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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좌절) - 경제, 삶, 마음의 큰 그림(좌절이 내게) bizlink biz****
(bizlink) 우연과 필연 - 영역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비가 온다.
이 비는 그리 좋지 못한 비다.
어려운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비이기 때문이다.
좌절 단계 시작하면서 몽정을 벌써 세 번이나 한 상태라,
정.액이 잘 나와 줄 지 모르겠지만, 일단 싸야겠다.
하지만, 쪼매 어려울지도 모르니까, 너무 뭐라 그러지는 말고,
단단히 각오들 하고 따라오시도록!
71(좌절) - 경제, 삶, 마음의 큰 그림(좌절이 내게)
몽정기 4
우리 지구인들은 살아가면서 숱한 우연, 필연을 경험한다.
어떤 목표를 두고 노력한 결과, 그 목표를 이루면 필연이라 생각하고,
명동거리에서, 잠 못 이루는 밤 시애틀에서, 환락의 도시 긴자 거리에서,
퐁네프 다리 위에서 예정에 없이 친구를 만나면, 우연이라 한다.
우리말로 '우와~아~, 이런 우연이...!'
어뭬리카 말로 'Hey, What a coincidence!(헤이, 와러 코인시던스!)'
이르본 말로 '우짜스까나상, 우여니노 만나데스네~~!'
프랑스 말로 '나 불렀시앙...? 왈라!'
갱상도 말로 '이 신발놈아, 어데 갔더노?'
전라도 말로 '흐미... 아야, 훠어~따, 환장 허것네이......'
강원도 말로 '배고파요...? 감자 드실래요...?'
이러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숨어서 당신을 짝사랑하는 이가 당신의 뒤를 미행하다
명동에서 당신에게 들켰다면, 그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과 필연에 대한 생각은 당신의 영역과 관계있다.
여기서 영역이란, 일에 대한 영역, 친구관계를 비롯한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자세,
삶을 보는 눈, 마음 씀씀이 등을 모두 포함한다.
오늘은 당신의 '마음의 영역'에 따른 우연과 필연,
그리고 그 영역을 어떻게 넓힐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려 한다.
우연과 필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당신이 먼저 이해해야만 하는 게 있다.
'선택'이라는 문제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창조 또는 가공하지 않은 모든 자연물은
당신처럼 매순간 '선택'이라는 걸 한다.
이렇게 모든 자연물, 즉 존재가 선택을 하는 이유는
매순간의 선택이 그 존재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마도 선택이 존재의 '생존방식'이라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또 거시기의 적자생존...
뭐 그런 것들을 학창시절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존방식이 아니라, 존재방식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그 선택과 존재방식으로 우선 들어가 보자.
사고의 지경이 가장 넓다 자부하는 인간은 말할 나위도 없고,
아프리카 평원을 누비고 다니는 맹수, 하이에나가 섭생을 할 때도
막 세상에 나와 아직 양수 냄새도 벗지 못한 임팔라 새끼를 고를 건지,
상처 입고 무리에서 뒤처지는 물소를 공격할 건지,
사자가 잡아놓은 먹이를 떼거지로 몰려가 가로챌 건지를 선택한다.
식물이 자신의 씨앗을 퍼뜨릴 때도 바람에 맡길 건지,
스스로 가장 멀리 폴딱 하고 튈 건지, 새나 곤충을 불러들일 건지,
코끼리로 하여금 먹게 할 건지 등에 대해 선택한다.
그럼, 모든 자연물, 즉 '존재'라는 표현에 돌, 물방울과 같은 무생물도 포함될까?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물이라면, 당연히 포함된다.
지표 저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마그마는 두께가 가장 얇은 지층을 선택해
뚫고 솟구친다. 우리는 그것을 용암이라 부른다.
바닷물에 실려 다니던 모래는 퇴적될 조건이 가장 좋은 해변으로 가서 쌓인다.
대기를 떠다니던 물방울은 가장 알맞은 상승기류를 타고,
제일 적당한 때에 서로 뭉친 다음, 떨어지기 좋은 때를 골라 자유낙하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무생물을 생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느껴질 내 표현에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받는 분도 계시리라.
그리고 또 어떤 분은 읽는 도중 '절대자'나 '섭리' 또는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을 언뜻 떠올린 분도 분명 계시리라.
질문 하나 하고 본격적인 담론으로 넘어가야겠다.
'메마른 파종기에 모내기를 하지 못해 가슴이 거북 등딱지처럼 갈라진 농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모를 심지 못한 채 파종기가 허무하게 끝나갈 무렵,
메말라 비틀어진 논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면,
농부에게 그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농부가 그간 성황당이라도 가서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매일 지냈다면,
그 비는 기우제 지낸 농부에게 우연일까, 필연일까?'
선택의 주체
우연과 필연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존재'의 '존재방식'인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말이 좀 꼬인 것 같지만, 쉽게 그냥 '선택이 뭐야?'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당신은 분명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 없는 선택이 의외의 훌륭한 결과로 연결된 경험도 있을 것이며,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당찬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맺도록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는 선택,
그 선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진보를 향한 선택, 또 하나는 퇴보로 가는 선택,
나머지 하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선택......
위에서 모든 존재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그 존재의 고유한 존재방식이라 했다.
