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도 못 가고
미국도 못 가고
대신 고향에 왔습니다.한가위 연휴 서울에서 잘 보내고 남들 다 올라올 때 반대로 내려와 어무니 품에서 딩굴고 있슴다.이번 연휴 보람차게 보냈습니다.아부지랑 깨 홀딱 벗고 사우나 찜질방에도 가고 어무니랑 은행도 줍고 마누라와 설거지도 열씨미 하고 생전 안 가보던 경복궁도 가보고
아부지가 많이 약해지셨어요.큰집 형들과-몇년째 소원해졌음 큰 어머니 돌아가신 뒤로 일이 이리저리 엉켜-통화하시면서 눈물 바람을 하시고
어무닌 용산역 계단 올라갈 걱정을 하시기에 어제 아침 제가 모시고 내려왔습니다.고속도로를 겁도 없이 시속 120킬로 대로 달려와 곧바로 조상님들 누워 계신 곳으로 갔지요.전남 보성군 율어면 겸백과 조성면 축내리 두 군데에 묘역이 나뉘어 있습니다.길고 오랜 여정 끝에 잠깐 선영 올라가는 길을 스쳐 지나갔다가 아차 싶어 돌아오려고 어느 논두렁 길로 접어들었다가 그만,
뒤에 나무를 향해 후진 기어를 넣은 상태에서 엑셀을 꽉 밟아 그만,
쾅하고 부딪쳤지요.뒷 좌석에 앉아 계시다 "내가 만날 돌아다보는디 요상허게 오늘은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으쩐다냐." 혀를 끌끌 차셨다.눈 앞이 캄캄하고 은별 엄마헌티 닦일 것 생각허니 눈앞이 컴컴헌디 도 나는 꾹 참고 아부지 괜찮아요 어쩌고 했다.어머니는 당신 뭐허고 있었소 라고 아부지 힘도 없는 아부지 열나 꾸짖는다.
괜찮아요 어무니
달래고 성묘를 초특급으로 마쳤다.무려 큰절을 20번 했다.북어포 찢어 성묘 다녀온 흔적 남겨야 한다고 남겨놓는 법을 배웠고 성묘갈 때 들고 가는 음식 값은 절대 깎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아울러 가장 가슴 시린 것은 아부지가 "요 위가 아부지 대니 여기는 우리 형제들 줄,나는 맨 막내니께 쩌기 끝이겄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맨 처음 악급한 묘역 길을 급히 올라채실 정도로 기력이 온전함을 보이시던 아부지는 곧 10분도 안돼 숨을 올아쉬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 하셨고 끝내 성묘를 마치고는 "내 생전에 다시는 여기 못 오를 것 겉다."고 하셨다.
두번째 산을 내려오자 해는 이미 서산에 걸쳐 있었다. 차 일 때문에 미안해지신 아부지는 한사코 광주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셨지만 오랫만에 왔는데 벌교에 가서 꼬막 좀 드시고 가십시다 말씀드렸다.두세번 밀고 댕기고 하다가 내 말대로 하기로 했다.어차피 핸들을 잡은 사람은 내니까.어무닌 고속도로 타고 내려오면서 전어 얘기를 하셨다.장흥 어디가면 전어가 맛있다더라야.찔렸다.지난주 천관산 갔다 혼자 맛있게 온 것이 죄스러워 장흥 가자 말씀드렸더니 장흥은 너무 멀다. 벌교로 가자 하셨다.아부지는 벌교보다는 보성이 나은디 하셨지만 내가 벌교는 한번도 안 가봤어요 하니까 의견을 접으셨다.
그런데 벌교 가서 뭐 함부로 사먹을 일 아니었다.전라도 옛말에 순천 가서 얼굴 자랑말고 벌교 가서 주먹 자랑 말고 여수가서 주먹 자랑 말라는 말이 있었다.부자 동네라 그런지 길가에 붙어있어 들어간 전어횟집은 엄청 비쌌다.우리 회사 앞보다 훨씬 비쌌다.세꼬시를 시켰는데 너무 얇게 썰어 먹을 게 없었는데 한 접시에 무려 3만원을 받았다.그래도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다행이었다.어무니가 하도 잘 드시니 식당 아짐씨들이 막 쳐다본다. 뭔 노인네가 그렇게 잘 드시냐고.
