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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우리 교육의 방향
교육이 변화의 주체라는 오만과 착각
나는 1988년 봄 환경교육이라는 단어를 처음 본 이래 줄곧 ‘교육은 장기적 정치이고, 정치는 단기적 교육’이라는 말을 좋아해 왔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간절히 바랬던 나에게 정치가 단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과정이라면, 그에 비해 교육은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과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말을 절반만 받아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교육이 변화의 주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변화의 대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환경교육이나 지속가능발전교육에서 교육을 변화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OECD의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와 그 나라 국민들의 평균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의 크기를 비교한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그림 1]. 즉, 인간개발지수와 생태발자국의 크기(필요한 지구의 수)가 거의 정비례를 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쉽게 말하자면 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고 더 많은 폐기물을 지구에 남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1] 생태발자국과 인간개발지수의 상관관계(출처: https://www.footprintnetwork.org)
소비 또는 소유의 크기와 삶의 질이 비례한다고 믿는 문명의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는 교육시스템 속에서, 학습자는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자격을 추구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생태계와 사회체계의 지속불가능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장의 한계 보고서 발간 30주년을 맞아 수정 보완된 보고서(Meadows 등, 2004)에 따르면, 인류는 물질과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 이미 1980년경에 지구의 수용능력을 넘어섰다. 따라서 오늘날 인류가 풀어야 할 최대 과제는 어떻게 하면 최소한 1980년대 수준으로 물질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동시에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문명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그 문명이 바로 [그림 1]에서 오른쪽 아래에 음영으로 표시된 영역(global sustainable development quadrant)에 속하는 것이며, 지금 현재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교육의 과제는 지금보다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문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새로운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교육 자체를 혁신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기후변화 문제를 통해 살펴보자.
기후변화는 어떤 문제인가?
인류에게 기후위기와 환경재난이 닥쳐오고 있다. 2018년에 채택된 IPCC 특별보고서(IPCC, 2018)는 파멸적인 1.5°C 상승을 막기 위해 인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12년에 불과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호주의 국립기후복원센터(Spratt and Dunlo, 2019)는 2050년에 지구 면적의 35%, 전 세계 인구의 55%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약 10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기후변화는 어떤 문제인가? 기후변화가 환경문제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교육의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예일대학교 기후변화커뮤니케이션센터(Leiserowitz 등, 2018)가 미국 성인 1,2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예상대로 환경쟁점(75%)이나 과학쟁점(69%)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지만, 그 밖에 극심한 날씨(64%), 농업(63%), 건강(58%), 정치(57%), 경제(54%), 인도주의(51%), 도덕(38%), 빈곤(29%), 국가안보(27%), 사회정의(24%), 종교(9%)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그림 2]. 이는 기후변화를 생태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림 2]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출처: Leiserowitz 등, 2018)
지난 200년의 역사는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의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힘없고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육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희생당하고 고통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환경이 곧 정치이고, 경제이며, 윤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미 시작된 환경재난은 최악의 경우 과거 어떤 전쟁보다 파괴적일 것이며, 어떤 독재 정치보다 가혹할 것이며, 어떤 경제적 불황보다 광범위할 것이다.
기후변화, 누구의 문제인가?
현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산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다. 과학자들은 미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2019)의 주장처럼, 지금 우리 어른들은 다음 세대의 미래를 파괴하고 그들이 미래에 존재할 권리마저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코앞에 닥쳐있는 상황에서도 SKY대학에 가기 위해 204단위 중 국영수만 106단위를 가르치는 것이 정상인가?
우리의 아이들은 시시각각 자신에게 닥쳐오고 있는 기후위기와 환경재난에 대해서 충분히 배우고 행동할 기회를 얻고 있는가? 자신의 미래가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밤새워 공부하고 있는 것인가? 오는 9월 27일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수업과 등교를 거부하면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할 예정이다. 2019년 8월 17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만난 청소년들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강화를 요구하는 편지를 전달한 바 있다. 주요 내용에는 제로 에너지 교정 조성, 채식 선택권 보장, 기후위기 교육 확대, 교내 기후활동 지원, 체험학습 사유에 사회참여 항목 추가 등이 포함되었다. 나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 이 학생들의 수업결석 시위와 요구사항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루는지 주목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교육을 바꿀 것이다
미국에서 얼마 전 열린 민주당 후보자 토론회에서 볼 수 있듯이, 2020년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바로 기후변화이다. 나는 2022년에 있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이 근대 학교교육을 틀지었듯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못지않게 기후변화와 환경재난이 우리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나 기후변화는 자연재난도 사회재난도 아닌 구조적 재난(마쓰모토, 2018)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과(학문) 중심의 분절적인 연구와 교육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1977년 트빌리시 회의 이후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선호되어 온 모든 교과에서 분산적으로 하는 환경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Saylan과 Blumstein, 2011).
