳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 타지마할의 모든 것을 보고 가까이 하겠다고 했는데 한국에 딱 한 번 나와 서 그가 직접 찍은 수 백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일반 관광객이 보지 못한,너무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에 나는 샤 쟈한을 알게 되었지요. 가이드와 여행을 업 삼아, 지구별에서는 타지마할과 그랜드케년과 사하라를 만난 것으로 만족하고 유랑의 삶을 택하 겠노라 했는데 걱정이 많이 되는군요.
현대에 이를수록 타지마할의 신비의 아름다움은 더해져서 뭄타즈 마할, 인류 가 생긴 이래 가장 완벽한 사랑을 받은 여인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옵 니다. 이렇게 되어 그는 평생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왕위를 물려주고 그 옆에 누워 영원의 길을 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역시나 인간의 욕심은 사그라들지 않는 영원한 불길이어서 결국 스스로를 태우고 맙니다. 샤 자한도 그 길을 걸어 갔습니다. 샤 자한은 1628년에 황위에 올라서 1658년까지 무굴제국을 다스렸고 죽은 해는 1666년이었는데, 왜 죽을 때까지 황제가 아니었을까요? 그는 인류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왕과 아들이 반복했던, 친 자식의 반역으로 강제 퇴위 당해서 아그라 성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아우랑제브는 첫 아들이 었고 가장 출중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 면 그대로 왕이 될 터이지만 말했다시피 황제가 되는 길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