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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과 문제 제기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인류를 향하신 은총의 시행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언약의 개념 속에 담겨있다. 인류 구원의 역사를 언약의 역사로 파악하는 개혁주의 신학은 언약신학에 응축되어 있는 가르침을 중심교리의 하나로 채택해서 가르쳐 오고 있다. 언약사상은 신구약 성경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게 하는 핵심 개념이다.1) 대부분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언약사상을 강조하고 심화시켜서 오늘날까지 개혁신앙의 기초를 견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원을 설명하는 언약사상이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속에 담겨있다.
나는 지금 이 논문에서 오래된 신앙조항들 중에서 언약사상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 먼 옛날에 나온 신앙고백서를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필요성은 무엇일까?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을 읽어보는 것처럼, 지적인 흥분과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 문서를 다시 펼쳐서 연구하려는 필요성을 과히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필자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들을 들춰서 풀어내려는 것은 여기에 담긴 언약사상이 인류의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는 언약사상이 전혀 인기가 없는 주제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만 할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 쓰여진 성경을 읽는 이유는 그 안에 증거 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히 13: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담겨있는 가르침 가운데서 언약에 대한 풀이에서 필자는 두 가지 의도를 펴보이고자 한다. 첫째로, 구원에 대한 성경적인 개획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안목을 제공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언약에 담겨있으며, 통일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성경에 제시되어져 있다. 역사의 진행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에 놓였으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펼쳐져 있음을 밝혀주는 일이 필요하다. 비단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약사상은 시간과 인간 역사의 진행과정들을, 1) 창조, 2) 죄로 인한 타락, 3)그리스도에 대한 약속, 4)그리스도의 강림, 5) 그리고 재림으로 이어지는 인류 구원 역사의 연속적인 진행과정을 설명해 준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진정한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교제, 교통, 임재를 다시금 회복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으로 진정한 희망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언약신학이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에 나타난 바를 살펴보고, 다시 세 가지 개념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정리되어지기까지 발전과정과 특징을 밝혀보고자 한다. 고전적이며 전통적인 신학에 대한 명쾌한 개념 규정은 성경적인 언약사상의 정립을 위해서 지금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연구주제와 대상에서 가장 집중하는 분야이기에 이 논문의 핵심이 될 것이다.
둘째로, 필자는 최근 일부 현대 신학자들의 언약논의에서 드러나는 질문들에 대답하면서 구원과 칭의의 교리를 이해하는 바른 성경적인 안목을 제시하려는 효과를 기대한다. 최근 “바울 신학의 새 관점”을 제시하는 신학자들은 전혀 이들 역사적인 신앙고백서에 대한 연구자체를 삭제해 버리고 있어서 큰 혼란을일으키고 있다.2) 언약사상을 다루면서도, 고전적이며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역사적 탐구와 맞서는 여러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충돌로 인해서 개혁주의 신학계에서 칭의론과 언약, 율법의 이해를 놓고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3)
유대주의에서 깊은 영향을 입은 반펠라기우스주의자 (semi-Pelagian) 샌더스 (E. P. Sanders)는 단일언약설 (mono-covenantalsim)을 주장한다. 그 핵심은 율법과 은혜가 통합된 유대주의가 바울의 칭의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의 칭의론이란 오직 그리스도의 온전하고도 충분한 순종에 대한 믿음만이 있을 뿐이며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전가 받음으로서 성도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은혜 없는 율법주의가 아니었다는 샌더스의 주장은, 결국 둘 다 약화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샌더스는 제2성전기의 유대주의를 “언약적 율법주의” (covenantal nomism)라고 규정하면서, 유대 종교의 패턴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샌더스는 고전적인 종교개혁자들이 유대주의를 율법주의로만 치부했다하여 비판한다.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에 발견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전가받는다는 개념, 즉 외부로부터 오는 칭의개념은 사도 바울에게 없었다고 주장한다.4) 샌더스가 말하는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패턴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우리 개인의 순종이 칭의의 조건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칭의가 엄밀하게 말해서 공로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율법과 복음,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사이에는 아무런 질적인 차이가 없다; 셋째로, 우리가 “은혜로 받아들여지면서, 순종에 의해서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샌더스는 주장한다. 즉 샌더스의 칭의론과 언약사상은 행위에 의하여 최종 칭의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연 순종이 칭의의 조건이었던가를 규명하는 것은 구원의 계획과 시행을 이해하는 데에서 매우 필요한 논의가 된다.5)
언약사상이 초기 기독교 저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에는 일치하면서도,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은 종교개혁자들이나 고전적인 개혁주의자들과 아주 다르게 제시하는 이가 바로 톰 라이트이다. 개혁신학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샌더스의 가설에 찬동하면서, 자신의 신약성경 연구를 종합하는 개념으로 「언약의 정점」을 내세운다. 특별히 바울신학의 칭의론에 담긴 핵심 사상이 언약사상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중세의 공로사상과 루터파의 칭의론 모두 다 거부하였다.6) 지난 16세기와 17세기 신학자들의 연구들을 모두 다 물리쳐 버리고, 오로지 1세기 문서에 대한 해석으로 돌진하는 라이트의 해석만을 받아들이라고 강조한다. 거의 2천년동안 조직적으로 바울의 칭의론을 왜곡했다고 비판한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구원의 이해를 위해서 언약과 율법과 복음을 이해하는 일은 지난 간 신학자들의 논쟁이 많은 도움을 준다.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개념을 세우고자 진행되었던 발전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정립되었는가 돌아보면서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동시대 신학자들의 논의가 도움을 주는 것이다.
(1) 언약사상의 근원과 종교개혁의 신학
해 아래 새 것이란 없다. 신학사상들도 아무 것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소개하는 언약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립되기까지 종교개혁시대에서부터 후기 개혁파 정통주의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성경적인 구원의 전체 역사와 구조를 밝히 보여주는 언약신학은 초대교부들로부터 직접 언급되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와 교제에 대해서 이레니우스, 제롬, 갑바도기아 교부들과 어거스틴이 구조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7) 터툴리안도 이미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이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요한복음 15장 14절에, “너희가 내 명령을 행하면, 나의 친구들이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과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 친밀함을 근본으로 하여 유지되고 있다. 친밀한 관계성이 유지되려면, 먼저 신뢰와 책임이 따르게 된다.
개혁신학자들이 언약사상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게 된 것은 구원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언약적인 관계가 흐르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성경적인 신학연구에서 시작하여 가장 중요한 교리로 발전되다가 마틴 루터와 필립 멜랑톤의 영향으로 독일신학계에서 율법과 복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스위스 지역에서 발전된 성경연구가 반영되면서 더욱 더 깊이 정리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에서 두 가지 언약이 다루어졌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3-1649) 7장과 8장에서는 더 면밀하고도 정확한 개념을 담아서 세 가지 언약으로 정립되었다. 행위언약 (혹은 창조언약, 율법언약, 생명언약, 자연언약 등으로 여러 학자들이 다양하게 표현함), 은혜언약, 구속언약 등이다.8) 보스 박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야말로 언약교리를 모든 신학의 항목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교리로 가르친 최초의 신앙고백서라고 평가하였다.9) 이들 고백서들에 담긴 개혁주의 언약사상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네델란드 라이덴 대학의 코케이우스 (1603- 1669)가 1648년, 「하나님의 언약과 증거들에 대한 교리요약」에서 최초의 언약은 행위언약이며, 후에 은혜 언약이 나왔고, 그 근원은 영원하신 구속언약이라고 하는 세 가지 언약을 정리했다.10) 브레멘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에 대표신학과 언약신학을 가르친 개혁파 교수들 (Matthias Martinius, 1572-1630, Ludwig Crocius, 1586-1655)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언약신학에 관해서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그 작성자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정리하였고, 견고하게 유지하므로써 다음 세대가 17세기에 언약사상을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깨우침과 안목을 열어주었으므로, 결정적인 공헌을 남긴 것이다. 필자의 추론으로 볼 때에, 언약사상은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각각 발전시켜 나오다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11)
개혁신학은 여러 종교개혁자들이 세운 언약신학을 근간으로 한다. 칼빈과 그 동시대의 개혁사상을 물려받은 17세기 신학자들은 언약사상에서 일반적인 일치와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었다.12) 피터 마터 버미글리, 쯔빙글리, 불링거, 칼빈 등은 동시대의 사상을 나누었고, 무스쿨루스,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잔키우스, 무스쿨루스, 롤록, 코케이우스, 윗시우스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종교개혁세대와 그 후 정통신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유럽 개혁교회의 다양한 신학적 강조점에서 가장 공통된 부분이 언약사상이었다. 언약사상에서 차이점이나 상이점들은 많지 않았고, 동질의 개념에서 신론과 인간론, 구원론과 성찬론 전반에 걸쳐서 연결되어져서 여러 핵심주제들의 근본을 형성하고 있다.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하나의 언약만을 파악하고 있었다. 은혜의 언약이 시대마다 다양하게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자연언약” (foedus naturae)이라고 하여서, 하나님께서 죄로 인한 타락이 있기 전에, 전체 우주에 안에서 아담과 이브와의 관계에서 시행하신 것이라고 보았다. 이 언약을 낙원에서의 구체적으로 언급하게 되는 것이 행위언약이라는 구분이다. 스위스에서는 쮜리히 개혁자들과 칼빈의 제네바에서 강조하였고, 독일에서는 브레멘, 헤르본, 하이델베르그, 네델란드의 개혁교회 등에서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에서도 나왔다. 그래서 언약사상의 근원에 대하여서 간략하게 정리하여 본다.
