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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산 가을산행을 하다
- 삼각산 영불사(靈佛寺)를 찾아서 ② -
대웅전, 미륵대불, 약사전, 칠성각을 차례로 찾아 뵙고 내려와 산신각으로 향합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정병(淨甁)에서 감로수를 내려주시다
종각 옆에 모셔진 이 관세음보살상은 영불사를 참배할 때 제일 먼저 뵙게 됩니다. 선재
동자(善財童子)가 합장하고 있네요.
산신각 입구의 전경
산신각으로 가려면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의 풍광이 자못 아름답습니다.
계단 앞에는 필자를 기준으로 우측 일붕(一鵬) 큰스님 승상(僧像)이 모셔져 있고, 그 옆
으로 일붕 서경보 대종사 행적비와 일붕도량조국기원비가 서 있습니다.
일붕 서경보 대종사 존상(一鵬 徐京保 大宗師 尊像)
일붕스님이 한때 이곳에 상주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가 불기 2517년(1973) 무렵
이라 합니다. 그런 인연이 있어 이곳에 일붕대종사와 관련한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합
니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영불사가 한 때 <대한불교일붕선교종> 소속 사찰로 등재되기
도 했는데 지금은 <대한불교총화종> 재적사찰이라 합니다.
일붕 서경보 대종사는 세계불교 법왕청 초대법왕이시며 대한불교일붕선교종을 창종
하신 종정이십니다. 일붕 서경보 세계법왕에 대한 정보를 옮겨 봅니다.
『일붕 서경보 (一鵬 徐京保 1914. 10. 10 ~ 1996. 6. 25)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출신의 승려이며 학자.
본관은 이천(利川). 법호는 일붕(一鵬)이며, 출가 때 받은 법명은 회암(悔巖)이다.
1914년 10월 10일 서귀포시 도순동(道順洞)의 엄격한 유가(儒家)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몸이 좋지 않아 태몽(胎夢)의 뜻을 따라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沙溪里)의 산방굴사(山房窟寺)의 혜월(慧月)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되어 약 1년간 제주에서 수행하였다.
1933년 화엄사 진응(震應) 강백을 찾아가 수학하다 1935년 진응이 완주의 위봉사
(威鳳寺)로 강원(講院)을 옮기자 함께 따라가 수학하였다.(사미과. 사교과) 당시 위봉
사의 주지였던 춘담(春潭)이 서경보를 법제자(法弟子)로 삼아 ‘일붕(一鵬)’이라는 법호
를 지어주었다. 이후 위봉사 강원이 문을 닫자 서울특별시 개운사(開運寺) 박한영(朴
漢永)의 문하로 3년간 수학하였다.(대교과) 이후 박한영의 천거로 월정사 강원의 강사
로 재직하던 중 1944년 김태흡(金泰洽) 교수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교토
임제종 임제전문대학교(臨濟專門學校) 철학과에서 1946년까지 수학하였다.
귀국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암동의 안양암에서 포교법사로 있으면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면서 원광대학교와 전북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
하였다. 1953년에는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1956년 동아대학교 철학
과 주임교수로 재직하였고, 1962년 동국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1969년 동국대
학교 불교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이렇게 대학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면서
도 다른 한편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962년에는 한국불교청년회 총재와 불국사 주지로 추임하였으며, 미얀마ㆍ독일ㆍ
스리랑카ㆍ영국ㆍ미국 등지의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외
포교에 열정을 다하여 그가 방문한 나라가 157개국에 달하였고, 특히 미국 지역 사찰
건립이라는 활발한 포교활동으로 양국간의 문화교류 증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조계종의 원로의원을 지냈던 그는 1988년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창종(倉宗)하며,
조계종계를 떠나, 선교종(禪敎宗) 종정(宗正)을 지내다가, 세계인류평화 및 세계전법
세계불교의 단합을 위해 제14차 세계불교도우의회 국제대회에서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을 제안하고 1986년부터 설립위원회를 결성, 1992년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 총
회에서 초대 법왕(法王)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1994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개최된
2차 총회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세계평화의 날로 제정하는 등 세계전역을 다니며 평
화를 주창하였다.
서경보 스님은 또 한반도 남단 마라도에서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남북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시비를 건립하였고, 또한 유엔의 전권대사 유네스코 특
사로 활약하며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폐기 등을 강조, 이러한 일련의 세계평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세계평화교육자협회(IAEWP)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되기도 하였다. 제4공화국 시절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제5공화국에서는 국가
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던 스님은
1996년 6월 25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소재 법왕청에서 83세, 법랍 64세로 입적
하였다.
