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1테살 5,18)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 중에서 만난 열 명의 나병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중에 있던 예수님께 나병환자 열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청, 곧 나병이라는 고통스러운 병으로부터 제발 자신들을 낫게 해달라고 그들이 예수님께 청을 올리자 예수님은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낫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그 자리에서 바로 낫게 해 주시지 않고 사제에게 가던 중에 그들의 병이 낫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에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사제에게 가는 도중 자신들의 병이 낫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열 명의 나병환자 모두가 자신들의 병을 낫게 해 준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갑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오직 한 명이 예수님을 찾아 돌아오는데, 정말 역설적이게도 그는 이방인으로 취급되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오직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찾아와 그 분 발 앞에 엎드려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물론 사마리아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져 기쁨과 환호에 가득 차 그토록 보고 싶던 자신들의 가족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라는 인간적 이해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간절한 청,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이라는 나병이라는 고통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고 새로운 삶을 주신 그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처사임을 감안해 보았을 때, 이들의 이 같은 행동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롭고 인상적인 점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한 예수님은 마땅히 화를 내며 노여워하실 법도 하시건만 오히려 자신을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이방인 사마리아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7-19)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곰곰이 새겨 보면 그 말씀에 담긴 참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우리의 간절한 청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그 분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실현되었을 때, 그것을 이루어 주신 하느님 그 분께 감사드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야기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대개 많은 경우 내가 바라고 원하고 희망하는 것,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하느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주십사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간절함, 하느님을 향한 굳은 믿음은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들의 그것과 똑같이 아니 어떠한 때에는 그보다 더 간절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간절하고도 굳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청이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났을 때, 다시 말해 내 기도의 결과가 있고 난 후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내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에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그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릴 새도 없이 내 기쁨만으로 가득 차 하느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또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받지 못해 앙탈을 부리는 아이들처럼 하느님을 원망하고 내 뜻을 이루어주지 않으신 하느님을 부정하고 하느님께 대한 모든 믿음을 내팽겨 치듯 버리지는 않았는지, 바로 오늘 말씀은 기도 그 이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묻고 있는 듯합니다.
이 같은 면에서 이번 주간 계속되는 바오로 사도의 티토서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는 듯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티토 3,3-5)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이루어냈기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가 필요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 바오로 사도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꼭 새기십시오. 테살로니카 1서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1테살 5,18)
이 말씀처럼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그것이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수능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오늘, 특별히 시험을 앞둔 모든 수험생들이 각자가 준비한 모든 것을 모자람 없이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를 통해 하느님이 그들이 바라시는 바를 이루어주시기를 그리고 그 이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여러분 역시 여러분이 바라고 청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느님께 기도하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지혜를 통해 기쁨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1테살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