1) 쮜리히의 언약사상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재세례파와 논쟁에서, 쯔빙글리는 대표언약 사상에 강조점을 두었다. 하인리히 불링거가 계승하였고, 최초로 언약사상을 조직화하였다. 불링거는 1534년 최초의 단행본을 언약에 대해서 출판하였고, 지속적으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으신 은혜언약을 강력하게 강조하였다.13) 하나님과 아담과의 관계는 간헐적으로 언급되었고, 하나의 언약인 은혜언약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불링거는 아직 행위언약이라고 하는 요소가 은혜언약과 동등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었다. 쮜리히 종교개혁자들은 쌍무적 관계에서 의무조항을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14)
2) 멜랑톤과 칼빈의 영향
멜랑톤과 그의 제자들은 자연법,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자연법 (lex naturae)에 관심을 두었다. 불링거와 사뭇 강조하는 부분이 달랐다. 멜랑톤을 따르는 루터파 교회에서 행위언약의 교리가 발전되는 개념이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읽은 바, 언약사상이 멜랑톤의 신학에서 핵심을 차지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교리로 강조된 바도 없었다.
독일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뿌리로서 필립 멜랑톤의 「Loci Communes」 을 높이 평가하는 하인리히 헤페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세운 바에 따르면, 율법과 복음은 서로 구별하면서도 십계명과 자연법은 서로 연관을 시키고 있음에 주목한다.15) 멜랑톤에서도 언약사상이 후대의 개혁신학자들처럼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차츰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서 보다 성경적인 안목이 자세히 개진되어졌다. 특히, 훗날 칼빈주의자로 돌아선 멜랑톤의 제자, 우르시누스가 동일한 구조를 전개하였다. 우르시누스는 칼빈의 영향을 받아서 구원역사를 언약사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안목이 성경적으로 정립되었다고 많은 신학자들이 평가하고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는 두 가지 언약이나, 세 가지 개념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언약사상의 발전에 있어서나 정립에 있어서 직접적인 칼빈의 영향을 제시하기가 쉽지않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신학자로서 언약, 선택, 새언약, 인간의 의무와 참여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연계시키고 있어서 언약사상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칼빈은 언약의 동일성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이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백성으로 받아들이신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와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동일한 교리 아래에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하였다.16) 이 구절은 명백하게 칼빈이 언약사상을 밝히는 부분으로 주목되고 있다. 동일한 중보자를 강조하면서 신약과 구약이 근본적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어서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강림 이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셨던 언약과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 우리와 지금 맺으시는 언약 사이에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그 유사점과 차이점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은 그 본질과 실체에 있어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과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에, 이 두 언약들은 그 시행의 양상이 다를 뿐, 실제로는 하나요 동일한 것이다. 그 둘 사이의 유사성, 아니 차라리 동일성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첫째로, 육신적인 번영과 행복은 유대인들이 사모해야할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고,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확신이 계시의 말씀과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을 통해서 보증되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들을 여호와와 연결시켜준 그 언약은 그들 자신의 행위의 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긍휼을 통해서 뒷받침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고, 그를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결속되고, 또한 그의 약속들을 함께 소유했다는 것이다.”17)
이러한 칼빈의 언약이해는 베자 이후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개혁신학자들의 언약사상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을 주장하면서 은혜언약을 기본으로 하되, 하나님과 인간과의 쌍무적인 관계성을 부각시키는 불링거와 쮜리히 언약신학과의 조화를 모색하면서 행위언약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고 보는 것이다.
언약신학은 어느 누구 한 두 사람의 종교개혁자가 만들어낸 교리가 아니요, 개신교 교파 중에서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나라에서 만들어낸 사상이 아니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 전역에서 성경학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주제로 하는 깊은 연구들을 교환하면서 상호 도움 속에서 발전되고 형성되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경에 나오는 구원역사를 접근함에 있어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는 과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밝혀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채택해서 보다 체계적인 신학방법론의 변화를 초래한 베자에 의해서 칼빈의 사상이 공고하게 정립되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로, 특별히 우르시누스가 라미즘을 받아들여서 베자와는 전혀 다른 신학을 세웠다고 보는 독일 학자들도 (Jürgen Moltmann, Wilhelm Neuser) 있다. 이미 필자는 2013년 6월에,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의 언약사상”에 대해서 발표한 바 있다.18) 여기서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고, 세가지 언약의 내용을 중심으로 성경적인 접근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서의 언약사상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는 개혁주의 언약사상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언약신학이 이들에게서 완전하게 발전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언약이라는 개념이 초기 종교개혁자들보다 좀 더 명쾌하게 규정되었고, 사용되었으며, 종합적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언약사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하이델베르그 문답서에는 언약과 증거 (testament)가 모두 성례와 관련해서 제시되었다. 68, 77, 79, 82, 84문항들은 모두 성례를 설명하는 부분들인데, 여기에 언약사상을 집중적으로 풀이하였다.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의 다른 글에서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나누어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때로는 중복되기도 하여서 혼합적인 양상을 내포하고 있다. 15문항과 18문항에서 그리스도의 중보자되심을 언급하는데, 여기서 후대에 영원언약이라고 풀이하는 부분이 함축되어져 있다.
언약은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성경 전체의 전망과 사도적 교리의 전체 구조를 이 주제와 연관해서 풀이하였다.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를 제시하는 통합적인 원리가 언약임을 강조하였던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하나의 은혜언약을 상징하고 인치는 것으로 성례를 풀이하여 루터파와의 논쟁을 종식시켰다.19)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는 하이델베르그에서 벌어지던 루터파의 ‘공재설’이 개혁파와 대립하던 성만찬 신학의 긴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개혁주의 언약신학으로 연결해서 풀이한 것이다. 언약에 참여한 백성들이 누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혜택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초월적이며 신비로운 연합으로 임하시는 임재, 즉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서 참여케하시는 은혜라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의 성격과 위치를 강조하는 언약사상으로 인해서 더 이상 빗텐베르그에서 설명하는 율법과 복음의 대립을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우르시누스는 “신인 협력적인 개념으로 언약신학의 출발점을 삼으려하지 않았다.”20) 개혁신학과 일치되는 범위까지만 멜랑톤의 교리를 취사선택 하였던 것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를 통해서 언약사상은 제네바와 쮜리히에서 초기 종교개혁자들이 발표한 것들을 통합하고 연속성을 지닌 하나의 교리로 더욱 더 확고하게 정착되었다. 더구나 동시대를 살았던 테오도르 베자와 하이델베르그 신학자들은 오랫동안 상호 신뢰와 후원관계를 유지했다. 베자는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와 교분을 나누었고, 이들의 책이 제네바에서 출판되도록 후원하였다.
칼빈의 신학에서 강조된 것들의 대부분이 하이델베르그 신학자들의 언약사상에 들어있다.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가 율법언약과 행위언약으로 구별해서 설명하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런 구분법은 이미 칼빈에게서 “행위 대 언약”으로 정리되어 있었으므로, 이중성을 파악하여 제시하는 동일선상에 있었다. 베자는 “행위의 교리”와 “은혜의 언약”을 구분했었는데, 교리를 빼고 “언약”을 넣으면 되는 것이요, 행위라는 것은 “율법”으로 바꾸면 오늘날의 용어로 볼 때에 더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1) 두 가지 언약을 선명하게 제시함
우르시누스는 은혜 언약의 교리에 새로운 기초를 마련하였다. 다시 강조하자면, 우르시누스야말로 은혜언약을 확고하게 설명하여 놓음으로서 언약신학의 발전사에서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가 언약신학의 종합적인 체계를 완전히 다 밝힌 것은 아니지만, 언약에 담긴 은혜와 은총을 부각시켜 놓았다는 부분은 인정을 받아야할 탁월한 언약신학자이다.
1561년 말 혹은 1562년 초에 우르시누스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학총론」(Summa theologiae)에는 323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었는데, 이처럼 긴 대요리문답의 핵심은 언약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1) 다음은 우르시누스의 언약사상은 그 첫 번 째 문답에서 나온다.
“살든지 죽든지 당신이 갖고 있는 견고한 위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무한하심과 자유로우신 자비하심에서
그의 은혜의 언약으로 나를 받아주신 것입니다.”
첫째, 우르시누스는 언약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약속일뿐만 아니라, 이 약속의 성취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실질적인 “화해”(reconciliation)라고 풀이하였다.22) 여기서 매우 중요한 부분은 언약에서의 화해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의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점을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언약의 초점이자 기초가 되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중보자 사역에서 하나님과 사람, “양자 사이의 화해자이며, 모든 다른 언약의 중보자들과 똑같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의도적으로 그 하나님을 버린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보자로서 그리스도의 포용력은 우리의 죄악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켰으며, 화해를 향한 문을 열어놓았다. 서로 달라진 양쪽 사이에 언약을 회복시키는 중보자의 직분을 감당하셨다.
“언약이란 일반적으로 두 당사자 상호간의 약정, 혹은 계약으로서, 한 당사자가
스스로 상대방에게 특정한 조건하에서 뭔가를 주거나 받는 등의 어떤 일을 이행
하기로 약속하는 것인데, 이때 그 약속을 엄숙하게 인준하고 또한 그것을 깨지
않고 반드시 준수할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특정한 외형적인 표징들과 상징물들 이 거기에 수반된다. 언약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정의를 볼 때에, 하나님과 사람 사 이의 상호간의 약속과 약정이라 정의할 수 있는 성경의 언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23)
히브리어 ‘베리트’를 유언 (testament)으로 해석하는 것도 언약을 죽음과 연계시키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 사역으로 초점을 모으려 했다. 우르시누스가 가진 언약개념의 핵심은 “은혜로우시며 무조건적인 본질”이기에 우리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언약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으므로 동등한 대등관계가 아니다.24)
은혜언약이 우선적인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우르시누스의 핵심교리는 믿음의 교리에서 나온 것이다. 믿음에는 역사적 믿음, 일시적 믿음, 이적을 행하는 믿음,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 등 네 종류로 나눈다.25) 오직 의롭다하심을 얻는 믿음은 모든 약속 개인적인 적용과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해서 은혜의 약속과 관계된 확신이요, 말씀에 대한 동의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르시누스는 믿음이란 사람의 편에서 성취되어야 할 언약의 조건이라고 말하였다.