우리 인간으로 영역을 좁혀서 말해보면,
인간은 먹는 것부터 신앙, 직업, 학교 등 모든 것을 선택하는데,
선택을 하려면 옳고 그름, 유불리(유리한지, 불리한지)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는 당신이 가진 지식, 지혜, 마음 등이 있다.
그것들이 '자신의 현 위치', '미래에 꿈꾸는 상황', '일이 돌아가는 판세',
'상대나 조직의 나아갈 방향' 등 제반조건을 다양한 각도로 비춰본 뒤에
가장 합당하다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게끔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선택을 하는 주체는 과연 누굴까......
지식도 당신이 가진 것이고, 지혜 역시 당신에게 소속된 것이며,
마음 또한 당신의 것이니, 당신은 당연히 당신이 선택의 주체라 생각해 왔으리라.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 당신의 부모가 원주민조차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당신을 낳는 즉시 사망했고, 당신은 인간을 전혀 못 본 상태에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가정해보자.
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그냥 돌이나 모래알 정도로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당신이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바나나나무에 올라가는 행위는
온전한 당신의 선택일까?
아니다. 당신은 성장하는 동안 원숭이들이 하는 행동을 익혔을 것이고,
그게 이미 오랫동안 습관으로 자리 잡았음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바나나를 따려는 당신의 선택에는 이미 '원숭이의 선택'과 '당신의 선택'이
일정 비율로 섞여있다 할 수 있다.
'원숭이로부터 습득한 원숭이의 선택'이 당신의 내면에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인간이 전혀 없는 오지에서조차 이러니,
수없이 많은 인간들 틈에 섞여 사는 당신의 선택이 오로지 당신의 선택이라
우기는 건 바보짓임을 이젠 알았으리라 믿는다.
이처럼, 당신이 하는 선택에는 물론, '자신의 선택'도 있지만,
'자신의 선택이라 착각해온 선택', 즉 '타인으로부터 습득한 습관적 선택'도 무수히 많다.
당신이 아무리 몇 날 며칠 심사숙고에 숙고를 거듭해 내린 신중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게 온전한 당신의 선택이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라 착각해온 선택'이
이미 우리 내면에서 마치 '자신의 선택'인 양 주인행세를 하고 있음을 자각하기는
매우 둔감한 상태에 빠져있다.
'자신의 선택'과 '자신의 선택이라 착각해온 선택'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교육, 습관에 의해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매우 교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이라 착각해온 선택'이 우리를 좌절로 이끌 때,
우리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좌절보다 그 원인을 발견하기가 더 어렵고,
또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은밀한 '습관의 타성' 때문에
고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이제 선택이라는 행위는 '나'라 여겨지는 거울에 비친 내가 한다 할지라도,
그 선택의 진정한 주체는 '나'만이 아닌, 여럿임을 알았으리라.
여태껏 선택의 주체는 100% 당신이라 여겨왔겠지만,
지금부터는 그게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기 바란다.
주인공
당신이라는 존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봐야겠다.
당신은 당신 육체의 주인이다.
당신은 당신 마음의 주인이다.
당신은 당신 행위의 주인이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사고(thinking)의 주인이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 미안하지만, 아니다.^^
정말!? 그럼 누가 내 육체와 마음과 행위와 사고의 주인이야?
궁금하지?
(하느ㅏ님, 부처님, 지금 이런 얘기 하지 마라. 콱!)
주인공이라 그러니까, 당신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겠지만,
절대로 당신 얘기 아니다.
쉽게 쉽게 읽어도 수~웁~~게 이해될 거니까, 맘 편하게 그냥 따라들 오시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남자, 아니면 여자다.
당신이 남자라면 어떤 아름다운 여인의 '남편'일 수도 있고,
예쁜 계집아이의 '아빠'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여자라면 어떤 못 생긴 놈의 '아내'일 수도 있고,
입양한 사내아이의 자상한 '엄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당신은 부모님이 한 때 사랑했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였을 테고,
이모님, 고모부님이 대견해하는 조카이기도 할 거다.
그리고 오래도록 우정을 나눠온 꼬치친구(여자 친구들 끼리는 뭐라고 그러지...?
보...친구... ^^ hehehe...)에게는 언제라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일 것이고,
동네에 나가면 다정한 '이웃 아저씨' 또는 '옆집 아줌마'일 거고,
회사에 가면 능력 없는(아니면 능력이 출중한) '직장 동료'일 것이다.
또... 음, 그렇지. 지하철 안에서는 다른 사람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당신의 성은 '주'가이고, 이름은 '인공'이다.
그래서 당신의 주민등록증에는 '주인공'氏의 자랑스러운 사진이 떡 하니 붙어있다.
이제 질문 들어간다.
위에 나열한 사람들 중,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아빠나 엄마야? 아들 또는 딸이야? 아니면 친구야? 직장 동료야? 이웃 아저씨나 아줌마야?
이런 배역들 중 어느 것이 딱 당신이야?
물론,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그 모든 것이라는 사실,
멍청한 이 bizlink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당신이 남자라 치고, 만 날 천 날 당신에게 바가지를 박박 긁어대는
아름다운 부인이 없다면 당신은 뭐지? 남편이 아니겠지...
