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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이별 이야기
워낭소리를 보고
고대하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드디어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고 했다. 상영관을 알아보니 개봉관이 적은데도 다행스럽게, 정말 다행스럽게도 ‘창원CGV’에서 상영한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집사람과 보러 갔다.
이충렬 감독이 2005년 봄부터 2007년 봄까지 3년 동안 만든 다큐멘타리 영화로 등장인물은 ‘최노인’과 그의 ‘늙은 아내’, 그리고 30년을 같이 살아 온 ‘늙은 소’이다. ‘다큐’인만큼 늙은 소와 두 노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 낸 영화이다.
‘워낭소리’는 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인 ‘피프 메세나상’을 수상했다. 이어 한국다큐멘터리 최초로 2009 선댄스 영화제(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는 영화제) ‘월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는데 아쉽게 수상은 못했다고 한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노인의 베스트 프렌드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최노인이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 소리도 귀신같이 듣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갈까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최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최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는다.”
<네이버> 검색해서 얻은 자료에 소개된 ‘워낭소리’의 줄거리이다. 그 뒷부분을 덧붙이면 늙은 소와 최노인 부부의 계속되는 고된 노동과 새로 사들인 길들이지 않은 젊은 소 이야기, 늙은 소를 팔기 위해 우시장에 끌고 나간 이야기 등이 전개되다 1년 뒤에 수명을 다한 소가 죽고 최노인도 건강이 나빠져 늙은 소처럼 육체가 쇠잔해감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워낭소리’는 내레이션이 없는데다 쇼킹한 사건도 없고 말이 거의 없는 최노인, 말 못하는 짐승인 늙은 소 때문에 내용 전달이 잘 안되거나 무미건조한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공감하는 많은 부분은 늙은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은 불평이나 지청구 때문이다.
그 특성상 재미없을 수 있는 다큐영화이지만 ‘워낭소리’에서 할머니의 푸념은 가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 자칫 무덤덤해질 영화를 살아있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힘들 때마다 내 뱉는
“아이고, 내 팔자야. 휴~우”
자신의 의견은 무시하고 소만 돌보는 최노인을 향한 푸념
“저 놈의 소가 죽어야 끝이 나지, 소보다 못한 내 팔자야.”
두 노인에게 유일한 문명의 이기인 오래된 라디오가 고장 나자 웃으며 하는 말
“할배도 고물, 라디오도 고물.”
나는 영화를 보며 가슴 벅찬 큰 감동은 아니지만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두 노인 못지않게 평생을 일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때문에 가슴이 짠했다. 우리 부모님들의 지난했던 삶의 모습을 다시 엿볼 수 있어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딱 한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최노인이 인정하기 싫었지만 늙은 소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임종을 기다리며 숙명처럼 코에 꿰고 있던 코뚜레와 목의 워낭을 풀어주는 순간이다. 일생을 ‘일소’로서 살아야 하고 죽어야만 그 잔인한 운명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가슴 뭉클해지며 참았던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바닥에 놓인 워낭과 코뚜레를 클로즈업 한 장면은 내 기억에 오래오래 각인될 것이다.
또 하나, ‘워낭소리’는 인간의 노동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 그런 영화였다.
8살 때 침을 잘못 맞아 근육이 오그라든 불편한 다리 때문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질질 끌면서도 소에게 먹일 꼴을 베고, 경사진 야산 언덕바지에서도 땔감 나무를 베는 최노인의 노동. 한여름 뙤약볕 아래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 밭에서 땀 흘리며 지심을 매는 두 노인의 노동. 9남매를 먹이고 공부 시키고 출가시킨 두 노인의 억센, 아닌 위대한 노동을 보자. 그 누가 이 세상 힘들어 못살겠다고 푸념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게을러서 가난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최노인과 늙은 소는 서로 우직함이 닮았다. 농사를 농약이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고된 노동으로 해결하는 최노인의 우직함과 늙어 비틀거리면서도 묵묵히 일을 하는 소의 우직함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치 보고, 잔머릴 굴리며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오늘날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는 그런 단순 우직함이 이 영화를 가치를 높이는 것 같다.
영화는 마지막 자막으로 가슴 저린 헌사를 띄우며 끝이 난다.
‘유년의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 또한 되뇌었다.
‘어무이, 아부지 고맙습니다.’
아직도 환청처럼 들리는 워낭소리 딸랑~딸랑~ <끝>
<후기>
2월 2일 현재, 극장에서 개봉한지 19일 만에 관객수 10만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로는 꿈의 관객수라 불리는 정도의 인기랍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영화 속의 최노인과 할머니가 사는 집에 기자들과 일반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취재를 하려하고 마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해서 많이 힘드신가 봅니다. 이충렬 감독이 설에 세배하러 갔다가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론사 취재 중단과 개인들의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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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볼려다가 시간이 엇갈리어 '버터 플라이' 봤지요. 예고를 티비로 보고 '워낭소리'를 알게되어 내 블로그에 잠시 올려놓고 히트를 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