선택받은 자들의 회개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결코 생활에서 완벽할 수 없다. 믿는 자들의 순종은 결코 하나님의 율법을 충족시킬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방법은 중보자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르시누스의 선택교리는 은총을 우선 순위로 놓고 있으며, 칼빈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26)
우르시누스는 은혜언약 (foedus gratiae)을 둘째 언약인 자연언약 (foedus naturale)에 연결하여서 설명하였다.27) 이 자연언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과 맺으신 것으로서 자연에 의해서 알게 되도록 하셨으니,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의 마음에 심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연적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악한 것에서 옳은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며, 우리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율법으로 쓰여졌든지, 기록되지 않은 채 마음에 쓰여졌든지 간에 자연언약은 우리에게 완벽한 순종을 요구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제시한다. 순종하는 자는 영생에 이를 것이요, 불순종하는 자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제 10문항 하나님의 율법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인간과 세우신 언약의 일종을 가르치고,
(quale in creatione foedus cum homine Deus iniverit)
어떻게 그것을 지키며 행동해야할 것을 가르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언약을
세우신 이후에 무엇을 요구하시는 지를 가르친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어떤 종류의 존재이며, 무엇을 목표로 창조하셨으며, 그들이 타락하여 어떤
상태로 떨어졌으며, 이제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서 그들이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제 36문항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답 율법은 창조시에 하나님에 의해서 인간과 함께 맺은 자연 언약을 포함하는데,
이는 본성으로 인간존재가 아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완벽한 순종을
요구하며,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는 영생이 약속되어져 있으나, 이와 동시에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형벌과 하나님의 진노가 가해진다.
제 135문항 어째서 그리스도의 성화와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고 여겨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가?
답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의롭고 참되신 분으로서 불변하시는 바, 창조시에
수립한 언약과 전혀 배치되는 않는 방식으로 은혜의 언약으로 우리를
받아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진실하심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자연언약의 순수성이 유지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은혜언약에 참여시켰다.28) 하나님은 자연언약에서 요구된 의로움의 기준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않는 한 영생을 우리에게 보상으로 주시지 않으시며,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구속하시는 것이 아니다. 은혜언약은 자연언약의 보충적인 성격이 있다. 은혜 언약을 담고 있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을 우리에게 계시하셨는데, 자연언약을 담고있는 율법에 의해서 요구된 의로움을 보여주신 분이며 자연언약 아래서 우리에게 더 이상 주어질 수 없는 영생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약속하셨다.
우르시누스의 언약신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활동이다.29) 아버지 하나님이 언약의 창조자이며, 그리스도가 그 언약의 중보자인데, 성령은 자신이 언약의 선물이요 동시에 우리의 가슴에다가 영생과 의로움과 용서의 축복들을 인치시는 분이기도 하다. 성령은 택함 받은 자들 안에 믿음을 주심으로 칭의를 얻게된 가장 최초이자 최고의 유효적 근거이다. 성령을 떠나서 우리에게 이런 능력을 가져다 줄 분은 없다. 심지어 언약에 참여한 부모의 자녀들의 성화를 포함하여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의 성화의 집행자이다.30) 성령은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을 거듭나게 하고, 언약 안에서 그들에게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가르쳐주며, 하나님의 성전이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서 성도들을 빚어낸다. 성령은 성도들이 지켜내야 할 언약의 인간적 측면을 지탱해나가는데 필요한 지속적인 은혜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 우선, 언약사상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인식한 것은 분명하지만, 우르시누스의 언약사상이 주로 구원론적인 접근으로 그치고 말았다는 평가를 피할 길이 없다. 쯔빙글리, 불링거, 무스쿨루스, 그리고 칼빈마저도 아직 성령의 사역이 언약적 기능을 어떻게 수행하는 지에 대해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평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르시누스의 언약론에서도 역시 교회론적인 차원의 설명과 성령의 사역에 대한 언급도 부족하다. 더구나 종말론적이며 미래 기대와 연계시키는 것도 많이 결여되어 있다.
2) 올레비아누스와 언약의 중보자
16세기 종교개혁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을 회복한 시대였다. 올레비아누스는 「하나님과 선택받은 자들 사이에 맺은 은혜언약의 본질에 관하여」 라는 책은 언약사상사에 한 획을 그은 책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은 칭의의 은혜가 공통적으로 동일하게 옛언약과 새언약에 들어있다.”31) 왜냐하면 모든 시대를 통털어서 신실한 자들의 화해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이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언약은 단 하나 뿐이며, 영원한 은혜의 언약이다고 올레비아누스는 선언했다. 그의 언약사상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이되는 성경이해를 제시하여 개혁주의 신학 정립에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된 은혜의 언약, 즉 가장 본질적인 내용은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공통점이요 통일된 원리로 정립되는데 큰 기여를 남겼다. 옛 구원의 경륜 아래서는 장차 구원자가 오실 것이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가, 새 언약 아래서는 그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나타나는 충만한 계시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시킨다.
예수님 이전의 언약들은 아담, 아벨, 아브라함, 다윗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모두 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속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해하였다. 아담의 원죄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속죄함을 얻었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의 죄도 역시 사함을 얻었다. 구약과 신약 사이의 차이점이란 단지 시행의 방식이 다를 뿐이지, 그 본질은 똑같다고 주장했다.32) 이점은 우르시누스의 주장과도 동일한데, 언약은 하나이며 옛 약속과 새 약속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하였다.
“언약은 본질상 하나다. 그 양상에서는 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또한 덜 일반적인 조건에 있어서는 혹은 어떤 이들의 말처럼 그 운영의 양식에 있어서는 둘이다.”33)
올레비아누스는 우르시누스처럼 똑같이 “자연 언약” (foedus naturale)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34)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생명의 약속이 들어있다. 만일 위반할 경우에는 죽음으로 형벌을 받게 될 것이요 완전히 순종할 경우에는 생명이 주어지는 조건이 부과되어 있었다. 올레비아누스는 자연법을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와 연결시켰는데, 이성, 의지, 감정,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서 드러나게 되는 모든 속성들과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본성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우심을 인간의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계속해서 자신이 수행해야할 자연적인 의무감을 인식하고 있게 되어졌다.
올레비아누스는 “창조언약” (foedus creationis) 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는데, 타락이전 인간의 조건과 위치에 대한 설명에서 기본언약 (primium foedus)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사탄의 미혹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맺은 “창조언약”을 어기고 거짓 약속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 사탄과의 언약 (foedus Sathanae)은 사탄의 약속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는 동맹이요 단결이다.35) 이것은 은혜언약의 반대개념이라고 올레비아누스는 설명하였다. 그 결과로 인간의 본성은 사탄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고, 어두움의 나라의 백성으로 전락했으며, 새로운 주인의 이미지를 반영하게 되었다.
올레비아누스는 하나님께서 은혜언약 (foedus gratiae)을 준비시키셔서 죄인들이 복음을 듣고 반응하도록 예비하시고 저주에서 건져내셨다고 풀이했다.36)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모든 것들이 드러났고 완성되어졌다. 완전한 하나님이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와 지배를 무너뜨리셨고, 대적들에 맞서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내시고 보호하신다. 완벽하신 순종을 통해서 중보자로서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무한하신 사랑을 주신다. 구원언약의 영원한 본질은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을 요구한다.
새 언약의 시대에는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심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훨씬 더 풍성하게 인식하게 되어졌고, 믿음 안에서 그 혜택들을 더 즐기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어서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더구나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제사법적인 과용과 구약시대의 규칙들을 준수해야만 하는 순종 의무가 전혀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되었다.
성례들은 통일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선포하고 있다고 올레비아누스는 가르쳤다. 다시 말하면, 언약의 본질은 동일하고 시행에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동일한 약속과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혜택이 여러 종류의 성례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한다. 모든 성례들은 그리스도라는 본질과 실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성도들을 그리스도로부터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는다. 구약시대에는 유월절과 율법적인 제사법들을 지켜야만 했는데, 이런 언약의 측면들은 중보자를 기대하게 했던 것들이고,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다 성취하시고 폐지되고 말았다. 물로 씻어내고 빵과 포도주로 영양을 공급받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적인 관계를 맺게 되어져서 죄를 씻음 받는다는 것과 생명의 능력을 공급받고 강화되어진다는 것은 상징하는 것이다.
올레비아누스에 의하면, 은혜언약의 상호적 성격 (mutual covenant of grace, mutui foederis gratuiti)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성례이다.37) 화해의 일방적인 약속은 쌍무적인 순종과 다짐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명령의 측면과 인간이 반응해야하는 믿음의 조건이 함께 은혜롭게 연결되도록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례 가운데서 선포하신다.
그러나 아직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은 올레비아누스의 글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택한 자들과 맺은 단 하나의 영원한 은혜언약의 일부분으로 취급한다. 성부의 작정과 영원한 의도 사이에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성자께서 자신의 사역으로 성취해 나가는 상호 작용의 본질은 아직은 그 안에 함축 (ingredients)되어 있을 뿐이다.38)
끝으로, 올레비아누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언약의 중보자” (the Mediator of Covenant)라는 개념을 강조하므로서, 훗날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에 대해서 주목하도록 만드는 공헌을 남겼다. 올레비아누스가 구원 전체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성경이 증거하는 성자의 성육신과 대속적인 피흘림 등이 모두 다 성부의 작정 안에 들어있는 것이며, 삼위 위격 사이에 언약을 반영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18-20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작정하신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평화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영원 전부터 정해진 것이다 (사 46:10, 잠 19:21, 시 33:11, 계 4:11, 엡 1:11, 3:11).