당신의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셨다면, 이제 당신은 현상의 '자식'이 아니고,
당신에게 아이가 없다면 '아빠'도 '엄마'도 될 수 없으며,
당신과 함께 '커플리아모텔'에 가서 바람을 피울 상대가 없다면
당신은 '정부'가 될 수 없다.
만약, 위에서 말했던 그 모든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사라진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 주위에 있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과 무생물이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그래서 당신이 당신 외에는 아무 존재도 없는 공간에 홀로 떠 있게 된다면,
그럼, 당신은 그때 뭐라고 불러야 해?
bizlink가 그런 당신을 뭐라고 불러줄까......?
그때, 당신의 존재를 규정지을 수 있는 이름이 도대체 뭘까......
하나 있기는 있지. 그게 뭐냐고?
흥, 뭐긴 뭐야... 당신만 알고 있는 당신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이름,
바로 '주인공'이지...!
그래서 당신의 존재이유 또는 존재가치는
'100% 온전히 당신이라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0.3%짜리 당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 착각 같은 당신'이 규정한 이유나 가치에 있는 것도 아니라,
'당신을 인식해주는 다른 존재'에 있는 거라고.
숩게 말혀서, 당신의 존재는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거야.
당신 주변에 당신까지 포함해서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당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할 수 있는 권리는 10%야.
당신 주변에 당신까지 포함해서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당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할 수 있는 권리는 1%야.
이건 '내가 낸데...'하고 우겨봐야 아무 소용없는 진실중의 진실이야.
1%의 권리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내가 낸데...', '내가 내거등요...' 이러면서
100% 우겨봐라. 지 혼자 100%니, 다른 사람들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다고.
이말 맞겠지? 그렇게 홀로인 사람, 주변 돌아봐라. 의외로 많다.
돈은 열라 많은데, 주변에서 인정 못 받는 사람,
정치적인 위치는 엄청나리, 대단시럽게 높은 데도 존경을 못 받는 사람,
뭐 그런 사람, 지금 한 사람 딱 떠오르지?
그래, 그런 사람 말이다......
지금 당장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
그럼, 당신이 존재가치를 규정할 수 있는 권리가 몇 퍼센트인지 금방 나와.
생각해봤어? 어때...? 정말 별 거 아니지?
그럼, 그럼......
큭큭큭... 그럼,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보자.
당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할 권리는 당신이 아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모르는 사람에게도 있다는 사실! 요건 또 몰랐지?
당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해 줄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얘기야.
요거, 금방 이해 안 되면, 그냥 수학공식처럼 외워 둬. 그게 편해.
자아~~, 그럼 지금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또 생각해봐.
후와아~~~, 그렇게 따져 보니까, 당신의 존재가치를 따질 권리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개미 코딱지만큼도 안 되네!?
큭큭큭... 당신은 개미 코딱지야, 개미 코딱지...
후하하... 하지만, 아직 끝 안 났다.
당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할 권리가 사람에게만 있을 것 같지?
아니다. 당신이 개를 먹어보면... 아, 아니다, 개를 키워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교통사고로 내장이 튀어나온 채 길거리에 방치된 똥개를 데려다
수술시키고 병구완을 해서 데리고 산다면,
그 똥개에게 당신의 존재가치는 무한대다.
마찬가지로, 녹색 시멘트가 처발라질 위기에 처한 4대강,
그 4대강의 모래 틈새에 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들,
그들을 누군가 구해준다면, 그들에게 그 구원자의 존재가치는 또 무한대다.
미물들이 그걸 어떻게 아느니, 구원자의 행동을 판별할 수 있느니 없느니,
인간의 말을 들을 수 있니 없니 하는 건 신경 쓰지 마라.
이 논의는 그들의 자각 또는 인식 여부를 떠난 거니까.
도무지 인간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 그나마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를 계속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맞지? -_-;
자, 그럼 또 계산 해봐야지.
이 지구상에 있는 생물이 몇이나 되는지 또 생각해봐라.
으으으... 당신의 존재가치를 따질 권리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제 안면도 몽산포해변(길이 16km)에 떨어진 바늘 하나 정도밖에 안 된다.
여기에 더해서, bizlink는 자갈, 물, 공기 등 무생물에게도
당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할 권리가 있다 여기고 있다.
이렇게 무생물까지 더해진다면,
당신은 당신이라는 존재의 주인이 아예 아니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을 인식할 수 있는 다른 존재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잡.놈이건, 어떤 쉬뿌랄.년이건,
비로소 '존재'로 인식 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존재가치를 주장할 권리가 별로 없다는 거다.
또 그래서 당신 주변에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이름, 즉 존재가치도 사라지는 거란 말이다.
그러니, 당신의 이름이 '주인공'일 밖에.
主人空...... 주인이 '공'하다......
쉬운 말로 주인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좀 더 세속적인 오해의 말로, '주인은 읍따......!!' -_-;
이게 공(空)이고, 당신 존재의 본질이야.
아닌 것 같고, 억지소리 같고, 궤변 같고, 인정하기도 싫은 우스개 소리 같겠지만,
'당신의 존재가치를 규정할 수 있는 권리'라는 측면에서,
당신은 이처럼 정말로 하찮고 하찮은 존재라니까!
