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부분
성가대원1 : 살아있는 천사라지요.
성가대원2 : 안에서는 다들 친절한 금자씨라고 부른다잖아요
전도사 : (두부를 주며) 고생 많았지요. 13년 반, 정말 대견합니다.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고, 다시는 죄짓지 말란 뜻으로 먹는 겁니다.
금자씨 : (두부를 치며) 너나 잘하세요.
#2 끝부분
(금자씨는 눈이 맞으며, 하얀 케익을 들고 있다. 그리고 딸은 그 금자씨(엄마)를 보고 있다.)
금자씨 : 하얗게... 살자고.... 두부처럼
딸 : 엄마도... 더 하얗게
금자씨 : (하얀 케잌에 얼굴을 파 묻는다.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에는 두부도 먹지 않던 금자씨가.. 그리고 흐느껴 울고, 딸은 금자씨의 허리를 감싸앉는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모세의 율법이 생각났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야 하는 모세의 율법말이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당한만큼 되 갚아 주어야 하는 모세의 율법에 충실한 영화다.모세의 율법 속에 갇힌 자의 이야기가 친절한 금자씨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모습 속에 친절한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보인다. 이 영화가 믿는 사람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다.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먼저는 위선이다.
등장인물들이 위선이란 가면을 쓰고 있다. 백선생은 아이들 앞에서 율동을 하면서 영어를 가르치지만 그 이면에는 5명의 아이를 유괴하여 죽인 살인자가 숨어있다. 금자씨는 살아있는 천사라는 애기를 듣지만 그 친절 속에는 원수를 갚기 위한 치밀한 분노가 숨어있다. 전도사는 섬김이란 가면을 쓰고, 유괴범 백선생의 하수인이 되어 금자씨를 감시한다. 그리고 돈을 받는다. " 주님의 사업에 유용하게 쓰겠습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도 섬슴치 않는다. 친절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더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악인에게 악을 갚는다는 것은 선이 된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아도 된다는 모세의 율법을 재현하고 있다. 금자씨는 누명을 쓰고 13년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다. 그리고 복수의 칼을 간다. 감옥에서 강패처럼 김양희와 오수희를 괴롭게하는 마녀라는 여인을 죽인다. 3년 동안 밥에 락스를 타서 위가 썩게 만들고, 목욕탕에 비누를 칠 해 다치게 한다. 그리고 결국 마녀를 죽이고 마녀라는 명예를 얻는다. 사람들은 그 일에 박수를 보낸다. 잘 됐다고..
친절한 금자씨는 유괴범 백선생을 한적한 폐교로 끌고 간 다음, 유괴를 당한 아이들의 부모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어떻게 죽일까를 의논한다. 법으로 해결한 것인지, 아니면 고통을 주면 죽일 것인지.. 결국 그들은 손에 칼을 잡고, 도끼를 잡고, 가위를 잡는다. 한 사람씩 백선생에게 다가가 그 흉기들로 보복을 한다. 잔인하게....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는 법이 필요없다. 그러니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모세의 율법에 충실한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원수갚은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세번째, 묵인의 죄
최형사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금자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문 사람이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후에 금자씨가 그를 찾아간다. 5명이나 죽인 백선생을 그대로 놔두서는 않된다고, 정의가 무엇이냐고... 결국 그도 백선생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다. 유괴 당한 사람들이 백선생에게 보복을 하려고 할 때에는 칼을 어떻게 잡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까지 해 준다. 친절한 최형사님이다. 그리고 완전범죄를 위해 함께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둔다. 누군가가 배신을 해서 모두 잡히게 되면 백선생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를 주면서 말이다. 숨기면 숨길 수 있다는 인간의 지혜를 본다. 하나님이 보시고, 그들의 양심이 보고 있는데 말이다.
너나 잘 하세요!
"너나 잘 하세요"라는 금자씨의 말이 메아리 쳐 들려온다. 친절 속에 감추어진 위선과 분노와 죄가 얼마나 많은가? 성경에서는 그들을 바리새인이요 서기관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신앙이란 허울 속에 감추어진 당신들의 내면을 보라고 책망하는 것 같다. 그 모습 속에 나의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 속에 갇힌 자!
이 영화를 보면서 약간의 불쾌감도 있었다. 영화라는 눈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도사의 모습, 금자씨가 광명의 천사가 되어 기도하면서 개가 되어 버린 백선생을 총으로 죽이는 장면, 사건 현장을 재현하면서 들려오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외침..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면 기꺼이 감수해야 할 비난이 아닐까? 모세의 율법 속에 갇힌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친절한 금자씨가 될 수 밖에 없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 이금자는 어려서 큰 실수를 했고, 자기 목적을 위해 남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끝내 얻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
나레이터(딸)가 이 영화를 요약해 주는 부분이자 이 영화의 결론이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먹는 두부를 먹지 않고 복수를 한 후에, 하얀 케익에 얼굴을 파 묻으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흐느껴 운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이 금자씨의 모습이고 인간의 모습이고 율법의 한계다.
"너나 잘 하세요"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잘 해야겠다. 그것이 모세의 율법을 넘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메세지를 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