어무니 나중에 나오셔서 그랬다.뭔 여편네들이 싸가지도 읍시 남의 밥 먹는 것을 고로크롬 쳐다본다냐.
도저히 그 집에선 저녁 먹을 자신이 생기지 않아 그냥 나와버렸다.우럭탕 작은 것에 3만원 받고 영 말이 아니었다.또 밀고당기기가 시작됐다.아부진 광주 가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그냥 가자고 나는 그냥 여기서 묵고 가자고.밥은 먹자고 전어랑 밥은 또 다르다고,
그 길을 빠져나와 하천가에 여기가 꼬막 정식 원조요 하는 집이 나왔다. 벌교 들어오니 이 메뉴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꼬막정식을 시키면 큼지막한
꼬막전이 하나 나오고 그것을 먹고 있으면 통꼬막이 그드막히 담긴 통이 나온다. 꼬막 삶은 것을 바로 까서 먹는 거다. 꼬막 물이 튀고 손에 흘러내리면 혓바닥으로 핥고 물까지 쪽쪽 빨아묵는 거다.아부지는 형광등 하나도 못 갈고 못 하나 못 박는 분인데 딱 하나 꼬막 하나 잘 까신다.속도가 장난이 아니다.똑 울 은별이 포도 먹는 거 같다.은별이는 도대체 어찌된 입속인지 기막히게도 씨를 잘 골라낸다.우리 부부가 한 두개씩 갖고 씨름할 때 다서여섯개는 먹어치운다.포도 한 송이 들고 있으면 60 %는 은별이가 다 먹고 나머지를 우리 부부가 갈라 먹는 꼴이다.해서 우리 식구는 아예 포도 먹을 때 송이 하나를 이와 같은 비율로 잘라 먹는다.은별이 솜씨 감탄하다 우리 몫까지 뺏기고 빤하므로.
하여튼 통꼬막을 그렇게 살벌하게 정말 전쟁이나 다름없이 게눈 감추듯 없앴다.어머니는 속이 텅 빈 꼬막을 세개나 발견하셨다.아짐씨를 부르시더니 야단친다.아니 으째 속이 텅 비었다요?엄니 제발 이러지 마세요.챙피해 죽겠네 어쩌고 말려도 소용없다.아니 으째 이런다요?
아짐씨 웃으면서 아따 쪼끔 더 드리케라.그만 허시요잉.
덕분에 한 소쿠리 더 받아 정말 잘 먹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다음은 회무침.혹시 그냥 형 같은 분은 잘 아실 거다.여기 보성이란 곳을 광주에서 오려면 화순을 거쳐야 한다.그곳을 지나치며 생각했다.그냥 형도 여기 왔으면 같이 가면 좋을텐데.
회무침 맛 아시지요.전라도 요리에 빠지지 않는 깨를 골고루 뿌린 회무침이 나왔다. 신선한 야채의 씁쓰레한 맛과 꼬막의 쫄깃쫄깃한 감칠맛이 어우러진 꼬막회무침을 커다란 양푼에 넣어 밥을 비벼먹는다.김가루 뿌리고 참기름 조금 뿌려주면 쫄깃한 꼬막의 육질을 씹는 맛이 일품이다.작가 조정래가 벌교 가면 이 집을 꼭 들르라고 권했다는 내용의 선전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축구감독 허정무,가수 태진이 등이 식당 주인이나 아짐씨들과 어깨동무한 사진도 그제야 들어온다.
된장찌게 끓일 때 꼬막을 넣으면 기가 막히게 어울렸는데 여기선 비빔밥 먹을 때 떠먹으라고 꼬막탕이 나왔는데 무던던했다.시원한 맛은 남았지만
미리 주문할 때 우리 전어 먹고 왔다고 밝히고 세 사람이지만 2인분만 시키겠다고 했다.2만원에 세사람이서 실컷 먹었다.어머닌 오늘 하도 많이 먹어 배탈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걱정하셨다.
