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전설을 찾다.
대구 방천시장.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쌀쌀하기만 한 1월 초. 오늘은 무척 특별한 날이다. 원래 어제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 기차를 타고 간다. 10시쯤 경주역에 도착해 표를 끊고 기다린다. 그러다가 옆에 경주역의 볼거리란 것이 있기에 한 번 찾아 나서본다.
경주역 왼쪽에는 작은 석탑이 하나 서 있다. 첫 번째 몸돌이 길쭉한 이 석탑은 효공왕릉 앞이라 전해지는 사자사터에서 가져온 석탑이다. 일제강점기, 경주역을 만들면서 기념물로 가져온 것인데 오랫동안 기차매연을 맞아서 그런지 검게 그을렸다. 다른 사람 손에 옮겨져 이렇게 수모를 당했던 석탑을 보면 강제로 이주당한 이주민이나 일제에 의해 탄압당한 수많은 사람이 생각난다.
(경주역. 곧 있으면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겠지?)
(경주역 앞 삼층석탑.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경주역 앞 삼층석탑은 그래도 알려진 편이다. 이제 경주역을 나와 경주역을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가면 멀리 이상한 굴뚝같은 게 보인다. 육교를 건너서 왼쪽으로 가면 '경주 기관차승무사업소'란 곳이 나온다. 여기는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라 멀리 담 너머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담장 너머로 거대한 굴뚝같은 탑과 이상한 탑이 서 있다. 저 탑은 일제강점기에 증기관차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던 시설로 지어진 건물로 우리나라 여러 기차역에 남아있지만, 지금도 쓰이고 있는 급수탑은 경주역이 유일하다. 급수탑 앞 이상한 탑은 무사고안녕 기원탑으로 자체적으로 세운 탑인데 밑에 기단으로 쓰이는 것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위한 제단이다. 오래된 연륜을 자랑하는 역인 만큼 일제강점기 유적을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출입이 힘들어 보기 힘들다. 그래도 발품을 팔아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그런데 분명 경주역에서는 경주역의 볼거리라고 소개해 놨는데 보기가 쉽지 않다. 현재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데 등록이 되면 해결될 문제이려나?
(경주역 옆에 있는 육교. 보기만 하고 지나가 보는 건 처음이다.)
(육교에서 바라본 경주역. 이렇게 보기는 또 처음이다.)
(경주역 급수탑. 용도는 다르지만, 아직 쓰이고 있다. 현재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이다.)
(급수탑 앞 신사참배 제단(밑 기단). 지금은 일제 잔재처리를 위해 위에 탑을 세워뒀다.)
시간이 급해 다시 뛰어 역에 도착한다. 표를 가지고 긴장된 표정으로 기차를 기다린다. 잠시 후 기차가 도착하고 기차는 나를 싣은 채 대구를 향해 달린다. 예전에 심심해서 기차를 타고 포항까진 가 봤지만, 이렇게 답사를 홀로 기차를 타고 가는 건 처음이라 많이 긴장된다. 전날 몇 번이고 돼 내이던 계획이지만, 긴장된다. 차창 밖으로 형산강과 서경주역이 지나간다. 점점 대구에 가까워진다.
(경주역 뒷편. 자주 왔지만, 한문으로 된 현판은 처음 본다.)
(기차 기다리고 있는 중.)
(차창 밖으로 보이는 형산강.)
1시간 정도 달려 드디어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동대구역도 서울역과 마찬가지로 기차역을 나오니 제일 먼저 경주빵 집이 보인다. 동대구역을 나와 다시 동대구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표를 산다. 동전같이 생긴 게 서울과 좀 다르다. 열심히 뛰어가 보지만, 지하철이 이제 막 떠나간다. 다시 약 10분간 기다린 후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역으로 향한다. 평일인데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대구역.)
(동대구 지하철역.)
반월당역에서 내려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탄다. 대구는 노선이 두 개뿐인지라 헷갈릴 일은 없어 좋다. 경대병원역에 내려 지나가는 분에게 방천시장 가는 길을 여쭈니 쭉 가라 하신다. 10분 정도 걸어가니 각종 폐컴퓨터로 만들어진 방천시장 입구가 나온다. 그리고 입구에서 조금 더 가니 드디어 그토록 뵙고 싶었던 그분이 보인다. 어깨에 기타를 둘러맨 수수한 옷차림, 동상에서 당장에라도 기타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대한민국 포크의 마지막 전설, 김광석이다.
(방천시장 앞 김광석 동상.)
이곳 방천시장은 김광석이 자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2010년, 이곳을 김광석 거리로 조성하고 수많은 벽화가 그려졌다. 무척이나 오고 싶어 했던 곳인데 드디어 오게 된다.
