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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평범하지만 가슴엔 별을 지닌 따뜻함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신뢰와 용기로써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의 삶에 새해라는 또 하나의 문을 열어 주신 주님 !
이 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로 보며,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랜 기다림과 아픔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화해와 용서를 먼저 실천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욕심을 버리는 연습,
자기 뜻을 포기하는 연습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
오늘은 지상에 충실히 살되
내일은 홀연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순례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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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떠남, 성찰(省察), 새로움의 길에서...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적지 않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많은 날과 시간들이 지나갔다.
세월과 시간 속에서 ...
시간과 세월 속에서 ...
우리는 그렇게 세월과 시간들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과 세월들 속에서 길을 걸어간다.
인간과 삶의 길 위에서,
순례(巡禮)와 구도(求道)의 길 위에서 ...
조금은 오랜만에 길을 나서고, 또한 이 글들을 만난다.
일과 삶의 여유가 없었고,
삶과 일에서의 마음의 공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그 일이 그 일들일 것이고,
그 삶이 그 삶들일 것인데도 우리가 이뤄간다는 일들이 그러하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삶이 그러하다.
지금은 다시 일들에서, 삶들에서 작은 길들을 나섰다.
삶의 길들을 떠난다.
묻히고 갇힌 채 잠기어서 일하고 살아오기도 했던 날과 시간들,
만나고 사랑하며 갈등하기도 했던 그 모든 사람들, 일들로부터...
지금은 다시 조금 멀리 서서 바라다보고 성찰(省察)하며
작은 기도를 드린다.
지나간 세월(歲月)의 길들을 회상(回想)한다.
과거 현재 미래, 어제 오늘 내일, 헤아리고 헤아리며 헤아릴 세월,
살고 살며 살아갈 날들... 지나고 지나며 지나갈 시간들...
사람들, 일, 관계성, 만남, 떠남, 망각, 봉헌기도, 새로움,
명예(名譽) 허무(虛無) 무상(無常)함, 빛, 어둠, 생명, 희망, 절망, 환희, 고통, 아픔, 감사, 영원 현세 내세, 꿈, 현실(現實), 이상(理想)...
언제 어느 때쯤 길이 완성(完成)되고,
어느 땅 어디에서 희망(希望)을 이룰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길에서 길을 찾으며 길 위에 있는데...
지금 여기에서 길에서 길을 물으며 길 위에서 사는데 ...
어느덧 이 땅과 세월위에 세모(歲暮)의 시간이 흐르고,
신년(新年)의 날이 왔다.
지난 세월과 날들에서, 지나간 시간과 흐름에서,
사랑하고 괴로워하며, 기뻐하고 아파하며,
감사하고 안타까워하며, 행복해하고 섭섭해 하던
그 모든 사람과 일들, 그 모든 것과 행함들,
그 모든 땅과 현실들도 이제는 여기에서 ‘안녕’을 고(告)한다.
‘잘 가라’고 인사한다.
과거는 가고 되돌아오지 않으며, 어제는 떠나고 다시 오지 않으리니.
오, 하느님 !
내 살아오던 날의 그 모든 행복하고 슬퍼하던
인간과 삶의 길을 성찰(省察)케 하소서.
기뻐하고 안타까워하던 그 모든 사람과 일들을 위하여
기도의 마음으로 머물게 하소서.
희망하고 절망스러워하던 그 모든 고마움과 관계성(關係性)들에도
자유의 심혼(心魂)으로 살게 하소서.
새 하늘과 땅에서 새 육신 마음으로...
새 정신 영혼(靈魂)으로... 새 희망 빛으로...
새 날과 걸음으로... 새 얼굴 시간들로 깨어 있게 하소서.
깨어 살게 하소서. 깨어 공부하게 하소서. 깨어 정진하게 하소서.
찬미와 감사로 흠숭하고, 어둠과 그늘에는 기다리며,
상처와 아픔은 용서하고, 고통과 절망에는 인내하며,
모해(謀害)와 몰이해(沒理解)는 묵묵히 간직한 채 길을 가면서 ...
기도(祈禱)하게 하소서.
떠남이게 하소서.
회상이게 하소서.
새로움이게 하소서.
