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rSnocPE_r0
지난 시간에 안디옥교회에 찾아온 위기를 잘 극복한 내용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믿고 구원얻는 것은 좋은데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음으로 할례를 받게 해야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와서 안디옥교인들에게 주장하자 교회는 잠시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마치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입장인 것처럼 설명을 하니 믿음으로만 구원얻는 것이 아니었나 하면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 확인해 본 결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들을 보낸 적이 없었지만 문제는 이 문제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도 분명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적지않은 논쟁이 있었습니다만 결국에는 베드로와 야고보가 일어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이 되었고 안디옥교회는 다시 기쁨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본문에 다시 한번 안디옥교회에 위기가 찾아온 것을 보게 되는데 이번의 위기는 지난번 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함께 본문에서 읽었듯이 교회의 두 지도자가 심하게 다투어 분열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2차로 선교여행을 떠남에 있어서 새로운 곳을 가기 보다는 이전에 들렀던 곳을 다시 재차 방문해서 신앙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방향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 했습니다만 바나바의 조카 마가를 2차 선교여행 때 다시 데리고 가자는데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행 13장에서 마가가 선교여행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내용을 함께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구브로섬에서 사역한 후에 밤빌리아 버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간 것입니다.
■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마가)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이때 마가가 중간에 돌아간 이유에 대해 두가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바나바가 주도권을 잡았는데 구브로섬에서부터 바울이 주도권을 잡은 것에 대한 자존심의 문제가 있었고 또 하나는 소위 마마보이처럼 워낙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마가였기 때문에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선교여행의 어려움을 실제 느낀 나머지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결코 정당한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은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8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38절..
하지만 바나바도 결코 양보하지 않았고 바울도 한치도 물러서지 않음으로 인해 결국 심히 다투게 되었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교회가 지켜보면서 얼마나 불안해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역 떠나기 전에 저렇게 의견이 충돌하니 선교사역은 고사하고 교회가 위태롭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의 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 바나바의 사역은 주로 사람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바울의 사역은 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고 한 것도 일리는 있어 보입니다. 전에 바울이 회심하고 나서 고향에 가 있는 동안에 교회가 바울을 못 미더워했지만 바울을 교회로 들어올 수 있도록 다리를 놔 준 인물이 바나바였습니다. 만일 바나바가 바울을 믿지 않았다면 사람중심으로 사역하지 않았다면 바울이 선교사역에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이번에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비록 잘못을 했지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카이기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것도 무시못할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반대한 이유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만일 중간에 도중하차하게 되면 함께 있는 다른 사역자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시 중에 병사가 탈영하게 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을 정도로 매우 엄격하게 다스립니다. 한 사람의 탈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탈영이 전체병사들의 사기를 치명적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가 떨어진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도 선교사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38절에 보시면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바울이 말합니다. 여기서 ‘일하러 가지 아니한 마가’ 라고 하지 않고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라고 이름을 대지 않고 일반인칭대명사로 표현한 것은 바울이 지금 마가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 원론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가이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일 바나바가 그런 행동을 보였어도 바울이 똑같이 거절했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전체를 놓고 성경은 바울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선 본문 이후에 바나바는 사도행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반면에 바울의 사역은 더욱 활발하게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절에 보시면 바울이 실라와 팀을 이루어서 선교사역을 떠나기 전에 형제들에게 은혜의 부탁을 받고 떠났다는 것을 통해 교회가 바울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볼 수 있습니다만 바나바는 그렇지 않습니다. 39절에 보시면 마가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 구브로로 갔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 2:11-13.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언젠가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마침 그 식사자리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교인들이 갑자기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베드로는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숨깁니다. 유대인이 어떻게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느냐고 비난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바울이 책망한 것인데 이때 베드로뿐만 아니라 바나바도 함께 베드로를 따라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나바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긴 했습니다만 복음에 대한 확신을 바울만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람중심으로 사역을 한 것은 맞지만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보다는 그 속에 개인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중심이냐 일중심이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먼저 묵상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일에 갈등과 분열이 없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고 또한 개인적인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충돌할 때에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좇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단 신천지도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니까 하나되기를 힘써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나요? 인간적으로는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지만 그들의 신앙은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나바의 말대로 마가를 데리고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당장에 16장에 가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집니다. 별 일도 없었는데 중간에 돌아갔던 마가가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이것을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요?
한가지 기억하실 것은 바울은 냉철하고 차가운 성격이 소유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마가에 대해 의견을 말할 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훗날 바울과 마가는 좋은 관계로 다시 회복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본문에서 바울이 마가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후의 마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마가복음의 저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바울이 인간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가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것이 약이 되어서 마가를 진정한 일군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것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본문말씀은 기록되지 않아도 되는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 내용이 빠져도 결코 사도행전 전체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선순위에 있어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을 두었던 반면에 바나바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세한 차이로 인해 분열이 생겼던 것인데 물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만 바나바가 조카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염두에 두었더라면 결코 본문의 갈등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목포 양동제일교회에 이혁영 장로님이라고 계시는데 젊은 시절 목포 제주간 운행하는 페리호 목포 지점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회사가 경영부실로 새로운 사주에게 넘어갔는데 어느날 사장이 당시 집사님을 부르더니 회사가 자꾸 넘어지는 이유가 고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으니 내일 회사 나와서 고사 지낼 때 앞장서서 절을 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당시 집사님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좀 해 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고사를 지내라고 하니 마음에 큰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절하면 회사에서 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출근해서 사장에게 자신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돼지머리 앞에 절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하는 말이 배가 불렀나보네.. 그럼 나가라고 해서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목포 유달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눈물을 기도를 드린 후에 실직상태로 8개월을 지냈는데 페리회사가 또 망하면서 새로운 사주가 이혁영 집사님을 책임자로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맡길 사람이 이 분 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 맡기는 것이니까 운영을 잘 해보라고 하면서 맡게 되었는데 현재까지 회사를 잘 성장시키고 지역주민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하고 있다고 하는 간증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환경을 보지 마시고 사람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앞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적과 간증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