고, 수많은 불교사상 교양전집 등의 저서를 저술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불교성
전(佛敎聖典)』·『불교사상교양전집』·『서경보인생론전집』 등이 있다.
또한, 126개의 박사학위, 1,042권의 저서, 757개의 통일기원비 건립, 50만여 점의
선필(禪筆), 최대 석굴법당 건립 등 5개 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198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다.』 -옮긴 글-
큰스님께서 주석하시던 법왕청은 우리동네(종로구 신영동)에 있었으며, 저는 법왕청
바로 앞에서 살며 뵙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선필도...ㅎㅎㅎ _()_
일붕 서경보 대종사 행적비(一鵬 徐京保 大宗師 行蹟碑)
『불가(佛家)에 귀의한 지 어언 반백년,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를 누비며 오로지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하여 여생을 다하시는 일붕(一鵬) 서경보(徐京保) 대종사(大宗師)
님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 영불사(靈佛寺)에 두 제자들의 정성을 담아 석상(石像)
과 행적비(行蹟碑)를 건립하여 영원히 기념하고자 한다. -중략-』
일붕도량조국기원비(一鵬道場祖國祈願碑)
一鵬大道場 일붕대도량 큰 붕새가 날아온 대도량 영불사
靈佛放神光 영불방신광 영험하신 부처님 신광을 놓으셨네.
至心祈祖國 지심기조국 지극한 마음으로 국태민안 기원하며
萬拜燒淸香 만배소청향 맑은 향 사르옵고 만배를 올립니다.
一鵬 徐京保 韻
제가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_()_
이 계단을 오르면 진신사리탑과 산신각이 나옵니다.
다리의 모습
영불사의 성보인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
이 진신사리탑은 불국사의 다보탑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진신사리태안 세계평화기원탑(眞身舍利泰安 世界平和祈願塔)
이 사리탑은 불기 2533년(1989년) 11월 3일 주지 김묘전 스님 건립되었으며 비문의 글
씨는 석대산(釋大汕) 스님의 글씨입니다.
이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이 사리탑은 대한민국의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세계평화(世界
平和)를 기원하는 의미로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이 역광으로 잘 나오지 않고 비면에 백우가... ^^
사리탑에서 대웅전쪽을 바라본 모습
풍광을 담으시는 염화님
사리탑에서 바라본 형제봉쪽 모습
담소를 나누시는 대각화님과 미소님
사리탑 주변을 에워싼 난간석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기암절벽 자연굴에 건립된 산신각 모습
산신각(山神閣)
영불사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곳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영불사를 창건하신 묘전(妙田)
스님은 불기 2503년(1959)에 인왕산(仁王山)에서 수도정진 하였는데, 수도 중 꿈에 동쪽
으로 가보면 석굴이 있으니 찾아가보라는 선몽을 받고 이 일대를 한달여 동안 샅샅이 뒤
진 끝에 이 굴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이 곳은 길도 없었고 잡목도 우거져서 궁벽
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 바위굴 앞에 움막을 마련하여 천막을 치고 기도를 하시고
영불사를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14년 전에 주지로 부임하신
지산(智山) 스님께서 사세를 크게 일으키시고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가꾸고 계십니다.
산신과 그의 권속들
굴 형태의 산신각은 가끔 보아왔지만 탱화(幀畵)가 아닌 존상(尊像)으로 이렇게 권속을
배치한 예는 처음 봅니다. 권속의 일면을 보면 낯설기조차 합니다. 산신을 좌우에서 시
중드는 동남동녀(童男童女)는 탱화에서 자주 보았지만 흰수염을 늘이고 석장을 잡고 있는
백의의 삼계도사(三界道士)라는 분은 아주 생소합니다. 그리고 산신의 우측에 보관을 쓴
부인이 앉아 계시는데 이 분은 후토성모(后土聖母)라는 분입니다. 저는 사찰을 순례할 때
이 분은 뵌 적이 있어 일면식은 있은 셈입니다. ^^ _()_
청의동자(靑衣童子) 삼각산 산신(山神) 홍의동녀(紅衣童女)
산신의 권속인 삼계도사(三界道士)
산신각에 들어 예를 올리면서 흰수염을 한 백의(白衣)의 거사는 누구인가 하고 궁금해서
영불사에 전화를 드렸더니 삼계도사라고 하셔서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삼계도사
는 어떤 분이냐고 하니 산신의 권속이라고만 하시더군요. 그래서 도가의 사전을 뒤지고
민속사전을 둘러봐도 삼계도사에 대해서 언급한 곳은 없더군요. 인터넷에도 전혀 없습니
다. ^^
실은 '삼계도사'라 하면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문으로는 '三界導師'라고 하
지요. 아니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라고 하지요. 삼계의 중생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큰
스승님이란 뜻입니다. 산신의 권속에 삼계도사(三界道士)라는 분은 산신도사(山神道士)
를 가리키는 말로 짐작됩니다. ^^ _()_
후토성모좌상(后土聖母坐像)
후토성모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재작년 정월삼사 성지순례를 할
때 정릉의 봉국사(奉國寺)를 순례하면서 뵌 적이 있습니다. 제가 쓴 순례기를 잘 읽어 보
신 분은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읽고 기억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
다. 그때 후토성모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애쓰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석문의범(釋門儀範)》『산왕청(山王請)』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중략) 南無一心奉請 后土聖母 五岳帝君 職典嵬峨 八大山王 禁忌五蘊 安濟夫人
(中略) 나무일심봉청 후토성모 오악제군 직전외아 팔대산왕 금기오온 안제부인
익성보덕진군 시방법계 지령지성 제대산왕 병종권속 유원승 삼보력 강림도량 수차공양
益聖保德眞君 十方法界 至靈至聖 諸大山王 竝從眷屬 唯願承 三寶力 降臨道場 受此供養
이 구절에서 후토성모(后土聖母)의 존재를 알았고 도가사전을 찾아 정보를 알아냈던 적
이 있어 후토성모에 대해서 일면식이 있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후토성모(后土聖母)는 누구일까요?