다시 말하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관계성을 주목하다가, 17세기에는 “구속의 언약” (pactum salutis)으로 명칭이 정해지고 개념이 모아져서 자연스럽게 언약사상으로 귀결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지정 하셨다 (constitutio Mediatoris).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기초적인 가르침이다. 창세 전에,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엡 1: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서 그리스도의 위치를 확고하게 정해 놓았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서의 지명하면서 그의 인격과 사역이 기초가 된다. 우리는 특별히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서 인간의 몸을 입고서 오신 것을 확실하게 믿고 나가야 한다. 올레비아누스는 그리스도의 “보증” (sponsio)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에 의해서 언약의 중보자로 지명을 받게 됨 으로써, 두 가지 확실한 사실이 세워지게 되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성부께서 그에 게 주신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만족을 드렸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연합되어진 자들에게 양심 속에 평안을 즐거워하도록 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매일매일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39)
위의 인용문에서 올레비아누스가 연결시키고 있는 부분은 성부의 명령과 약속에 관련한 것이다. 우리가 장차 구속의 언약, 혹은 영원언약이라고 발전시키게 되는 개념이다. 이것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적 관계성에 주목하여 설명한 것이다. 개혁신학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언약의 교리와 속죄의 교리와 예정의 교리가 함께 묶여져서 구원의 계획을 풀이하는 형식이 되었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으신 관계의 특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 언약신학이며, 구원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원리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은 17세기로 넘어오면서 더욱 더 강조되었다. 언약사상의 다양한 발전과정에 대해 탐구하려면 제네바의 칼빈에서부터 유럽 대륙 여러 나라의 종교개혁자들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신대륙 등으로 광범위하게 조사 범위를 넓히지 않을 수 없다. 메리 여왕의 통치시기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고, 망명객들이 스위스, 독일, 네델란드 등 유럽 대륙의 개혁신학을 호흡하고 체험하게 되었다. 망명 신학자들이 돌아와서 남긴 공헌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이상으로 구현하려는 신학적인 비전을 품게 되었다. 청교도들의 근원에 요한 칼빈의 구조적인 신학원리가 깊은 영향을 끼쳤다.4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가장 성경적인 언약사상을 세 가지로, 은혜언약, 행위언약, 구속언약으로 내놓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성경 신학적인 변화가 함께 작용했다고 본다. 유럽의 종교개혁자들이 내놓은 책들이 영어로 번역되었기에,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비롯하여 많은 연구들을 영국에서도 접할 수 있었던 것과 새로운 청교도들의 약진과 도약이 있었다.
1) 웨스트민스터 언약사상의 배경
전세계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제시한 고전적인 문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어떤 사상적인 배경이 흐르고 있었는가를 크게 몇 가지로 압축해 보고자 한다. 언약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누가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고전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첫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언약사상은 단순히 개혁주의 전통에서 흘러나온 것은 아니라, 영국 성공회와의 갈등과 대립 가운데서 형성된 퓨리턴 사상의 결산이었다.41) 잉글랜드에서도 스코틀랜드의 낙스와 같이, 칼빈과 베자의 제네바 교회처럼 상하 명령체제의 주교가 없는 교회를 세우려는 비타협파 개혁주의자들이 강력한 의지를 발동하여 박해 속에서도 국가교회로부터 분리된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영국 종교개혁 초기의 희생이 있은 후에, 유럽 망명객들이 돌아오면서 퓨리턴 사상의 지도력이 견고하게 형성되었다. 카트라잍 (Thomas Cartwright, 1535-1603)이 제네바의 베자와 하이델베르그, 바젤, 네델란드 여러 신학자들과 교제를 나누었다. 특히 같은 망명객 멜빌 (A. Melville, 1545–1622)과 교제하고 1585년 말에 스코틀랜드 남서부로 돌아왔다.42) 카트라잍의 영향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과 후기 퓨리턴 운동에 일대 전기가 형성되었다.43) 영국의 칼빈이라고 불리던 카트리잍은 행위언약이 먼저 있었고, 후에 은혜언약이 제정되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언약의 통일성과 시행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언약에서 하나님 주도적인 측면과 인간의 의무를 강조하는 조건적인 측면을 모두 다 균형있게 제시한 퍼킨스 (W. Perkins, 1558-1602)와 그의 제자 에임즈 (W. Ames, 1576-1633)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언약사상에 남긴 영향은 매우 심대하였다.44)
둘째, 알미니안주의가 카메론 (John Cameron, 1579-1625), 그의 제자 아미로 (Moise Amyraut, 1596-1609)에 의해서 영국에 퍼지게 되었는데, 이를 받아들인 윌리엄 로드 (William Laud, 1573-1645)가 1633년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고, 모든 칼빈주의자들과 대립하였다.45) 정치적으로 결탁한 알미니안주의와 반율법주의 (antinomianism)이 퍼지면서 오래된 정통주의자들과 성공회에 압력을 가하는 대안으로 제시되어진 것이 언약신학이다.
알미니안주의를 반대하는 카트라잍의 저서들은 동시대인들에게 기념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카트라잍의 절친한 동지, 더들리 펜너 (Dudley Fenner, 1558-1587)는 칼빈주의 신학의 확고한 정착을 위해서 전면에 나섰는데,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확고하게 구분하였다. 1585년에 펴낸 「Sacra Theologia」에서, 펜너는 그리스도와의 언약적인 연합에 관하여 확고하게 발표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배경에는 알미니안주의를 배척하고 견고한 칼빈주의 신학사상을 세우려는 신학자들의 노력이었다.46) 칼빈의 저술들은 그 어느 누구의 책보다도 훨씬 더 많이 보급되었으며, “영향력 면에서나 인기도 면에서나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시대 영국교회의 신학형성에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칼빈은 최고의 신학자였다.”47) 칼빈주의는 잉글랜드 퓨리턴이즘의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되는 성경의 권위를 확고히 세우도록 영향을 끼쳤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 속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셋째, 17세기 스코틀랜드 언약사상가들에 의해서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구원이해의 언약사상이 전체 국가적으로 언약을 맹세하고 참여하고 실현하는 “언약사상의 절정기”에 이르게 되었다. 더구나 이들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 신학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네 명이 참석하였으니, 로버트 베일리 (Robert Baillie, 1599-1662), 죠지 길레스피에 (Gerogre Gillespie, 1613-1648), 알렉산더 헨더슨 (Alexander Henderson, 1583-1646), 새뮤얼 러터포드 (Samuel Rutherford, 1600-1661) 이었다. 이들이 큰 영향을 끼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세 가지 언약이 정립된 것이다.
“언약적인 공동체” (covenanted community)라는 개념이 개혁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면서 핸더슨 (Alexander Henderson)과 죤스톤 (Johnston of Wariston)에 의해서 국가 언약 (National Covenant)에 서명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48) 1638년 글래스고우 총회에서부터 시작되어서 1640년에 스코틀랜드 국왕이 서명하므로써 열매를 맺었다. 이처럼 언약신학은 17세기에 가장 중요한 통합의 주제가 되었고, 의회정치의 변혁을 시도하는 정치적 격동기에 큰 영향을 발휘하였다. 스코틀랜드 언약신학자 로버트 롤록 (Robert Rollock, 1555-1599)의 저술들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과 거의 유사하다. 또한 올레비아누스의 제자 로버트 하위 (Robert Howie, 1565-1645)의 언약사상이 잉글랜드 청교도들에게 각광을 받았다.49)
2) 17세기 사회 계약론과 언약사상
신학의 형성과 발전은 시대적 상황과 국가적인 형편과 무관하지 않다. 차분하게 정통신학을 지켜나가던 칼빈주의자들은 언약사상을 크게 강조하였다. 이것은 과연 당시 상황과 무관할까? 초기 개혁주의 신학사상에서 나온 것에다가, 17세기에는 또 다시 종교개혁을 해야만 하던 투쟁과 대립의 시기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637년부터 1651년 사이에 국가언약을 세우려는 장로교회 지도자들의 사투가 벌여졌다. 절대왕권을 주장하는 국가와 성공회의 로드 대주교가 예배모범과 성례절차에 대한 절대주의를 선포하는 것에 맞서서 싸우고 있었다. 1638년 2월 28일, 언약조항을 내걸고 새로운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언약자들의 사회변혁이 시행되었다.50)
법률에 대한 사고가 크게 바뀌게 되어서 언약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연구가 나왔다. 홉스, 로크, 루쏘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과 성경적인 언약을 계약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과연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17세기 사회계약법의 대두는 그 시대의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단순하게 절대 왕정제도와 봉건제도로 구성되어져있던 유럽 사회의 구조가 점차 유연한 시민참여 구조로 대체되어져 나갔다. 사회구성원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이런 시민 권리의 신장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언약사상을 계약으로 이해하는 신학적인 해석이 나오게 될 만큼 엄청나게 시대가 변화되었던 것은 틀림없었다. 사회 계약법이 나온 17세기에 그 시대의 사회상이 반영이 되어져서 법적인 구조가 강조되었다는 것이다.51) 물론, 제시된 역사적 근거는 다소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평을 받았다.