새롭게 밝은 무술년(戊戌年)...
이 새해 새벽에... 이 새해 아침에...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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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가르침 학습하기 >
교회생활에서의 신앙 감각 - 제 2 부 -
나) 믿음의 개인적 차원과 교회적 차원
✓ 11. 성경은 믿음의 개인적 차원이 교회적 차원과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점은 ‘우리는 믿나이다.(갈라 2,16참조)라는 일인칭복수의 형태와 ‘저는 믿나이다.(갈라 2,19-20참조)라는 일인칭단수의 형태로 표현된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서간에서 신자들의 믿음을 개인적이면서도 교회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에 힘입어 말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1코린 12,3참조).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를 그리스도의 몸에 결합시키시고, 신자들 각자에게 교회를 세우는 데 특별한 역할을 주신다(1코린12,4-27참조). 에페소서는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이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분이십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4,4-6)
✓ 12. 신앙은 개인적 차원과 교회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면모들을 보여준다.
1) 신앙은 회개를 요구한다, 이스라엘 예언자들과 세례자요한의 선포(마르1,4참조),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복음 선포(마르1,14이하 참조), 당신 제자들의 사명(사도 2,38-42;1 데살 1,9이하 참조)에서 회개는 죄의 고백이자 하느님의 계약 공동체 안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뜻한다(로마 12,1이하 참조).
2) 신앙은 기도와 예배로 자라고 표현된다. 기도에는 청원, 탄원, 감사와 같은 다양한 형식들이 있으며, 신앙고백은 특별한 기도 형식이다. 전례기도, 특별한 성찬례 거행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초창기부터 그 삶에 본질적인 것이었다.(사도 2,42참조). 기도는 공개적으로 바치기도 하고(1코린14장 참조) 숨어서 바치기도 한다(마태 6,5이하 참조). 예수님께 주님의 기도(마태6,9-13;루카 11,1-4)는 신앙의 본질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복음전체의 요약’이다. 이 기도에서 “저희”, “저희에게”, “저희의”라는 단어들이 사용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
3) 믿음은 지식을 가져온다.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필리3,10이하참조). 이러한 지식은 게시에 근거하고 신자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하느님 체험에 대한 성찰로부터 나온다. 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지혜신학’이 보여 주고 있다.(시편 111,10; 잠언 1,7;9,10; 마태 11,27;루카 10,22참조)
4) 신앙은 고백을 이끈다. 성령의 힘으로 신자들을 자신들과 누구를 믿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고(2티모1,12참조),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복음선포에 힘입어(로마 10,9이하 참조)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게 된다.(1베드3,15). 신자들은 자기 이름으로 이를 실천하지만, 결국 신자들의 친교 안에서 하는 것이다.
5) 신앙은 신뢰를 필요로 한다.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자신의 온 생애를 하느님의 약속에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의 모든 백성이 ‘믿음의 영도자이며 완성자(히브12,2)이신 예수님의 인도로 하느님이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시공간을 통하여 나아가는 커다란 행렬에 참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행렬에 속하여 같은 희망과 확신을 나누고(히브11,1참조), 그들을 이미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에워싸고”(히브12,1)있다.
6) 신앙에는 책임, 특별히 애덕과 봉사가 따른다. 제자들은 ‘그들이 맺은 열매’(마태7,20)로 알아볼 수가 있다. 이 열매는 본질적으로 신앙에 속한다. 하느님 말씀의 들음에서 오는 신앙에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롭게 해주는 믿음(갈라 2,6참조)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야고 2,21-26참조)이다. 자기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식별하는 기준이 된다(1요한 4,20).
다) 진리를 깨닫고 증언하는 신앙인들의 능력
✓ 13. 에레미아서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게 될 것이라는 세 계약의 약속이 언급된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예레 31,33-34). 하느님 백성은 ‘새 영’을 받아 새롭게 일으켜질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하느님의 법규를 깨닫고, 하느님을 따를 수 있게 될 것이다(예제1,19-20). 이러한 약속은 예수님의 직무와 성령의 은사를 입은 교회 생활 속에서 성취된다. 이 약속은 무엇보다 성찬례 거행으로, 신자들이 주님의 피로 맺은 ‘새 계약’의 잔을 받아 마심으로써 실현된다.