앞서 지적했듯이 기후변화를 단지 좁은 의미의 환경오염이나 과학적 이슈로 다루면 문제해결을 가로막는 심각한 인지적 장벽이 생겨나게 된다. 이럴 경우 대체로 국가나 전문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하기 쉽고, 단지 지식의 문제로 여겨 우리 삶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학교 과학교사의 30%, 고등학교 과학교사의 45%만이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는 최근의 과학적 합의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기후변화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조차 30%가 기후변화를 자연적인 것이라고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Cheskis 등, 2018). 이렇듯 과학적 불확실성을 잘못 다루면 문제해결을 위한 실천을 유보하는 명분만 제공하게 된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윤태경과 안소은, 2018)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민들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필요한 노력으로 환경교육의 확대(45.0%)를 꼽고 있다. 미국 시민들의 78%가 학생들에게 기후변화의 원인, 과정, 결과, 영향 등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되었다(Cheskis 등, 2018). 그렇다면 우리의 학교는 그런 교육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한민국은 지난 25년 동안 꾸준하게 <환경>을 독립과목으로 가르쳐 온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다. 우리는 1992년 고시된 제6차 교육과정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까지 지속적으로 <환경>과의 내용체계와 교수학습방법론을 발전시켜 왔고, 약 1,800명이 넘는 환경 전공 교사를 배출했으며,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의 중·고등학생에게 환경을 가르쳐 왔다. 2009년 개정 고등학교 <환경>과 교육과정에 프로젝트 접근법을 내용체계 상 대단원의 하나로 포함한 것을 포함하여, 통합적인 환경교육을 위해 축적해 온 이론적 체계와 실천적 경험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2015 개정 고등학교 <환경> 교육과정에서는 환경을 ‘생태계와 사회체계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삶의 조건’을 총칭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건 탐구 등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인문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을 실현해 가고 있다(이재영, 2016). 아직까지 교육계의 리더들이 이런 미적분 수준의 환경교육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초등학교 3학년이면 끝나는 쓰레기 분리배출이나 빈 교실 전등 끄기 수준의 환경교육이 전부인 줄 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후위기와 환경재난의 시대, 미래 세대의 존재할 권리를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을 혁신해야 하며, 이후의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핵심사항을 제안한다. 첫째, 학교교육의 철학과 목표를 개인의 경쟁력 중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환경, 민주, 인권, 평화, 다문화 등)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강화해야한다. 둘째, 차기 교육과정에서는 기후위기 등 환경재난을 구조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교과통합적 환경 학습시간을 필수로 확보한다. 셋째, 여러 명의 교사가 함께 운영하는 교과통합적 수업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교실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교사연구회 활성화, 수업시수 조정 등의 정책을 도입한다. 넷째, 교과통합적 수업에 필요한 교사의 역량 계발을 위해 교원양성 및 선발과정과 연수체계를 개편한다. 다섯째, 학생들로 하여금 교실을 넘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 또는 지역의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지역화하고, 학교-지역간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여섯째, 국내외를 막론하고 학교 환경교육의 가장 위험한 적은 성적위주 교육정책이다. 수능중심 입시체제로의 퇴행을 막고 수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한다. 끝으로, 체계적인 학교 환경교육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전담부서를 편성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환경부가 함께 환경교육진흥법을 개정하고, 국가수준의 학교환경교육종합계획을 수립, 추진한다.
지금까지의 대응을 보면, 인류는 기후변화와 같은 구조적이고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재앙에 미리 대비할 만큼 진화하지 못한 것 같다. 본능과 직관에 맡겨두면 단기적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막을 길이 없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은 강력하고 체계적인 교육뿐이다. 그런 선택이라도 할 만큼 진화했는지, 인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