올레비아누스의 경우에는 언약개념을 더욱 더 실제적으로 밝혀내기 위해서 로마 시대의 계약법에 대해서 깊이 연구했음에 주목하게 된다. 제네바에서 신학을 연구한 올레비아누스는 그 이전에 이미 프랑스 부르쥬 법과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했었는데, 그곳은 당대 유럽 최고의 로마법 연구 중심지였다. 칼빈처럼, 프랑스 최고의 대학에서 먼저 법학을 전공한 올레비아누스도 이미 신학을 공부하기에 앞서서 요즘으로 말하자면 법학박사의 학위를 마친 상태였었다. 그래서 올레비아누스는 언약적인 약속을 “시작” (stipulatio)이라고 해석했고, 언약 자체는 두 당사자들 사이에 맺은 상호합의 (mutuus inter partes assensus)라고 하였다.52)
쮜리히의 언약사상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에서 영향을 입은 코케이우스의 경우에도 언약사상의 정립에 있어서 법학자였던 친동생과의 교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Franeker 대학에서 코케이우스의 동료교수로 가르치던 Johannes Cloppenburg는 행위언약 (당시에는 영원한 언약이라고도 불렀음)의 약속을 “상호 타협 혹은 유인책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하게 협약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코케이우스는 인간의 편에서 동의한다는 측면과 은혜언약으로부터 나오는 의무조항이, 간략하게 규정하자면 “착수” (adstipulatio)와 “귀결” (restipulatio)이라는 용어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보았다.53)
우리는 17세기 사회계약론이 신학과 교리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대해서 충분한 증거들과 재료들을 발굴하지는 못하였다. 과연 당대의 신학자들이 성경적인 개념을 더욱 더 중시했다고 한다면, 오히려 성경에서 언약개념을 상호연관지어서 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시된 연구처럼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당대에 강력하게 제기된 사회계약론과 법학적 지식들이 언약사상을 규정하는데 핵심 요소로 작동을 했는지, 아니면 그저 약간의 참고자료 정도로 그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더 연구가 필요한 상태다.
3) 언약사상의 독특한 특징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담겨있는 언약신학의 특징을 몇 가지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언약의 근본적인 출발을 제시하는 문장에서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인 동기와 강조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이지만, 그것의 첫출발을 보는 관점이 매우 독특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7장 “사람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제 8장 “중보자”, 19장 “하나님의 율법”은 언약사상을 제시하는 핵심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언약이 세워지게 된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엄청나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낮아지심”을 언약의 근거로 지적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 7장 1항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을 설명하면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가 너무나 크다고 언급한다.
1. 언약의 기본 성격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는 매우 크기 때문에, 비록 이성적 피조물들이 그들의 창조 자로서 그에게 마땅히 순종할 의무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결코 그에게서 나오는 어 떤 열매도 그들의 복과 상급으로 가질 수 없으며, 오직 그가 언약의 방식으로 표현 하기를 기뻐하신 하나님 편에서의 어떤 자발적인 낮추심에 의해서 뿐이다.“
다시 한번 여기 문장을 점검해 보면, 제 7장 1항에, “오직 그가 언약의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기뻐하신 하나님 편에서의 어떤 자발적인 낮추심에 의해서 뿐이다.” (a voluntary condescension on God’s part, which he had been pleased to express by way of covenant). 웨스트민스터 언약사상은 은혜에 의해서 출발하기 보다는 먼저 “자발적인 하나님의 낮아지심”이 강조되고 있다.54)
나는 최근에 “하나님의 낮아짐”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yarad”가 등장하는 출애굽기 3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내려가셨다는 개념이 언약사상을 표현하는 것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고난과 핍박 속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에서 모세에게 언약적인 관계를 설명하신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다“고 하셨다.55) 모세의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되셨듯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관계성을 상기시킨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낮아지심이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과 인격성에서 나오는 것이다.56)
하나님의 낮아지심이라는 표현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다는 구조이해는 칼빈주의자들의 공통적인 신론이었다. 칼빈은 계시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낮아지심 (accommodatio)이라는 초대 교부들의 개념을 채택하였다.57)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강조한 칼빈의 신학적인 구조가 웨스트민스터 고백서 언약사상에 들어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전체 구조는 “아일랜드 신조들” (Irish Articles of Religion. 1615)에 나오는 20제목과 104개 항목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고, 발전된 것으로 간주된다. 아일랜드 더블린 어셔 감독 (James Usser, 1580-1656)의 주도로 작성된 “아일랜드 신조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 작성에 크게 참고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아일랜드 신조 21장 37항목에서 “아담에게 주어진 율법의 언약”이 강조되어 있고, 어셔의 「신학의 체계」에도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관계에는 언약적인 구조가 담겨있다고 되어있다.58) 미첼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어셔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스코틀랜드 신학자들 (J. Fullerton, J. Hamilton)이 칼빈주의자 멜빌에게서 감화를 입은 바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고백서의 언약사상들은 잉글랜드의 카트라잍, 퍼킨스, 에임즈, 프레스톤 (Preston), 볼 등이 남긴 저술들과 매우 유사하고, 스코틀랜드의 롤록과 하위의 저술과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평가하였다.59)
로마 가톨릭에서는 하나님이 만들어낸 자연, 창조의 세계에다가 타락하게 되자 은총이라고 하는 덧붙임을 만들어서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구조는 이원론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이 받아야할 것 육체가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부패와 가슴의 무지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근본적으로 다르게 설명했다.60)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의 언약사상과 관련해서 주목해 볼 신학자는 죤 볼 (John Ball, 1585-1640)이다. 1628년까지 무려 12판을 출판한 「종교의 원리들에 대한 소요리문답」 (A Short Catechism containing the Principles of Religion)과 여러 저술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들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1645년에 출판한 「은혜언약에 관한 논찬」 (A Treatise of the Covenant of Grace. Where the gradual breakings out of Gospel-grace from Adam to Christ are clearly discerned)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유사한 설명들이 많이 들어있다. 볼은 하나님의 편에서 먼저 은혜롭게 낮아지셨다는 배경을 근거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 언약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초석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을 가장 합당하게 이해하려한다면, 이 관점을 비춰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과 함께 묶여지기를 기뻐하셨다. 그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주셔야 한다거나, 인간에게 무엇을 해야만 하는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그 어떤 보상의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이 행복을 유지하는 길은 은혜가 지속되어야만 한다.”61)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먼저 낮아짐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언약에 묶으신 것이다. 인간을 순종의 조항에 묶어놓으시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기쁘고 자유로운 순종을 만들고자 하신 것이다. 인간의 용어상으로 볼 때, 언약은 항상 상호간에 동등하게 의무와 책임이 결부되어진 합의라고 생각되어진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의 언약,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친분관계 등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현격한 차이, 하나님의 낮아지심이라는 강조하는 언약개념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오류를 시정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담겨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결코 대등한 사이에 맺어지는 조약이나 계약이 아니다. 인간의 자기 결정이나 자발적인 결단이이라는 것은 훨씬 먼저 이루어진 하나님의 차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왜곡하지 않으려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낮아지심”을 인식해야만 한다.
둘째로,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는 행위언약에 대한 분명한 제시를 통해서 아담의 순종을 강조한다. 제 7장 2항, “행위 언약”은 “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는데, 거기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 제 19장 “하나님의 율법” 1항목 “아담에게 주신 법”에서 다시 한번 행위언약이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행위언약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아담에게 약속되어져 있었고, 완전하고도 개인적인 순종의 조건 하에서 번영과 행복이 그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첫 창조의 설명에서 우리는 순종해야할 율법이 제정되어져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지금 일부 학자들은 “창조 언약”이라고도 풀이하고 있다. 창조의 설명에 나온 언약이라는 것이다.
행위언약은 본질적으로 은혜의 시행이다. 행위언약의 개념을 부정하려는 신학자들은 율법과 사랑을 대립적으로 대조시키려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관계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합당하게 행사하는 것을 율법의 근본정신이라고 하였다 (마 22:37-40). 율법은 사랑이 없는 무자비한 법조항이 아니었다. 사랑은 율법과 분리시킬 수 없다. 사랑이란 법률적인 개념이 들어있으면서도, 동시에 감정적인 용어이다.62) 행위언약이라는 문맥에서 아담에게 요구된 것은 사랑의 의무를 분명하게 제정하여 놓은 것이었다. 만일 아담이 순종했다면, 자신의 창조주를 위해서 사랑언약을 이해하였더라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원한 평안과 의로움을 확정했을 것이다. 우리 인류의 언약의 머리가 자신과 후손들의 번성을 위해서 합당한 권리를 획득했을 수 있었다.
셋째,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는 그 어느 고백서보다 분명하게 구속언약, 혹은 영원언약 (pactum salutis, covenant of redemption)이라고 훗날에 명명하게 되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이 제시되어져 있다. 물론 이 구속언약의 내용들은 후대에 나온 신학자들이 훨씬 더 성숙한 내용으로 발전시켰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서는 구속언약의 개념이 제 8장,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서 언급되어 있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언약이 창조 이전에 먼저 있었고, 타락 후에 행위언약이 시행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63) 삼위일체 사이에 구원계획이 먼저 있었고, 성자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이 어느 때에 주어질 것인지 논의되었고, 성자께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시고자 고난의 잔을 마시고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구속언약이란 성부와 성자 사이 맺어진 언약인데, 선택받은 자들의 머리이자 구속주로서 아들을 주시되, 자발적인 자리에서 감당하신 것이다.
창세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역사적인 언약들의 모형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구속언약의 본질이다. 둘째 아담으로서 성부와 그리스도와 맺어진 구속언약을 강조하는 것은 로마서 5장 12-21절과 고린도전서 15장 21-22, 47-49절에 설명된 언약의 통일성과 대표성에서도 드러난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은 웨스트민스터 고백서, 제 8장 1항에서 영원하신 목적에 따라서 주어진 것임을 설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하신 목적을 따라 그의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 교회의 머리와 구주, 만물의 상속자, 그리고 세상의 심판자로 선택하시고 정하시기를 기뻐하셨고; 그는 영원 전부터 그에게 한 백성을 그의 씨로 주셔서, 때가 되면 그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얻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거룩해지고 영화롭게 되게 하셨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 제8장 2항에서는 성자가 구속사역을 감당할 때에 삼위일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삼위일체(Trinity)에서 두 번째 인격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지시며 동등하신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때가 찼을 때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의 태에서 그의 본질을 가지고 잉태되시므로, 사람의 본질과 그것의 모든 필수적 특성과 공통적 연약성을, 그러나 죄는 없이, 취하셨다. 그래서 두 개의 전체적이며 완전하며 구별된 본질들 곧 신성과 인성이 변질이나 혼합이나 혼란이 없이 한 인격 안에서 나눌 수 없이 결합되었다. 그 인격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 그러나 한 그리스도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위와 같은 부분은 대요리문답 31항에서 언급되어 있다.
