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재정 건전성 회복, 어려워도 꼭 가야 할 길
중앙일보
입력 2022.08.31 00:10
[그래픽 뉴시스]
내년 예산 639조, 추경 포함한 총지출 6% 감소
복지예산 100조 돌파, 선심성 돈 풀기 경계해야
정부가 나라 살림의 운영 기조를 ‘확장 재정’에서 ‘건전 재정’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편성한 예산안에서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은 639조원으로 올해 본예산과 비교해 5.2% 늘었다. 다만 올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거쳐 확대한 금액보다는 6% 줄었다. 추경을 포함한 금액을 기준으로 총지출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현재 나라 살림의 운영에는 심각한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확장 재정 기조에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가 겹치면서 재정지출이 급격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섰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 선까지 치솟았다. 과도한 국가채무는 결국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정부가 방만한 재정을 정상화하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건 다행스럽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부 항목은 재정지출을 늘린다. 내년 보건복지 예산은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선다. 대선 공약이었던 병사 월급 인상과 영아 부모수당 70만원 지급 등도 내년 예산안에 포함됐다. 저출산·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복지예산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 것도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선심성 돈 풀기와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정부가 경제 상황에 따라 지출을 조정할 수 없는 경직성 예산의 비중이 큰 것도 문제다. 복지제도의 경우 일단 수혜자들에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나중에 혜택을 없애거나 줄이는 게 매우 어렵다. 비록 대선 공약이라도 무조건 서두르기보다는 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에도 세출이 세입보다 많아지는 재정적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2.1%(물가 상승 제외)로 내다봤다. 본예산을 기준으로 한 재정지출 증가율은 5%(물가 상승 포함)를 웃돈다. 계산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재정지출 증가율이 충분히 낮은 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46조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 모자라는 돈을 메울 계획이다. 대규모 국채 발행은 시중금리를 자극해 고물가·고금리의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건 어려워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은 본격적인 긴축이라기보다는 긴축을 향한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불요불급한 지출은 과감하게 쳐내되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금 알바’라는 비판을 받는 공공일자리 사업은 축소하면서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확대하기로 한 게 좋은 예다. 결국 최선의 돌파구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수를 늘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