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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士에게 듣는 山이야기] 지리산 토박이 천사령 함양군수 “백두대간 품에서 잘 사는 고을 만드는 게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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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머리를 함양 쪽에 두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1, 2구간과 7, 8, 9구간 역시 함양땅을 지나가고요. 이 정도면 일단 대단한 것 아닙니까? 이 백두대간이 서풍을 막아주어 다른 지역에 비해 중국에서 날아오는 오염물질의 피해가 적습니다. 태풍 피해도 적은 편이고요. 게다가 게르마늄 지대에 놓여 농산물과 축산물의 품질이 좋답니다. 과일은 당도도 높고 저장력도 뛰어나니까요. 산 덕분에 사는 고을인 셈이죠.” 빨치산 남은 1958년 지리산서 길 잃고 헤매 2002년 7월1일부터 민선 3기로 함양군을 이끌고 있는 천사령(千士寧?62) 함양군수는 군청 집무실에서 만나자마자 함양 자랑을 늘어놓았다. 마침 농산물 수출을 위해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끝내고 귀국한 터라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외국 순방에서 배와 감 등 240만 달러어치의 농산물 수출계약을 맺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천 군수는 1967년 제대 후 몇 년간 개인사업을 한 것 외에는 1999년 6월까지 28년 9개월간 경찰공무원 생활을 해서 고향에서 마음 편히 머물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1990년 초부터 1년 6개월간은 산청경찰서에, 이후 1년간 진주경찰서에 서장으로 근무하면서 고향 바람을 쏘일 기회가 종종 생겼다. 보성고 졸업 후 지리산을 다시 찾은 것 역시 지리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 산청경찰서에 근무할 때였다. “가족 모두 서울에 있었기에, 저 홀로 산청에서 근무했죠. 그런데 퇴근하면 집에만 있는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고추가 못 쓰게 된다’며 후배가 등산을 권하지 뭐예요. 그래서 다시 찾은 게 지리산이었습니다.” 천 군수는 산청경찰서장으로 지내면서 천왕봉을 대여섯 번 오르는 등, 30회 가까이 지리산을 올랐다. 고교시절 헤맸던 계곡이 칠선계곡 옆 국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 때였다. “제 건강도 건강이지만, 신경성 질환으로 고생하던 아내가 병을 고칠 수 있었던 것 역시 산 덕분이었습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생활할 때 시간만 나면 아내와 함께 삼각산을 올랐으니까요. 불광사 코스, 진관사 코스, 기자촌 코스 등 웬만한 코스는 다 찾았죠. 돌산이면서도 곳곳에 물이 나오고, 언제 찾아도 질리지 않는 산이었습니다. 함양 오봉산도 그런 산입니다.” 산 많은 땅서 사는 사람들 순박하고 정 많아 천 군수는 아내와 함께 독실한 불교 신자다. 불교신자인 부모님들의 영향이 가장 크기도 하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무엇보다 큰 이유라고 말한다. 요즘도 시간이 날 때면 암자가 여럿 모여 있는 삼정산을 오르곤 한다. 오도재를 출발한 지 5분쯤 지나 한창 공사 중인 팔각정 조망대 공사현장에 올라섰다. 지리산뿐 아니라 반대쪽으로 함양군내 일원의 산봉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뛰어난 곳이었다. 함양군은 최근 몇 년 새 황석산과 거망산을 비롯해 군내 명산 등산로를 정비했다.
천사령 군수는 경찰공무원 생활 중 관내 직원들이 신창원을 놓치는 바람에 면직되는 굴욕스런 일도 겪었고, 대학 다니던 딸이 강도 살해 당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도 범죄자들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 “좋은 재주를 잘 살렸으면 잘 살 수 있는 친구들인데 길을 잘못 들어섰던 거죠. 그런 면에서 함양은 참으로 좋은 곳이랍니다. 특히 청소년 범죄는 전무한 곳이니까요. 다 산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평야지대 사람들이 오히려 옹졸하고 싸우기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함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답니다. 때 묻지 않았지요, 순박하지요, 정 많지요. 정말 좋은 면은 다 갖추었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많이 살았고, 정자가 많았던 거겠지요.” 그렇다고 추억만 가지고 살 수 없는 일.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이기에 요즘 농촌 현실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특히 노인과 어린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이혼한 자식들이 어린애들을 데려다놓곤 그만입니다. 그래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여간 많은 게 아니랍니다. 결국 그 아이들이 결식아동이 되고 말지요. 군내 초등학생 중 결식아동이 무려 10%나 되니까요.” 천 군수는 군민 생활 향상을 위해 계획이 많다. 함양 노루 한 마리하고 산청 노루 세 마리와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전할만큼 좋은 약초가 많이 난다 하여 육십령 깃대봉 부근 100만 평에 산삼밭도 조성해 놓고, 배 사과 감 등 좋은 과일이 나오도록 애를 쓰는가 하면, 젊은이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산업체를 유치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곡리조트 개발사업도 그중 하나다. 뿐 아니라 농산품 수출을 위해 외국을 방문하는 사이 영어의 중요성을 알고 중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영어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면 사비로 장학금 10만 원씩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천 군수는 2002년 취임하자마자 큰 시련을 이겨냈다. 그해 8월31일 2시간 동안 쏟아진 폭우로 마천면 일원에 산사태가 104군데나 나고, 주민이 9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로와 전기가 끊기고 말았다. 천 군수의 불도저 같은 기질은 그 날 빛을 보았다. 포크레인 2대와 덤프트럭 3대를 밤 10시부터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몰고 들어가 새벽 4시경 마천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로 인해 다른 피해 지역보다 빠른 시간 안에 인명을 구하고 사태지역을 복구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정부에서 2,500억이라는 막대한 복구지원비를 받을 수 있었다. “산행처럼 목표 향해 차근차근 나아갈 터” “목표는 ‘100+100’입니다. 군내에 백수 노인이 100명 넘고, 연소득 1억 이상 올리는 군민이 100명 이상 되도록 하는 거죠. 인생길은 산길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잘못 들어서면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으면 원했던 길로 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산을 두고 인생의 도장이라 한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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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월공스님..항상 좋은글 올려 주셔서...감사하다는 인사말씀 전하고 싶습니다...언제나 우리님들에게!!!~~선구자로써..가야할 길 로 인도 해 주심으로..어찌 말로 다 형언할수 있으오리까^^?? 정말!!!~~~존경스럽습니다..()()()합장^&^ 부디,,성불하시길~~~발원합니다()()()합장^&^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