그러나 이런 음식보다 더 맛있고 값졌던 식사는 오늘 아침이었다.벌교에서 전어 먹고 나오다 꼬막을 1만원어치 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머니가 함지박 가득 통꼬막을 들고 들어오신다.아야 묵어봐라.훨씬 맛있어야.아부지도 거든다.하믄 식당에서 파는 것과 다르지야.
정말이다.식당에서 먹은 꼬막정식도 꽤 맛있었는데 집에서 방금 삶아 먹는 꼬막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짭쪼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함지박 하나 가득이었는데 이걸 다 비우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10분 조금 지났을까.세 사람이 부지런히 먹으면서 장을 뿌릴 수 있게 꼬막을 까놓았다.밥과 함께 먹는 꼬막장 맛,기가 막혔다.비교가 안됐다.
부모님과 나 모두 양을 조절해가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여기서 어무니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멘트 하나.아야 어둑해졌을 때 꼬막 살라믄 조심해야 해야.장사치들이 속여묵는다니께.으제도 우리가 달라고 허니까 그 밑에 걸로 슬쩍 바꿔 담지 않드냐이.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야 혀야.안 그라믄 당해야.
돌아오는 길 참 좋았다.밤이여서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송광사 거쳐 주암호 거쳐 화순으로 해서 돌아왔다.내일 차 찾으면 모레 아침 또 주암호 쪽으로 나가볼 생각이다.낙안읍성 들러 맛있는 한상 어무니께 또 대접해드릴라고 생각한다.혼자 계시는 어무니에게 열무김치도 담가다 주고 장어탕도 끓여다 주시는 성당 교우님과 함께 대접해드릴 생각이다.그리고 모레 오후나 글피 아침 지리로 출발할 계획이다.
참 차는 어떻게 됐냐고.쉿. 이제부터 비밀 얘긴데요.아침에 르노삼성 광주영업소 가서 차 맡겼다.트렁크 밑의 레일까지 부서져 무려 53만원의 견적이 나왔다. 마누라 알면 거의 죽음의 위기로 몰릴 가격이다.돈 한푼 벌어와도 아쉬울 판에 뭐시라고,어쩌구 할 가격이다.해서 마누라 몰래-은제까지 비밀이 먹힐 지 모르지만-보험 회사에 전화 넣어 보험 처리했다. 5만원만 내면 된다.아예 확 다 갈고.정말 싸지 않은가.보험요율에 불이익은 없다. 13년 무사고인 마누라의 착실한 운전솜씨 덕에 이미 할인율이 마지막 마지노선인 40 % 꺼지 내려가 있어 3년간 할인 혜택 정지라는 불이익은 별 볼일 없게 됐다.해서 5만원 내고 모든 게 끝이다.자동차 맡겨버려 내일 오후 5시까지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 말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날아갈 것 같았다.어제밤 마누라 볼 일이 컴컴해 아무 일도 못했던 것이다.
이번 여행은 마누라 땜에 가능했다.너그러이 어무니와의 동반 여정을 허락했다.해서 엄니 젖 많이 만지다 올라가려고 한다.그리고 지리 여행에 앞서 송광사, 조계산 등 평소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남도 사찰들을 좀 사찰하다 지리로 들어가려 한다.정기산행을 지리로 오는 분들에게 모레 아침부터 펼쳐질 맛의 향연,남도 얘기를 먼저 풀고 낸중에 온라인을 통해 그 얘기를 들려드릴 것이다.잘 쉬다 올라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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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일은 멍게에게 부탁한다.
14일 지리에서 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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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꼬막,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했지
ⓒ 맛객
만약, 그대가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배부른데도 쉽사리 손을 떼지 못한다면, 대식가 아니면 그 음식의 맛 때문일 것이다. 허나 꼬막을 먹으면서도 그만두지를 못한다면 오롯이 꼬막의 맛 때문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질리지 않은 맛, 그래서 꼬막 맛을 아는 사람은 손톱이 닳고 입술이 터도 꼬막 까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한 소쿠리를 다 까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 모든 게 꼬막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잔칫날 꼬막과 홍어가 빠지지 않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전라도 사람과 함께 해 온 꼬막, 굴곡 많은 도민의 애환을 닮기라도 한 듯, 꼬막에는 깊이 패인 골이 부챗살 모양으로 나 있다. 이걸 보고 작가 조정래는 이렇게 표현했다.