- 2018년 2월호에 제3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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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2018. 1. 7
마태오 2, 1~12
♠ 복음 공부 : 동방박사들의 방문 (예수님의 유년기 설화)
세 왕의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서의 예수탄생 이야기에만 나타난다. 장차 종말이 가까우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공을 바치러 예루살렘에 올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이사60.1-6;시72.1-11) 이제 메시아로 아기가 베틀레헴에 탄생하시니, 이방인 점성가들이 찾아와 예물을 드린 반면에 예루살렘 시민들은 당황하고 헤로데는 그를 없애려 까지 한다. 이런 내용은 마태오 복음서 전체에서 유다인과 이방인에 대한 평가와도 잘 어울린다. 사실 예수님 부활 이후의 교회 구성원을 보면 유다인은 소수이고 이방인들이 다수였다(28.19). 마태오는 이런 현상이 소수 유다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인류 보편적 회만이 하느님의 참 백성이란 지론을 폈다. 이런 지론에서 예수성탄 시기로 소급, 투사하여 동방 점성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복음서의 청중에게 별과 왕의 이미지는 즉시 이사야서 60장의 아름다운 노래를 회상시킨다.
* 1~2절 : 헤로데는 기원전 37-4년 사이의 유대왕국의 왕으로 에사우의 후손으로 유대 혈통이 아닌 에돔족이었다.(창세36장). 그는 기원전 4년에 병사하였으므로 예수님은 기원전 7-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으로 보며, 유다지역의 베틀레헴은 다윗의 고향이고,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가 베틀레헴에서 탄생한다는 예언이 있었다(미카5.1). 박사들은(μάγοι마고야) 현인들이나 마술사 점쟁이란 말인데, 문맥으로 보아 별을 보고 점을 친 까닭에 점성가라 한다. 점성술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성행했으며, 온 방향으로 보아 페르시아나 바빌로니아와 아라비아 방면에서 왔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들의 신분이나 숫자 이름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사도 없다. 500년경에 그리스인들은 이들을 3왕으로 추대하고, 황금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하여 (2.11) 발다사르. 멜키오스. 가스파르나라 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 유역을 점령할 무렵 모압 왕 발락은 당황하여 유프라테스의 용한 점쟁이 발라암을 초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민수22-24장 참조) 발라함은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민수24.15-17)라는 신탁이 선포된다.
* 3~7절 : 헤로데와 동방박사들이 공개적으로 만났는지는 불분명하다. 자문단을 통해 베틀레헴이란 장소, 동방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 그리고 유다인의 임금으로 경배 받는 아이가 누구인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헤로데의 모습이 점진적으로 묘사된다. 모략과 거짓과 아기들의 학살로 점철된 양상은 미카 예언자의 메시지가 실현될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한다. 헤로데가 거짓으로 주님을 찾지만, 결코 그분을 발견 못하는 모든 사람을 상징한다고 대 그레고리우스는 말한다.
* 8~12절 : 마태오의 청중은 이사60.6에서 예언된 선물과 왕들 그리고 별의 이야기를 읽을 때, 마태오가 베틀레헴에 나실 예수, 역사 속의 예수님을 주 하느님의 구원하는 현존과 동일시함을 알게 되었다. 마태오는 오직 부활에 비추어서만 동일화 할 수 있었고, 뒤돌아보고 깨달았을 때 예수 탄생의 의미는 명확해진다.
♠ 복음 요약 : 예수 탄생 사건을 실제적인 이야기로 알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독자들의 삶 안에서 예수님 탄생의 신학적 의미를 가르치려는 것이다. 복음서의 편집자는 역사적 사건을 공유했지만 신학적 메시지를 모세와 요셉의 이야기를 혼합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의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예수탄생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이해했던 것을 보게 한다. 즉 예수님은 그들 백성들의 역사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 예수 안에서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죄에서 구원의 희망이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다인 청중에게 부활 이후의 사건들을 그리스도론적 가르침을 주기 위해 이미지를 사용한 것을 보게 된다.