어때? 그러니 꼴랑 1%도 안 되는 권리를 가진 당신,
주식 보유에 비유하자면 소액주주 축에도 끼지 못하는 당신이
당신의 존재가치를 없앨 수 있겠어, 없겠어?
아니, 다시 묻자. 당신이 당신을 콱 죽여뻔지믄 그게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지? 그래......
(이건 기독교, 불교에서 하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거다.)
그래서 이 멍청한 bizlink가 오래전부터 자살하지 말라고 했던 거야.
그리고 자살이라는 방향으로는 아예 발도 들여놓지 말라고 했던 거라고......
당신이 당신의 존재가치를 당신 마음대로, 꼴리는 대로 없애버리면,
그런 걸 보고 '개, 썅.노므 Ziral Zot 따까리 같은 도둑놈'이라고 그러는 거야.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지 맘대로 훔치는 짓, 생명 도둑질!
그게 그런 거라고......
그런 것과 비슷한 짓거리를 벌이는 초일류기업, 있지? 어딘지 알지?
그래, 그런 나쁜 것들이 되면 안 되지 않겠어!?
이 결론을 노숙자 문제로 돌려볼까?
그래서 불쌍한 노숙자를 봤을 때,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그 노숙자의 존재가치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야.
뭔 소린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어허이~~~, 아, 이 사람아,
노숙자는 지나가는 당신을 이 세상에 사는 천사로 보고 있는데,
천사가 노숙자를 그냥 지나치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게 바로 천사인 당신이 당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무관심 한 거 아니면 뭐겠어!?
이젠 좀 알겠지?
계속 가자.
그냥 지나치지는 않지만, 지나칠 때마다 '측은지심'만 내내 발동하는 사람은
일단 자신의 존재가치에 관심은 있는 사람이야.
하지만, 자신이 가진 존재가치만큼 행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지.
그냥 지나치지 않고 1,000원을 내미는 사람은
그게 단지 어릴 때부터 '바른생활'로 배워왔던 습관적인 행위가 아니라면,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막연하나마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이야.
내면에 있는 자신의 존재가 어쩌면 천사일지도 모른다 여기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정하게 말을 걸면서 1,000원을 내미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정립해나가고 있는 사람이야.
자신의 내면에 소중한 천사가 있음을 살풋 감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큰 노력을 하는 사람은
그 불쌍한 노숙자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비로소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야.
이건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
당신뿐 아니라,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이 세상에 있는 존재란 존재는,
그래서 모두 다 주인공인 거야.
모두 다 '관계'에서 서로의 존재가치를 주고받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소리지.
이걸 불교적인 말로 하면 '인연'이 되는 거고, 그 인연의 실타래를
맺고 조절하고 끊고 이해하는 훌륭한 방법을 '연기'라고 그래.
연기... 담배 연기가 아니라, 모든 것은 그에 합당한 인연이 있는 거고,
그 인연으로 인해서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거... 그거.
만약, 그런 걸 모르고, 불쌍한 노숙자 앞에서 쌍나팔을 불면서
봉사를 합네, 기부를 합네, 지 잘난 양 마구 껄떡대는 사람이 있다면?
우린 그런 존재를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아닌,
'인간에 의해 창조, 가공되었을 뿐인 비존재'라 부르지......
made in ingan, made by bad ingan......
비존재가 무신 소리냐고?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야. 사실, 엄청난 욕이지.
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일 때 존재야.
나무를 깎아서 지팡이를 만들 때, 지팡이라는 놈이 처음부터 나무 안에서
알맞은 때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래서 그 지팡이가 다음 존재를 위한
질료가 되느니 마느니 헛소리 지껄였던 놈도 있었는데,
(그놈이 아마 아리스토털났어... 그놈일 거야.)
하여간 그런 개 젓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지팡이는 사람의 손을 탄 거니까, 비존재야.
대리석도 마찬가지로 자연에 있을 때는 존재야.
하지만, 인간의 손을 거치면 비존재가 되는 거야.
그래서 당신 집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들, 인간의 손을 거친 물건들은 비존재라고.
비존재라는 말, 아니 욕은 말이야, 때에 따라서는 '좀비', '쥐.새.끼.', '수전노',
'티끌보다 못한 새퀴' 같은 명칭으로 바꿀 수도 있어.
다들 그런 하찮은 떠벌쟁이 나팔수가 되지 않기를 바래.^^
자, 선택의 주체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고,
이제 선택의 주체랑 선택을 본격적으로 연결해봐야지.
선택의 필연성
'필연'이란, 쉬운 말로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 '원인'을 선택한 존재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어후~~, 내가 써놓고도 이거 한참을 생각해야겠네... 쩝...)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필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필연'과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필연'이 그 둘이다.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필연'은 간단하다.
비가 오는 것, 눈이 내리는 것, 태풍이 몰아치는 것, 뭐 그런 거다.
이런 필연의 원인은 무엇일까...
뭐? 하느ㅏ님? 부처님?
허이구... 또 너무 앞서 나가셨다.
그런 거 아니니까, 말 끊지 말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라.
(지금 안 그래도 헷갈려서 정신이 왔다리 갔다리 하거등요...)
일단, 그런 필연의 원인은 '어머니 지구(mother nature)'라 할 수 있다.