후토(后土)란 '토지신(土地神)'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도가에서는 천(天)을 황천(皇天)이
라고 말하는데 대하여 지(地)는 후토(后土)라 합니다.
옛날에 천자(天子)가 후토(后土)에 제사를 했다고 합니다. 한대(漢代)에는 무제(武帝)가
분수(汾水)의 북쪽에 후토사(后土祠)를 세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당송(唐宋)시대가
되면, 토지신의 신앙이 널리 민간에 행해지게 되고 토지신의 영력(靈力)의 내용도 변화확
대 되어 신력(神力)이 미치는 토지의 농작물을 풍족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토지에 사
는 사람의 여러 가지 원하는 일도 들어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불교에 들어와 산신청(山神請)에 자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음양학(陰陽學)적으로 양(陽)인 하늘의 최고신 황제(皇帝)에 대하여 음(陰)인 지(地)
의 토지신은 후토성모(后土聖母)라 존숭한 것 같습니다. ^^ _()_
종각의 사모지붕 모습
관세음보살님 이만 물러갑니다. 인연 있을 때 다시 뵙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11시 5분, 영불사를 물러나며 인사를 드리니 관세음보살님께서 손을 들어 잘가라 인사
하시고 선재동자께서는 안산즐산하라고 합장하며 전송하시네요.
이 영불사를 찾는 분들은 안심입명(安心立命)하시고 정심정행(正心正行)하시어 소원을
성취하고 도업이 새롭기를 바랍니다. 또한 영불사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안락처가 되고
기도처가 되기를 합장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
감사합니다. 백우 _()_
첫댓글 다시보니 새롭습니다. 다녀온지 일주일도 더 지났네요. _()_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것이 느껴집니다.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순례기를 빨리 올리고 싶었는데 여건이 잘 안 되어 늦어졌네요. _()_
또 앞으로 얼마나 늦어질지 모르겠네요.
영불사 산신각은 칠성각과는 극과 극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고
산신의 권속을 많이 조상한 것이 특이합니다.
영불사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전화를 걸어 대충 알아냈지만 그래도 이 정보가 영불사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세하게 살피지 않아 다보탑(축소)이라 했는데, '진신사리탑'이였군요. 영불사 순례기 잘 봤습니다. _()_
다보탑 축소 맞네요. 다보탑을 모델로 세운 탑을 몇 군데 보았습니다. 수원의 봉녕사, 춘천의 현지사... 사찰이라고 해서 일붕선교 이라고 하시더군요.단이 뭐 중요하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웃고 말았죠. _()_
영불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형편인데, 한 군데에 영불사가 일붕선교
홈피에 들어가 소속 사찰을 보니 영불사는 없더군요. 그래서 주지 스님께 여쭈니 총화
멀써 14년이 흘렀다며
감사합니다.
순례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_()_
뭐가 재미 있었나요 제주도에 갔을 때 일붕 법왕 삭발 출가지인 광명사를 찾은 적이 있었지요." 묻는 수가 있으니 잘 외워 두세요. _()_
산방굴사와는 지근한 거리에 있어 광명사를 담은 적이 있었는데 무척 낙후된 모습을 보았었지요.
나중에 산신각의 보살 같으신 분을 보고 "저 분이 누굴까요
나무관세음보살()
설명은 잘 읽어 보셨나요 나중에 테스트 들어갑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