♠ 대화 방향 :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경배하러 온 최초의 다른 민족들이며, 그들의 방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실 하느님 계획의 예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주님을 추구하는 본보기입니다. 한편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헤로데와 같은 반응, 또는 이스라엘의 수석사제나 율법학자와 같은 무관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나는 우리의 삶 속에 오시는 주님께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요?
♠ 참고 문헌 : ▪ 200주년기념 신약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 복음서 발견하기 (마거릿 누팅 랄프 지음, 임숙희 옮김 / 바오로의 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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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2018. 1. 14
요한 1, 35~42
♠ 복음 공부
* 35~36절 : 세례자 요한은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정화하게 표현하였다. 자신은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도 아니고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하였으며, 예수님 신발끈을 풀어주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요한은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 세례를 받으러 오셨을 때부터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37절 :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갔다.
* 38절 :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신다. “무엇을 찾느냐?” “라삐 어기에 묵고 계십니까?” 스승님으로 호칭하는 순간 그들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이 부분을 보고 우리는 추정할 수 있다. 세례자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잔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준비시켰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사람들도 미리 훈련시키셨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요한과 안드레아에게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한다.
* 39절 : 요한과 안드레아는 예수님과 함께 지낸다. 이 시간은 요한의 인생에 있어서 카이로스가 되는 시간이었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이었다. “때는 오후 네 시였다” 요한은 그 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 40~41절 : 그리고 안드레아는 형인 시몬에게 예수님을 만났다고 소개하고 예수님께 데려간다.
* 42절 : 예수님은 시몬을 보고 “너는 앞으로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영어의 베드로 표현은 Peter (피터)이다. Peter는 아주 단단한 돌을 뜻한다. 성경에서는 반석이라고 표현한다.
♠ 복음 요약 : 제자들은 예수님을 생애 처음으로 만난 날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 시간은 바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자연 과학자인 파스칼이 죽은 후, 사람들은 그가 늘 지니고 다니던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파스칼 자신이 신비 체험한 것으로 그의 옷에 꿰매어져 있었다. 그 글은 파스칼 자신에게 분명히 큰 의미를 던져 준 것으로, 그 종이쪽지를 일생 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이 ‘회상’에는 파스칼의 생애에서 있었던 특별한 체험이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은총의 해인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순교자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의 축일, 그리고 순교록에 따르면 또 다른 순교자인 성크리스고노의 축일 전야, 또 다른 이들의 날 밤 10시 30분경부터 12시 30분까지 불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철학자들이나 박식한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다. 확실함, 감격스러움, 환희, 평화를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요 또 너희의 하느님, 하느님 당신을, 그리고 당신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에서는 성경은 두 가지 시간을 언급하고 있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다.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이고,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주님과 일치하여 의미있게 살아가는 시간이고, 크로노스는 주님과 관계없이 세속에 휩쓸려 허망하게 살아가는 시간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시간을 헛되게 허망하게 보내는 것이다. 의미있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시간관리 10계명 이 도움이 된다.
1. 시간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2. 사소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한다.
3. 해야 할 일들은 반드시 기한 내에 마무리 짓는다.
4. 자투리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한다.
5.핵심적인 일에 치중하고 나머지는 적임자에게 위임한다.
6. 맺고 끊는 것을 명확히 하고 가능한 한 삶을 단순화한다.
7.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실천한다.
8. 불필요한 요구는 단호하되 지혜롭게 거절한다.
9.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고, 버릴 것은 그때그때 버린다.
10. 자기만의 안식처를 갖고 휴식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 대화 방향 : 우리가 경험한 우리 각자 인생에서 오후 네 시를 기억하고 체험을 나누어 보자. 비록 다른 사람의 체험일지라도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이 되기 때문이다.