구속언약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는 것도 아니요, 역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명시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부와 성자 사이에 상호 관계, 약속들, 조건들이 성경에 충분하게 제시되어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 가지신 영원한 구원계획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맺어진 약속들의 기본이 되는 것이요 본질적으로 언약적이다 (요 5:30, 43; 6:38-40; 17:4-12). 그리고 누가복음 22장 29절에,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긴다”라고 말씀하셨다.
결론
언약사상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계획과 뜻을 풀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구원의 은혜를 풀이하는 가장 핵심적인 성경의 구조로 강조하였다. 칼빈을 비롯한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언약사상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작성자들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아담에게 요청하신 순종의 요구와 보상의 내용들이 풀이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하나님의 낮아지심에 주목하여서 신적 주권성이 다시 강조되었다. 성부의 뜻에 따라서 성자의 편에서 순종하는 성경적인 구조에 주목하면서 알미니안주의를 배척하는 “구속언약”의 구도가 자리잡게 되었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구속언약의 교리가 발전되어진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따른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하이델베르고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언약사상이 확고하게 제시되어 있다.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에다가, “구속언약”이라는 명칭을 1648년 코케이우스가 사용하게 되었다. 헤르만 윗시우스가 “구속언약”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후대로 연계되었다.64)
성경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관계성을 풀이하면서 “구속언약” (pactum salutis)이라는 용어가 체계적으로 자리잡게 되어졌다. 첫째, 구속언약은 성자가 순종의 의무를 완수하게 되면 그 보상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조건화했다는 증거에 입각한 것이다. 둘째로, 이런 관계성이 언약적이라는 성격으로 성경에 표현되어졌다. 셋째로, 구속언약은 시간을 초월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세워진다.
구속언약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역사 속에서 시행되는 언약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과 맺은 역사적인 언약들 모두 다 포함하는 개념으로 개혁주의 고전적인 관점이 되었다. 갈라디아서 3장 15-20절과 스가랴 6장 13절의 해석을 통해서 지금도 개혁주의 언약사상은 적극적으로 옹호되고 강조되고 있다.65)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자, 작정이라고 할 수 있는 언약신학의 세 가지 개념, 혹은 구조가 성경적인 교훈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하려면, 반드시 생략하지 말고 고려해야만 하는 요소들이 있다. 첫째,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련성은 명쾌하게 설명했지만, 성령의 사역이 생략되면서 이 교리의 핵심에서 제외되고 말았다는 지적에 대해서 보충해야만 한다.66)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서 구속언약이 진리로 알려지게 되는 것이요 (요 14:26, 15:26), 즐거워하게 된다.67)
둘째, 구속언약의 내용에서 성자의 역할들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거나, 아예 잘못 가르쳐지게 되면, 동등한 영광과 존엄함을 갖고 있는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과 사역에 대해서 오해될 소지가 있게 된다. 반드시 성자께서 복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동시에 성자의 단독적인 결정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지만, 이런 표현들도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따라서 균형있게 반영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며, 동시에 성자와 성령의 협력적인 사역임을 제시해야만 한다. 성자의 종속됨이라거나, 열등함이 결코 아니다.
쏘씨니언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존 오웬과 윗시우스는 삼위일체의 존재론적 종속주의에 빠지지 말고, 경륜적인 관계성에 주목하라고 역설하였다. 개혁신학자들이 구속언약에 대하여 매우 강조하게 된 것도 이런 역사적인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구속언약을 성경적으로 이해하게 될 때에 구원의 계획과 경륜적인 시행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상호공유하시고 상호교류하시면서 이룩하시는 것임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된다.
최근 일부 신약학자들이 내놓은 “바울의 칭의론 관한 새관점”은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과 전통적인 신앙고백서의 내용들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68) 새로운 관점이 나와서 개혁신학이 오랫동안 가르쳐 온 교리를 거부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새로 나온 치료방법이 오히려 질병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공로주의와 행위구원을 내세우는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가 결코 성경적인 칭의론과 성화론이 아니다. 우리는 고전적인 개혁주의 고백서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율법을 성취하시므로 모든 요구를 이룩하셨고, 성령으로 인해서 새롭게 되어서 그것을 즐거워하며 감사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언약신학은 칭의와 성화를 함께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는 구원론을 제시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주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연합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32문, 36문, 55문, 56문, 59-61문이 모두 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설정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구원의 모든 요소들이 다 포함된다고 고린도전서 1장 30절이 가르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하였다.
“김재성 교수의 논문에 대한 논평”
김윤태 교수 (백석대, 조직신학)
1. 들어가는 말
구원을 이해함에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적 선물인가? 아니면 인간의 책임에 따른 공로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 시대 신학만의 혼란은 아니다. 초대교회의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중세교회의 스코티즘과 토미즘, 그리고 종교개혁 당시의 개혁파와 루터파, 개혁파 전통 안에서도 Supralapsarianism과 Infralapsarianism, Sublapsarianism, Amyraldianism 등으로 나누어지는 다양한 스팩트럼이 모두 이 문제와 관련이 있으며, 오늘날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구원이해의 차이 또한 근원적으로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은총의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거기서부터 논리적 체계를 만듦으로 인간의 책임의 측면을 약화시키거나 무효화해 버린 구원론이나 반대로 인간의 책임의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거기서부터 논리적 체계를 만듦으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제거해 버리거나 약화시키는 구원론에서 보여지는 편향적 구원이해, 또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은총과 인간의 책임적 공로를 절충한 신인협력적 구원론은 모두가 다 참된 성경적 구원이해라 할 수 없다. 성경적 구원이해는 양 측면을 구별하면서도 서로 절충하거나 혼합하거나 분리하거나 나눔이 없이 각기 100%를 말하면서도 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논리적 사고에 있어서는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 개혁주의 전통 내에서 언약신학의 발전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이해함에 내재된 문제, 곧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측면을 동시에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의 구원을 이해함에 새로운 논의가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소위 바울의 새 관점 학파의 구원이해이다. 특별히 종교개혁 시대 이후 개신교회 내에서 견지되어 온 칭의론이 오늘날만큼 심각하게 흔들리게 된 시대는 없었다. 바울의 율법과 복음의 이해에 대한 새 관점 학파의 도전은 그 만큼 우리에게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개혁신학의 전통 속에서 개혁주의 신조들에 나타난, 그 중에서도 개혁주의의 대표적인 신조들인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 나타난, 언약신학을 살핌으로 이 문제에 대해 개혁주의신학의 전통적인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성경의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다.
2. 논문의 긍정적인 면
1) 본 논문은 개혁주의신학의 이해를 바르고 깊게 한다.
언약신학은 개혁주의신학을 특징짓는 것으로서 언약신학은 개혁주의신학이요 개혁주의신학은 언약신학이라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개혁주의신학과 언약신학은 사전적으로 동의어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개혁주의신학의 언약신학은 성경의 언약사상을 바탕으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신학적으로 체계화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언약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곧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내어지고 또한 결과적으로 세상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지를 하나님께서 인간과 가지시는 언약관계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더불어 맺으시는 언약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세상에 알려지는 통로가 되는 것으로서 ‘계시’를 이해함에 중요한 개념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알리신다고 하는 계시역사로서 성경역사를 통일성 있게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언약은 개혁주의신학이 신구약성경을 통일성 있게 보게 하는 개념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역사를 통일성 있게 이해하고 성경을 통일성 있게 해석하게 하는 원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구원의 성취에 있어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동시에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는지를 이러한 언약개념을 통하여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언약신학은 이러한 성경의 언약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이처럼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언약신학은 개혁주의신학을 구성하는 구성적 원리요 조직적 틀로서, 개혁주의신학의 발전은 곧 언약신학의 발전이라 할 수 있으며, 더불어 개혁교회를 하나의 개혁교회로 통일성을 갖게 하는 것도 언약신학인 동시에 개혁교회 내에 있는 분열과 개혁주의신학 내에 있는 다양한 스팩트럼 또한 언약신학에 대한 각자의 이해의 차이에 근원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교회들에서 개혁주의신앙고백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개혁주의신앙고백서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다 그 속에 언약사상을 토대로 한 언약신학의 내용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주의신앙고백서들 가운데서도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벨기에 신앙고백서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개혁주의신앙고백서들이다.
이런 점에서 김재성 교수가 본 논문에서도 논문의 동기 중 하나로 밝히고 있듯이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언약신학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 현대의 신학적 맥락 속에서 우리에게 던져지는 다양한 도전들 속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바 전통적인 개혁주의신학과 그 신학의 체계를 잊어버리거나 떠나 버리지 않고 이를 더 잘 이해하고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임을 더욱 확신하며 이를 후대에도 신실하게 계승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2) 성경적 구원이해와 관련하여 던져지는 현대적 도전에 개혁주의적 응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재성 교수가 본 논문에서 밝히고 있는 또 다른 논문의 동기는 이렇게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신학을 살피는 것의 의미는 오늘날 현대 신학의 맥락 속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위 ‘새 관점’(New Perspective) 학파의 도전에 대하여 개혁주의신학은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칭의론을 살피고 그럼으로 이러한 도전에 바르게 응답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N. T. Wright와 E. P. Sanders 등으로 대표되는 새 관점 학파는 유대주의와 바울의 관계,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살피는 가운데 개신교의 종교개혁적 전통인 이신칭의의 교리를 부정하는 새로운 바울해석과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였다. 개혁주의신학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와 칭의론을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고 또한 이러한 언약신학적 이해의 바탕 위에서 바르게 성경적으로 소위 ‘새 관점’을 비평해야 함과 이런 점에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신학을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는 저자의 주장은 모든 개혁주의신학 진영의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켜주는 것이다.
3. 논문에 대한 제언
1) 용어 사용의 문제: ‘언약사상’과 ‘언약신학’의 구별이 필요하다.