지구가 자신의 존재방식을 위해 가장 좋은 방향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또 하느ㅏ님이 어떻고 인공강우가 저떻고 하믄, 확 뽀뽀해버린다!^^)
저~어~~ 위에서 툭 던지듯 질문했던 거 다시 보자.
'메마른 파종기에 모내기를 하지 못해 가슴이 거북 등딱지처럼 갈라진 농부는
비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모를 심지 못한 채 파종기가 허무하게 끝나갈 무렵,
메말라 비틀어진 논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면,
농부에게 그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농부가 그간 성황당이라도 가서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매일 지냈다면,
그 비는 기우제 지낸 농부에게 우연일까, 필연일까?'
이제 이게 뭔지 알겠지?
그래...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필연...' 이거거등.
그러니 여기에는 '인간의 반응' 밖에 없어.
어떤 놈은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에 필연이라고 게거품을 물면서 반응할 거고,
(정확히 말하면, 기우제라는 원인을 선택한 농부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필연이라고 반응한다는 소리.)
어떤 년은 기우제랑 전혀 상관없는 우연이라고 흥흥거리면서 반응할 거란 말이다.
이런 반응들이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계를 지배해온 거, 맞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는 년놈들 많지?
요즘 장마철이라 없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죽어나가기까지 한다.
이런 일을 겁도 없이 '4대강의 필요성'을 위해서 끌어들이는 새키가 만약 있다면,
그런 놈은 그야말로 '선택도 못하는 게 필연을 이용해 처먹는 아주 나쁜 새키'라는
개.쌍.욕을 듣고 지옥 가서 강바닥 미생물들한테 맨날 뜯어 먹히고,
다음날 새살 돋아나고, 오후에는 또 뜯어 먹히고 하는 형벌을
이 삼천대천 우주가 무량대수만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때까지 당하게 될 거다.
그래도 겁 안 난다면, 흥, 니들 멋대로 반응하세요~~~.-_-
뭐, 그래서 이런 필연은 인간이 선택할 수는 없고,
그 필연에 대한 인간의 여러 반응만 있을 뿐이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필연은 이래서 이해하기가 쉬워.
그럼,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필연'은 어려울까?
응... 쬐끔 어렵고, 어떻게 보면 신비하기도 하다. 일단 들어가 보자.
먼저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군.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섭씨 18도의 가을 날,
영구와 땡칠이, 함자자랑 함하자, 네 명의 존재가 개울가에 앉아 있다.
넷은 둘로 나뉘어서 개울물이 더운지, 찬지, 뜨뜨미지근한지, 따따부리한지 내기를 한다.
그러다 언쟁이 붙었고, 틱틱거리던 영구와 땡칠이는
결국 더러운 성질을 못 참고 세 시간 동안 태권도, 유도, 그레꼬로망 레슬링에
킥복싱까지 하면서 죽기 살기로 싸운다.
함자자랑 함하자는 그런 꼬라지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본다.
실컷 싸우고 난 뒤에 영구가 개울에 손을 담그면서 그런다.
'이 쒸파르... 거 봐! 허버~얼~~나게 시원하잖아!!'
땡칠이 편인 함하자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개울에 손을 담근다.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했던 함하자에게는 개울물이 차다.
그래서 그런다.
'아이, 깜딱이야. 시원하기는 무슨... 찹잖아, 이 영구 멍탱이 시키야!!'
영구 편을 들면서 개울물이 시원할 거라 그랬던 함자자도 손을 담근다.
하지만, 함자자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던 터라 개울물이 차다.
그래서 생각한다.
'어...? 정말로 차갑잖아......'
영악한 년... 졌으믄 졌다고 깨끗이 승복할 일이지, 속으로만... 에잉~~~.
개울물이 차가울 거라 그랬던 땡칠이, 손을 담가보고는 이런다.
'에이... 쓰.벌... 그래, 내가 졌다.'
이런 걸 '독사(doxa)'라고 그런다.
우리말로 하면 '억측'인데, bizlink는 그냥 '자기주장'이라 부른다. 훨씬 쉽거등.
위의 네 존재는 모두 자신의 '자기주장'을 갖게 된 거야.
선택 이야기를 하다 난데없이 뱀(독사^^)이 왜 나오느냐고?
흐흐흐... 다 이유가 있으니까 나왔것지.
위에서 필연에는 '원인'을 선택한 존재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 하나 더 들어간다.
bizlink가 당신한테 물을 한 대접 줬어.
당신이 아이스티를 마시고 싶으면, 그 물을 냉동고에 넣는 선택을 하겠지.
그럼, 그 물은 얼음이 필요한 당신의 선택과 행위에 따라서 얼음이 되겠지.
얼음이 되었을 때, 이걸 필연이라고 해.
당신이 만약 뜨거운 녹차를 마시고 싶다면,
그 물을 주전자에 넣고 보글보글 끓이겠지.
그럼, 그 물은 뜨거운 물이 필요한 당신의 선택과 행위에 따라서 뜨거운 물이 되겠지.
이것도 당연히 필연이야.
이런 걸 '선택적 필연'이라고 그러지 아마......
(선택적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믄, 무지 어려워지니까,
그거 없애버리고 그냥 숩게 가자고. 뭐, 철학 강의시간도 아니니까...^^)
자, 그런데 그런 필연에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어.