♠ 참고 문헌 : ▪ 세상 한 복판에서 그분과 함께 (송봉모 신부 / 바오로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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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2018. 1. 21
마르코 1, 14~20
♠ 복음 공부
* 14~15절 : 15절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집약해 놓았다. 유대교 특히 묵시문학계에서는 하느님이 역사의
흐름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한다. ‘때가 차서’는 역사가 완성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를 직역하면 ‘하느님의 왕정’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임금으로서 자연계, 인류 역사,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스리신다. 그러나 이는 은밀하고 잠정적인 통치다. 그러다가 역사가 완결될 때가 되면 하느님이 공공연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 왕도를 펴실 줄로 유대교, 묵시문학계에서는 고대했다. 이를 일컬어 하느님의 종말 통치라고 한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환히 그리고 힘차게 당신 왕도를 펴실 때가 다가왔다고 하는데,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① 하느님의 종말통치가 아직은 아니지만, 가까운 장래에 곧 실현될 것이다. ② 그 통치는 예수님의 인품과 업적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종말론적 통치의 미래성과 현재성인데 예수님은 그 통치의 두 가지 성격을 다 강조하셨다.
* 16~20절 : 이 소명사화는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 오던 이야기인데 마르코가 이 자리에 배치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아울러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 때와 수난하신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당신 제자들과 함께 지내신다고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 활동 초창기에 소명사화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복음서 집필 이전의 전승자는 엘리야가 엘리사를 제자로 삼은 이야기를 본떠서 1/16-20, 2/.14의 소명사화를 엮었다. 그 서술 양식을 살펴보면 상황묘사, 소명, 추종 순으로 짜여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심리적 갈등 혹은 인간적 소동 따위를 죄다 없애고, 오직 소명과 추종을 간결하게 명시하여 이상적 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 복음 요약 : 오늘의 복음은 갈릴래아 전도의 시작과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는 대목인데, 전자에서는 요한이 주로 유대 지방 요르단 강변에서 세례운동을 전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주로 갈릴래아 지방 겐네사렛 호수 주변에서 활약하셨다. ‘복음’이란 낱말과 더불어 ‘하느님의 복음’이라는 표현도 초대교회에서 바오로가 맨 처음 사용한 것 같다.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인데, 이 두 사건에 하느님이 깊숙이 개입하셨기 때문에 바오로는 ‘하느님의 복음’이라고 했다. 이제 마르코는 바오로에게서 비롯한 표현을 빌리기는 했으나, 그 내용을 바꾸어 곧 ‘하느님의 복음’은 ‘하느님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전갈을 가리킨다. 후자는 예수님의 모습을 현장감있게 보여주신다. 지나가다가... 던지고 있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너희를 ...되게 하겠다.’ 라고 하신 그분의 목소리에 따라나섰고... 제베대오의 아들들도 아버지와 삯꾼을 버리고 따라나섰다고 하나 이는 우리가 봉사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연이나 주님의 이름을 고백하게 되는 연유를 생각나게 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나를 따라 오너라” - 사랑, 결혼, 가정, 공부, 직장 등 일상에서 우리는 많은 신앙적 갈등을 느낍니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주님보다는 나의 일상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곤 합니다.
☞ 이런 우리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주님의 명령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② 아프리카의 대도시 성미가 사납고 심술궂었지만 기초교회공동체에서는 그를 도와주었다. 집 한 채를 지어주었다. 어떤 구성원은 집을 지어주는 일에 반대했다. 그러자 구성원 중 다른 하나가 “그러면 우리는 훌륭한 사람들만 도와주어야 하는가? 이게 그리스도교인가?“ 라고 했는데, 나는 과연 어느 편에 속하는지 무엇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인지 생각을 나눠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 보득솔 (청년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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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 / 해외 원조 주일
2018. 1. 28
마르코 1, 21ㄴ~28
♠ 복음 공부 - 복음서의 첫 장에서 마르코의 예수관이 집약되어 예수님의 공적 직무가 지닌 특성들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예수님이 가파르나움에서 행한 치유로서, 마르코 복음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기적 이야기로 이 본문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예수님의 구원 활동 안에 어떻게 존재하기 시작하는지 보여 준다.