언약사상과 언약신학은 비록 밀접한 연관성이 있지만 이는 구별된다. 구원을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성경적 언약사상의 바탕 위에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체계화 한 것이 언약신학이라고 할
때 이 두 용어 사이를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독자에게 불필요한 혼란스러움을 피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트 고백서에 나타난 언약신학을 이해하게 하는 데는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논문의 주제와 관련한 논쟁적인 부분, 곧 율법과 복음의 관계, 칭의론에 대한 새 관점 학파의 이해를 개혁주의신학의 입장, 특별히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비평하는 부분이 약하다고 보여진다.
논문의 앞에 이 글의 의의와 관련하여 새 관점 학파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칭의론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개혁주의 언약신학을 살피는 것이 본 논문이 갖는 중요한 의의 중의 하나임을 밝히고 있으나, 실제 논문의 내용에 있어서 이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 부족해 보인다. 이 문제는 개혁주의 언약신학에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관점에서 이를 비평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트 고백서에서 보여지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관계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율법과 복음이 상관적으로 통일되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곧, 창조의 관계와 질서(자연법)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의와 처음 창조된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원의), 그리고 모세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거듭난 인간에게 회복되는 하나님의 의(법정적 칭의와 실제적 성화)가 어떻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통일성 있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살핀 후, 새 관점 학파의 유대주의 율법이해와 복음이해 그리고 칭의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이런 언약신학의 율법과 복음에 대한 이해와 칭의에 대한 이해와 다른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3) 논문이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율법과 복음의 이해 그리고 칭의론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라면 이와 관련하여 특히 최근에 개혁주의신학 안에서 제기되고 있는 New Covenant Theology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율법과 복음의 이해, 그리고 칭의에 대한 이해가 다루어진다면 논문의 의도와 관련하여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끝으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 나타난 언약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언약신학의 진수를 보여줌으로 우리가 물려받은 개혁주의신학의 요체를 더 잘 이해하고 확신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김재성 교수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이 논문이 앞으로 더욱 개혁주의신학의 입장에서 우리 시대에 새롭게 주어지는 성경의 구원 이해에 대한 개혁주의 응답을 논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김재성 교수의 논문에 대한 논평”
박찬호 교수 (백석대, 조직신학)
김재성 교수는 이 논문에서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과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의 언약사상을 그 상세한 역사적인 정황과 함께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언약 사상의 근원이 되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특별히 멜랑히톤과 칼빈의 신학을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김 교수가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는 두가지 언약이나, 세 가지 개념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언약사상의 발전에 있어서나 정립에 있어서 직접적인 칼빈의 영향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신학자로서 언약, 선택, 새언약, 인간의 의무와 참여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연계시키고 있어서 언약사상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멜랑히톤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유는 훗날 칼빈주의자로 돌아선 멜랑히톤의 제자 우르시누스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작성자 중 한 명이라고 하는 것과 함께 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 하인리히 헤페의 평가 때문으로 사료된다.
김교수에 의하면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에서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두 가지의 언약이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서 비로소 행위언약과 은혜 언약과 함께 제시하고 있는 구속 언약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김 교수는 올레비아누스의 언약의 중보자라는 개념을 통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관계성을 주목하다가, 17세기에는 ‘구속의 언약’(pactum salutis)으로 명칭이 정해지고 개념이 모아져서 자연스럽게 언약사상으로 귀결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17세기 스코틀랜드 언약사상가들에 의해서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구원이해의 언약사상이 전체 국가적으로 언약을 맹세하고 참여하고 실현하는 ‘언약사상의 절정기’에 이르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하였던 네 명의 스코틀랜드 국가 언약 신학자들의 지대한 영향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세 가지 언약이 정립되게 되었다고 김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전체적인 논문을 통해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언약신학이 어떻게 정립이 되고 발전하였는지를 상세하고 소개하고 있어서 16, 17세기의 언약신학의 발전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이라 생각한다. 김 교수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을 읽어보는 것처럼 오래된 신앙조항들을 대하고 있는 시대이기에 지적인 흥분과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 이전 시대 교회 역사의 문서들을 다시 펼쳐 보여주는 지난한 수고를 한 김 교수의 노고에 찬사와 감사를 보내는 바이다.
논문의 전체적인 구도와 관련하여 논찬자는 두 가지 점에서 아쉬운 점을 지적코자 한다. 첫째는 서론과 결론에서 밝히고 있는 “바울 신학의 새 관점”에 대한 언급은 본론에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내용들인데 치열한 학문적인 논의 없이 거론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서론과 결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바울 신학의 새 관점”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었다면 보다 더 논문의 방향과 제목 자체를 그 쪽으로 잡아서 본론에서도 심도있게 그 부분을 다루는 것이 좋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론을 읽을 때의 기대는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의 언약사상과 함께 우리 시대에 지금 토론 중인 “바울 신학의 새 관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논문을 읽었는데 본론에서 그저 역사적인 사건이나 배경 정황 등에 대한 나열만이 있을 뿐 별다른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논문의 전체적인 내용과 관련하여 아쉬운 점은 “바울 신학의 새 관점”에 대한 것과는 별도로 안토니 후크마와 같은 일부의 개혁신학자들은 “행위언약”이라는 개념 이면에 놓여 있는 교리상의 진리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행위언약”이라고 하는 표현을 거부하고 있다. 개혁신학이 앵무새처럼 과거의 것을 그냥 되뇌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사상 중에 다소 무리한 사변적인 요소들이 있다면 그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컨대 후크마는 인간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맺으신 협정을 “행위의 언약”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성경적인 근거이다. 이러한 자세는 후대의 성경신학의 결과들을 겸허히 수용하는 가운데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바울 신학의 새 관점”이 다소 과격하게 역사와의 단절을 꾀하고 있다면 온건하게 성경신학의 결과를 수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는 개혁신학 안에서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논문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주어가 빠진 듯한 문장과 자연스럽지 못한 문장을 다수 발견하게 된 것은 옥고의 티와도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었음을 밝혀둔다.
1) 그동안 언약신학에 대해서는 주로 개혁주의 입장에서 수많은 책들이 나왔는데, 최근에 침례교와 세대주의 입장에서도 많은 연구자들이 나왔다. Peter J. Gentry & Stephen J.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A Biblical-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s (Weaton: Crossway, 2012); Alister I. Wilson, Jamie A. Grant, The God of Covenant: Biblical, Theological, and Contemporary Perspectives (Leicester: Apollos, 2005); 전통적인 개혁주의자들도 계속해서 언약사상을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다; Michael Horton, God of Promise: Introducing Covenant Theology (Grand Rapids: Baker, 2006). David Van Drunen, “A System of Theology? The Centrality of Covenant for Westminster Systematics,” in The Pattern of Sound Doctrine: Systematic Theology at The Westminster Seminaries (Phillipsburg: P&R, 2004); 194-222.
2) Richard A. Gaffin, “Paul, the Theologian,”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62 (2000): 121-41; Michael B. Thompso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Cambridge: Grove, 2002). Peter Stulmacher, Revisiting Paul’s Doctrine of Justification; A Challenge to tne New Perspective; with an Essay by Donald A. Hagner (Downers Grove; IVP, 2001). Stephen Westerholm, Perspetives Old and New on Paul: The “Lutheran” Paul and His Critics (Grand Rapids: Eerdmans, 2004); D. A. Carson, Peter T. O’Brien, and Mark A. Seifrid., eds., Justification and Variegated Nomism, 2 vols. (Grand Rapids: Baker, 2001,2004).
3) E. Calvin Beisner, ed., The Auburn Avenue Theology, Pros and Cons: Debating the Federal Vision (Fort Lauderdale: Knox Theological Semianry, 2004). V. J. Fesko, Justification: Understanding the Classic Reformed Doctrine (Phillipsburg: P&R, 2008), x.
4) E. P.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Minneapolis: Fortress, 1977), 492, n.57.
5)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 개념을 비판한 저술들로는 다음의 자료들을 추천한다; Mark A. Elliott, The Survivors of Israel; A Reconsideration of the Theology of Pre-Christian Judaism (Grand Rapids: Eerdmans, 2000); Iain M. Duguid, “Covenant Nomism and the Exile,” in Covenant, Justification, and Pastoroal Ministry, ed. by R. Scott Clark (Phillpsburg: P&R, 2007); 61-87.
6) N. T.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Christ and the Law in Pauline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1992), 146. idem, What Saint Paul Really Said: Was Paul of Tarsus the Real Founder of Christianity? (Grand Rapids: Eerdmans, 1996), 117; “First, it is covenant language – not in a sense of that word made famous through som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y discussion, but in the first century- Jewish sense.”
7) Carolinne White, Christian Friendship in the Fourth Century (Cambridge: 1992). 이 책에서는 Synesius of Cyrene, Ambrose, Pauline of Nola, John Chrysostom, Olympias 등 교부들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나누는 교제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들을 검증하고 있다.
8) Peter Y. De Jong, The Covenant Idea in New England Theology 1620-1847 (Grand Rapids: Eerdmans, 1945), 49. B. B. Warfield, The Significance of the Westminster Standards as a Creed (New York: Scribner, 1898). R. S. Paul, The Assembly of the Lord (Edinburgh: 1985). 김재성, 「개혁신학의 광맥」 (킹덤북스, 개정판 2012), 제 2부, 5장 “언약신학”.
9) G. Vos, “The Doctrine of the Covenant in Reformed Theology,” in Redemptive History and Biblical Interpretation (Phillipsburg: P&R, 1980), 239.
10) Johannes Cocceius, 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is Dei (1648). W. J. van Asselt, The Federal Theology of Johannes Cocceius (1603-1669) (Kolen: Brill, 2001), 340, 353.
11) J. MacLeod, “Covenant Theology: the Need for a Reappraisal and a Reaffirmation,” The Monthly Record of the Free Church of Scotland (August, 1983), 147.