아이스티를 마시려고 얼음이라는 필연을 선택한 뒤에
함자자랑 열심히 자다가(흐흐흐......쉬리아모텔에서) 왔는데,
그 물이 그냥 그대로 물인 경우가 있을 수 있지. 냉장고가 고장나버린 거야.
필연에 문제가 발생한 거지. 그런 상황에서 우린 뭐라고 투덜거리지?
'아, 하필 이런 때 고장이 나고 그러냐고...'
이러지.
'하필...', '하...피...일......?'
'냉장고 고장'이라는 측면을 제외하면,
'선택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걸 바로 우연이라고 그러는 거야.
뭐시기? '우연'이라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고!?
'우연'이라는 건, 아무런 원인이 없는 데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래, 맞아. 우연은 인과 관계가 없이 일어나는 일,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결과지.
그래서 '냉장고 고장'이라는 확실한 원인이 있으니, 분명 우연이라 말하기는 어렵겠지.
어쩌면 필연이라 말하는 게 더 현명할 지도 몰라.
아니, 지금 당신은 '고장'이라는 원인이 있었으니, 필연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당신 말이야, 모든 필연에 대한 확실한 원인을 알 수 있어!?
뭐이......? 알 수 있다꼬!?
에헤이~~, 이거 왜 이렇게 뻥을 심하게 치시나 그래...
앞에서 했던 질문이 이제 또 나올 차례로군.
'그렇다면 숨어서 당신을 짝사랑하는 이가 당신의 뒤를 미행하다
명동에서 당신에게 들켰다면, 그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당신 지금, 이걸 우연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거봐... 크크크......
(이게 바로 당신이 가진 당신만의 독사, 즉 '자기주장'이라는 거거든.)
당신한테는 우연일지 몰라도, 그 짝사랑하는 이에게는 필연인 거야.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눈치를 채신 분도 있지 싶다.
앞에서 내가 힌트를 줬던 게 있어.
다시 옮겨 적어볼게.
'우연과 필연에 대한 생각은 당신의 영역과 관계있다.
당신의 영역이란, 일에 대한 영역, 친구관계를 비롯한 다른 이들과의 관계,
삶을 보는 눈, 마음 씀씀이 등을 모두 포함한다.'
선택의 필연성......
그래서 이것은 선택하는 이의 영역,
그리고 선택하는 이가 받아온 교육인 지식, 지혜, 마음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다른 말로, 습관이 당신으로 하여금 모종의 선택을 하도록 하고,
그 선택에는 우연이건 필연이건, 매우 합당한 결과가 온다는 소리다.
다만, 당신이 그 선택의 배후에 숨겨진 원인을 확실히 안다면 말이다.
배후에 숨겨진 원인을 모를 때, 당신은 이런다.
'이상하다......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이 순간이 당신의 독사(자기주장)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선택의 절대적 요인, 습관
위에 언급한 짝사랑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몰래 따라다녔던 이에게 '명동 거리에서의 마주침'은 필연이지만,
목적이 없는, 그리고 마주침의 원인도 모르는 당신에게는 우연이다.
마주침에서 아무런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당신에게는 우연일 수밖에 없단 말이고,
필연, 우연은 그 대상과 목적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보더라도 이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자연현상은
그래서 미개한 인간시대에는 어떠한 필연성도 없었고,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과학이라는 놈이 각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를 밝혀가며
인간의 지식과 관점에서 나름의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올바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는, 설사 우리의 무지로 인해 우연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필연이라 짐작하는 결과가 늘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 말이다.
다시 말해서 독사(자기주장)를 증명할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으잉...? 뭐이...? 올...바...른...... 선택...?
서두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진보를 향한 선택, 또 하나는 퇴보로 가는 선택,
나머지 하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선택......
우리 각자는 모두 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100%, 매순간 올바른 선택을 한다.
아니, 자신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라 믿는다. (이것도 독사다.)
선택하기 애매한 경우에도 대부분 마지막 순간에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퇴보로 가는 선택'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진보를 향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진보를 향한 선택이란 말인가?
바둑의 예를 들어보자.
바둑만큼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게임도 드물지 싶다.
바둑돌 한 수 한 수가 모두 선택의 과정이라서 그렇다.
만약, 당신의 선택이 늘 필연적이라면,
상대는 당신과의 바둑에 큰돈을 걸 수도 있을 것이다.
'매사에 필연적인 당신'이 두는 바둑은 첫 판, 둘째 판, ...... 백 여덟 번째 판이
모두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선택은 늘 필연적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바둑이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선택은 항상 필연과 우연 사이에서 흔들린다.
어떻게 보면 당신의 선택이 항상 필연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욕구, 욕망을 반영한 자유의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기에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당신의 선택은 또 항상 필연과 우연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럼, 당신의 선택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습관이다. 당신에게 실제로 바둑을 가르쳐주었던 사람들의 여러 다른 습관,
TV 바둑교실 강사로부터 배웠던 맥을 짚는 습관,
상대방의 습관을 보고 익혔던 대충 두는 습관 등등등......
진보를 향한 선택이 가져오는 필연, 우연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 정치를 한번 끌어와 볼까......