* 21~22절 : 놀라운 가르침 -가파르나움은 갈릴레아 지방의 큰 항구 도시로서, 예수님이 수난의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시발지며, 예수님 생애의 중요한 부분을 지낸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일에서 특별한 거점이다. 첫 번째 사건이 벌어진 때는 안식일이고,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의 회당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에즈라(느헤 8.14:12.26)의 영적 후계자로 자부하던 이들이 낭독한 성서 구절을 설명이나 해석을 하는 등 가르침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장성한 유대인 중에 해설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회당장이 지명하는 권한이 전통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이 가르치는 능력으로 이미 명성을 얻고 있었다는 암시가 되겠다. 마르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에게 무척 중요하고 거룩한 날, 거룩한 장소에서 먼저 가르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5번) 가르치시는 내용은 자세하게 소개되지 않으나 앞 문맥(14-15절)으로 보아 “하느님 나라”를 주제로 삼으셨다. 22절에서 청중들의 반응은 ‘놀란다’ 충격적이다. 그러면 권위를 가지고 가르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성서와 조상전통을 근거로 가르치는 율법학자들의 율법지상주의와는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은 당신 체험을 바탕으로 하늘나라가 도래했다는 이유 때문에 율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율법이 생겼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는 모습을 마르코는 지속적으로 그의 독자들에게 보여 주려고 고심하였다(2.27:3.4). 예수님은 사람을 율법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시며, 하늘로부터 오는 강력한 권위로써 사람들이 진정한 율법인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여 정의로운 질서로 실천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던 것이다.
* 23~28절 : “더러운 영”에 대한 승리-예수님께서 놀라운 가르침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준 직후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놀라움은 더 커진다. 악령을 더러운 영이라 부르는데 성서에서 ‘더러운 것’이란 ‘거룩한 것’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더러운 것’으로 표현하며,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치되는 적대 세력에 속한다. 예수시대의 유대인들과 고대 사람들은 질병의 경우 악령이 사람 몸에 들어가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자를 치유한다는 것은 악령을 쫒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구마자들이 주문이나 마술 같은 의식을 이용하여 악령을 내쫒았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악령만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점이다. 방어사의 내용을 보면, 더러운 영(귀신)은 자신을 일컬어 우리라고 하는데 귀신은 수가 많기 때문이다. 두목은 사탄인데 여기서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라는 존칭어를 사용하여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하느님의 능력을 소유한 자로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탄의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온 사람으로 알아채고 두려운 나머지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님의 신분을 안다고 허세를 부린다. 예수님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그의 직무를 방해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한편 그 시대의 구마자들은 마술이나 긴 주문을 외워 자신의 권위가 아닌 강한 신의 힘을 비는 반면에 예수님은 오로지 “조용히 하여라. 그에게서 나가라”의 말씀으로 악령을 내쫓는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예수님을 통하여 시작되었다는 표징이다. 예수님의 명성은 권위있는 말과 행위로 갈릴레아 전역에 퍼져나갔다고 보도하고 있다.
♠ 복음 요약 : 마르코 복음서가 더러운 악령과 마귀,사탄에 대하여 말하고 ‘악령을 쫓아내다.‘의 동사는 예수님과 12제자들에게만 사용하는 동사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만이 탁월한 의미에서 권한을 지니신 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으로 되어 있다. “더러운 영(귀신)을 쫓아내다”라는 어휘가 마르코에게는 상당히 비중이 크다. 왜냐하면 구마를 통해서와 상징되는 행위를 통해서 악과의 싸움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전개하시는 사업을 종합하는 개념이며, 후에 바로 제자들을 참여시킨다. 악령을 쫓아내는 행동이 설교와 긴밀한 가르침이 있으며, 설교와 악의 투쟁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고, 추상적인 설교 다음에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고, ’설교 자체가 권위를 가지고 행하여진다.‘ 는 말이다. 사실 악령과 사탄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만나는 데서 시작하여 당신의 사람을 가르치고 준비시킨 경위이며, 교회 안에서 주님과 함께 있도록 부름 받은 모두를 준비시키는 방식이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의 권위를 가지고 행하셨던 구마 이적 행위가 표징으로 보여주는 하느님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와 있는 하느님나라의 표징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신앙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요?
② 혹시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듯이 신앙의 보증으로 어떤 표징을 바라시는지요? 이 시대의 하느님나라의 표징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때 드러납니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 마르코 복음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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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 스케치 >
50주년 준비, 미래를 보다...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ㆍB
서기보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겨울인지 해뜨기 전에 문경새재를 지나 버스를 타고 회합실에 도착하니,
효주아녜스 자매님이 혼자 계셔서 마당으로 나왔다. 잠시 후에 팜필로형제를 만나 커피를 마시는 사이에 다들 모였다.