김광석은 1984년 데뷔해 1996년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명곡과 1,000회나 되는 공연을 펼친 우리나라 가요계 최고의 전설 중 한 분이다. 당시 연가만이 있던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서민적이고 민중적인 노래를 부름으로써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물론 김광석하고 인연이 있거나 그런 적은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분이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어서 제목도 모른 채 자주 흥얼거리던 '광야에서'부터 최근 강풀의 '조명가게'와 방송을 통해 알게 된 '바람이 불어오는 곳', '먼지가 되어'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그의 노래를 접했다. 지금 제일 좋아하는 가수를 꼽으라면 패닉, 리쌍과 더불어 그를 꼽을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가수를 꼽으라면 그를 꼽을 것이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으라면 그의 노래 다섯 곡을 가지고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난 그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없다. 오직 컴퓨터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만이 내가 들을 수 있는 노래다. 그러다가 오늘이 그런 날이란 걸 알고 계획을 짜 이곳으로 달려왔다. 동상을 지나 거리로 들어서니 나 말고도 많은 분이 벽화를 보러 오셨다. 천천히 벽화를 살피며 거리를 걷는다. 거리를 걸으니 또 그의 노래가 생각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면... ...)
(거리에 걸린 생전의 사진들.)
(방천시장 골목.)
(이제는 빈 의자와 기타만이 남은 그의 공연장.)
김광석은 또한 김현식, 유재하와 더불어 젊은 날 돌아가신 가객이다. 물론 그의 죽음에 대해 여러 의혹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는 우리 삶과 또 많이 연관된다. 바람이 불면 생각나고 흐린 가을날 하늘을 보면 그의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고 힘들면 그의 노래를 틀고 생각하며 이런 거리를 걸을 때도 생각난다. 왜 그렇게 일찍 갔을까? 이렇게 늦게 그의 노래를 깨달은 것이 원망스럽다. 거리에는 그의 노래 가사와 함께 벽화가 적혀있다. 곳곳에 있는 스피커에는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바쁜 시간도 잊은 채 거리를 걷는다.
(서른 즈음에. 역대 한국가요 중 노랫말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 1위로 뽑혔다. 4집에 실린 이 노래는 전설이 되었고 그는 정말로 서른 즈음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영원한 청춘 가객,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만약 김광석이 살아 계셨다면 이런 삶을 보냈을까?)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모순투성이인 세상.)
(그가 있는 거리.)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거리를 가볍게 걷는다. 그의 웃는 모습, 그가 노래하는 모습 등 수많은 장면 하나하나가 거리에 녹아들어 있다. 사실 이 거리는 대구의 또 다른 인물인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의 거리로 만들려 했다고 한다. 그 역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손으로 세계적인 대기업을 키우신 분이다. 하지만 소박한 시장에 그런 기업 사장님 보다는 소박한 가수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시민들도 김광석 거리를 원했지 않을까?
거리를 조금 걸으니 동상 하나가 더 나온다. 작은 키에 역시 기타를 둘러매고 웃으며 서 계신다. 여기서 오늘 추모 콘서트를 한다는데 시간이 되지 않아 볼 수 없다. 언젠가 꼭 보고 싶다.
(김광석.)
(김광석의 앨범.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곡들이다.)
(그저 동상으로만 볼 수 있는 그...)
벽화 중 노란 바탕에 웃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 것이 있다. 그곳에 적힌 글귀...
-7년 뒤... 7년 뒤에 마흔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마흔 살 되면 오토바이 하나 사고 싶어요
할리 데이비슨... 멋진 걸루~ 돈도 모아 놨어요
얘길 했더니 주변에서 상당히 걱정하시데요
'다리가 닿겠니?'......
그거 타고 세계 일주 하고 싶어요
괜찮겠지요? 그거 타고 가다가 괜찮은 유럽에
아가씨 있으면 뒤에 태우고~ 머리 빡빡 깎고~
금물 막 이렇게 들여가지고~, 가죽 바지 입고~
체인 막 감고...
나이 40에 그러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환갑 때 저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어요
로맨스...-
왜 그렇게 일찍 가셨는지... ... 답답하기만 하다.
(마흔 살, 그의 꿈...)
(만약 있다면 꼭 가고 싶은 석이네 포차.)
(그가 살아온, 앞으로 그를 추모할 김광석 거리.)
(김광석, 그와 함께. - 지나가시는 분 사진제공.)
어느새 골목이 끊겨서 다시 되돌아간다. 느긋하게 본다지만 몸은 시간에 쫓기고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되돌아오는 길에 한 분이 벽화 앞에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고 계셨다. 혹시 이번 추모공연에 나오시는 분인가? 여러 사람이 앞에 서서 기타연주를 듣고 가신다. 아직 우리나라 포크는 죽지 않았다.
(김광석 앞에서 하는 기타연주.)
조금 더 있다가 가고 싶은데 기차 시간도 있고 다음 일정도 남아있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가기 전 앞에 있던 김광석 동상 앞에 귤 하나를 올려두고 간다. 너무나 존경하고 좋아하는 가수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여기를 다시 오고 싶다.
어느 곳에 가든 떠오르는 그저 소소한 우리네 가수, 김광석.
1월 6일, 오늘은 그의 기일이다.
-2014. 1. 6. 月-
경주역→ 경주역 앞 삼층석탑→ 육교→ 급수탑, 신사참배 제단 (무사고 기원 탑)→ 경주역→→ (기차) →→ 동대구역→ 동대구 지하철역→→ (지하철) →→ 반월당역 (환승) →→ (지하철) →→ 경대병원역→→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새롭게 펼쳐라!
羅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첫댓글 민욱이가 김광석씨를 무척 좋아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