당신이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면,
그런 선택을 하게 한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재방송한 드라마를 보고 필 받았을 거고, (이것도 독사)
어떤 이는 이명박 후보의 종교적인 성향에 매료되었을 거고, (이것도 독사)
또 어떤 이는 '딴 건 몰라도, 경제(돈) 하나만은 잘 하겠다'는 말을 믿었을 거다. (이것도...)
하여간,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사람들, 내, 분명히 말 하는데,
'경제(돈) 하나 빼고, 딴 건 기대하지 마라!!'
딴 건 모른다고 했던 그의 말, 2009년 지금 필연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도 독사.)
그래서 또 분명히 말하는데,
'그가 경제까지 망치면, 그게 당신들에게는 우연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후보를 찍지 않은 사람들에게 필연의 뭇매를 맞을 각오를 하라!'
이렇게 진보를 향한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당신의 습관, 그리고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습관, 이웃집 아저씨의 습관,
삼촌의 습관 등 당신의 내면에서 살아 숨 쉬는 무수한 습관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명박 후보를 선택하게끔 했으리라.
그러나 당신들의 진보를 향한 선택은
지금으로서는 퇴보로 가는 선택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어떤 이에게는 필연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우연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렇게 우연과 필연은 획일화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선택을 하는 대상에 따라서 필연은 우연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결국, 대상을 제외하면, 우리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필연은 곧 우연이다.
자, 어때? 쉽지?
우리 인간의 삶은 선택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서 필연과 우연에 얽매이게 되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 절망을 경험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필연과 우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전혀 새로운 선택으로......
이제까지 당신은 당신이 선택의 주체라 생각하며,
당신의 입장이나 당신이 속한 조직의 입장에 맞는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알아보았듯이 당신의 존재가치에서 당신이 가진 지분은 얼마 없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시쳇말로, 그런 당신이 선택을 한답시고, 당신의 습관을 때마다 드러내왔던 거다.
1%의 지분을 가진 당신, 잘 들어라.
99%의 선택권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
그 선택권의 주주는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일 수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도 있고,
또 당신이 외면에 그럴싸하게 만들어놓은 '가짜 당신'일 수도 있다.
일단, 99%의 무효표를 골라내라.
그것만 제대로 하더라도, 당신의 선택에 필연은 꽤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우연적인 일이 기실 상대에게는 우연이 아닐 수도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름 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다.
그러려면 뭘 해야 한다?
그래......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한다.
생각하기가 어려우면, 성당이나 예배당, 아니면 절에 가서 기도를 해라.
그것도 하기 어려우면, 명상하는 걸 배워서 해라.
그것도 어려우면, 혼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라.
어떻든,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선택의 기로에 선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장하는
아버지의 무효표, 할머니의 무효표, 또 다른 이의 무효표를 골라내야만 한다.
뭐, 이건 전에도 누차 강조했던 이야기이니까, 그만 하자.
듣는 사람 귀에 딱지 앉겠다.^^
자, 대충 결론으로 가야겠다.
별 정리 없이 막 쓰는 글이라 좀 혼란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겠다 싶지만,
그래도 뭐 할 수 없다. 그냥 계속 갈란다.^^
좀 애롭으믄, 당신이 많이 읽어서 나름대로 이해해 줘... 알았지?^^
필연과 우연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전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앞에서 말했던 지식, 지혜, 마음의 영역을 각각 확장하라는 의미다.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는 법......은 열심히 공부하믄 된다.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나?
하지만 최고의 지식은 바로 식(識)을 없애는 거라는 거... hehehe...
지혜의 영역을 확장하는 법......은 음..., 에이 모르겠다. 니 알아서 하세요.
(마음의 영역을 넓히면 지혜 역시 넓어지리라.)
그럼, 남는 건 마음의 영역을 확장하는 법 하나 뿐이네...^^
그렇다면, 도대체 마음의 영역은 어떻게 확장할까?
어떤 분은 '씨이... 마음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확장해?'
하면서 투덜댈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읽어라.
그럼, 마음이 뭔지 몰라도 영역을 확장할 수는 있으니까.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온 마음을 채웠다.
그 여인의 마음에 지혜는 별로 없지만, '악함'도 별로 없다.
또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어릴 때부터 나쁜 습관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
나쁜 습관으로 온 정신을 채웠다.
그 여인의 정신에는 '선함'도 별로 없고, 내내 자신만 생각한다.
이 두 여인 중 처음 여인은 그냥 그대로 생활해나가고,
두 번째 여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살아 숨 쉬는 나쁜 습관을 깨닫고
마음을 다스리는 작업을 통해 작으나마 통찰을 경험, 지혜를 얻는다.
이 두 여인은 나중에 동일한 결과로 나타난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악함이 별로 없는 행동과 통찰을 통해 나오는 행동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거의 동일한 수준의 배려심으로 상대를 대한다는 소리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당신이 내 글에서 감동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통찰, 더 큰 통찰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다.
마음을 다스리는 작업을 많이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란 말이다.
뭔 소린지 알만... 하나?
당신 못 됐다고... 아주 못된 놈, 못된 년이라고......
마음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필연과 우연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필연을 선택해왔던 마음자세'부터 바꿔야 한다.
이제까지 당신은 당신을 위해서만 선택을 해왔다.