보니파시아 전국조정 봉사자님이 선창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1단을 바치되, 지향은 지구대표가
돌아가면서 바쳤다.코이노니아가 이어지고, 대림3주일 복음을 한 절 씩 돌아가면서 읽고, 몇 분이 복음나눔을 하였다. 마지막 정리로 데레시아 수녀님이 성서형제회와 예수그리스도 수도회와의 관계를 정립을 제안하셨다. 안나 수녀님은 월례회의 끝무렵에 생활묵상과 수도회의 근황, 그리고 성서형제회에 대한 의견을 내셨다.
데레시아 수녀님 말씀 중에 성당 실내에서 나오는 중앙방송에 따라 삼종기도를 드렸고, 그 이후 당산동팀에서 준비한 식사를 했다.
중식 후 속개된 안건토의에서 내년도 ‘동계 묵상회’ 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장소는 차기조정이 안을 내기로 하였고, 강사는 정 아퀼레오(지풍) 신부님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현재 전주교구에 낼 단체자료와 관련 팀별 해당자료를 기일 내 제출을 전국조정이 요청했다.
팜필로 형제님이 땀이 서린 43년 회고집을 감명있게 들었고, 얼마 전 본당 부주임신부님과
단체 관련하여 보고 겸 면담과정을 설명하였다.
그 이후 창립50주년위원회는 위원장인 보나벤뚜라 형제님의 설명이 있었다. 종전 월례회의는
격월로 하고, 그 사이 시간은 분과별로 모임을 정해서 갖기로 하였다.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쏟아지고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체계를 잡자는 말도 나왔다. 그날 참석한 모든 이가 의견을 개진하였다.
어느덧 시각이 다섯 시가 넘자, 단체 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인 이문동을 기약하며 각자의 터전으로 되돌아갔고, 전주팀과 필자는 단체카톡으로 도착을 알렸다.
어수선함 속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결론을 내지 않았지만 희망적인 회의라 사료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 아니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사시네... 각자 자신 안에 계시는 주님을 비춰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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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2017 동계 묵상회를 마치고...
전주 효자4동 파티마 팀 FㆍB
김 세실리아 (양숙)
+ 찬미 예수님
언제나 나는 그분께 끌려 다닌다.
자발적으로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불평하며 끌려 다니는 게으름을 피우곤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이끌려 3월 ‘FB 동계 묵상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론, 코이노니아, 오래된 한옥 성당에서 미사, 조조 운동, 순교자의 길, 대나무 숲길 산책 등 하나같이 주옥같은 프로그램을 거치노라면 어느새 온유함의 필이 마음에 꽂히게 된다.
언제나처럼 묵상회 때마다 나를 감동시키는 클라이맥스는 사제들의 강론 말씀이다
일반 인문학 강론에서 맛볼 수 없는 신선한 감응이 일기 때문이다.
수녀님이 이끄신 아침 순교자 의 길을 산책하는 것은 사랑스럽고 평화롭고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특히 순교자 의 묘지 앞에서는 저절로 겸손함을, 로사리오 정원에서는 감사함을, 빽빽한 대나무 숲 터널을 지날 땐 고요한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조그만 방죽 길 위쪽에 두 손 벌려 듬직하게 서 계시는 아버지는 ”잘 왔다, 내 새끼들아...!“ 하시며 우리들 모두를 반겨 주시는 것 같았다.
가기 싫다고 떼 부리며 아빠 따라 친척 집 갔다가 예기치 않은 칭찬에 용돈까지 듬뿍 받고 헤벌쭉이 된 아이처럼 선물 보따리를 가슴 한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아버지!
주저쟁이는 언제나 당신을 힘드시게 하였나이다.
소심쟁이는 늘 주저하며 따라다니지만,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당신께 피신하오니 이끌어 가야 할 길을 가게 하소서...!
오, 아버지!
일상의 혼돈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 기준이 되어주시고 가야 할 곳에 불러주시며 힘들 때 위로해주셨습니다.
이따금 그곳에 서 계심을 넉넉한 자연 속에서 일깨워주시는 나의 하느님 감사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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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7년 11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