“난 한 많은 벌교 사람의 주름살로 보고 있는데,
가끔 서울서 찰진 꼬막을 씹을 때마다
난 벌교를 생각한다.“
작가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누구라도 참꼬막 하면 벌교를 떠 올린다. 이처럼 벌교 브랜드가 된 참꼬막은 사실 벌교에서 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고흥 ‘여자만’에서 난다. 오래 전 교통이 발달하고 상권이 형성된 벌교에서 팔리기 시작한 게 벌교꼬막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꼬막으로 잘 알려진 벌교 읍) ⓒ 맛객
꼬막은 겨울에 진 맛이다. 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꼬막이 생각난다. 마침 명절을 앞두고 시장에 참꼬막이 나왔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명절 핑계대고 1kg을 사 봤다. 값은 5,000원, 명절이라고 해서 더 받지도 않는다.
꼬막은 그냥 삶아도 되지만, 굳이 해감을 하겠다면 깨끗이 씻어 찬물에 소금 약간 넣고 30여분 담가두면 된다. 오래하면 꼬막속의 간물이 빠져나와 맛이 심심해지고 만다.
삶을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오래 삶으면 꼬막 특유의 핏물과 차진 맛을 놓치고 만다. 1kg 기준으로 30~40여초 삶으면 된다. 1초, 2초, 3초, 세면서 한 방향으로 냄비를 돌리면 꼬막의 맛과 향을 잘 살려 낼 수 있다.
꼬막 삶을 때 절대 주의할 점은 팔팔 끓는 물에 넣어야지 찬물에 넣고 끓이면 안 됀다. 그렇지 않으면 꼬막을 벌렸을 때 오른쪽 껍데기에 살점이 봉긋하게 붙지 않고 양 껍데기로 갈라져 아까운 참꼬막만 버리게 된다.
(끓는 물에 재빨리 데친 참꼬막) ⓒ 맛객
한 겨울, 맛이 제대로 든 꼬막은 웬만한 사람은 잘 까지도 못한다. 뜨거운 물에 넣으면 금방 껍데기를 벌리고 마는 조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껍데기를 꼭 다물고 있는 꼬막을 쉽게 까는 건 요령이 필요하다. 수저로 꼬막 뒷 꽁무니를 비틀어 까기도 하지만 손으로 양쪽 껍데기를 벌릴 때 봉긋한 살점이 드러나는 그 맛과 비교가 될까.
ⓒ 맛객
맛을 보니 아직 철이 이르다. 힘들이지 않아도 껍데기가 벌어진다. 맛도 깊이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참꼬막 아닌가? 먹어도 질리지 않는 건 여전하다. 꼬막은 삶아서 바로 까먹어도 맛있지만 냉장고에 넣고서 차갑게 먹어도 맛이 한층 살아난다.
맛있는 음식에는 그에 어울리는 술이 있다면 더욱 좋다. 그대는 이 꼬막을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 맛을 아는가? 아쉽다! 지금 꼬막을 먹으면서 막걸 리가 없다는 것.
첫댓글 아, 먹고싶다. 저 꼬막. 그냥 형님의 남도 맛 기행기에 이은 염장 지르기 2탄이군요.. 군침돌게 한 대신 53 - 5 = 48만원어치 술 사세요. 형수한테 안 이를텐께로..
성묘도 좋고 맛 기행도 좋지만 정말 잘한 것은 늙으신 부모님 모신 것이다. 요즘 세상에 알과 같이 나이드신 부모님 이렇게 모시기 쉽지 않다. 잘 했다!! 그리고 성묘 갔다가 힘에 부쳐 못 올라 가시겠다는 어른 말씀을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런지... 보성가는 길이 바로 내 고향 동네 앞 길이니 내가 거기 있었으면 당근 같이 갔었겠지. 그리고 여수가서 돈 자랑 말라 아닌가? 꼬막 얘기는 별도로.
긍께 머시냐...너 지금 남도에 있단 야그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