그러나 당신 자신의 존재가치는 당신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둘러싼 다른 존재에 의해서 인정되고 수용되는 것이다.
이전 글에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눈과 마음 얘기를 해야겠다.
당신은 당신의 눈으로 상대를 보지만, 당신의 눈을 볼 수는 결코 없다.
당신은 늘 당신의 마음을 쓰지만, 당신의 마음을 느낄 수도 없다.
당신은 상대의 눈망울에 비친 자신의 눈을 볼 수 있을 뿐이고,
상대의 행동에서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의 눈은 상대의 눈망울에, 당신의 마음은 상대의 마음에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도 이제는 당신의 존재가치를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이 말은 상대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받도록 당신 스스로 입장을 바꾸라는 뜻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상대의 입장에서 선택하도록 훈련을 하라는 말이다.
내가 아는 훌륭한 분이 계셨다.
그분 역시 인간이라 늘 선택을 하며 사셨다.
하지만, 그가 하는 선택은 매우 이상했다.
사실,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나열만 하셨다.
상대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다.
biz도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곧 그는 자신의 선택에 연연하지 않기에 그게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선택하면 자신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드러나는 일은 심하게 말해서
상대로부터 받을 '자신의 존재가치를 포기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상대로부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거야말로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 사실 이기적인 생각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이기라면,
상대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이기라면,
그래서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를 따를 수 있는 이기라면,
또 그 결과가 필연이 아닌, 우연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 참 괜찮은 선택이 아닌가 싶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로 하는 선택에는 강요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나열한 뒤에 상대가 하나를 고르면
다른 가능성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이거 무슨 신선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마음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에, 우리는 그분의 1/10만 따라 해도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경박하고 명박스러운 시절에는 누구나 다 나름의 필연(목표)을 위한
명확한 지도와 목소리를 갖고 있다.
명확한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라도,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주절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필연을 위해서 곁눈질 하지 않고 일로매진한다.
그래서 충돌은 늘 사람들 주위를 배회하고,
한 번 일어난 충돌은 항상 더 큰 충돌을 불러온다.
그러나 이런 충돌은 모두 마음의 편협함에 기인한다.
나, 나, 나, 오직 나만을 위한 필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는 오로지 자신이 증명해야만 한다는,
돈(money)적인 가치관이 판을 치는 이 옹졸한 세상에서 배운,
매우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그러나 참으로 그릇된 생각 때문이다.
그러는 대신, 상대를 위해 마음에 늘 둘 내지 세 개의 가능성을 준비해 두는
'낯선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고작 두 세 개의 가능성을 상대 앞에 나열해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시선이 확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만족하는 상대를 마음으로 느끼면서
그 다음에는 네 개, 또 그 다음에는 다섯 개...... 이렇게 늘여가 보면 어떨까......
이렇게 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죽이기', 또는 '양보하기'라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자신을 죽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생각만 딱 바꾸면, 똑같은 행위에서 전혀 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아 참, 근데, 그걸 방해하는 가장 큰 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당신의 내면에서 틈만 나면 벼락같이 튀어나오려고 준비하고 있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인내력'과 '내가 나거등요...'하는 것들이다.
그놈들만 잘 다독이면서 더 많은 가능성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의 영역을 확장하는 첩경(지름길)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가능성의 영역, 배려의 영역,
마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전에는 당신에게 그토록 필연(목표)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우연(하잘 것 없는 일)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에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확고한 우연(하잘 것 없는 일)이었던 것을
조금씩 필연(목표)의 범주 안으로 새롭게 당겨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여태껏 필연이라 여겨왔던 현상을
우연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음을 내게 될 것이고,
때마다 우연처럼 보이던 것이
다른 이에게는 필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렇게 우연과 필연의 동일성을 상대로부터,
또 당신 자신으로부터 하나씩 발견해 나가면서
당신 마음의 영역은 인간의 오랜 습관이 설정해 둔 우연과 필연,
그 어쭙잖은 경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보다 불쌍한 이들,
노숙자,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또는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무리만을 위한 정치에 여념이 없는 불쌍한 정치인,
돈을 위해서만 칼을 드는 불쌍한 의사와 같은
필연과 우연의 경계에 갇혀 날개를 펴지 못하는 이들을 도울,
참으로 크고 거룩한 마음을 낼 수 있으리라.
bzilink는 '전혀 새로운 이러한 선택', '우리가 해야할 선택'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선택' 이라 부른다.
인제 오늘은 고만 쓸란다......
아이고, 허리야~~~~.
하여간, 죽으면 늙어야 한다니까.^^
잘못된 현상이 설정해 둔 경계들,
뻔히 눈에 보이는 그 나쁜 경계들을 무너뜨리고 싶어
때마다 메아리처럼 주절거리는 또라이,
bizlink.
오늘 비는 무섭다.
전혀 좋은 비가 아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무서운 비라서 그렇다.
그래서 정신이 없었다.
글이 좀 난해하거나 논리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냥 너그럽게 읽고 대충 넘어가주면 좋겠어. 미안......
내일 아침, 모두 주변에 비 피해 입은 이웃들 없는지 살펴봐주기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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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말씀 깊이 새겨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을 통해 나를 본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세상에 찌들어 잊었던걸 다시 꺼냈군요.