12) Andrew A. Woolsey, Unity and Continuity in Covenantal Thought: A Study in the Reformed Tradition to the Westminster Assembly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2), 3. Michael S. Horton, “Which Covenant Theology?” in Covenant, Justification, and Pastoral Ministry: Essays by the Faculty of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ed. R. Scott Clark (Phillipsburg: P&R, 2007), 206. Peter Golding, Covenant Theology: The Key of Theology in Reformed Thought and Tradition (Ross-shire; Mentor, 2004), 18. Johannes G. Vos, The Scottish Covenanters (Edinburgh: Blue Banner, 1940), 14.
13) H. Bullinger, De unico et aeterno Testamento seu Foedere Dei brevis Expositio (Zurich; 1534).
14) 김재성, “칼빈과 언약사상의 정수” (한국 종교개혁 500주년 위원회, 2013), 13. 김재성, 「개혁신학의 정수」 (서울: 이레서원, 2003), 제 6장, “언약사상의 파노라마: 칼빈에서 윗시우스까지”.
15) H. Heppe, Dogmatik des deutschen Protestantismus im sechzehnten Jahrhundert, 3 vols. (Gotha: F.A. Perthes, 1857) I:139-204. M. Geiger, Die Basler Kirche und Theologie im Zeitalter der Hochorthodoxie (Zurich: 1952).
16)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59), II.10.1.
17)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59), II.10.2.
18) 김재성,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와 언약사상” 「국제신학」 2013년 6월 3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450주년 기념 신학세미나. (추후 인쇄된 논문집으로 출판될 예정임).
19) Weir, “Foedus Naturale,” 187. Woolsey, Unity and Continuity in Covenantal Thought, 438, 110. 와이어는 성례신학에 대해서는 하이델베르그의 신학자들의 언약사상이 아무런 발전적인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나, 울시는 정반대로 성례신학과 언약사상은 밀접하게 연관되어져 있다고 반박했다.
20) Lillback, “Ursinus’ Developement,” 268.
21)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6). 우르시누스가 언약을 언급한 구절에 밑줄을 그은 것은 필자가 강조하여 밝혀주고자 추가한 것이다.
22)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18문항.
23) Ibid., 186.
24) Robert W.A. Letham, “Saving Faith and Assurance in Reformed Theology: Zwingli to the Synod of Dort,” (Ph.D. diss., Aberdeen University, 1979), 1:188-190,193.
25)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21문항.
26) Woolsey, Unity and Continuity in Covenantal Thought, 417.
27)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10, 11, 12문항. Lyle D. Bierma, "Law and Grace in Ursinus' Doctrine of the Natural Covenant: A Reappraisal," in Protestant Scholasticism, 96-110.
28) Ibid., 제 36문항.
29) Lyle D. Bierma, German Calvinism in the Confessional Age: The Covenant Theology of Caspar Olevianus (Grand Rapdis: Baker, 1996), 57-60.
30)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제 109, 110, 266, 272, 294 문항.
31) Olevianus, De substanta foederis Gratuiti inter Deum et Electos, itemque de Mediis quibus ea ipsa substantia nobis communicatur. (Geneva: 1585), 227-231. Woolsey, Unity and Continuity in Covenant Thought, 426.
32) Olevianus, De substantia foederis Gratuiti, 231.
33)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해설」, 187.
34) Olevianus, De substantia foederis Gratuiti, 251, 253-254. Woolsey, Unity and Continuity in Covenant Thought, 428.
35) Bierma, “Covenant Theology of Caspar Olevian,” 182.
36) Olevianus, De substantia foederis Gratuiti, 251. Woolsey, Unity and Continuity in Covenant Thought, 429.
37) Olevianus, De substantia foederis Gratuiti, 407-408.
38) Bierma, “Covenant Theology of Caspar Olevian,” 161-168.
39) Olevianus, De substantia foederis gratuiti, 23.
40) John DeWitt, “The Place of the Westminster Assembly in Modern History,” Presbyterian and Reformed Review 35 (1898): 377; “The idea of the absolute sovereignty of the living and ethical God, who executes His purpose mediately or immediately as He pleases, entered as a new power into the life of England and of the English Church. Then, English Puritanism was born; its positive principle, the constitute principle of the theology of John Calvin.” P. Collinson, Elizabethan Puritan Movement (London: 1967), 81-83, 109-110.
41) J. F. H. New, Anglican and Puritan: The Basis of their Opposition 1558-1640 (London; 1964), 64. E. W. Kirby, “The English Presbyterians in the Westminster Assembly,” Church History 23 (1964):418-428.
42) Ernest R. Holloway, Andrew Melville and Humanism in Renaissance Scotland 1545-1622 (Brill, 2011).
43) S. B. Ferguson, “The Teaching of the Confession,”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in the Church Today, ed. A. I. C. Heron (Edinburgh: 1982), 38. M. W. Dewar, “How Far Is the Westminster Assembly of Divines an Expression of 17th Century Anglican Theology?” (Ph.D. dissertation, Queen’s University, 1960).
44) R. A. Muller, “Covenant and Conscience in English Reformed Theology: Three Variations on a 17th Century Theme,”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42 (1980):308-334.
45) J. B. Marsden, The History of the Early Puritans From the Reformation to the Opening of the Civil War in 1642 (London: 1850), 348-356. G. Davis, “Arminian versus Puritan in England ca 1620-1640,” Huntington Library Bulletin 5 (1934):151-179.
46) B. B. Warfield, “The Westminster Assembly and Its Work,” Princeton Theological Review 6 (1908):181.
47) Andrew Pettegree, “The Reception of Calvinisn in Britain,” in Calvinus Sincerioris Religionis Vindes, eds., W. H. Neuser and Brian G. Armstrong (Kirksville: Sixteenth Century Essay & Studies, 1997): 267-289. 김재성, 「개혁신학의 정수」, 21.
48) J. Aiton, The Life and Times of Alexander Henderson (Edinburgh: 1836); R. L. Orr, Alexander Henderson: Churchman and Stateman (London: 1919).
49) A. A. Woolsey, Unity and Continuity in Covenantal Thought, 512-540.
50) Johannes G. Vos, The Scottish Covenanters (1940; Edinburgh: Blue Banner Productions, 1998), 51. William Maxwell Hetherington, History of the Church of Scotland (1852), 269.
51) F. A. Stolzenburg, Die Theologi des Jo. Franc Buddeus und des Chr. Matt. Pfaff (Berlin, 1926); Gottlob Schrenk, Gottesreich und Bund in alteren Protestantismus vornehmlich bei Johannes Cocceius, zugleich ein Beitrag zur Geschichte des Pietismus und der heilgeschichtlichen Theologie (Gütersloh, 1923).
52) Olevianus, Expositio symboli apostolici sive articulorum fidei (Francoforti, 1584), 76.
53) W. J. Van Asselt, “The Origins of Federal Theology,” in The Federal Theology of Johannes Cocceius, 331.
54) K. Scott Oliphint, God with Us: Did Condescension and the Attributes of God (Wheaton: Crossway, 2012), 13, 109. Michael Horton, The Christian Faith: A Systematic Theology for Pilgrims On the Way (Grand Rapids: Zondervan, 2011), 421.
55) John Owen, Works, 1:401; “This fire was a type or declaration of the presence of God in the person of the Son. For with respect unto the Father he is called an Angel, the Angel of the covenant; but absolutely in himself, he was Jehovah, the ‘God of Abraham.’”
56) Peter Golding, Covenant Theology (Fearn: Mentor, 2004), 106.
57)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xiii.1. 김재성, 「칼빈과 개혁신학의 기초」 (합동신학대학원 출판부, 2007), 145.
58) Articles, 21.xxxvii; “the Covenant of law... whereby God did promise unto him everlasting life, upon condition that he performed entire and perfect obedience unto his Commandments, according to that measure of strength wherewith he ws endued in his creation, and threatened death unto him if he did not perform the same.”
59) A. F. Mitchell,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 Contribution to the Study of its Historical relations, and to the Defence of its Teaching (Edinburgh: 1886), 8-12, 33-42.
60)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I.1.9.
61) Ball, Covenant of Grace, 7.
62) Delbert Hillers, Covenant: The History of a Biblical Idea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69), 153.
63) Cocceius, F. Turretin, G. Vos, H. Bavinck, L. Berkhof 등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R. Gamble, The Whole Counsel of God, vol. 1. (Phillipsburg: P&R, 2009), 286.
64) Herman Witsius, Economy of the Covenants between God and Man, tr. William Crookshank (1667; Phillipsburg, P&R, 1990), II.2.16. J. Mark Beach, “Doctrine of the pactum salutis in the Covenant Theology of Herman Witsius,” Mid-America Journal of Theology 13 (2002):111-13.
65) S. M. Baugh, “Galatians 3:20 and the Covenant of Redemption,” Westmisnter Theological Journal 66 (2004):49-70. Michael S. Horton, God of Promise: Introduction Covenant Theology (Grand Rapids: Baker, 2006), 78-82. Meredith G. Kline, Kingdom Prologue: Genesis Foundations for a Covenant Worldview (Overland Park: Two Age Press, 2000), 145; idem, Glory in Our Midst: A Biblical Theological Reading of Zechariah’s Night Visions (Overland Park: Two Age Press, 2001),219-20.
66) Robert W. Letham, The Work of Christ (Downers Groves: IVP, 1993), 53. G. C. Berkouwer, Divine Election, tr. Hugo Bakker (Grand Rapids: Eerdmans, 1960), 162.
67)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III:214. J. van Genderen & W. H. Velema, Concise Reformed Dogmatics (Phillipburg: P&R, 2008), 202-203.
68) N. T. Wright, “New Perspectives on Paul,” in Justification in Perspective, ed. Bruce L. McCormack (Edinburgh: Rutherford House, 2006):24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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