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원 윤씨(漆原尹氏) 시조(始祖)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냈다고 한다. 《경신보(庚申譜)》 상계편(上系篇)에는 시조의 탄생설화가 나와 있는데, 칠원현(漆原縣)에 사는 윤씨(尹氏) 부인이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시영(始榮)이라 하라는 말을 듣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경신보》의 세록편(世錄遍)에는 윤시영이 칠원백(漆原伯) 혹은 호장랑(戶長郞)을 지냈다고 하며, 7대에 걸쳐 봉군(封君) 되었다고 적혀 있다.
윤시영의 아들 윤황(尹璜)은 판태사국사(判太史局事)를 지냈는데, 이후의 수대는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알 수 없다. 따라서 고려에서 칠원현의 호장보윤(戶長甫尹)을 지낸 윤거부(尹鉅富)를 1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1]
윤거부의 17세손 윤길보는 고려조에 삼중대광 첨의찬성사를 역임하였으며 귀성군에 봉해졌다.
본관[편집]
칠원(漆原)은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칠토현(漆吐縣)이었던 것을 757년(신라 경덕왕 16)이 칠제(漆隄)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 : 昌原)에 예속시켰으며, 고려 초에 칠원(漆原)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김해(金海)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에 와서는 초기에 칠원현으로 고친 후, 선조 때 창원(昌原)에 속하였다가 광해군 때 현(縣)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관할의 칠원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남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칠원, 칠서, 칠북의 3면으로 편성되어 함안군(咸安郡) 칠원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