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할머니와 골목
설월여고 1 김수빈
우리 아빠, 엄마는 맞벌이 부부였다. 그래서 나와 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할머니 집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나와 동생은 거의 매일 할머니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할머니 집은 방림동에 있는 작은 주택이다. 매일 아침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이 나의 일과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이른 시간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매일 나를 할머니 집에 데려다 주시고는 출근을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어린이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면 손수 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셨다. 그렇게 나는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까지 할머니 손을 잡고 다녔다. 할머니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하지 않으셨고 무릎이 아프셨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으셨다. 할머니 손을 잡고 매일 오가던 할머니 집 앞 골목에서 나는 많은 일들을 보고 겪었다. 그 골목은 내가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초라해지고 낡아갔다, 마치 할머니께서 점점 나이가 들어가듯이.
할머니와 함께 노인정에 가고 저녁거리를 사러 가고 산책을 가기 위해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나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그 골목을 걸었다. 저녁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두부 파는 할머니가 종을 딸랑딸랑 흔들며 그 골목을 지나갔고 골목근처에만 가면 할머니 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종소리가 들리고 구수한 냄새가 날 때쯤이면 내가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가끔은 할머니께서 저녁을 짓다가 나와서 골목어귀에서 나를 기다리곤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나를 데리고 들어가서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저녁밥을 주셨다.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었다. 엄마는 다시 할머니 집에 들러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만 닦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내 일과가 끝나곤 했다. 골목은 내 일과를 시작하는 매일 아침 나를 반겨주었고 매일 저녁 나를 배웅해주었다.
골목은 내가 하루 종일 노는 놀이 공간이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친구들과 함께 골목에서 뛰노는 것이었다. 골목 바닥에다가 돌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할머니 집 담벼락에 크레파스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서 할머니께 혼나기도 했다. 그리고 놀만한 것이 떨어지면 동네 아이들과 모여서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골목은 매번 내가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어느 하나에 싫증날 때가 오면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매번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이웃집 할머니께서 주신 천원을 골목 하수구 구멍에 빠뜨려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한번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벌이 내 볼에 침을 쏘았다. 너무 아파서 엉엉 울고 있었더니 할머니께서 얼른 나를 근처 고모 집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하셨다. 난 그 이후로 벌 근처에는 절대 가려고 하지 않는다. 또 내 사촌오빠는 이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이를 크게 다쳤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골목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골목에서 독특한 놀이를 하기도 했었다. 이 골목에는 가끔 차가 다녔다. 경찰차도 가끔 순찰하기 위해서 다녔는데, 나는 차가 그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왠지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골목에 서서 지나가는 차에 대고 인사를 했다. 운전자들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매우 진지하게 인사하는 나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함께 인사를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지만 그때는 정말 즐겁고 보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참 그 골목을 좋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인사는커녕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성격이 소심해서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성격인데도 나는 골목을 찾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인사를 했다. 그만큼 나는 그 골목을 아꼈다.
골목어귀에 공터가 하나 있었다. 할머니께서 그곳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서 가지나 고추 상추 같은 푸성귀를 가꾸셨다. 할머니께서 저녁반찬으로 가지나물을 하신다고 따러 가실 때면 항상 바구니를 들고 따라가서 할머니를 도와 가지를 땄다. 할머니께서는 잔가시가 살에 박힌다고 말리셨다. 나는 할머니를 돕겠다며 나섰지만 사실 가지를 따고 고추를 따는 것은 나에게는 또 다른 재미이자 놀이였다. 골목 공터에는 가지나 고추 말고 봉선화 꽃도 심으셨다. 봉선화 꽃잎이 열릴 때쯤이면 나와 할머니는 검은 봉지를 들고 나와서 꽃잎을 땄다. 할머니께서는 분홍 꽃잎과 초록 잎, 하얀 백반을 넣어 나무절구에 찧은 다음 내 손가락 다섯 개에 조금씩 올리고 비닐봉지로 빙빙 돌린 다음 실로 찬찬 싸매주셨다. 한밤 자고 나면 얼마나 예쁘던지 꽃이 필 때가 되면 매번 할머니께 봉선화 물을 들여 달라고 떼를 썼다. 봉선화 꽃씨가 혼자 툭툭 터져서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고추나 꽃이 피어 있어서인지 그 공터에는 하얗고 노랗고 검은 나비나 꽁지 붉은 잠자리가 많았다. 엄마께서 사주신 잠자리채를 들고 나가서 할머니랑 함께 한번 잡아보겠다고 휘두르다가 거미줄을 건드려서 잠자리채를 놔두고 도망친 적도 있다. 내가 도망치고 나자 할머니께서는 “거미가 뭐시 무서워.”하시며 잠자리채를 주워들고 따라오셨다. 나는 시커먼 거미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 뒤로 그 잠자리채를 사용하지 않았다. 잡은 나비나 잠자리는 다시 놓아주었다. 그 때가 겁 많은 나였지만 호기심에 처음 시도한 곤충잡이였고 아마도 그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꼬마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긴 시간 동안 골목은 내게 즐거움을 준 친구이자 많은 것을 알려준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고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고모들과 큰아버지 그리고 아빠는 그 집을 팔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집을 정리하려는 어른들 속에서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만 말했다. 할머니는 곧 나으실 텐데 이 집이 아니면 어디로 가시느냐고 집을 팔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뿐이고 나는 어른들이 모여 진지하게 얘기할 때마다 문기둥에 기대 속으로만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없는 집은 그나마 없던 숫기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할머니 집이 팔리는 것은 할머니께도 내게도 추억을 다 잃는 가슴 뻥 뚫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나아지실 줄 알았던 할머니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되었고 병원에 가기 위해 골목을 걸었나갔던 그것이 할머니와 함께 골목길을 걸었던 마지막이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는 옆에서 돌보아줄 누군가 필요했기 때문에 할머니께서는 큰 집으로 가셨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떠나지 않는 이상 그 골목은 항상 내 곁에 있었지만 할머니 집을 떠나있어 아침마다 저녁마다 반겨주고 배웅해주던 골목을 볼 수는 없었다. 아주 가끔 그 골목에 가곤 했지만 할머니가 없는 골목은 썰렁했고 텃밭은 누군가 버린 쓰레기장으로 변해 있었다. 골목에 가끔 가는 일도 그 뒤에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끝내 하늘로 가신 할머니를 보내고 우리 가족은 이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한 번도 그 골목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다녀온 그 골목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골목이 아니었다. 뒷산을 깎아 길을 만들면서 골목에 있던 집들은 사라지고 집이 남아있더라도 사람들은 거의 살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골목은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내 시간의 일부가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항상 그렇게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길 바랐는데. 이제는 할머니를 떠나보내듯 그 골목도 떠나보낸다.
첫댓글 글은 광주매일신문 12월 16일자 10면에 실려 있습니다. 12월 19일자 엠비시 라디오와 생방송 인터뷰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